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1화
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찌를 뻔했다.
고레벨이었으면 내 동작을 읽었을 텐데, 다행히 아무 이상도 못 느낀 것 같았다.
"도둑 직업을 갖고 계시네요?"
"그게 보여요?"
각성 명 천사소녀, 실제 이름 송하영과 나는 상당한 악연이었다.
나는 정부가 어렵사리 얻게 된 마족의 시체를 호송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때, 수많은 도둑 계열의 플레이어들이 호송차량을 노렸었는데 그중 한 명이 천사소녀였다.
당시 천사소녀는 한국의 대도였다.
랭커들 중에서 천사소녀에게 당하지 않은 랭커가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 * *
그나마 나는 천사소녀에게 당한 적이 없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솔직히 언제 훔쳐 갔는지도 모르겠다.
마족의 시체가 놓여 있던 자리에는 천사소녀의 시그니처, '메롱'이라는 쪽지가 놓여 있었다.
'아, 그냥 지금 죽일까?'
그때 내가 얼마나 큰 비난을 받았는지 모른다.
언론에서는 도둑에게 당한 국정원 플레이어들이라고 대서특필했고,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감이 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네?'
일단 호송 자체가 내 주특기가 아닐뿐더러, 굳이 그걸 우리에게 맡겨야겠으면 뛰어난 도둑계열 플레이어를 몇 명 섭외해서 붙여달라고 했었다.
그랬더니 국가에서 하는 일에 어떻게 도둑 직업을 섭외하느냐고 거부당했다.
우리 높으신 나으리들께서는 도둑 직업을 직업이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했었으니까.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이 세상에 만능잡캐 같은 건 없다.
검으로 싸우면 당연히 내가 이기지만, 도둑질로는 도둑을 못 이긴다.
그들의 수법을 막아낼 능력이 내게는 없었다.
차라리 죽이면 죽였지.
"저기요, 혹시 저한테 반하신 건 아니죠?"
"……."
진짜 한 대 칠까.
한 대 치면 날아갈 거 같이 생기기는 했다.
체구가 무척 작았는데, 작다 못해 야윈 수준이었다.
머리카락은 샛노란 색으로 물들인 상태.
겉모습만 보면 귀여운 소녀였는데 너무 귀여워서 패버리고 싶…… 아니, 이게 아니지.
내가 물었다.
"도둑 직업이랑 같이 레이드 진행하면 이점이 뭐가 있죠?"
도둑 직업은 레이드에 있어서는 그다지 선호되는 직업은 아니다.
레이드에 도둑의 역량이 필요한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
"도둑 무시하세요? 도둑도 세요. 저 레벨도 높거든요?"
"……예, 뭐 그렇겠죠."
틀린 말은 아니다.
아직 저레벨 구간이니까 얘도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는 있을 거다.
중계자의 시선에 무엇인가가 잡혔다.
[플레이어 '천사소녀'가 스킬, '장물 탐색'을 사용하였습니다.]
몽마, 릴리아가 스킬을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자세한 정보가 보였다.
릴리아보다 훨씬 약한 녀석이라서 더 많은 정보를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친절하게 밑줄 표시까지 되어 있었다.
──────────
[장물 탐색]
상대의 인벤토리를 포함하여 창고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내부를 훔쳐볼 수 있습니다.
* 단, 인벤토리의 경우 스킬 사용자보다 저레벨이어야 합니다.
* 보석류 및 귀중품의 경우 장물 탐색의 능력이 극대화 됩니다. (+10레벨 플레이어의 인벤토리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요즘 계속 생각한다.
내가 가진 '중계자의 시선'은 확실히 특별했다.
'이 스킬에 이 정도 능력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근데 천사소녀가 씨익 웃는 게 보였다.
황급히 표정관리 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나는 분명히 봤다.
'내 인벤토리 안에 금괴를 봤나 보다.'
백 프로 훔칠 생각을 하고 있겠지.
내 눈에는 쟤 스킬도 다 보인다.
장물 탐색 외에도 '대도적의 손길'도 갖고 있다.
게다가 현재 상태까지 다 보인다.
[#저게다 얼마냐? #금주세요 #다주세여♡]
쟤도 어지간히 진심인가 보다.
뒤에 되지도 않는 하트까지 붙는 걸 보면.
"그래요. 같이 하죠, 사람이 많으면 좋을 것 같으니까. 다들 이의 없지?"
본격적인 레이드 전, 나는 상식적인 경고를 하나 해주기로 했다.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 건데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네, 말씀하세요."
"우리 거 훔치는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자 천사소녀는 화들짝 놀라며 배시시 웃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거 도둑 차별 발언이에요!"
"……."
"협력하기로 한 이상, 저는 절대 그런 짓 안 해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죠?"
천사소녀는 자기 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팀원들도 억울하다는 듯 강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심이 되네요."
만약 도둑질을 실행하면 그건 천사소녀의 뼈아픈 실책이 될 거다.
천사소녀의 스킬인 '대도적의 손길'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스킬이니까.
도적질에 성공하면 무려 장물을 무려 2배 가까이 획득할 수 있는 특전이 걸려 있지만, 실패하면 2배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어 있다.
정확히는, 도적질을 하려던 상대에게 2배에 해당하는 배상을 해줘야 했다.
'내가 획득한 금괴가 대충 5억 원어치는 될 거 같은데.'
그럼 쟤는 스킬 실패 시 나한테 10억 원가량은 물어줘야 한다는 소리다.
지금 레벨 수준에서 그런 피해는 재앙이겠지.
"믿어 주세요."
[#동네 사람들 #나이제부자 #과거청산]
남들이 보면 귀여운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그럼 목재현, 입장."
목재현은 겁에 잔뜩 질린 모양새로 한 걸음 내디뎠다.
애들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보스 룸, '황금 두꺼비의 산란장'에 입장하였습니다.]
"전형적인 보스룸의 형태를 띠고 있고요, 바닥은 진흙이네요. 뿔 두꺼비 몇 마리가 돌아다니는 게 보이지만 그리 큰 위협은 아닐 거 같습니다."
서둥이들은 서둥이 나름대로 은신했다.
"도둑분들도 일단 은신해서 대기하는 게 좋겠네요."
"그럴게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천사소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냉큼 은신했다.
김정현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물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어요."
"그러게요. 물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바닥은 늪.
그런데 물이 아주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물이 꽉 차서 익사하는 형태의 방인가 봅니다."
원래 잘 알고 있었기에 딱히 당황하지는 않았다.
애들은 조금 당황한 것 같지만 말이다.
"보스룸인데 보스는 보이지 않네요. 보스가 만들어지는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인데요."
나는 중계자의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응?'
[LV1/황금 두꺼비의 알]
여기저기에 황금 두꺼비의 알이 잡혔다.
'와, 이거까지 다 보인다고?'
이 필드 곳곳에 숨겨져 있는 황금 두꺼비의 알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뛰어난 길잡이나 탐색가가 없는 경우, 결국 노가다로 찾아야 한다.
원래 나도 그러려고 했다.
'이건 특별하다 못해 좀 수상한데.'
내 중계자의 시선은 이상하리만치 성능이 너무 좋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한 능력이었다.
"다행히 단서가 제 눈에 잡히고 있습니다."
나는 애들에게 '황금 두꺼비의 알'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래도 호흡을 많이 맞춰봤다고 애들은 내 말을 잘 수행했다.
"오빠! 찾았어!"
"저도…… 찾았…… 습니다."
"나도 찾았다!"
"형! 저는 3개나 한 번에 찾았어요!"
제일 빠른 건 서지아였다.
다른 애들처럼 호들갑 떨지 않고 그냥 나한테 가까이 와서 '여기.' 하고 내밀었다.
얘는 무려 17개나 찾아왔다.
뭉텅이로 모여 있는 것들을 포함하여, 알의 숫자는 대략 3,000개쯤 되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찾는 것만으로는 딱히 변화가 없네요. 근데 이게 레벨이 있거든요?"
이 알도 마물이라는 소리다.
"한 번 찔러 보겠습니다."
나는 단도로 두꺼비의 알을 찔러보았다.
물풍선 터지는 것처럼 팍! 하고 터졌다.
녹색 악취 나는 독액이 많이 튀기는 했지만 그래봤자 레벨 1짜리 독액이었다.
"우리 팀원들, 뭐하세요?"
수천 개의 되는 알을 부숴야 한다.
애들이 살짝 멈칫했다.
별거 아닌 노가다인데 왜 멈칫하는 건지 모르겠다.
"오빠, 나는 힐러인데……."
"레벨 1짜리 독액은 묻어도 돼."
"그, 그건 그렇지? 하, 하하!"
차진솔은 눈을 질끈 감고 두꺼비 알을 깼다.
푸악!
하고 독액이 튀었지만 역시 안 다쳤다.
"우욱."
차진솔은 코를 막았다.
"왜 그래?"
"내, 냄새가 너무 역해."
와, 겨우 이걸로 구역질을 한다고?
시궁창 형태의 던전을 좀 데리고 다녀야 하나?
이건 생각도 못했다.
애들이 멈칫했던 게 냄새 때문이었나보다.
"오늘의 에이스는 서지아 양이군요. 속도도 제일 빠르고 손속도 거침이 없네요. 과연 딜러다운 모양새입니다."
녹색 독액이 너무 많이 튀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녹색 독액은 끈적한 기름의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몸에 엉겨 붙어 버렸다.
서지수도 자극받았는지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저번에 자기 매력을 보여 준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이제야 지키고 있네요."
애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뿌듯해졌다.
그리고 도둑 애들은 여전히 은신을 한 상태.
힐끗 보니 어지간히 질린 표정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좀 돕죠?"
도둑 애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반쯤 강제로 끌려나와 두꺼비 알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도둑 애들은 우리 애들보다 비위가 훨씬 약했다.
천사소녀는 결국 우웨에엑! 하고 토까지 했다.
어우, 더러워.
"토를 할 거면 멀리 가서 하거나 비닐에 좀 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매너를……."
"우웨에에에엑!"
"우웨에엑!"
도둑 애들은 전부 다 구토에 시달렸다.
우리 애들은 그래도 꾸역꾸역 잘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 이거 약간 뿌듯하네.
그에 반해 천사소녀는 약간 불만인 듯했다.
"저기, 근데 그쪽은 왜 가만히 있어요?"
"아, 저는 스트리머라서요. 스트리머는 원래 레이드에 직접 참여를 안 해요."
"뭐라고요? 아까까지는 되게 직접적…… 우웨에엑!"
얘가 뭐라고 중얼거리기는 했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하도 토악질을 해대는 통에 뭐라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보스 몬스터 등장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보스 몬스터, '성난 황금뿔 두꺼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만치 앞.
한쪽 편에 소용돌이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늪의 진흙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가는가 싶더니 검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레벨 50도 안 되는 마물 주제에 등장이 요란했다.
황소만한 두꺼비가 튀어나왔다.
[LV47/황금 뿔 두꺼비/스킬]
두꺼비가 숨을 쉴 때마다 등에서 보라색 연기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음, 저 연기는 독무인 것 같고요."
독무가 맞다.
공기 중에 뿌려지는 타입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농축된다.
처음에는 별 영향 없지만 농도가 짙어지면 점차 폐를 손상시키는 독무다.
"일단 한 번 싸워보죠. 목재현이 앞장서겠습니다."
목재현은 또? 라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그래도 역시 말은 잘 듣는 녀석이어서 곧바로 수목산성을 펼치며 두꺼비에게 접근했다.
"대충 어그로는 잡혔고, 서둥이들이 공격할 차례입니다."
다들 합이 잘 맞았다.
서둥이들과 김정현이 호흡을 맞추어 황금 두꺼비를 공략했다.
"방어력이 단단한지 공격이 통하지 않네요. 이것 참 큰일입니다."
두꺼비가 기다란 혀를 쏘아냈다.
그 혀가 수십 갈래로 갈라져 넝쿨처럼 변해 수목산성 전체를 덮었다.
치이이익-
연기가 피어오르며 수목산성을 조금씩 녹여냈다.
"공격이 무척 강력한데요."
수목산성이 녹은 틈으로 목재현의 당황한 얼굴이 보였다.
저렇게 당황할 필요 없는데 말이다.
난이도가 이렇게 조절된, 저레벨 구간에서 저렇게 강력한 공격을 연속해서 두 번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때, 서지아가 황금 두꺼비의 등에 단도를 찔러 넣었다.
푸욱!
녹색 피가 튀었다.
"서지아의 공격이 제대로 먹혀 들어간 거 같습니다. 아, 근데 피도 독성이 있네요. 약간 화상을 입었습니다. 아무래도 위기에 속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최갑수 영감님의 면을 살려줄 때도 된 것 같다.
"혹시 몰라 준비한 것이 있는데요."
나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내 시야에 잘 보이도록(방송에 잘 나가도록) 포션병을 내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포션병 뒤쪽을 손바닥으로 가려서 이름이 잘 보이게 해줬다.
[돈벼락의 두꺼비잡이 독]
"이걸 사용해 보겠습니다.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음,
근데 애들이 다 바빠 보이네.
다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느라 나한테 독을 받아갈 여유가 없어 보인다.
애들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원래 보스 몬스터 공략은 어려운 거니까.
"지금 애들에게 여유가 없군요. 그럼 어쩔 수 없이 제가 한 번 공격해 보겠습니다."
재밌어 보여서 직접 하는 건 아니다.
진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