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6화
영상 속에는 검술계열의 현 랭킹 1위, 이현성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한국의 검왕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경쟁자였다.
물론 내가 좀 더 강하긴 했다.
참고로 회귀 전의 나는 이현성한테 랭킹 1위를 내준 적이 없었다.
2위부터 5위까지는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많이 바뀌었는데, 나는 부동의 1위였었다.
이런 걸 두고 압도적이라고 한다지.
그때가 갑자기 그리워지네.
'아, 이거 아니지.'
나는 이현성에게 집중했다.
내 기억보다는 훨씬 앳된 모습이었다.
'죽어도 공무원은 안 할 거라더니?'
내가 기억하는 이현성은 국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가진 녀석이었다.
나더러 왜 이런 실력을 가지고서 공무원이나 하고 있냐고 싸가지없이 말을 하기도 했었다.
나 같으면 절대로 공무원 안 한다고 일장연설을 하던 놈이었다.
국가 차원에서 밀어주는 그 달콤한 성장을 맛봤으면 그런 말 못했을 텐데.
'그런데 공익광고 대표모델이라니?'
과거가 바뀌었다.
나 때문인 거 같다.
시기상으로 더 늦게 합류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원래 저 자리는 내 자리였다.
'근데…… 그건 그렇다 쳐.'
내 공백을 메꿔줄 사람이 이현성이라는 사실 자체도 놀라운 일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
우리가 '어머니'라 불렀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녀 또한 우리와 같은 플레이어였는데 쉽게 말하자면 심리 상담사이자 우리의 정신적 지주같은 그런 역할이었다.
우리는 늘 극한 환경 속에 놓여서 수많은 임무를 진행해 왔고, 그 와중에 단단한 멘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인 상담과 정신적인 케어가 필수였었다.
그 역할을 '어머니'가 수행해 줬었고.
우리는 그 어머니의 각성명이 '마리아'였다.
나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며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얼굴이랑 똑같네.'
당장 이현성만 하더라도 내 기억보다 훨씬 앳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마리아는 내 기억과 같았다.
마치 나이를 먹지 않는 사람처럼.
'묘하게 사람 같지 않은 느낌인데.'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지금 보니 어딘지 모르게 사람 같지 않은 느낌이 있었다.
이것은 타 서버 출신의 인류를 마주하면 느끼는 묘한 이질감 같은 것이었다.
모두가 바로 알 수 있는 건 아니었고, 타 서버 출신의 인류를 많이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오빠,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기로 했다.
공무원이라면 치를 떨던, 도대체 왜 공무원을 하는지 모르겠다던 이현성이 공무원에 지원한 것도.
마리아의 모습이 묘하게 지구의 사람 같지 않다는 것도.
'신경 안 쓰고 싶은데.'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일단 김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 김정현도 내 동료였고, 저기에 지원했었으니까.
"나라에서 플레이어 모집한다던데, 소식 들었어?"
-들었…… 습니다.
"어때?"
김정현의 성격이라면 당연히 지원할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대답이 의외였다.
-저는…… 생각이…… 없습니다.
"어째서?"
얘는 늘 그렇듯 말이 엄청 느렸다.
-돈이 계속 필요할 것…… 같아서요. 조건……살펴봤는데……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라?
예전의 김정현은 '공무원을 해서 다행이야'라고 얘기했었는데.
"연봉이랑 조건이 꽤 괜찮은 걸로 아는데?"
-그게 아무리 그래도…… 진혁 님이랑 할 때에…… 비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
얘는 갑자기 멋쩍게 웃더니 나한테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얘기했다.
얘가 원래 말 놓는 데 오래 걸리는 애긴 하지만 나한테 이렇게까지 깍듯하지는 않았었는데.
이것도 변화라면 변화였다.
"잘 자둬. 최근 한국에서 제일 핫한 곳 클리어하러 갈 거니까."
* * *
이동의 효율성을 위해 작은 버스를 한 대 대절했다.
"김정현, 목재현, 서둥이들, 차진솔, 다 왔고. 그럼 출발하자."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일산으로 이동했다.
황금 두꺼비 던전은 일산의 호수공원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최악의 튜토리얼 던전이라 불리는 '부평역 던전'과 함께 최근 가장 핫한 곳이었다.
"오빠."
서지수였다.
자리도 많은데 왜 굳이 내 옆에 앉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 진짜 황금 두꺼비 던전 가는 거야?"
"브리핑은 다 했을 텐데?"
"거기 최초 발견자들은 다 죽었다던데. 알고 있는 거지?"
"원래 최초 발견자들은 보통 죽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략 60퍼센트 정도는 죽는 거 같다.
"그다음에 진짜 수많은 애들이 클리어하러 들어갔다가 도망쳐서 나왔다던데?"
"출구가 있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아주 친절한 축에 속하는 던전이다.
"아, 맞네. 그렇게도 해석이 되는구나."
내 논리적인 설명에 다들 납득하는 모양새였다.
서지수의 말이 조금 빨라졌다.
"근데 거기서 살아서 도망친 애들이 황금을 주워왔대. 그것도 되게 많이. 한 번 들어갔다 나와서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씩 벌었다나 봐."
황금 두꺼비 던전은 그런 곳이다.
지금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워낙 사기적인 곳이어서 클리어 횟수까지 정해진 곳이다.
'대략 100번 정도 되었던가?'
그 정도 클리어되면 저절로 소멸하는 던전.
그리고 '독점 방지 설정'까지 걸려 있는 곳이다.
자세한 횟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팀이 대략 10번 이상 클리어할 수 없다고 했던 것 같다.
'상관없지. 10번이면 은퇴할 자금은 충분히 나오니까.'
그런데 그때, 운전기사 아저씨가 소리쳤다.
"이런 씨X!!!"
덤프 트럭 한 대가 신호를 위반해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창문 밖을 본 차진솔이 꺄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면 반드시 부딪친다.
큰 사고가 날 거다.
나는 머리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반응했다.
[스킬, '시간배율 촬영'을 사용합니다.]
[배율 : x0.8]
피사체는 덤프트럭.
시간배율 촬영은 레벨 50 이하의 모든 피사체에 적용된다.
덤프트럭처럼 '과학의 산물'은 대부분 레벨 1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운전기사 쪽에 다시 한번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시간배율 촬영'을 사용합니다.]
[배율 : x1.2]
연속해서 두 번 사용했는데 정신이 흔들리는 느낌은 못 받았다.
시간배율 촬영의 피사체가 된 운전기사가 핸들을 더욱 빠르게 돌렸다.
덤프트럭은 느려지고, 이쪽 버스는 빨라졌다.
찰나의 시간을 벌자마자 나는 몸을 던졌다.
쨍그랑!
유리창이 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중계결계.'
아무리 중계결계를 사용해도 덤프트럭과 정통으로 부딪치면 죽을 거다.
시간배율 촬영 덕분인가.
덤프트럭이 다가오는 게 천천히 느껴졌다.
적의 공격이 느리게 보이는 이 현상.
이 불가사의한 현상은 '검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소리다.
지금 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시간배율 촬영' 덕분에 비슷한 효과가 벌어진 것 같다.
내 가슴이 쿵쾅거렸다.
'모든 것은 몸이 기억한다.'
회귀 전의 기억들.
그리고 황금 골렘의 로켓 피스트를 상대하면서 얻었던 경험들이 내 몸을 유도했다.
황금 골렘 때보다 몸동작이 더 자연스러웠다.
그게 나를 기쁘게 했다.
덤프트럭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쳐내야 했다.
덤프트럭의 궤도를 바꾼다.
가슴 속이 근질근질했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토해냈다.
"성장했다!!!'
쾅!
덤프트럭을 쳐냈다.
로켓 피스트를 쳐낼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한 번 배웠던 것을 잊지 않고 또다시 성공해냈을 때.
더 자연스레, 더 효과적으로 성공해냈을 때.
이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근데 어깨는 박살 난 거 같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어깨야 치료하면 된다.
분명 로켓 피스트를 받아낼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만약 내 실력이 퇴보했다면 어깨가 박살 난 거보다 훨씬 아팠을 거다.
'으음.'
그런데 상황이 이상했다.
'운전자가 없네.'
덤프트럭 안에 운전자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함정을 판 것처럼.
덤프트럭 뒤로 검은색 밴 차량 한 대가 스윽- 스쳐 지나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조수석에 탄 사람을 봤다.
'어머니?'
회귀 전에 정말 많은 시간을 나눴던 사람이다.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이지만 분명히 마리아였다.
이건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 같았다.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중계자의 시선을 사용했다.
'저릿저릿하네.'
눈이 아파 왔다.
눈이 충혈되다 못해 핏물이 새어 나왔다.
만약 '제왕의 격'이 없었다면 반탄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알이 터졌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진짜 아픈 축에 속하는 고통인데 다행이었다.
[LV:?/마리아/?/?]
참고로 릴리아의 레벨이 97이었다.
97레벨까지는 읽어낼 수 있었는데, 마리아의 레벨은 읽지 못했다.
제왕의 격과 호환 중인 중계자의 시야로도 소용없었다.
'내 기억 속 마리아는 지구의 인간이었는데.'
국가 단위의 이 플레이어 육성 정책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숨겨져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건 좀 곤란한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일련의 사건들과 엮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지금 당장 사고를 일으킨 것이라 추정되는 마리아와 시시비비를 가리며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싸움의 결과는 개죽음일 테니까.
내가 센 놈과 싸우는 걸 즐기는 건 맞지만, 아예 상대도 안 될 놈에게 달려들지는 않는다.
두려워서는 아니다.
나중에 꺾어야 할 목표가 있는데 지금 죽는 건 억울해서 그렇다.
아무튼 나는 내 나름대로 합당한 추론을 하나 해냈다.
'김정현을 노리고 있는 건가?'
김정현은 국가 소속의 플레이어가 되기를 거부했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목재현과 서둥이들도 거부했단다.
다들 랭킹보드에 이름이 올라가 있어서 신상이 쉽게 파악됐다나 뭐라나.
'아니, 랭킹보드에 각성명이 올라가 있다고 어떻게 신상을 파악하지? 어떻게 연락한 거야?'
랭킹보드에는 실제 이름이 아니라 '각성명'이 들어간다.
당장 목재현만 해도 '찐따'가 각성명이다.
그런데 어떻게 '찐따'로 목재현을 특정하여 연락을 취한단 말인가.
'SSF가 활성화된 것도 아니고.'
나중되면 SSF 사이트도 활성화된다.
플레이어 등록정보를 확인하고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건 맞다.
근데 아직 그건 활성화되지 않았다.
'이거 찝찝한데.'
아마도 내가 모르는 어떤 거대한 음모가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지금 당장 내가 그 음모에 대항할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차진솔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오빠! 괜찮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얘 또 오바한다.
뼈가 몇 개 박살 났을 뿐 아주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위험하게 왜 그런 짓을 해? 나 진짜, 나 진짜,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얘는 또 이상한 소리를 한다.
내가 이렇게 안 했으면 아마 버스 측면과 덤프트럭이 추돌했을 거다.
"내가 이렇게 안 하면?"
"응?"
"네가 죽어."
너는 약해 빠졌잖아.
목재현과 김정현은 그렇다 치고, 서둥이들과 차진솔은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 것이다.
나는 그냥 팩트를 말해준 거다.
자존심 상하라고 한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였다면 자존심 상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얘는 감동받은 모양새였다.
"나는 오빠가 안 아프면 좋겠어."
"……."
줄줄 흐르는 눈물을 씩씩하게 닦아내고서 계속해서 치료를 해줬다.
아, 마음이 괜히 뭉클해질 뻔했네.
"자, 다들 다친 데는 없지?"
다행히 다친 사람들은 없었다.
나도 금방 회복했다.
역시 별거 아닌 부상이었다.
"이거 좀 곤란한데."
"왜? 뭐가? 어디가 아직 아파? 어디가 아픈데?"
"10시에 방송 켠다고 공지했거든."
"이 화상아!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하다.
강미나가 스트리머의 생명은 시간약속이라고 했다.
얼른 잘 마무리하고 은퇴하려면 사소한 것부터 잘 지켜야 한다.
'어?'
좋은 생각이 났다.
"일단 다들 놀랐을 테니 휴식을 좀 취하자."
시간이 조금 흘러 방송 예정 시간인 10시가 되었다.
방송을 켜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최갑수 영감님이 입장했다.
['돈벼락'님이 입장하였습니다.]
누가 입장했다는 알림 다 꺼놨는데, 초대장을 통해 접속한 사람은 알림이 뜨는 것 같았다.
오른쪽 상단에는 '초대 목록'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이름을 전시해 주는 것 같았다.
──────────
[VIP 초대 목록]
1. 돈벼락.
──────────
최갑수 영감님의 흐뭇한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
저 마음 진짜 잘 안다.
랭킹보드, 랭킹 1위에 내 이름 찍힐 때의 전율이 아직도 생생하다.
[초대장 특혜가 적용됩니다.]
[해당 채널에서 1분간 메시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최갑수 영감님이 곧바로 채팅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만이 채팅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 틀림없었다.
[돈벼락 : 드디어 시작인가!]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핫한 던전을 클리어하려고 했습니다만."
나는 무척 난감한 기색을 표했다.
"플레이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어떤 세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사고가 크게 났고, 부상과 후유증이 꽤 심각한 상태입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은 방송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상황만 알려드리고 바로 꺼야겠네요."
[돈벼락 : 이런 괘씸한! 잠깐만!]
"정말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네요."
최갑수 영감님이 굉장히 분노했고, 나는 방송을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