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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2화 (2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2화

강도 짓이랑 세상에서 제일 안 어울리는 놈이 저러고 있었다.

참고로 쟤는 강아지나 병아리처럼 작고 귀여운 생물체들을 굉장히 무서워했다.

언젠가 한 번 내가 이유를 물어봤더니 세상 걱정 다 짊어질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었다.

"혹시 터지면 어떡해?"

아무튼 꼭 싸워야 할 때를 제외하면 폭력을 쓰는 경우가 드물었고, 누가 괴롭히거나 시비를 걸어도 '어…… 미안…… 내가 잘못했나 봐…….' 하고 말해서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에휴 진짜 왜 저러고 있는 거냐?'

솔직히 신경이 안 쓰인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래도 몇 년을 같이 개고생하면서 동고동락했으니까.

그렇지만 그때와 김정현과 지금의 김정현이 다르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

미래가 똑같이 흘러간다면 저 녀석은 한국의 권왕이 되어 시민들을 위해 살아가는, 국가 소속의 영웅이 될 것이다.

참고로 쟤는 그 삶에 무척 만족했었다.

언제 숨었는지 식탁 밑으로 기어 들어간 차진솔이 말했다.

"오빠? 오빠도 얼른 엎드려."

자꾸 내 무릎을 콕콕 찔렀다.

"왜?"

"강도들이 엎드리라잖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면 자꾸 자존심이 상한다.

내가 더 센데 왜 엎드리라는 건지.

"어차피 돈 노리는 애들이고 우리한테 해코지할 이유가 없잖아?"

"아 오빠. 그래도 쫌!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

"진짜 조심해야 할 놈들은 은행금고나 경찰서 같은 데 털고 있겠지."

저런 애들은 잡범이다.

별로 신경 안 써도 된다.

저런 애들까지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밥 못 먹어서 아사한다.

쟤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암살자들과 맨날 싸웠다 보니 긴장도 안 된다.

우물우물.

푸딩은 참 맛있었다.

"야."

키 작은 녀석이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다섯 명의 강도단 중 이 녀석이 리더인 거 같다.

머리를 샛노란색으로 염색했으니 노랑이라고 부르겠다.

"야. 내 말 안 들려?"

"들려."

안 귀찮게 하면 좋겠는데.

"손 뒤로 깍지 끼고 엎드리라고 했잖아. 이 시X아."

나는 푸딩을 또 한 입 입에 넣었다.

이거 참 맛있다.

노랑이가 짧은 창을 내게 들이밀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얘도 참 버르장머리가 없다.

"돈 훔치러 왔으면 돈이나 훔쳐서 꺼져."

"뭐? 이 새끼가 돌았나?"

노랑이는 기분이 무척 나쁜 듯 내 테이블 위에 있던 유리컵을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저걸로 내 머리를 때리려는 것 같은데 참 기이한 일이었다.

손에 단창 들고 있으면서 왜 굳이 유리컵을 따로 드는 건지.

슥-

나는 상체만 살짝 움직여 유리컵을 피해냈다.

쨍그랑!

얼씨구.

휘두르다가 힘을 너무 많이 준 건지 유리컵이 날아가 바닥과 부딪쳐 깨져 버렸다.

'아, 생각해 보니 그냥 맞아도 됐는데.'

중계결계 사용하면 맞아도 되었는데 이래서 습관이란 게 무섭다.

다시 말하지만 습관이란 건 무섭다.

"네가 먼저 쳤다?"

나는 단도를 꺼내서 노랑이의 가슴팍을 찔렀다.

'와.'

습관대로 심장을 찌를 뻔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마지막에 궤도를 틀어서 심장은 비껴갔다.

사람 상대로 손맛 느낄 뻔했네.

동생과의 식사 자리에서 괜히 사람을 죽일 필요까지는 없겠지.

물론 미래 기준이라면 죽여도 정당방위겠지만, 지금 시대에는 지금 시대에 맞는 기준이 있다.

나는 사회화가 잘 되어가는 중이니까 지금 기준에 잘 맞출 용의가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치명상도 아닌데 엄살은.

솔직히 그렇게 깊이 찌르지도 않았다.

"이 미친 새X가!"

내게 칼을 맞은 노랑이보다 조금 더 큰 노랑이가 달려들었다.

큰 노랑이는 장창을 무기로 썼다.

내 푸딩이 땅에 떨어졌다.

아, 이건 좀 선 넘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려. 근데 푸딩을 먹는데 건드려?"

몸을 숙여서 장창을 피해내고 단도로 큰 노랑이의 발등을 찍었다.

한쪽만 찍으면 한 발로 설 수 있으니까 다른 쪽 발도 찍었다.

겨우 이 정도 다쳤는데 창을 놓치고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굴렀다.

'이걸 이렇게까지 아파한다고?'

내가 플레이할 때 이 정도 부상은 그냥 모기 물린 셈 쳤었는데.

이렇게 연약해서 이 험난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지 모르겠다.

나는 머리카락이 검은 녀석, 까망이에게 말했다.

"얼른 쟤네 데려가서 치료나 해. 그럼 죽지는 않을 거야."

"……."

"빨리 꺼져. 오늘 기분이 좋아서 안 죽인 거니까."

아이씨.

그리고 진짜 내가 무시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무시가 안 된다.

나는 김정현에게 다가갔다.

"넌 여기서 뭐하냐?"

"저, 저는……."

"강도가 왜 그렇게 쭈뼛대? 뭐 할 말 있어?"

김정현은 잔뜩 움츠러든 모양새로 벽에 바짝 붙어 섰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겁먹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피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쟤가 저렇게 겁먹은 건 아닐 거다.

'지가 잘못하고 있는 걸 아니까 저러지.'

내가 아는 김정현은 양심이 살아 있는 녀석이고, 불의한 짓을 저지를 때 저렇게 위축되곤 했다.

작전상 어쩔 수 없이 비열한 짓을 해야 할 때면 녀석의 전력 약화를 늘 고려했어야 했다.

'중계자의 시선.'

[LV21/청담동불주먹/장강철의 후계자/스킬/-]

예전과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장강철은 시스템 설정상 권법의 대종사였고, '장강철의 후계자'는 전 세계적으로도 몇 명 되지 않았다.

저 직업을 극한까지 단련하여 한국의 권왕으로 불렸던 사람이 바로 김정현이고.

'레벨은 왜 이렇게 낮아? 업적은 또 왜 하나도 없고?'

내 생각보다 성장세가 너무 더뎠다.

'중계자의 시선' 감도를 높여보니 많은 정보들이 읽혔다.

[#나는쓰레기다 그러나 #돈이필요해]

'돈이 필요해?'

도대체 얘가 왜 이러나 싶어서 과거를 떠올려봤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김정현은 과거 얘기를 별로 안 해줬었으니까.

그나마 해줬던 몇몇 얘기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가정환경이 꽤 불우했다는 것 같았다.

김정현의 어머니가 아팠다는 얘기만 흘려들었을 뿐,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색깔이들이랑 딱히 유대관계도 없어 보이고.'

그다지 동료라는 생각은 안 든다.

그럼 답은 하나였다.

"얘네들이랑 무슨 계약했냐?"

"……."

저런 잡범들이 돈을 많이 줄 리도 없고.

천하의 권왕이 겨우 돈 몇 푼 벌려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좀 우스울 지경이었다.

아, 이건 좀 화나네.

"네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좀 정상적인 방법으로 벌 수 있지 않겠냐? 덩치가 아깝지도 않아?"

"죄, 죄송합니다."

아무튼 지가 잘못한 일에는 사과 참 잘하는 녀석이다.

"나한테 사과할 건 아니고."

"정말…… 죄송합니다. 제, 제가…… 사실 너무 급해 가지고……."

참고로 얘는 말투가 진짜 느리다.

말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나무늘보 같다.

"그래도 사람이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지. 정신 차려, 인마."

보통 이 말은 쟤가 나한테 하던 말인데.

쟤는 도덕적 기준이 너무 높아서, 내가 뭘 하려고만 하면 '사람으로서……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라면서 내게 인간적인 훈계를 늘어놓곤 했었다.

뭐, 그 점이 좋았었지만.

그 사이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뭐해! 돈을 받아 처먹었으면 돈값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바락바락 악을 쓰고 있는 녀석은 다름 아닌 작은 노랑이였다.

너무 조무래기들이라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저 까망이 친구가 힐러인 모양이었다.

힐러가 있으니 노랑이들도 확실히 목숨에 지장은 없겠다.

"빨리 저 새끼 죽여 버리라고!"

"……."

"위약금 10배로 물고 싶냐!"

그 말에 김정현의 몸이 움찔했다.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김정현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는 김정현은 돈으로 저렇게 움직일 녀석은 아니었는데.

[#자기혐오 그래도 #계약은지켜야 #자살충동]

"죄송합니다."

입술을 꽉 깨무는 게 보였다.

나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 모습을 본 작은 노랑이가 신났다.

"그래, 씨X! 죽여 버려!"

나는 날아오는 주먹을 딱히 피하지 않았다.

이 녀석의 공격은 대단한 파괴력을 내포하고 있는 주제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계가 무섭다.

차라리 첫 번째 공격을 맞아주는 것이 녀석의 템포를 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어차피 레벨 50급 이하 타격계 공격은 나한테 안 먹히니까.'

마음 편하게 저레벨 김정현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건 나름대로 좋은 기회였다.

김정현 정도 되는 잠재력을 가진 플레이어는 흔치 않으니까.

'중계결계.'

쾅!

제법 커다란 소리가 났다.

쾅! 쾅!

김정현은 허리 회전만을 이용하여 빠르게 공격을 이어갔다.

공격 템포가 다채로워서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걸 그냥 회피하거나 막으려고 들었으면 상대하기 까다로웠을 것 같다.

근데 상관없었다.

어차피 예측 안 할 거니까.

'와, 이거 타격계 공격 무효화가 없었으면 데미지가 좀 있었을지도?'

레벨 21짜리 공격인데 상당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확실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이었다.

'그래. 내 기준이 틀린 게 아니었어.'

이런 애들도 사실 널리고 널렸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내 주변, 내가 만나는 놈들은 다 이런 애들이었다.

아 근데, 설레네.

"나도 안 봐준다."

허점이 보인 순간.

나는 가차 없이 녀석의 옆구리에 단도를 찔러 넣었다.

푹!

살갗을 뚫고 들어가는 느낌이 제법 둔탁했다.

제대로 된 방어 스킬이 없는데도, 육체 자체의 방어력이 꽤 높았다.

만약 나와 동레벨이었다면 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와, 단단하네.'

후웅!

김정현은 색깔이들과 다르게 옆구리가 뚫린 상태로도 공격을 이어갔다.

근성 자체가 달랐다.

그렇지만 동작이 커서 쉽게 피할 수 있었다.

'아, 맞다, 안 피해도 되는데.'

습관 고치기가 참 어렵다.

어쨌든 나는 그 공격을 피해냈고, 반대편 옆구리를 다시 찔렀다.

푹!

그대로 다시 빼내어 승모근 부근을 푹! 찔렀다.

키가 너무 커서 제대로 찌르기 힘들었다.

내 몸이 공주에 뜬 사이 김정현이 팔을 뻗어 나를 꽉 끌어안았다.

'잡혔네?'

온 힘을 다해 내 몸통을 조르기 시작했다.

'음. 힘이 강하긴 하네.'

어중간한 플레이어들의 갈비뼈를 모조리 으스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인 건 맞았다.

그렇지만 내 중계결계는 레벨 50급 이하의 모든 체술계 공격을 무효화시킨다.

이마에 힘줄이 돋고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힘을 주었으나 어림없었다.

그래봤자지만 힘들지.

'업적효과 해제하고 싸울까……?'

그러면 훨씬 더 흥미진진한 전투가 될 텐데.

50레벨 이하급 체술 공격에 완전면역이라서 그런가, 박진감이 많이 떨어진다.

'아, 이거 아니지.'

나는 정신을 차렸다.

보다 보편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싸울 거다.

싸움 끝나면 평범하게 푸딩이나 먹어야지.

하마터면 또 정신 못 차리고 업적효과를 풀 뻔했다.

하지만 나는 대단한 정신력으로 내 본능을 다스리는 데 성공했다.

'슬슬 이 녀석도 힘이 풀려가네.'

슬슬 움직여보니 오른팔이 자유로워졌다.

"눈이 무방비잖아."

오른손에 들고 있던 단도로 김정현의 눈을 찔렀다.

푹!

김정현의 눈에 단도가 꽂혔다.

어지간하면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김정현은 정신을 잃고 기절해 버렸다.

아마 쇼크 때문인 것 같았다.

"야, 노랑아."

노랑이가 움찔했다.

"혹시 돈 있냐?"

"이, 있습니다!"

"줘봐."

녀석은 황급히 달려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놓았다.

원래 강도짓 하려던 놈한테는 강도질을 해줘야 한다.

나는 그것들을 쓰러진 김정현의 가슴팍 위에 올려놓았다.

"저…… 이제 가, 가도 될까요?"

"가."

"가, 감사합니다."

"아, 아니다. 멈춰봐."

"예, 예?"

"카운터 가서 푸딩 한 개, 아니, 두 개, 아니, 세 개 주문해놔. 너 때문에 못 먹었으니까. 계산 확실히 해놔라."

"아, 알겠습니다."

작은 노랑이는 카운터로 가서 푸딩 두 개를 주문하고 확실히 계산까지 끝내놓았다.

"가봐, 그럼."

그러고서 도망치듯 이곳을 떠났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

'언제 깨어나려나.'

아무래도 김정현과 심도 있는 대화를 좀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차진솔. 쟤 눈은 좀 회복시켜줘. 대충만 회복시켜도 워낙에 몸이 튼튼해서 금방 나을 거야."

내 예상대로 김정현은 힐을 굉장히 잘 먹는 몸이었다.

눈은 금방 치료되었다.

옆구리 피도 완전히 멎고 새살이 올라왔다.

아마 시력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올 거다.

이윽고 김정현은 정신을 차렸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걸로 보아 아직은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는데, 꽤 차분했다.

내가 말했다.

"야, 덩치."

나는 진짜 묻고 싶던 걸 물어봤다.

"마지막에 눈, 왜 일부러 내준 거냐? 안 찔릴 수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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