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9화 (29/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9화

죠셉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김철수(차진혁)와 접점을 만들어야 했다.

스타 메이커로서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김철수는 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자다!'

그는 김철수를 좀 더 면밀히 파악하기 위하여 김철수의 모든 실시간 방송과 영상을 예의주시하는 중이었다.

'기만자의 가면'을 사용한다더니, 팀원들의 얼굴이 바뀐 채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방송은 여전히 1인칭 시점.

김정현(얼굴은 달라져 있었지만 죠셉은 김정현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의 표정과 말을 들었다.

"우리……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까요?"

'이건 절대 연기가 아냐.'

에건 폴도 이런 극적인 연출을 종종 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스토리 작가들이 빈틈없이 서사를 메우고, 플레이어들의 연기가 밑바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연기를 위해 할리우드에서 스카웃한 연기교사들이 따로 있을 정도다.

죠셉은 눈썰미가 매우 뛰어나다 자부했으며 김정현의 말을 통해 저 상황이 '진짜 상황'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었다.

SSF(시스템 스트리밍 플랫폼)의 시스템은 놀라웠다.

'1인칭 시점이라서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군.'

1층으로 내려오기 직전.

황금 골렘이 김철수의 얼굴에 닿을 뻔했다.

"헉……!"

영상으로 보고 있던 죠셉조차 눈을 질끈 감았다.

모든 상황에 생동감이 넘치고 긴장감이 가득했다.

침을 꿀꺽 삼켰다.

'김철수가 의도하고 그린 그림은 아니야.'

어떤 미치광이가 이런 걸 의도한단 말인가.

자기 목숨을 내놓고 이런 짓을 할 놈은 없다.

있다면 미친놈밖에 없겠지.

정제되지 않은 날것.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오묘한 감성이 그의 방송에 있었다.

황금 골렘이 생각보다 너무 강했던 탓에, 김철수의 팀원들은 굉장히 곤란해하고 있었다.

'김철수 또한 지금 엄청난 고뇌에 빠져 있겠지.'

물론 그건 죠셉의 착각이었다.

'우리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요?'라는 김정현의 질문을 들은 차진혁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믿었던 너마저.'

얼굴 한가득 수심을 드리우고 있는 걸 보아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동료였던 김정현은 아주 단단한 멘탈의 소유자였다.

'아냐. 답답해하지 말자. 얘는 그때의 김정현이 아냐.'

자꾸만 본능과 이성이 충돌해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차진혁이 말했다.

"당연히 살아 돌아가야지. 2층 올라갔을 때, 이상한 거 못 느꼈어?"

"이상한…… 거…… 요?"

"약점이 안 보이더라."

황금 골렘의 하위호환이라 할 수 있는 황동 골렘과 청동 골렘.

그 두 개체는 가슴팍에 빛나는 마석이 존재했다.

그런데 황금 골렘에게는 그런 걸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핵이 다른 곳에 숨겨져 있다는 거겠지."

핵은 다른 곳에 있다.

"1층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

싶은 게 아니라 여기 있다.

차진혁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이미 깨달은 상태였다.

2층과 이어지는 계단은 양 갈래로 갈라져 있다.

그 사이에 아주 커다란 골렘 조각상이 처음부터 눈에 띄었다.

"저기 계단 앞에 조각상. 수상하지 않아?"

이건 경험으로 얻은 감이었다.

길잡이나 탐험가같이 뛰어난 스킬은 없지만 경험적으로 저게 수상하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다른 팀원들은 그 정도 경험을 갖지 못했다.

"수상…… 하다고요?"

"뭐가 수상하다는 거야?"

다들 조각상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뭐가 수상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차진혁은 오늘도 '내 기준을 더 많이 낮춰야겠네'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저 조각상을 한 번 조사해 보자고."

* * *

나는 조각상을 툭툭 쳐보았다.

'엄청 단단하네.'

조각상 주제에 방어력 자체는 황금 골렘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인 것 같았다.

"단순 공격으로는 깨기 어렵겠어."

내 말에 애들의 표정이 모두 어두워졌다.

아니 얘들아.

내 말 한마디에 그렇게 일희일비하면 어떡하냐.

직접 나서서 한 번 쳐보는 애가 한 명도 없다.

그저 내 한 마디에 주눅이 드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그래도 방송적으로는 꽤 괜찮은 연출인 것 같아서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방법을 생각해 보자."

사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그냥 쳐도 부술 수 있다.

'결을 따라 베면 되니까.'

모든 물체는 결을 지니고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아니고, 경지에 이른 몇몇 검술가들이 볼 수 있는 특별한 선이었다.

그 선을 따라 베면 아무리 단단한 물체라도 잘린다.

참고로 내 눈에는 어렴풋이 보인다.

'옛날만큼 잘 보이는 건 아니지만.'

검왕일 때에는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

아예 결을 찾는 스킬도 있었다.

지금은 그 정도로 잘 보이는 건 아니지만 대략적으로는 느껴진다.

밥 먹고 미친 듯이 칼질만 했었던 나고, 그 기억과 경험은 모두 가지고 있으니까.

'중계상점에서 장검 하나 사서 베어보고 싶은데.'

미친 듯이 칼질하고 싶다.

'그렇지만 참아야지.'

이 선을 넘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방송적으로도 내가 너무 나서서 활약하는 건 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내 방송 컨셉은 약골들의 성장기니까.'

컨셉이 들쭉날쭉하면 안 되지.

"목재현. 너 식재(植栽) 스킬 있지?"

"이, 있어요."

"그걸 이용해 보자."

"식재를요?"

"어, 여기에 씨앗 뿌려봐. 최대한 뿌리가 깊이 박히는 걸로."

목재현은 미심쩍은 표정이기는 했지만 늘 그렇듯 말은 아주 잘 들었다.

내 눈치를 보며 스킬을 사용했다.

조각상에 씨를 뿌렸다.

"아니, 인마, 손길에 좀 더 정성을 담아봐."

"……정성을 담으라고요?"

스킬도 그냥 쓰는 것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쓰는 건 결과물이 무척 다르다.

같은 스킬을 갖고 있어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굉장히 달라진다.

"그래. 좀 더 이미지를 상상하고 구체화해서."

"어, 어떤 걸요 상상하는데요?"

"뿌리가 굉장히 굵고 크고 단단한 거. 그리고 아주 깊이 파고 들어가는 뿌리식물."

스킬의 기본 활용이다.

시전자는 정신을 집중하여 상상을 구체화하여야 한다.

그 상상이 구체적일수록 스킬은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해, 해볼게요."

목재현은 끙끙대며 열심히 용을 썼다.

그렇게 2시간여가 흘렀다.

* * *

그래도 가르쳐주니까 생각보다는 잘했다.

조각상에 작은 나무들 수십 그루가 자라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나무지만 커다란 뿌리가 깊이 자라나 있었다.

서지수가 조각상을 살펴보다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파트 지하에 물이 엄청 샌 적이 있었어. 그 이유가 나무뿌리 어쩌고저쩌고라고 했어. 어른들이 하자보수를 하네 마네 하면서 엄청 싸우던데."

나도 저 내용은 잘 모른다.

식물을 다루는 플레이어들이 이런 식으로 암반을 파쇄하는 걸 몇 번 목격했을 뿐이다.

이내, 김정현이 나서서 조각상에 주먹을 퍼부었다.

쿵!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조각상에서 가루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내, 서지수가 차진솔을 와락 끌어안고 소리쳤다.

"찾았어, 언니!"

"핵이다!"

둘은 서로를 얼싸안고 좋아했다.

쟤네 둘이 언제 저렇게 친해졌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 나름대로 방송을 이어갔다.

"운 좋게 핵을 발견했군요."

내 눈썰미가 통했다는 사실이 꽤 즐거웠다.

역시 공략 찾아가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중계자의 시선으로 살펴보니 더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황금골렘의 외핵]

"저건 외핵인 것 같습니다. 외핵이 있다는 건 내핵도 존재한다는 뜻 같고요."

그와 동시에 알림이 이어졌다.

[황금골렘의 외핵이 노출되었습니다.]

[2층과 1층이 연결됩니다.]

'어라. 이건 예상 못했는데.'

쾅! 쾅!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황금 골렘이 2층 대문을 부수는 소리였다.

살짝 위험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애들의 표정이 굳었다.

"위험을 느낀 황금골렘이 1층으로 내려올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일단 외핵을 먼저 부숴볼까요?"

그건 서둥이들이 하기로 했다.

외핵은 생명체가 아니다.

방어와 은신에 신경 쓰지 않고서 공격에만 오로지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둥이들의 능력은 극대화된다.

[황금골렘의 외핵이 파괴되었습니다.]

2층의 문이 박살 났다.

황금골렘의 육중한 몸체가 드러났다.

황금골렘은 2층에서 1층으로 곧바로 뛰어내렸다.

쿵!

위압적인 모습이다.

"자, 위치를 다시 잡아봅시다."

노련한 플레이어들 같으면 알아서 제자리를 찾을 텐데.

얘들한테 그런 거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차진솔, 내 옆에 붙고. 서둥이들 좌우로 갈라져서 저기 기둥 뒤에 숨고. 목재현 일곱 걸음 앞. 그리고 김정현 그 뒤에 세 걸음 떨어져서 따라붙고."

와, 이거 생각보다 어렵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걸 말로 풀어내며 지휘하는 건 꽤 고역이었다.

아무튼 대열은 대충 갖췄다.

그리고 나는 강함에 미치지 않았으므로, 내 본업인 스트리밍에도 충실했다.

"아까보다 속도가 훨씬 늦어졌네요. 외핵이 파괴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불행 중 다행입니다."

속도는 이제 황동골렘 수준.

저 속도에는 우리 애들도 많이 익숙해진 상태다.

"첫 공격만 목재현이 받고, 그 이후 공격은 김정현이 받아. 파괴력은 강해도 속도는 황동골렘 수준이니까 피할 수 있을 거야."

"네."

"네!"

김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현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감돌고 있었다.

긴장이 많이 되나 보다.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는 건 아주 좋다.

아무리 느려도 제대로 맞으면 죽는다.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일단 맞으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안 맞으면 되는 거죠."

약화된 황금골렘의 위용에 나는 약간 실망하고 말았다.

'무난하고 평화로운 레이드네.'

원래 레이드란 강맹하고 빠른 공격이 쉴 새 없이 날아드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강맹하기만 하고 느린 공격이 날아온다.

난이도가 대폭 낮아졌다.

"팀원들끼리 손발이 꽤 잘 맞는 편인 거 같습니다."

황금골렘의 가슴팍이 너덜너덜해지는가 싶더니 외피가 벗겨졌다.

가슴팍 안쪽 구석에 빛나는 작은 돌이 하나 보였다.

위험한 순간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역시 연습은 배신하지 않았다.

이래서 목숨을 담보로 한 실전경험이 중요한 거다.

이렇게 실전을 안 쌓았으면 손발이 굳어서 저 정도 실력 발휘는 못했겠지.

'우리 애들이 물레벨까지는 아니네. 좀 답답하기는 해도 말이야.'

그때, 황금 골렘으로부터 강력한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황금 골렘에게 접근하던 서둥이들이 화상을 입고 뒤로 나뒹굴었다.

황금 골렘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며 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큭!"

황금골렘의 가슴팍에 주먹을 뻗었던 김정현이 주먹을 감싸 쥐고 쓰러졌다.

반탄력 때문에 주먹뼈가 박살 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2페이즈 돌입인 것 같습니다."

황금골렘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상당한 살기가 느껴졌다.

"탱커가 어그로를 완전히 놓쳤네요. 저, 아니면 제 옆의 힐러를 노리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황금골렘이 양팔을 들어 올렸다.

황금골렘의 2페이즈 스킬, '로켓 피스트'를 사용할 모양이었다.

중계자의 시선이 스킬 내용을 정확히 읽어냈다.

──────────

[로켓 피스트]

황금골렘이 자신의 주먹을 로켓처럼 쏘아내는 스킬.

마력이 담겨 있어 강맹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

붉은 마력이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계속 중계했다.

"아, 저거는 좀 위험하겠는데요. 맞으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

이제야 재밌어지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