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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8화 (2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8화

'황금 골렘 성' 필드에 입장했다.

성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만큼, 공간은 꽤 웅장했다.

천고가 굉장히 높았고 바닥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상아색 대리석 벽면과 번쩍이는 황금 샹들리에가 눈에 띄었다.

'흐음.'

저만치 멀리, 양 갈래로 갈라져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 가운데에는 황금 골렘을 형상화한 조각상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목재현은 바짝 긴장해서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혀, 형. 여기 암살자 같은 것들이 있기 딱 좋은데요?"

"어딜 봐서?"

아무리 봐도 암살자가 있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워낙에 조용한 곳이어서 작은 소음도 금방 티가 나고, 공간 자체가 너무 밝아서 암살자들이 활동하기에는 힘든 구석이 있었다.

"저기, 엄청 큰 기둥도 있고……."

"그 주변에 엄청 큰 공간은 안 보이냐? 광활한데 아주?"

아무리 저레벨이라지만 저렇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걸 보면 황당할 지경이었다.

이곳의 어딜 봐서 암살자가 활동하기 좋은 곳인지 원.

기준을 도대체 어디까지 낮춰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온다.

김정현이 내게 물었다.

"뭘…… 할까…… 요?"

그래, 이게 훨씬 더 생산적인 질문이지.

"주변에 마물은 없어 보이네요. 던전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플레이어들이 피신할 수 있는 안전지대, 또 다른 하나는 파밍 필드."

차진솔이 고개를 갸웃했다.

"파밍 필드가 뭐야?"

"뭔가를 줍는 필드."

"아, 그걸 파밍 필드라고 하는구나."

속이 갑갑해져 온다.

나는 최대한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저기 계단 보여?"

"응."

"저기로 가면 아마 2층으로 연결되겠지? 저기가 황금 골렘성의 진짜 시작일 것 같아. 그 본격적인 시작에 뭔가가 필요할지도 몰라. 그걸 1층에서 찾도록 되어 있는 거지."

"2층에 도움이 되도록?"

"그래. 구석구석 잘 찾아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어."

차진솔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다시 물었다.

"근데 오빠는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

"이 정도는 기본 아냐?"

"……이게 기본이야?"

차진솔은 '이게 기본이구나' 하고 무엇인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애들은 1층을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오디오가 너무 비면 안 되니까 약간은 인터뷰 형식으로 파밍을 진행했다.

'너무 재미없으려나?'

나 스스로도 좀 시시했다.

피도 안 튀기고 살을 에는 긴장감도 없고.

나도 그런데 시청자들은 오죽하겠어.

바로 2층에 올라가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진짜 어쩔 수 없이 스토리를 진행시켜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2층으로 한 번 올라가 볼까요?"

히죽,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두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현실에서라면 이 두 계단 중 어디로 올라가도 상관없겠지만 이곳은 던전이다.

계단 선택에 따라 난이도나 진행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차진솔이 내게 물었다.

"어디로 올라가야 해?"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애들이 나를 일시에 쳐다봤다.

아니, 나는 길잡이가 아니고 스트리머인데 왜 이렇게 나만 의지하는 건지.

참고로 내가 제일 자신 없는 분야가 길 찾는 거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길잡이를 한 명 구하긴 해야 할 거 같다.

"왼쪽?"

"왜?"

"몰라?"

"엥?"

차진솔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빠라면 무슨 이유가 있을 줄 알았어."

"나는 탐험가나 길잡이가 아니고 스트리머인데."

"그건 그렇지만……."

어차피 두 길의 난이도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이럴 때 괜히 오래 고민해 봐야 답은 안 나온다.

일단 부딪치는 게 낫다.

"가자."

나는 목재현을 앞장세웠고 스트리머인 내가 맨 마지막에 섰다.

[황금 골렘성, 2F에 입장합니다.]

* * *

2층은 1층과 비슷한 구조였다.

체감상 1층보다 더 큰, 아주 커다란 빈 공간이었다.

그리고 저만치 멀리 거대한 석상이 하나 보였다.

[5초 후, 황금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저 석상이 황금 골렘으로 변할 거다.

"덩치가 상당하네요."

[황금 골렘이 생명을 얻습니다.]

[황금 골렘 레이드가 시작됩니다.]

[LV45/황금골렘/스킬]

오 레벨 45.

빨간색 표기의 마물명.

'위험한 놈이다!'

이제야 심장이 쫄깃해진다.

나는 뒤쪽을 힐끗 쳐다봤다.

'계단은 그대로고.'

퇴로가 남아 있었다.

이러면 긴장감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는데, 저레벨 던전이라 그런 거 같다.

쿵! 쿵! 쿵!

온몸이 황금빛으로 변한 황금 골렘이 이쪽을 향해 뛰어왔다.

마치 멧돼지가 돌격하는 것 같았다.

다른 골렘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목재현은 크게 당황했다.

"어어? 왜, 왜 이렇게 빨라!"

목재현은 황급히 수목산성을 펼쳤다.

수목산성이 목재현의 몸을 덮었다.

그래도 여지껏 열심히 수련했다고 예전보다는 훨씬 나은 스킬 운용이었다.

"효율적인 스킬 운용. 많이 발전했네요."

예전에는 편의점 전체를 덮는 멍청한 짓을 했었는데.

지금은 보다 집중적으로 자기 신체만 덮었다.

보호가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선별적으로 마력을 집중한 거니까 더 효율적이기는 했다.

"사실 공격당하는 부분으로 더 축소해서 막아내는 것이 밀도를 더 높일 수 있을 텐데 아직 그 정도 실력과 시야는 안 되나 봅니다."

"형! 저 위급한데요!"

수목산성에 가려져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목재현은 무척 억울한 것 같았다.

목재현은 어딘지 억울한 듯 소리쳤다.

그 순간, 황금 골렘의 주먹이 다시 한번 목재현을 내리쳤다.

우지끈!

수목산성이 거의 박살 났다.

공격력이 꽤 강했다.

"형!"

위태로움과 억울함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모든 직군을 통틀어서 탱커들의 사망률이 제일 높다.

특히 처음 접하는 마물을 만났을 때, 그때 탱커들의 사망률은 거의 20퍼센트에 육박한다.

저렇게 멀쩡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면 아주 양호하고도 좋은 출발이다.

은신 상태의 서지수가 내게 물었다.

"오빠, 어떡해? 지금 공격 가?"

"은신 풀어봐."

서지수는 이해 못 한 표정이었지만 일단 내 말을 잘 들었다.

은신이 풀리자 황금 골렘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그로가 완벽히 안 잡혔군요."

우리의 탱커 목재현은 어그로를 잡은 게 아니라 방어에 급급한 상태일 뿐이었다.

이대로는 제대로 된 레이드가 어렵다.

"공격은 아직 안 돼."

"그럼 보고만 있어?"

"김정현. 네가 한 대 쳐. 한 대는 얻어맞을 각오하고. 가능하면 피하는데, 맞더라도 급소는 최대한 피해 봐."

김정현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황금 골렘이 주먹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쾅!

수목산성이 완전히 박살 났고, 목재현이 황급히 몸을 던져 굴렸다.

꽤 무리했는지 코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으아악!"

목재현이 몸을 황급히 숙였다.

후웅!

황금골렘의 주먹이 좌에서 우로, 목재현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김정현에게 말했다.

"공격 패턴은 봤지?"

"네."

"저런 주먹에 나오면 몸을 띄워서 맞아. 계단 쪽으로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도록."

"알겠…… 습니다."

김정현이 투입되자마자 황금골렘은 곧바로 김정현을 공격했다.

그사이, 목재현은 한숨을 돌렸다.

"미…… 미쳤어요, 형. 저, 저 진짜 죽을 뻔했어요."

"원래 탱커는 그런 역할이야."

이렇게 멀쩡히 돌아와서 말할 정도면 죽을 뻔한 거 아니다.

얘는 엄살이 너무 심하다.

한편, 김정현은 황금골렘을 상대로 약 1분 정도 잘 버텼으나 그게 한계인 것 같았다.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황금골렘을 상대했다.

"아, 지금은 상대하기 좀 어려운 거 같네요. 일단은 후퇴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전력으로 상대할 수 없었다.

"서둥이들 먼저 1층으로 내려가."

"오빠는?"

"다 후퇴하는 거 찍고 내려가게."

"알았어."

서지수는 못마땅한 표정인지 걱정되는 표정인지 헷갈리는 표정으로 날 한 번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말투만 보면 말 제일 안 들을 거 같은데 희한하게 말은 잘 듣는다.

"차진솔, 김정현한테 체력 힐 한번 넣고 곧바로 튀어."

"오빠도 바로 올 거지?"

"엉. 그래야지."

혈사제의 체력 힐은 상당한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김정현의 호흡을 한 번에 회복시켰다.

그런데 목재현이 내 뒤에 여전히 서 있었다.

"목재현, 넌 왜 안 내려갔냐?"

"혀, 형이 내려가라고 안 했잖아요."

아, 그랬던가.

어차피 지금 수목산성 재개방도 안 되고, 도움이 안 되면 그냥 알아서 빠져 주는 게 좋기는 한데.

생각해 보니 우리 사이에 그 정도 팀워크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내가 말을 해줬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내 실수네?'

나도 군주의 말을 들어 작전을 수행하는 실무자였다.

실질적으로 군주 역할을 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신경을 못 썼던 건 사실이었다.

역시 나는 그냥 몸으로 부딪치는 게 편하지, 군주 역할은 영 적성에 안 맞는다.

"저, 저를 까먹었던 건 아니죠, 형?"

"……."

"아니라고 해줘요."

"내려가, 인마."

목재현은 여기서 제일 겁쟁이지만 그래도 말은 제일 잘 듣는다.

내가 말하기 전까지 안 내려가고, 말하니까 바로 내려갔다.

능동적으로 훌륭한 플레이를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저게 낫다.

쿵!

커다란 격타음이 들렸다.

김정현이 팔을 X자로 교차해서 황금골렘의 주먹을 막아냈다.

내가 말한 대로, 일부러 살짝 몸을 띄워서 맞았다.

마치 야구 방망이에 얻어맞은 야구공처럼 김정현의 몸이 붕- 떴다.

"역시 김정현입니다. 제가 요구한 걸 잘 수행하네요."

계단 쪽으로 착실히 날아갔다.

저 정도 충격이면 팔에 금이 좀 갔을 거고 갈비뼈도 몇 대쯤 나갔을 거다.

그래도 머리 안 맞아서 정신도 멀쩡할 테고 죽지도 않았으니 오늘의 레이드는 아주 평화로운 편이다.

"김정현, 너도 1층으로."

그리고 나도 1층을 향해 슬렁슬렁 걸었다.

나를 향해 매섭게 달려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리가 제법 있었다.

뛸 필요 없어서 그냥 천천히 뒷걸음질로 다가오는 황금골렘을 앵글에 잡았다.

클로즈업해서 황금골렘의 몸을 잡았더니 꽤 괜찮은 연출이 되는 것 같았다.

'와, 가까이 온다.'

기세가 대단했다.

놈의 공격에 정통으로 맞으면 진짜 위험하긴 할 거 같다.

그런 위험한 공격을 피해내면 엄청 짜릿할…… 이건 아닌가.

"기세가 제법이군요."

[1층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

스릴을 즐기기 위한 건 절대 아니다.

최대한 가까이에서 황금골렘을 찍기 위함이다.

이것도 스트리머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됐다.'

코끝에 황금골렘의 주먹이 스쳤다.

별 상처는 없었지만, 스쳐 보니 확실히 느껴졌다.

"맞았다면 얼굴 뼈가 함몰됐겠는데요."

그래도 안 맞았으니 상관없었다.

원래 피하는 건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는 게 정석이다.

"이 정도 파괴력이면 중계결계도 그렇게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마물명이 빨간색으로 표시될 만하군요."

황금 골렘의 위력을 잘 체감한 나는 1층으로 내려왔다.

심장이 콩닥거렸다.

* * *

차진솔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헉…… 헉……!"

김정현의 부상이 생각보다 심한 편이어서 치료하는 데 꽤 많은 힘을 써야 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빠. 나 어지러워."

"혈사제가 원래 그래."

아직 흡혈 스킬이 없으니 외부로부터 피를 공급할 방법이 별로 없을 거다.

그나마 초인과 초재생 덕택에 저렇게 혈사제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거니 행운이 따라주는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오빠는 내가 걱정도 안 돼?"

"네가 이거 하고 싶다며?"

만약 본인이 싫다고 했으면 이런 걸 시키지도 않았을 거다.

나는 얘가 '혈사제로서 더욱 즐겁게 플레이' 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

그러려면 본인의 한계도 본인이 직접 체감하고 경험해야 한다.

그래도 나는 기준을 많이 낮춰준 상태이므로 약간의 도움을 주기로 했다.

"자. 이거 받아."

나는 미리 준비해놓은 수혈팩들을 꺼냈다.

"피, 피?"

"어."

"이, 이걸 어디서 났는데?"

"중계상점에 팔아. 얼른 마셔."

쓸데없이 개비싸다.

저거 한 팩에 300만 다이아다.

진짜 폭리도 이런 폭리가 없다.

나중에 흡혈 배우면 그냥 내 피를 주든가 해야지.

"이, 이걸 마시라고?"

차진솔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죽어도 피는 못 마시겠다는 모양새였다.

"안 마시면 빈혈로 쓰러질걸?"

"……."

"얼른 마셔."

차진솔은 한참 동안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근데 오빠, 왜 입구가 없어?"

"그걸 이제 알았단 말이야?"

그 말에 목재현도 황급히 고개를 돌려 우리가 들어온 쪽을 바라봤다.

"혀, 형! 진짜 입구가 사라졌어요!"

내가 여기 제일 늦게 왔는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입구가 사라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1층에 이렇게 안전지대를 만들어줬으면 됐지, 자유롭게 출입까지 할 수 있는 걸 바란단 말이야?

욕심들이 너무 과한 것 같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차진솔은 눈을 딱 감고 수혈팩의 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우웩."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하기는 했지만 혈색은 돌아왔다.

아마 익숙해질 거다, 혈사제는 그런 직업이니까.

부상을 모두 회복한 김정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요?"

다들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상하네.

……나만 신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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