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1화
시스템 최대 커뮤니티 '네르버'의 신서버(지구) 게시판에 한 스트리머의 이야기가 조금씩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이번 신서버 오픈베타에 김철수라고 이상한 놈 나타남.
- 묘하게 담담하고 뒤틀려 있음.
처음에는 지구와 문화와 세계관이 거의 비슷한 '오리얼스' 서버의 사람들이 약간의 관심을 가지다가 이래저래 이야기가 많이 퍼지는 중이었다.
- 그 레벨 스트리머 중에 제일 셀 듯?
└ 레벨 몇?
└ 20대 중후반쯤?
└ 에이, 겨우 튜토급이네.
└ 튜토에선 나도 스트리머로 무쌍 쌉가능.
└ 상인으로도 무쌍 쌉가능 ㅇㅇ.
아직 직업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초보 구간.
그것도 태아 수준인 튜토리얼 구간이라서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 스스로를 조밥이라 생각하는 게 개킹받음. 이건 진짜 봐야 안다.
- 정자 주제에 본인 기준이 개높음.
그 스트리머는 굉장히 특이했다.
- 근데 VIP 채팅을 거부함.
└헐, ㄹㅇ?
└그걸 거부하는 미친놈이 있누.
VIP 채팅을 거부했다는 것도 약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 큰손들 여럿이 VIP 패키지 구매했는데 뒤통수 맞았다 함.
VIP 패키지를 구매하면 판매대금의 일부가 스트리머에게 정산된다.
- 먹튀?
└ ㄴㄴ그건 아님, 본인이 패키지 구매해달라고 한 적 한 번도 없음.
└ 근데 바람 나그네가 미션까지 붙여줌.
└ ㄹㅇ? 바람 나그네가 벌써 붙었다고?
└ 사실 미션이라기보다는 스트리머 살려주려고 한 듯. 근데 리액션을 안함.
└ 리액션이 없다고?ㅋㅋㅋㅋ 미친새기넼ㅋㅋㅋ
바람 나그네는 차원 커뮤니티 중에서도 손꼽히는 네임드 큰손이었다.
어딜 가도 대접받고, 모든 스트리머가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알랑방귀를 뀐다.
아주 작은 후원이라도 받으면 적극적으로 리액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 시청자랑 소통 따윈 없음. 그냥 혼자 중얼거리는데 딱히 센스가 있는 타입도 아님. 스트리밍이나 흥미로운 연출에 대한 이해도는 전혀 없음.
└ 근데 왜 이렇게 핫함?
└ 전투를 읽는 이해도가 미쳤음.
└ ㄴㄴ그냥 개썅마이웨이가 컨셉이 살짝 먹히는 듯?
└ 뭔 븅신같은 소리하누? 그 레벨 스트리머들 중에 스트리밍을 제일 안 무서워하는데. 덕분에 박진감 개오짐.
네르버 내에 클립짤 하나가 돌았다.
"근데 고통은 진짜다. 배 뚫려서 내장 뽑히면 정말 아프거든. 특히 갈비뼈 부러뜨려서 간을 뭉개는 게 제일 아프니까 참고해."
'오늘 아침에는 토스트를 먹었어'라고 말하는 듯한 아주 일상적이고도 평온한 태도였다.
적어도 저레벨 스트리머답지는 않았다.
* * *
크아아악!
삼형제가 비명을 질렀다.
목재현은 내가 가르쳐준 대로 잘 찔렀다.
역시 9성 직업이다.
'와, 저 정도면 좀 아프긴 하겠다.'
아기돼지 삼형제는 피 칠갑을 하고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레벨도 목재현이 높고 직업의 질은 비교도 할 수 없었으니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깩깩대고 있는데 차라리 죽는 것이 훨씬 편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면 인터뷰 진행해 보겠습니다."
나는 목재현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안 죽였어요? 죽이고 싶을 만큼 밉지는 않았나 보죠?"
"죽일 수는 없었어요. 저는 살인자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어차피 살아나는데요?"
"……."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아마 살인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피어오르고 있겠지.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아 보이기는 합니다만."
아까도 말했지만 리젠 설정이 걸려 있는 필드지만 고통은 진짜다.
지금 너무 아파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데,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만큼 저 고통을 느껴야 한다.
아기돼지 삼형제가 이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주, 죽여줘……."
"하, 할머니 일은 미안……해. 다, 다시는 안…… 그럴……."
나는 단도를 뽑아 들고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기돼지 삼형제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인터뷰 진행해 보겠습니다. 어때요? 많이 아픈가요?"
"그, 그걸 말이라고……."
"음, 평소에 목재현을 왜 그렇게 괴롭혔나요?"
눈동자에 이미 힘이 풀린 상태였다.
"할머니한테 나쁜 짓을 한 건 사과 안 하실 건가요?"
"……."
제대로 된 인터뷰를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게 큰 부상도 아닌데 벌써 의식을 잃다니.
정신력이 너무 나약한 거 같다.
이 정도면 몸이 되살아나도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에 약간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쟤 사정이었다.
"인터뷰 진행하기 어렵겠네요."
잠깐 방송을 음소거 상태로 바꾼 뒤 작게 속삭였다.
"나 개하꼬 아니다."
개하꼬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감은 정말 별로였다.
심장에 단도를 내리꽂았다.
아기돼지 삼형제는 모두 사망했다.
오히려 목재현이 조금 당황한 모양이었다.
"혀, 형? 주, 죽이면 어떡해요?"
"죽여달라고 하던데."
"그, 그래도……."
"죽는 게 훨씬 편해. 어차피 0시가 되면 되살아날 거고. 여기 가만히 두면 난쟁이 마물들한테 어차피 죽어. 그럴 거면 빨리 죽여주는 게 낫지."
"그건 그렇지만……."
참고로 개하꼬라 그래서 죽인 거 아니다.
"자, 목재현 친구, 막상 싸워보니까 어때요? 별거 아니죠?"
"……."
목재현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상한 말을 꺼냈다.
"고마워요, 형. 형 덕분에…… 마음 안에 커다란 벽을 하나 깬 것 같아요."
나한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내가 한 건 별로 없는 거 같은데 말이다.
* * *
목재현이 보는 차진혁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사람을 죽이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마치 어딘가가 고장 난 사람 같았다.
"죽는 게 훨씬 편해. 어차피 0시가 되면 되살아날 거고. 여기 가만히 두면 난쟁이 마물들한테 어차피 죽어. 그럴 거면 빨리 죽여주는 게 낫지. 안 그래?"
그 말이 다 맞았다.
목재현은 잠시 생각했다.
'상황을 살펴보자.'
편의점에 숨어 있던 자신을 찾아와 굳이 7일 생존 퀘스트를 함께 클리어해 주었다.
이후 대영웅까지 양보해 주었다.
대영웅이 녹아든 목왕의 힘은 직접 느껴보았다.
수목산성을 변형하여 나무줄기를 뻗어냈고, 그것은 여러 갈래의 창이 되었다.
사람의 배 정도는 쉽게 뚫어버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창이었다.
'이런 힘을 나한테 양보해 줬고.'
결국 이렇게 복수의 기회까지 주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복수였을까?
'형이 내게 알려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내야 했다.
자신을 괴롭혔던 놈들의 시체를 보니 알 것 같기도 했다.
'하나도 후련하지 않아.'
저놈들이 죽기를 바랐다.
마음속으로는 열 번도 넘게 죽였다.
그렇지만 막상 시체를 보니 그다지 후련하거나 즐겁지는 않았다.
저들을 죽이던 차진혁의 모습도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어.'
학생이 그냥 해야 하니까 공부를 하고.
직장인이 그냥 해야 하니까 출근을 하고.
딱 그 정도 느낌.
아무 감흥도 없어 보였다.
"자, 목재현 친구, 막상 싸워보니까 어때요? 별거 아니죠?"
그 질문으로 깨달았다.
복수가 별거 아니구나.
이렇게도 부질없구나.
저 형은, 나한테 이것을 가르쳐주려고 한 것이구나.
그의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가 들끓기 시작했다.
'저 형은 진짜 어른이야.'
난관을 헤치고 들어와 도움이 필요한 아이(목재현)에게 손을 뻗어 잡아주었고, 결국 여기까지 인도해 주었다.
어쩌면 차진혁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저게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야. 형은 그걸 가르쳐주고 있는 거야.'
그에게 알림이 들려왔다.
[특성, '대오각성(大悟覺醒)'이 생성됩니다.]
* * *
목재현의 눈빛이 훨씬 더 많이 맑아졌다.
중계자의 시선으로 살펴보니 특성인 '대오각성'을 얻었다.
보통 특성은 던전 같은 데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 운이 좋으면 이런 식으로 자연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이야. 저거 되게 좋은데.'
심신을 단단하게 해주고 강해지기 위한 아주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준다.
저걸 얻으면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빨라진다.
"꼭 연락 주세요. 아니, 제가 연락할게요."
"그래."
저 정도 게스트를 꾸준히 섭외할 수 있다는 건 내게도 꽤 큰 수확이었다.
'피곤하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자꾸 예전 몸과 비교하게 된다.
'이놈의 저질체력.'
아무래도 체력 높여주는 영약 같은 건 좀 찾아 먹어야겠다.
스트리머가 연약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몸이 부실할 줄이야.
'후원금을 좀 볼까.'
무슨 항목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나마 화폐 단위가 '다이아'로 통일되어 있어서 망정이지, 내가 알 수 없는 뭐가 아주 많은 내역서였다.
이해하기 쉽도록 맨 마지막에 '합계'란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합계 : 9,210,000 다이아]
'응?'
나는 눈을 비벼봤다.
그래도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921만 다이아?'
나는 그냥 하루 방송을 진행했을 뿐인데 무려 921만 다이아가 후원되어 있었다.
후원이 왜 이렇게 많이 됐나 싶어서 내역서를 꼼꼼히 살펴보니, 'VIP 패키지 후원 정산'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저 VIP패키지를 구매하면 나한테도 일부가 후원되는 것 같았다.
'방송 켜서 고맙다고 인사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VIP 특별관리 같은 건 하지 않을 예정이다.
너무 딥하게 들어가면 여러모로 불편해질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건 '비밀상자'이지, '에건 폴'이 아니니까.
'근데 대박이네.'
920만 다이아라니.
상상도 못했다.
역시 참교육 콘텐츠가 힘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다이아 환전소.'
다이아는 세계 각국의 화폐로도 환전할 수 있다.
나는 후원받은 920만 다이아 중, 700만 다이아를 환전했다.
[환전 수수료 20%가 적용됩니다.]
[5,600,000 KRW(원)이 지정된 계좌에 입금됩니다.]
이내 문자 알림이 왔다.
[Web발신]
[XX은행 입금 5,600,000원]
'내가 드디어 돈을 벌었네.'
중요한 건 이게 일급이라는 것이다.
VIP패키지 반짝 특수가 있다고는 해도, 어마어마한 수익이었다.
예전처럼 엄청난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예전처럼 유명했던 것도 아니고, 명예와 국민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역시 신세계에는 스트리머가 꿀인 것 같다.
좀 무난하고 심심한 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VIP패키지 특수는 없겠지.'
VIP 패키지의 가장 큰 메리트라 할 수 있는 VIP 채팅도 모조리 거부했는데, 큰 손들이 미쳤다고 VIP 패키지를 구매할까.
앞으로 이건 없다고 봐야 했다.
'간만에 집으로 좀 돌아가 볼까.'
7년간 등골 브레이커였다.
이제 떳떳하게 아들노릇도 하고 오빠노릇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집 근처에 내렸다.
오늘은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어디선가 꺅!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범죄가 일어나는 모양이네.'
베타서비스가 시작되고 플레이어들이 생겨나면서 여러모로 치안이 불안해졌다.
걷다 보니 쓰러진 남자도 보였다.
'강도를 당한 것 같고.'
플레이어로서의 힘을 갖추게 된 사람들이 각종 범죄를 일으켜서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빌런들의 대학살을 너무 많이 경험해서 그런가, 이런 건 별 감흥이 없었다.
이런 사소하고 자잘한 문제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었다.
'근데…….'
이건 얘기가 좀 달랐다.
"차진솔?"
내 동생이 남자 셋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우리 집 앞에서.
아, 이건 좀 화가 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