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0화
심장아 제발 나대지 마.
나는 내 이성으로 본능을 통제해야 했다.
내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이성적으로 찾아냈다.
'이건 재밌어서가 아냐. 최강벽과의 추억 때문인 거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이 피 끓는 레이드가 즐거워서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이제 평범한 스트리머다.
검왕이었던 내가 뚫는 자였다면, 벽왕이었던 그 녀석은 막는 자였다.
덕분에 나랑 최강벽은 최고의 콤비라고 알려졌고, 실제로 엄청나게 많은 대련을 치렀다.
세간에는 '모순의 경쟁'이라 하여 어마어마한 수련을 하는 것처럼 포장되어 알려졌다.
-야, 내가 오늘은 진짜 너 패버리고 만다. 강철 궁댕이 새끼.
-X까, 븅신아.
나는 놈을 찌르려고 애썼고 놈은 나를 막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대련이 끝나면 서로 이겼다고 주장했다.
내가 자기를 못 죽였으니 자기가 이긴 거라나 뭐라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겼는데 그 새끼는 꼭 억지를 부리더라.
아무튼 나는 놈과 정말 많은 대련을 치렀고, 그래서 탱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꽤 잘 알고 있었다.
'중계결계 믿고 그냥 받으면 큰일 나겠지.'
중계결계가 뛰어난 능력인 건 맞다.
스트리머 치고 탱커에 버금갈 정도의 강력한 방어능력을 지녔다.
게다가 속성 방어가 추가되어 레벨 50 이하 급의 모든 타격, 체술계공격에는 완전 면역이었다.
'저 공격을 과연 레벨 50 이하 급의 공격이라 봐도 되느냐가 문제인데.'
황금골렘의 레벨은 45.
본체의 레벨이 45라고 해서, 공격 스킬의 레벨까지 45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괜히 레벨 50이 아니라 레벨 50 '급'이라고 표기된 게 아니다.
사람도 위급하면 평소에 내지 못했던 괴력을 낸다.
2페이즈에 돌입한 보스급 마물도 마찬가지다.
잠깐이겠지만 레벨 50 이상의 파괴력을 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파괴력을 가진 공격을 정통으로 맞으면 나도 위험하다.
'한 번 맞아보고 싶기는 한데.'
예전의 나였으면 맞아 봤겠지만 지금은 스트리머니까 좀 자제하기로 했다.
"쐈네요."
로켓 피스트.
황금 골렘이 가지고 있던 스킬이 쏘아졌다.
"원거리 공격은 사제를 노리도록 세팅된 모양입니다."
내가 차진솔 앞으로 움직였다.
황금 골렘의 주먹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중계 결계.'
그리고 슬쩍 측면으로 빠져서 주먹을 밀어냈다.
완전히 받아낸 것이 아니라 방향만 슬쩍 바꿨다.
최강벽이 자주 하던 걸 따라 해봤다.
'성공!'
의외로 쉬웠다.
쾅!
황금 골렘의 주먹이 벽면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성공했네요. 힘의 방향을 살짝 바꿔 봤습니다."
손목이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다.
뼈에 살짝 금이 간 것 같기도 했다.
주먹 파편이 이리저리 튀면서 내게도 가벼운 상처를 입혔다.
피가 좀 나긴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담담히 방송을 이어갔다.
"업적효과를 머금은 중계결계를 사용해서 방향만 바꿨는데도 이 정도 파괴력입니다. 그냥 받았으면 무조건 죽겠네요."
나는 힐끗 뒤에 서 있는 차진솔을 바라보았다.
차진솔은 무척이나 겁먹은 모양새였지만 그 와중에도 정신을 집중해서 내게 힐을 사용하려 했다.
그 시도 자체는 칭찬해 줄 만했다.
근데 대상이 잘못되었다.
"내가 아니라 쟤를 치료해야지."
내가 김정현을 가리켰다.
차진솔은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딱 봐도 김정현 부상이 더 심해 보이는데 김정현을 치료해야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만약 여기서도 바보 같은 선택을 하면 크게 혼을 좀 내려고 했는데, 다행히 차진솔은 상식이 남아 있는 아이였다.
김정현을 회복시키는 데 주력했다.
"오. 잘하고 있어."
나는 짧게 감탄성을 내뱉었다.
역시 사람은 발전하는 생물이었다.
내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우리 서둥이들은 알아서 자기 할 일을 찾아서 하고 있었다.
"확실히 큰 기술 이후에는 딜레이가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은 것 같네요."
서둥이들이 보다 본격적으로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둘은 서로 교차하며 황금골렘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는데, 그들의 손가락 끝에는 얇은 마력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서둥이들이 협력 속박스킬인 마력실 속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좋은 선택입니다."
안 그래도 외핵을 파괴한 덕분에 많이 느려진 상태.
거기에 서둥이들의 속박스킬이 제대로 먹혀 들어가고 있다.
"딜러들이 드디어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지시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움직이고 있다.
아 정말 뿌듯하다.
속박스킬을 사용하여 잠시나마 황금골렘의 몸을 묶은 서둥이들은 차례대로 온 힘을 다하여 내핵을 찔렀다.
그러나 서둥이들은 황금골렘에게 이미 노출된 상태.
암살자 계열 플레이어들은 노출된 이후 공격 시 공격력이 많이 약해진다.
"그다음은 어느 정도 회복한 김정현이 움직이는군요."
그래.
서둥이들도 능동적인데 천하의 김정현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주먹에 푸르스름한 마력이 깃들었다.
아직까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황금 골렘에게 온 힘을 다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방어를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온 체중을 다하여 크게 휘둘렀다.
쾅!
커다란 타격음과 함께 황금 골렘의 몸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렸다.
툭.
떼구르르.
구 형태의 '내핵'이 떨어져서 굴러왔다.
서둥이들과 김정현의 공격이 유효했는지 금이 좀 가 있었다.
"마침 저한테 굴러왔네요. 그럼 마무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오른손으로 단도를 들어 올리려 했는데,
'응?'
오른손이 덜렁거렸다.
뼈에 금이 좀 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손목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팔꿈치에도 부상이 좀 있는 것 같은데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생각보다는 조금 더 다쳤었군요."
이런 건 워낙에 일상이다.
이 상황이 즐거워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내핵을 잠시 내려놓고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부여잡았다.
"힘을 좀 주면 뼈는 맞출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뚜둑!
소리와 함께 어긋났던 손목뼈가 제자리를 찾았다.
"그럼 이제 내핵을 부숴보겠습니다."
내핵을 단도로 내리찍었다.
그간 많은 충격이 쌓여 있었는지 단 한 번에 깨졌다.
[황금 골렘을 처치하였습니다.]
* * *
황금 골렘을 처치하면서 차진혁은 레벨 39를 달성했다.
'레벨업 속도가 너무 빠른데?'
지금 랭킹보드 최상위 레벨들보다 심지어 조금 더 빨랐다.
'아무리 스트리머가 레벨업 최고봉이라고는 해도…… 에건 폴보다 높으면 좀 그렇지?'
아무래도 만능 스트리머가 레벨업에 메리트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기분은 또 나쁘지 않았다.
머리로는 1등을 거부하고 있지만, 가슴은 여전히 1등을 거부하지 못했다.
[황금 골렘 처치 보상으로, '황금 마석 1개'가 주어집니다.]
내핵을 마지막으로 파괴한 차진혁 앞에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 마석이 하나 떨어졌다.
차진혁이 그걸 주워들었다.
"이건 내가 잘 팔게. 팔아서 1/N하자."
"……."
"……."
차진혁을 제외한 모두가 침묵했다.
"싫어?"
차진솔이 파티를 대표해서 대답했다.
"아니, 좋아. 괜찮아."
"싫으면 바로 얘기해도 됩니다. 팀원들 간 사소한 불만이 쌓이면 안 되니까요."
이번에는 김정현이 대답했다.
"불만…… 없습…… 니다."
"목재현, 너는?"
"저, 저도 없어요."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약간 겁먹은 것 같았다.
황금골렘도 없는데 뭐에 저렇게 겁을 먹은 건지.
쯧, 이제 무서운 게 하나도 없는데 아무튼 겁이 많은 녀석이다.
차진혁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차진솔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오빠…… 손목은 괜찮은 거지?"
"뭐가? 아까 너한테 치료받았잖아?"
그가 손목을 빙빙 돌려 보였다.
"완전히 나았네."
"아까……."
"아까 뭐? 아니 갑자기 왜 울어?"
"오빠 아까 팔꿈치 뼈가……."
"팔꿈치? 왜?"
차진솔의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살 뚫고……."
차진솔이 본 차진혁의 부상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손목뼈가 박살 났고 팔꿈치 뼈가 살갗을 뚫고 삐져나왔다.
그런데 차진혁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히죽 웃고 있었다.
그러더니 대충 뚝뚝 만져서 살 안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마치 장난감 레고를 만지는 사람처럼.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별로 안 아팠는데?"
"그게 어떻게 안 아파!"
"진짜야."
"단도는 또 왜 그렇게 무식하게 내려찍는 건데?"
"그래야 내핵을 부수지?"
"그러다가, 또…… 또 튀어나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고!"
얘기를 듣고 난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팔꿈치 뼈가 두 번이나 살갗을 뚫고 튀어나왔단다.
'아니, 근데 저 정도면 사실 나도 아플 법한데.'
고통에 둔감하고 익숙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통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 정도 고통은 느낀다.
예전처럼 강인한 육체도 아니고, 저레벨 스트리머의 육체인데.
"네가 잘못 봤겠지."
"아냐. 내가 똑똑히 봤어. 내가 제일 가까이 있었잖아."
"그 정도 상처였으면 네가 이렇게 한 방에 나았겠냐? 네 레벨이 무슨 80쯤 돼?"
"그, 그건 아니지만…… 부, 분명히 봤는데."
차진혁은 또 이상함을 느꼈다.
"너네도 다 그렇게 봤어?"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태연한 얼굴로 뼈를 다시 맞추는 그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고 표현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차진솔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이상하게 오빠한테는 힐이 잘 먹혀. 회복속도가 엄청났어."
"그래?"
"응. 내가 원래 낼 수 있는 치유력보다 훨씬, 훨씬 더 많이 치유되는 것 같아. 오빠 몸에서 내 치유력이 증폭되는 느낌? 이건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원래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 나잖아? 김정현도 힐을 엄청 잘 받는 몸이고."
"그 정도가 아니야. 오빠는 차원이 달라."
차진혁은 턱을 매만졌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글쎄. 너랑 나랑 남매라서 그렇겠지."
"그게 무슨 상관인데?"
"혈사제는 피를 매개로 하여 힘을 사용하잖아. 너랑 나는 유전적으로 비슷한 피를 가지고 있으니까 더 큰 힘이 작용 되는 거 아니겠냐?"
그렇게 말은 했지만 차진혁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차진솔은 남몰래 중얼거렸다.
"그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정확히 표현할 말은 없었지만 차진혁의 몸 자체가 그냥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김정현 신체의 장점을 극대화하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진짜 아니었는데……."
답은 알 수 없었다.
* * *
황금 골렘 성 클리어 보상이 주어졌다.
일단 언커먼 등급의 단도 한 쌍.
지금 시점에서는 꽤 괜찮은 단도였다.
서지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 단도. 오빠가……."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안 들렸다.
"뭐라고?"
"……."
서지수가 대신 통역해 줬다.
"그런 단도는 오빠가 가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거야."
"내가 왜?"
"그야……."
뭔가를 말하려다가 마는 모양새였다.
"됐다. 그냥 우리가 가질게. 하나씩 나눠 가지면 세트 효과도 나고 좋은 거 같아. 좀 더 효율적인 공격이 가능해지겠어."
"그래."
당연히 딜러용 아이템은 딜러가 갖는 게 맞지.
너무 당연한 얘기에 무슨 저렇게 명분을 붙이는 건지 모르겠다.
마치 원래 내가 가져야 할 것을 빼앗아가서 미안한 것처럼 말이다.
이내, 반가운 알림이 이어졌다.
[개별 보상이 주어졌습니다.]
[출연자가 '출연료 지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서둥이들은 양심이 있는 애들이었고 출연료 지급을 거부했다.
방어력을 높여주는 반지도 하나 주어졌는데 그건 목재현에게 줬다.
목재현은 출연료를 달라고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래도 역시 착한 아이여서 출연료 지급을 거부했다.
"그럼 내가 황금마석 팔아서 나눌게. 그 과정은 다 녹화할 거야. 사기는 안 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애들은 내가 황금마석을 그냥 가져가는 것에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정말 순진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다.
내가 이거 먹고 튀면 어쩌려고 다들 저렇게 안일하게 구는 건지.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유하면 안 된다고 나중에 교육 좀 해야겠다.
황금 골렘 성을 무사히 클리어한 나는 청담동으로 향했다.
"방송으로 다 봤네.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더군."
"죽을 고비요?"
"허. 그 표정은 뭔가?"
"그런 적 없어서요."
물론 맞았으면 죽었겠지만 안 맞았다.
나름 쫄깃한 맛도 있었고, 약간의 재미도 있기는 했지만 위기를 겪은 정도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로켓 피스트를 제외하면 대체로 실망한 편이었다.
"그래. 그 담담한 컨셉이 실제 상황과 엄청난 괴리를 일으켜서 커다란 즐거움을 주지."
"……."
진짜 컨셉 아니었는데.
아무튼 화면상으로 그렇게 연출이 됐다니까 나한테는 좋은 거겠지 뭐.
"아주 즐거웠네. 황금 마석도 내게 팔겠는가?"
"그러려고 왔습니다."
"좋네. 내가 구입하지."
영감님이 손뼉을 한 번 짝! 쳤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오묘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달콤한 복숭아 냄새였다.
'이 냄새는?'
많이 맡아본 냄새였다.
누군가 사뿐사뿐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 이건 예상 못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