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8화
직업명은 주황색.
8성이다.
'일단 말이나 걸어보자.'
말이 8성이지, 사실 8성 직업을 주위에서 흔하게 찾아보기는 어렵다.
통계적으로 보면 상위 5프로 정도 된다.
물론 내 주변은 전부 9성이었으니 체감상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들을 향해 빠른 걸음을 옮기려는데,
"Wait!"
이라는 말과 함께 뒤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옷소매를 잡아당겨 체중을 이쪽으로 끌어와 그대로 넘겨버렸다.
'아, 나도 모르게 업어치기를 해버렸네.'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는 거다.
나는 권왕 김정현과 정말 많은 대련을 했는데 혹시라도 검이 없는 상황을 가정한 맨손대련도 많이 했다.
김정현에 비하면 한참 못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일반인을 제압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쿵!
소리와 함께 죠셉의 몸이 땅에 떨어졌다.
'어우, 온몸이 비명을 지른다.'
방금 허리에서 뚝! 소리 난 거 같은데.
이거 한 번 했다고 이렇게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죠셉은 키 190㎝에 몸무게 110㎏에 육박하는 거구니까.
'겨우 이걸로 몸에 무리가 온 걸 슬퍼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스트리머이고 단련도 안 된 몸으로 죠셉을 집어던진 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죠셉도 뭐 비전투 계열 플레어이기도 하고, 방심한 것 같기도 하고.'
만약 전투 계열 플레이어였으면 내가 잡아당기기 이전에 몸의 중심을 잘 잡았을 테지.
혹은 격투기와 관련된 운동을 많이 했더라면 중심을 잡고 안 넘어갔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 아예 운동을 안 했으면 이렇게 허술한 중심도 이해가 되긴 해.'
나 같은 약골도 넘길 수 있을 만큼 말이다.
* * *
죠셉은 허공에 붕 떴을 때, 시간이 멈춘 줄 알았다.
'응?'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참고로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레슬링 선수부 생활을 했고, 한 주의 고교 레슬링 챔피언 출신이기도 했다.
아무리 방심을 했고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지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몸이 떠버릴 줄은 몰랐다.
"미안합니다. 누가 뒤에서 접근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차진혁이 손을 내밀었다.
죠셉은 얼떨결에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특별한 운동 경력은 없는 걸로 조사됐는데…….'
그렇다면 이 몸놀림은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이어야 했다.
그러나 차진혁은 스트리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비전투 계열의 직업이라는 뜻이다.
그는 동물적인 육감으로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듀얼 클래스다!'
주 직업은 체술가.
보조 직업이 스트리머겠지.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사과를 건넨 차진혁이 멀어졌다.
그는 그의 스킬인 '잠재력 측정'으로 차진혁의 뒷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어?'
순간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온 세상이 점이 되어 빨려 들어가고, 차진혁의 뒷모습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두운 세계 속에서 차진혁만 번쩍번쩍 빛이 났다.
눈이 너무 부셔서 바라볼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 옆에도 꽤 잠재력이 뛰어난 쌍둥이 여자들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차진혁을 본 순간 그들은 잊혀져 버렸다.
'미친.'
태양 옆에서 반딧불이는 그 빛을 잃는 법이다.
지금 상황이 그랬다.
차진혁이 태양이었고, 주변의 모든 사람은 반딧불이였다.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반드시 어벤져스 군단에 섭외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에건 폴이 세계 각지에서 섭외된 랭커들만으로 이루어진 최고의 팀.
그 팀에 김철수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다.
단순히 플레이어로서의 잠재력만 높이 보는 것은 아니었다.
'저 비주얼이면, 엄청난 스타가 탄생할 거야.'
이 '시스템'이라는 것이 좀 더 정착하게 된다면, 분명히 그런 시대가 올 것이다.
그가 보는 차진혁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의 기준에서는 지나치게 호리호리하고 날씬하기는 했지만 저 외모는 스타가 되어야만 하는 외모였다.
그러나 저자는 스스로 그런 자각이 없는 것 같았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걸 보면 자각이 없는 게 틀림없어.'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돕지. 본인을 둘러싼 알을 깨고 비상할 수 있도록.'
그는 자신 있었다.
차진혁을 브랜딩하여 글로벌 스타로 만들 자신이.
세계의 영웅으로 만들 자신이.
* * *
차진혁이 황급히 쌍둥이 자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저기요."
차진혁이 불러세우자 단발머리의 여자가 몸을 휙 돌려 차진혁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죠?"
단발머리 여자의 이름은 서지수.
쌍둥이 중 동생이었다.
차진혁의 얼굴을 보자 적개심이 조금 가라앉았다.
화를 내기에는 너무 잘생겼다.
"그……."
차진혁은 말꼬리를 흐렸다.
일단 급하게 불러세우기는 했는데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약간 고민 했다.
난데없이 너, 내 동료가 돼라! 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연락처는 안 드려요."
"전화번호 물어보려고 한 거 아닌데요."
서지수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 그럼요?"
"플레이어 맞죠?"
"그런데요?"
"같이 히든피스 하나 공략할까 제안하려고 했는데요."
"그, 그래요?"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얘는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내가 번호를 물어봤으리라 확신했는지 모르겠네.'
이런 평화로운 행위(?)에 익숙하지 않은 차진혁은 진심으로 호기심이 생겼다.
"왜 번호를 물어볼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야, 길거리에서 말 거는 남자들 뻔하니까요. 다 번호 물어보려는 거잖아요."
차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진짜요?"
"네?"
"그쪽한테 번호를 그렇게 많이 물어본단 말이에요?"
"아니, 왜 그렇게 놀라는 건데요?"
"오해하지 말아요.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니까."
"헐."
"왜요?"
"진짜 궁금하다는 게 기분 더 나빠. 지금 혹시 싸우자는 건 아니죠?"
차진혁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런 말을 들으면 괜히 설렌다.
-검왕! 나와 자웅을 겨루자!
-좋지. 덤벼봐라!
그렇게 정말 많이 싸웠었다.
'추억 돋네.'
언니인 서지아가 서지수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그만해. 히든피스 공략 제안하러 오셨다잖아."
서지수는 인상을 살짝 찡그린 채 다시 물었다.
"믿을 만한 정보에요?"
"물론이죠. 영상으로 기록된 것도 있는데 보여드려요?"
"봐요."
차진혁은 사러가 던전 3층이 오픈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지, 진짜네. 잠시만요. 언니랑 상의를 좀 해볼게요."
* * *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귓속말로 속닥거리던 서지수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같이 해요. 마침 저희도 히든 피스 하나 깨야 했거든요."
"후회는 안 할 겁니다. 일단 우리 팀원들 있는 쪽으로 가죠. 인사는 해야 하니까."
차진혁은 아까 있던 커피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따라가던 서지수가 다시 말을 걸었다.
"저기요, 근데요, 얼굴에 비해서 사회성 떨어진다는 말 많이 듣죠?"
아까 보니 악의는 없어 보였다.
"아니면 약간 4차원이란 말 많이 듣죠?"
"처음 들어요."
"진짜요? 진짜 처음 들어요?"
"진짜 태어나서 완전 처음 듣는데요."
차진혁은 약간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차진혁은 그의 동료들, 그의 팀을 지원하는 지원팀, 그리고 국정원 직원들을 제외하면 사적인 관계를 거의 맺지 않았다.
맺어볼 기회 자체가 없었다.
그도 사실 약간은 걱정하는 중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성이 많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서지수가 그걸 정확히 짚었다.
"지금 좀 찔리죠?"
"아뇨? 안 찔리는데요."
"딱 봐도 찔리는 모양새인데."
"그쪽 착각입니다."
"왜 갑자기 궁서체에요?"
"궁서체요? 그게 뭔데요?"
서지수가 갑자기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훗날, 서지아가 이때 왜 웃었냐 물었는데,
-저 정도 생겼으면 외모가 유머지.
라고 대답했다.
한편, 차진혁은 의아했다.
'도대체 뭐가 웃긴 거야?'
별로 재미있는 말을 한 것 같지 않은데 웃는다.
'내가 개그에 소질이 있는 건가?'
* * *
서지수가 다시 물었다.
"진짜 우리 번호 따려는 수작 아니죠?"
이쯤 되면 '맞아요, 번호 따려고 했어요'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수준이다.
"아니라니까요."
왜 이렇게 사람 말을 못 믿는 건지 모르겠다.
[#그럴 리 없을 텐데? #내 번호 궁금할 텐데? #나한테 반한 게 아니라고?]
가관이다.
이런 도끼병은 사실을 짚어줘야 한다.
초기에 치료해야지 나중 되면 답도 없다.
"평소에 예쁘다는 말 많이 듣죠?"
"그렇게 보여요?"
눈빛이 좀 누그러들었다.
[#그럼 그렇지 #이제 본심을 드러내 봐 #내 마음은 열려 있어 #잘생겼으니까]
중계자의 시선을 꺼버렸다.
"앞으로 그런 말해주는 친구들은 거르세요."
"네?"
"막 그 정도는 아니니까."
"……뭐라고요?"
내가 꼰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다.
훗날, 플레이를 하다 보면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만 곁에 두다 보면 인생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다.
유명한 랭커들도 그런 이유로 많이 추락했다.
랭커들은 늘 전선을 뛰는 사람들이고, 추락은 곧 죽음으로 직결된다.
'게다가 너희 둘은 동반 자살한다고.'
주변 친구를 좀 가려 사귈 필요가 있다.
듣기에 달콤한 거짓말 말고, 적절하고 좋은 돌직구를 날려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나야 한다.
서지수는 좀 당황한 것 같았다.
"그런 컨셉이시다?"
"컨셉이요?"
컨셉 아니고 진심인데.
서지수가 돌직구를 날렸다.
"저 진짜로 안 예뻐요? 예쁘단 소리 많이 듣는 편인데."
"일단 그 정도는 아니고요."
"……우씨."
"그리고 저 예쁜 여자 별로 안 좋아해요."
참고로 나는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예쁜 여자는 더 별로다.
내가 경험했던 어린 애들이 모두 특출난 빌런이었던 것처럼, 내가 봤던 예쁜 여자들은 무조건 미인계를 사용하는 암살자 및 계략자들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끔찍했어.'
나는 쌍도끼를 들고 한 판 붙자는 미친놈들보다 미인계로 유혹하는 애들이 훨씬 더 무서웠다.
미인계는 진짜 잘못 걸리면 답도 없다.
그나마 내가 마음을 열었던 예림이가 나한테 키스하면서 독약을 먹인 이후로, 나는 여자들을 가로수처럼 보기 시작했다.
이건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발버둥이었다.
"예쁜 여자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면, 나는 예쁘다는 뜻이겠네요?"
얘도 진짜 끈질기네.
"좋을 대로 해석하세요."
"뭐야, 말을 똑바로 좀 해요."
"굳이 비유하자면 약간 가로수 같아요."
가로수는 아무리 예뻐 봤자 나무다.
서지수가 투덜거렸다.
"묘하게 싫은 오빠야."
아무튼 서지아와 서지수는 나와 함께 플레이하겠다고 했다.
얘네는 '8번째 표적'을 사냥해야 한단다.
"8번째 표적은 필드에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마물이어야만 해요. 그리고 히든 피스를 통해 나타난 마물이면 추가 보상이 들어가고요."
"그럼 딱이네요. 사러가 던전 3층은 한 번도 공개 안 된 곳이니까, 새로운 마물이 있겠죠."
서지수가 괜히 퉁명스레 말했다.
"이해관계가 맞아서 함께하는 것뿐이에요."
"나도 그래요."
"진짜니까 혹시 오해하지 말아요."
"무슨 오해요?"
"혹시 잘생겨서 같이 한다거나 그런 오해요."
"오해 안 합니다."
"진짜예요."
누가 뭐랬나.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하길래 딱히 대꾸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사러가 던전으로 향했다.
약간은 다행이었다.
그래도 '바람 나그네'의 미션을 먹튀한 것 같은 기분이라서 조금 찝찝했는데 말이다.
'목재현, 차진솔, 서지아, 서지수. 이 정도 전력이면 충분하겠지.'
아무도 모르는 3층 스테이지라니.
설레면 안 되는데 자꾸 설레네.
'방송하면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내가 스트리머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며 다시 방송을 켰다.
[새로운 멤버랑 미션 진행합니다.]
이번에는 뭔가, 제목을 잘 뽑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