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5화 (35/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5화

최갑수 영감님은 내가 꺼낸 오공독을 보자마자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이건 어디서 구했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요."

"뭐시기?"

"해외맵이에요. 아마 말해도 잘 모르실 텐데."

최갑수 영감님은 약간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근데 방송은 왜 안 켰어?"

"별로 재미없을 것 같은 내용이라서요."

"그래도 스트리머라면 당연히 방송을 키고 진행해야지. 기다리는 시청자들은 생각도 안 하나?"

이 영감님, 내가 알던 그때보다 좀 히스테릭하다.

아직 지구패치가 다 안 된 모양이다.

나는 영감님과 페트로나스 타워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해서, 이걸 얻었거든요. 근데 이게 포션 형태니까 연금술사라면 좀 좋은 걸 만들 수 있지 않나 해서요."

"두꺼비에게 최적화된 독?"

최갑수 영감님은 팔짱을 끼고서 퉁명스레 말을 이었다.

"만들 수는 있겠지만 내가 그걸 왜 만들어줘야 하나?"

"지금 일산 호수공원이라는 곳에 던전이 하나 생겼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거기 두꺼비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독 포션이 있으면 편할 거 같아서요."

"내가 만들어줄 것 같으냐?"

영감님은 평소보다 훨씬 더 비협조적이었다.

내가 실시간 방송을 안 켜고 트윈 타워 던전을 클리어한 것이 무척이나 기분 나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강미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극빠가 돌아서면 극까가 되거든. 그걸 진짜 조심해야 해."

"이유? 유희에 그딴 게 어딨어? 그냥 자기 맘에 들면 빠가 되는 거고, 맘에 안 들면 까가 되는 거지."

내가 다시 말했다.

"영감님 이름 넣어서 포션 제조해 주면 안 됩니까?"

"이름? 그건 왜?"

그건 제작자의 권한이다.

이름을 넣을 수도 있고 안 넣을 수도 있고.

"아니, 이번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할 건데 이왕이면 영감님 이름 드러나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SSF를 이용하는 시청자들, 그중에서도 VIP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지불해 가면서 방송을 시청한다.

실시간 채팅 시에 이름 한 번 불려보려고 후원을 쏟아내는 시청자들도 있다.

누군가에겐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완전히 이해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구는 존재한다.

그건 시청자의 영역에서도 분명 그럴 거다.

나는 그러한 열망을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확신했다.

'이건 무조건 넘어온다.'

"SSF에서 쓰는 닉네임이 돈벼락이죠?"

"그렇지."

"그럼 돈벼락의 오공포션 어떻습니까?"

최갑수 영감님은 팔짱을 끼고서 턱을 매만지고 있었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 이름이 들어가서 해주겠다는 건 아니네."

넘어올 줄 알았다.

* * *

영감님이 말했다.

"가져온 포션들은 릴리아에게 주게."

"영감님이 받아도 되잖아요?"

"비서 뒀다가 어디 쓰나?"

아무래도 이 영감님은 몽마를 통해서 내게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 틀림없다.

'제왕의 격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야.'

정신방벽보다 얼마나 효과가 좋을까?

나보다 훨씬 고레벨인 몽마의 유혹을 얼마나 막아낼 수 있지?

약간 설레기 시작했다.

영감님이 박수를 한 번 치자 문이 열렸다.

다시금 달큼한 복숭아 냄새가 느껴졌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중계자의 시선을 사용해 봤다.

'오?'

이번에 얻게 된 '제왕의 격'은 내 직업과 상성이 무척 잘 맞았다.

'중계자의 시선'의 능력을 대폭 높여준 것 같다.

[LV97/릴리아/스킬/밤의지배자]

원래는 죄다 '?' 투성이였는데 이제는 많은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다만 밑줄 표시가 없어서 자세한 건 읽을 수 없었다.

레벨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서 그런 것 같았다.

근데 어이없는 상태도 보였다.

[#얘 설레하네? #그럼 그렇지 #수컷은 수컷]

내가 설렌 건 제왕의 격을 시험해 볼 수 있어서였을 뿐인데.

자기 때문에 설렌다고 생각하는 게 묘하게 킹받네.

내가 그렇게 쪼다 같은가.

[스킬, '?'를 사용하였습니다.]

'와, 이것도 읽혀?'

레벨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로 표시되었을 뿐.

비슷한 레벨이었으면 무슨 스킬인지도 읽어낼 수 있는 것 같다.

'대충 뭐 유혹하는 스킬이겠지.'

예전처럼 심장이 쿵쾅거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달콤한 복숭아 냄새가 이전처럼 치명적이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 아무래도 성장한 거 같다.

'이게 성취감이지.'

[#분명 설레하고는 있는데? #유혹된 게 아냐? #뭐에 설레는 거야?]

최갑수 영감님이 차를 한 잔 마시고서 물었다.

"릴리아.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

"물론이죠. 밤의 유혹을 사용했어요."

릴리아가 '밤의 유혹'이라는 말을 꺼낸 것이 하나의 트리거가 되었다.

단초가 주어지니 '?'를 해석할 수 있었다.

[스킬, '밤의 유혹'을 사용합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밤의 유혹이라니?

그건 레벨 100 이하 스킬들 중, 몽마들이 사용할 수 있는 유혹 스킬들 중 가장 강력한 스킬인데?

아마 지금 구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유혹스킬일 텐데?

'에이 설마.'

자신보다 저레벨의 이성체(異性體)에게는 거의 100퍼센트 확률로 먹히는 스킬로 아주 유명한 스킬이었다.

내가 아무리 '제왕의 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려 레벨이 50 넘게 차이 나는 몽마가 사용하는 밤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렵다.

뿌리칠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다.

'아직 업데이트 전이라서 그런가?'

내가 가진 정보들은 모두 몇 년 후의 정보들이니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지구 서버에서 '밤의 유혹' 효과가 더 강력해지는 모양이었다.

'아직은 약한 스킬로 설정되어 있나 보다.'

내가 레벨 100에 가까운 몽마가 사용하는 '진짜 밤의 유혹'을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지.

릴리아가 사뿐사뿐 걸어왔다.

"이거, 자존심이 좀 상하네요."

내가 획득한 '오공독'을 회수한 뒤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 예쁘지 않아요?"

"예쁩니다."

"근데 나를 앞에 두고 뭐에 설레고 있어요?"

딱히 설명할 말이 없었다.

"그쪽한테 설렌 거 맞아요."

"흐응, 그래요?"

그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검지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레벨이 몇이죠?"

"40입니다."

"레벨 40에 나를 이렇게 홀대하는 남성체는 처음인데."

허리를 살짝 숙여서 내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 조금 끌리네."

"……."

"호기심이 생겨."

와,

나 지금 소름 돋을 뻔했어.

저번부터 멘트가 진짜 센스 없다.

정신이 확 들었다.

아무래도 이 몽마는 멘트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하는 꼴이 딱 고생과 수련을 배제한 채, 레벨과 스킬에만 의존하는 물레벨 플레이어 같네.

아, 그러니까 내가 버틸 수 있었구나 물레벨이라서.

"영감님, 포션은 언제 완성될까요?"

저런 물레벨은 무시하는 게 답이다.

참고로 나는 물레벨 플레이어를 별로 안 좋아한다.

진정한 성취감과 성장은 배제한 채, 겉으로 보이는 레벨만 올린 거니까.

그야말로 허세 가득한 놈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

정나미가 떨어졌으니까 앞으로도 유혹에 안 걸릴 거 같다.

* * *

3일이 흘렀다.

릴리아가 차진혁의 집을 찾아와 직접 '돈벼락의 두꺼비잡이 독'이라는 포션을 건네주었다.

릴리아가 소파에 앉았다.

"그쪽 여동생. 보이죠?"

"네, 인간처럼 생긴 돌덩어리 하나가 있네요."

차진솔은 릴리아를 보고 입을 쩍 벌린 채 움직이지도 못했다.

릴리아가 미소 지으며 차진솔을 가리켰다.

"저게 나를 처음 본 사람의 정상적인 반응이에요."

"사람 보고 어버버하고 있는 게 정상이라고요?"

"그만큼 내가 아름다우니까요."

"예, 뭐 그런 걸로 해요."

차진혁은 물레벨 몽마와 깊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빨리 본론으로 넘어갔다.

"보수로는 뭘 요구하시던가요?"

"실시간 방송 시작 전에, 미리 초대장을 보내 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게 뭔데요?"

"설마, 몰라요?"

차진혁은 잘 모르는 내용이었다.

시청자들과의 소통 자체를 아예 안 하다 보니 그와 관련된 시스템은 잘 몰랐다.

"100만 다이아를 사용하면 초대장을 살 수 있어요."

"미리 초대장 발송하면 뭔가가 달라집니까?"

"방송에 첫 번째로 들어갈 수 있어요."

릴리아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됐다.

겨우 저런 초대장 하나 얻겠다고 직접 독을 제조해서 주다니.

참고로 그 독을 만드는데 재료값만 3억 다이아가 넘게 들어갔다.

그런데 차진혁은 매우 쉽게 납득했다.

"아 그렇구나."

"납득해 버린 거예요?"

정상적인 플레이어라면 부담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차진혁은 너무 쉽게 이해해 버려서 당황스러웠다.

"납득 안 될 이유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줄 알았는데요."

'역시 물레벨은 뭘 모르네. 뭐가 됐든 첫 번째에 올라서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 건데.'

차진혁은 또 릴리아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그 마음을 전혀 모른 채, 릴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초대장 발송 목록이라는 게 따로 있어요. 거기 이름이 떠요."

"오, 이름이 뜬다고요?"

"갑자기 확 이해한 모양새네요?"

"당연하죠. 초대장을 받아서 입장한 유일한 시청자라는 공증이잖아요."

"그건 그렇죠."

오직 나만이 특별해지는 기분.

한 분야의 최강자가 되는 성취감.

차진혁은 최갑수가 잠깐 부러워졌다.

"아, 그리고 해당 채널에서 1분간 대화를 할 수 있는 특혜가 있을 거예요."

"흐음. 그 정도면 최갑수 영감님 눈이 돌아갈 만하네요."

"……."

"해주신 거에 비해서 지나치게 과한 보상을 드리는 거 같기도 하고."

[#이해가 안 돼 #내가 이상한 거야?]

릴리아는 혼란스러웠다.

최갑수도 이해가 안 되고, 이걸 너무 자연스레 납득하며 오히려 생색을 내는 차진혁은 더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방송은 언제 시작하실 건가요?"

"내일 오전 10시쯤 시작할 겁니다."

* * *

릴리아가 밖으로 나간 뒤, 돌이었던 차진솔은 다시 사람이 됐다.

"오빠. 이게 무슨 일인데?"

"뭐가?"

"저 언니 뭔데? 사람은 아니지?"

"……."

"나 저런 사람 처음 봐. 무슨 연예인이야? 와, 진짜 개 예뻐."

얘는 무슨 지가 랩퍼라도 된 것처럼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도대체 누구냐, 어떻게 아는 거냐, 저렇게 예쁜 사람 처음 본다, 무슨 사람한테서 이렇게 달콤한 냄새가 나냐, 저 언니랑 사귀냐, 기타 등등.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최갑수 영감님 비서야. 나랑은 그냥 일로 만난 거고."

"무슨 일로 만나는 사람이 저렇게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차려입고 집까지 찾아와 오빠한테 그렇게 막 배시시 웃어? 아니, 근데 온몸을 전부 가리는 유교걸이었는데 왜 때문에 섹시한 건데?"

"……원피스를 입었었냐?"

뭐 입었는지 기억 안 난다.

아무튼 차진솔은 계속해서 저 언니 진짜 누구냐를 연발했다.

최갑수 영감님의 비서라고 몇 번을 말해줬는데 말이다.

얘도 내 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몹쓸 병에 걸려 있다.

사실 나도 그 병에 걸려 있으니까 문제 삼지는 않기로 했다.

차진솔의 호들갑은 30분이 지나서야 멈췄다.

겨우 화제가 다른 걸로 넘어갔다.

"오빠. 근데 나 이거 지원해도 돼?"

"뭔데?"

차진솔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뭐 이런저런 미사여구들이 많이 붙어 있기는 했는데 내용은 단순했다.

[뛰어난 플레이어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합니다.]

저번에 이미 발표된 내용이었다.

정부의 플레이어 육성정책.

그게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재능있는 플레이어들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공무원 플레이어를 육성하겠다는 것.

내가 예전에 갔던 길이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기는 한데……."

"그런데?"

"이건 일단 말리고 싶네."

다른 사람들보다 더 궂은 일을 많이 해야 하고, 더 많은 위험을 져야 한다.

국가 소속이니까.

남들의 존경을 받고 충분히 명예로운 일이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근데 그게 내 동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왜?"

"그냥, 글로벌 대기업 때려치우고 공무원 하는 게 맞나 싶어서."

차진솔은 역시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거, 영상도 있어. 장난 아냐. 봐봐."

차진솔은 아마도 공익광고라 짐작되는 영상을 하나 틀어줬다.

'어?'

영상이 조금 이상했다.

여기 이현성이 왜 나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