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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0화 (20/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0화

나는 내 마음을 억눌렀다.

이런 사소한 유혹에 넘어가면 연희동 건물주가 되어서 행복하게 살려는 내 목표는 무너질 거다.

'스트리밍에 집중!'

서지아, 서지수.

서둥이들은 나랑 처음 플레이하는 거니까 조금 더 천천히 설명해 줬다.

"아까도 얘기했지? 급소 노리지 말고 천천히 공략해. 가능하면 발목, 어려우면 허벅지부터 공략하는 거야."

내가 보기에 서둥이들의 실력으로 왕주먹 원숭이를 한 번에 끝내기는 어렵다.

괜히 한 번에 끝내겠다고 급소를 건드렸다가 어그로를 빼앗기면 불편한 일이 생길 거다.

지금 서둥이들의 방어력으로는 왕주먹 원숭이의 펀치 한 방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대답."

레이드에 있어서 너무 당연한 거지만 대답은 필수다.

그래야 지휘체계가 돌아가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

내가 실무에 있을 때도 대답은 꼭 했다.

"네."

"알았다고요."

둘의 몸이 반쯤 투명화되었다.

저레벨치고 상당한 은신 능력이었다.

오른쪽과 왼쪽.

둘은 왕주먹 원숭이에게 가까이 접근해서 단도를 휘둘렀다.

공격 타점 자체가 좀 낮아서인지, 공격하는 자세가 영 어설펐다.

많이 답답했지만 초보니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차진솔, 너도 준비해."

"어? 어? 아, 알았어."

"어리바리까지 말고."

평소에 차진솔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현장에서는 말이 원래 곱게 잘 안 나간다.

현장을 지휘하는 군주들이 왜 그렇게 욕을 달고 사나 했는데 그 마음을 이제 좀 알 거 같다.

"아, 알았어."

왕주먹 원숭이가 수목산성을 연타로 두드리고 있었다.

이제 곧 수목산성이 깨진다.

"곧 깨질 거야."

"응."

차진솔이 긴장한 게 보였다.

혹시 자기가 실수하면 목재현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정확하다.

실수하면 죽을 수도 있다.

콰지직-!

수목산성이 깨지고, 왕주먹 원숭이의 주먹이 목재현의 복부를 강타했다.

퍽!

"으아악!"

목재현의 몸이 붕 떴다.

갈비뼈 한두 개는 부러졌을 것 같다.

비명 소리에 비해서는 경상이다.

차진솔도 내 생각보다는 훨씬 잘 움직여주었다.

곧바로 힐을 사용하여 목재현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9성 직업답게 힐 능력이 꽤 뛰어났다.

"자, 이제 수목산성 다시 펼치고."

바닥에 널브러졌던 목재현은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수목산성을 다시 사용할 준비를 했다.

'오? 일어나네.'

경상을 입은 주제에 하도 큰 비명을 지르길래 글러 먹었다 생각했는데 내 예상외였다.

인간은 고통에 민감하다.

너무 큰 고통이 찾아오면 평소에 잘하던 것도 못한다.

목재현도 그럴 줄 알았는데 꽤 선방하는 중이었다.

'더 굴려야겠다.'

원래 잘하면 더 굴리는 게 국룰이지.

'9성 직업이라 그런가, 전투 센스는 좋네.'

엄청난 고통이 있었을 텐데 곧바로 수목산성을 다시 펼쳤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목창을 사용해서 어그로를 또 끌어오기까지 했다.

내 관점에서는 쓸모없는 짓이기는 했지만 -이미 어그로는 확실히 잡혀 있었으므로- 꽤 가상한 노력이기는 했다.

"자, 그럼 같은 걸 반복."

이제부터 지루한 구간이 시작될 거다.

'이렇게만 진행하면 한 네 시간쯤 걸리려나?'

조금씩 왕주먹 원숭이를 잠식해 갈 거다.

네 시간이면 아주 준수하고 빠른 속도였다.

내가 한창 플레이하던 시기에는, 마물 하나를 잡기 위해 몇 달 동안 싸웠던 적도 있다.

그래도 이대로 진행하면 지루할 것은 뻔했다.

목재현이 약간 다쳤던 거 빼고는 긴장감이 없는 플레이니까.

"이런 식으로 진행할 겁니다. 꽤 지루한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지루한 영상을 끝까지 봐줄 시청자는 없을 것 같다.

"사냥 영상 결과는 이후에 따로 공개하겠습니다."

나중에 요약해서 따로 올려야지.

어?

근데 방송 끄면, 내가 직접 싸워도 되지 않나?

* * *

서지아와 서지수는 체력적으로 지쳐갔다.

'힘들어.'

벌써 2시간 가까이 싸운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플레이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즐거워.'

누군가의 적극적인 플랜과 지시하에 손발을 맞추어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

이 과정이 미묘하게 즐거웠다.

서지수는 거친 숨을 내쉬며 다시 은신했다.

'슬슬 급소를 공격해도 될 것 같은데.'

그때, 차진혁이 가까이 다가왔다.

"뭐, 뭐해요?"

차진혁의 손에는 단도가 하나 들려 있었다.

특별한 아티팩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사이, 서지아가 알렉산델의 허벅지를 찔렀다.

그 타이밍에 맞추어 차진혁이 알렉산델의 목을 찔렀다.

곧바로 어그로가 차진혁에게 튀었다.

'와, 어그로가 이렇게 쉽게 끌려온다고?'

예상 못한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탱킹이 너무 잘 된다.

차진혁은 그다지 당황하지 않고서 알렉산델을 살폈다.

알렉산델이 주먹을 휘둘렀다.

'중계결계.'

쾅!

왕주먹 원숭이의 주먹은 차진혁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서지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스트리머가 왜 갑자기 끼어들어요! 뭐해, 목재현! 빨리 목창 써서 어그로 다시 뺏어와!"

그렇게 외치던 찰나.

알렉산델의 주먹이 차진혁의 관자놀이를 향해 뻗어 나갔다.

서지수는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한 번은 운으로 어찌어찌 받아낼 수 있었다.

스트리머들에게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들었으니까.

그러나 두 번은 무리다.

알렉산델과 직접 1시간 넘게 싸워봤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맞으면 진짜 죽는다고!'

탱커도 아닌 스트리머의 몸으로 저 공격을 어떻게 받아낸단 말인가.

아까 차진혁의 몸을 보호해 주던 흐릿한 막도 사라진 지 오래.

'공격 궤도라도 바꿔줘야 해!'

다급히 몸을 움직였으나 왕주먹 원숭이의 속도가 더 빨랐다.

왕주먹 원숭이의 오른팔을 크게 휘둘렀다.

'안 돼!'

차진혁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체중을 오른쪽 앞으로 이동시켰다.

후웅-!

주먹이 빗나갔다.

차진혁은 지나치게 위험해 보였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겨우 피해낸 것처럼 보였으니까.

공격을 겨우 피해낸 차진혁은 오른손에 든 단도를 알렉산델의 명치에 그대로 찔러넣었다.

푸욱!

명치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왕주먹 원숭이는 괴로운 비명을 지르다가 바닥에 드러누워 파르르- 몸을 떨었다.

동공이 풀려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서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직접 싸워봤기에 왕주먹 원숭이의 가죽이 얼마나 단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명치를 저렇게 쉽게 뚫어버리다니.

왕주먹 원숭이의 몸이 축 늘어졌다.

겨우 숨만 붙어 있었는데 그냥 내버려 둬도 곧 죽을 것 같았다.

"……스트리머 아니었어요?"

"맞는데?"

"스트리머가 공격력이 왜 이렇게 센 건데요?"

"지친 때를 잘 노려서 그래. 들숨 타이밍에 잘 찌르면 잘 들어가. 공격력도 극대화되고."

타이밍.

그리고 중계결계를 방어 대신 공격에 써먹었다.

"운이 좋아 피해서 망정이지, 맞았으면 죽었을 거예요."

서지수가 보기에 차진혁은 지나치게 위험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으로 보였으니까.

"피하는 건 원래 그렇게 피하는 건데?"

최소한의 동작으로 피해야 공격 타이밍을 잘 잡힌다.

다시 말해,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게 제일 잘 피한 거다.

"허세도 적당히 해야지 그러다 죽어요!"

"안 죽을 거 같아서 이렇게 한 거야."

"아 진짜!"

이건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야 각인되는 직관이기는 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길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한 대 맞아보기까지 했는데.'

1시간 넘게 왕주먹 원숭이의 공격패턴을 분석한 것도 모자라서 직접 몸으로 한 번 받아보았다.

사실 현장에서 이 정도까지 예행연습을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이렇게까지 예행연습 하고서도 제대로 공격을 못하면 사람 아니지.'

차진혁의 설명에 납득하지 못한 서지수는 여전히 불만인 것 같았다.

"재미 빼앗겨서 열받은 건 알겠는데."

"뭐요?"

"어쨌든 결과는 좋잖아?"

자기 혼자 재미 다 누리겠다는 심보인가.

나도 참다 참다가 너무 좋은 타이밍이라 끼어든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타박할 일인가 싶네?

차진혁이 그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서지수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강한 공격력 갖고 있으면 진작에 좀 돕든지."

"그 타이밍이 최선이었어."

최대한의 안전과 최고의 효율이 교차하는 지점.

그 지점에 개입한 것이었다.

"애초에 이럴 거였으면 진작에 작전을 좀 말해주면 좋잖아요. 진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오빠 죽는 줄 알았다고요."

"미리 말해주면 이게 됐겠냐?"

"뭐가요?"

"너 작전 신경 쓴다고 네 공격에 제대로 집중 못 했을걸?"

차진혁은 이들의 능력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한 상태다.

그렇게까지 정교한 작전을 함께 구사할 정도는 안 되었다.

그래서 그냥 각자의 일에 집중하게 만든 다음에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서 알아서 끼어들었다.

"아까 그 타이밍을 네가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아?"

"……묘하게 무시 받는 느낌인데요."

"그냥 팩트를 말한 거야."

"……."

"좋네."

"뭐가요?"

"맞는 말에는 수긍을 잘하잖아. 그거 못하는 애들도 많거든. 그래도 장점이 있어."

"됐어요. 말 시키지 마요. 작전은 말 안 해줬어도, 애초에 셋이서 같이 싸우든지. 그게 나았겠다."

"나는 스트리머잖아. 원래 촬영하는 게 내 직업인데 같이 싸우면 되겠냐?"

이건 차진혁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자 다짐이었다.

"……그래요, 스트리머죠."

스트리머가 무슨 나보다 공격력이 세?

서지수도 그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제일 어이없는 건, 저 스트리머는 자기 공격력이 그렇게 비상식적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자기가 좀 약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자기 공격력에 좀 실망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 묘한 괴리가 이상했다.

* * *

나는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알렉산델에게 가까이 다가가 심장을 연거푸 찔렀다.

갈비뼈로 보호받는 곳이라서 한 번에는 잘 안 뚫렸다.

푹!

드디어 뚫렸다.

피가 많이 튀었다.

한 번 뚫었다고 안심할 건 아니다.

푹! 푹!

확실하게 끝을 내야 한다.

확인 사살까지 끝마쳐야 끝이 난다.

'아…… 자꾸 몹쓸 버릇 나오네.'

자꾸만 직접 플레이하는 게 재미있다.

마물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고 칼을 휘두르는 이 순간의 감각이 짜릿했다.

'이런 건 저레벨 때에만 가능한 거니까'라고 합리화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내 본성을 다스리는 게 쉽지 않다.

'이 손맛!'

아니,

이게 아닌데.

푹! 푹! 푹!

'이건 그냥 사살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일 뿐이야.'

푹! 푹! 푹!

'나는 이런 거 이제 별로 안 좋아해.'

알림이 들려와야 찌르는 걸 멈출 수 있다.

손맛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알림이 들려왔다.

[왕주먹 원숭이를 처치하였습니다.]

푹! 푹! 푹!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푹! 푹! 푹!

[레벨 34를 달성하였습니다.]

오, 레벨이 올랐다.

벌써 레벨 34를 달성했다.

푹! 푹! 푹!

'그냥 다 중계를 할 걸 그랬나?'

스트리머는 시청자 수와 방송 반응 등에 따라 레벨업 속도가 달라진다.

많은 시청자가 봤다면 레벨업도 그만큼 빠르다.

'아, 또!'

지나치게 빠른 레벨업은 지양해야 하는데, 정신을 잠깐 놓은 사이 또 빠른 레벨업을 지향하고 있다.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앞으로도 내가 직접 싸우는 부분은 자르는 게 좋으려나?'

이건 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내가 스트리밍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지속 가능한 콘텐츠'를 콘텐츠로 써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내가 이런 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건 아무리 잘 쳐줘도 레벨 100 정도.

내가 아무리 회귀자여도 100레벨 안에 연희동 건물주가 될 수는 없겠지.

이런 컨셉을 계속 밀고 나갈 수는 없을 거다.

'이건 생각이 좀 더 필요하겠어.'

[업적, '올 클리어(사러가 던전)'을 달성하였습니다.]

'올 클리어라고?'

사실 업적이 주어질 거라고는 예상했다.

2층의 챔피언 원숭이만 사냥해도 '첫' 판정 업적이 두 개나 주어졌었으니까.

3층의 왕주먹 원숭이를 사냥하면 더 큰 업적이 주어질 거라고 생각은 했다.

올 클리어란 던전 내에 존재하는 모든 클리어 요소와 히든 피스를 짜 맞추었을 때에나 등장하는 업적이었다.

'검왕일 때도 몇 번 못 해봤는데.'

올 클리어.

이 레벨 대에는 꿈도 못 꿨다.

정석 공략대로 따라가도 올 클리어가 뜨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행운과 타이밍과 공략까지, 아주 작은 요소까지 모조리 만족해야 하는 거라서 인위적으로 '올 클리어'를 띄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레벨에 올 클리어라니.'

두근 두근,

나도 모르게 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바로 업적을 확인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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