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7화
아. 기억났다.
내 동료이자 스트리머였던 강미나가 VIP들의 대화 요청과 관련해서 여러 차례 얘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냥 VIP들이 돈지랄하는 거라고 보면 돼. 돈지랄해서 특별한 대화를 나누는 거지.
-그걸 하면 뭐가 좋아?
-돈이 많이 들어와.
-그럼 좋은 거 아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모르냐? 근데 진상 비율이 너무 높아서 X같아. 화신체 내려보낼 테니까 가슴을 만지게 해달라는 미친새X도 있다니까?
욕이 너무 많아서 다 기억나지는 않고, 아무튼 VIP 대화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고 했다.
강미나는 VIP들의 대화 요청에 대체적으로 거부감이 있는 편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정상급 스트리머가 되기 위해서는 VIP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필수라고도 했다.
매일 그렇게 욕을 하다가도 VIP 대화 요청이 오면, 자본주의 미소를 띤 채 시청자들을 응대하곤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이중인격자 같아서 가끔 무서웠었지.
'나는 거부해야겠다.'
내 목표는 정상급 스트리머가 아니니까.
다시 말하지만 내 목표는 3등이다.
3등짜리 리스크만 짊어지면 된다.
생각해 보니 '비밀상자'는 VIP와 관련된 얘기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갈 길은 비밀상자의 길이다.
['VIP 대화'를 거부하였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일반 채팅은 물론, VIP 대화를 거부해 버리는 정신 나간 스트리머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몰랐다.
* * *
목재현과의 인터뷰 자체는 꽤 성공적이었다.
내 예상대로 목재현은 반강제로 이곳에 끌려왔다고 했다.
"반강제적으로 이곳에 끌려왔는데, 친구들은 모두 죽고 재현 학생만 여기 숨어서 살아 있다는 거죠?"
"……네."
"근데 밖에 시체 하나도 없던데?"
목재현이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 먹혀 버렸나 봐요."
"안 먹혔어요. 여기 식인 마물 같은 건 없어요. 여기 들어온 지 3일 됐다고 했죠?"
"네."
"여기 자정되면 리젠되거든요?"
"리젠이요?"
"죽어도 살아나요. 걔네는 어찌어찌 살아서 도망쳤을걸요."
자기와 함께 들어온 친구(?)들이 도망쳤다는 말에, 목재현은 꽤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 혹시……."
"당연히 구조요청 같은 건 없었고요. 재현 학생을 버리고 튄 모양이네요."
목재현을 반강제적으로 끌고 왔던 녀석들은 목재현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목재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금 안 됐기는 했지만 세상에는 이보다 훨씬 더한 일도 많이 벌어진다.
별 감흥은 없었다.
"퀘스트 때문에 여기 버티고 있는 거라고 했죠?"
"……네."
7일 생존 퀘스트.
이거 클리어하면 특성으로 '여벌 목숨'을 얻을 수 있다.
퀘스트 생성 조건을 알아내기 위해, 대화를 나눴는데 목재현이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그…… 제가 공유해드릴 수 있어요."
"퀘스트를 공유할 수 있다고요?"
미래 기준으로는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퀘스트를 공유하여 새로 진행하게 되면, 퀘스트가 초기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아무리 양심이 없어도 그런 짓은 안 한다.
나는 그래도 플레이 매너가 있는 공무원이었다.
"그럼 또 7일을 버텨야 하잖아요. 괜찮습니다. 그건 상도덕에 어긋나죠. 그냥 생성 조건만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아, 아뇨. 다시 7일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까지 혼자 살아서 오셨잖아요. 호, 혼자 있는 게 너무 무서워서 그래요.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으음."
"제발요."
퀘스트 받는 방법을 얻으러 온 건 나인데, 어쩐지 목재현이 나한테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꽤 좋은 일이었다.
"그럼 앞으로 제 방송에 자주 출연해 줘요."
"다, 당연하죠. 약속할게요."
내 입장에서는 퀘스트도 받고 게스트도 받고 일거양득이었다.
'수목산성이 있으면 훨씬 쾌적하겠지?'
아무리 중계결계로 보호받고 있어서 마물들의 공격이 안 박힌다고 해도, 이건 기분 문제였다.
잘 때 모기 몇 마리만 윙윙거려도 짜증 나는데 주변에 늑대 마물들이 자꾸 덤벼들면 상당히 거슬릴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요, 그럼."
나는 목재현으로부터 퀘스트를 공유받았다.
[히든 퀘스트, '승강장에서의 생존' 이 공유되었습니다.]
퀘스트의 내용을 살펴본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클리어 조건이 두 개였네요?"
과거 목재현이 밝히지 않았었다.
목재현은 7일간 생존이라는 클리어 조건만 밝혔었다.
──────────
[클리어 조건]
1) 해당 필드 내에서 7일간 생존.
2) 해당 필드 내 모든 마물 제거.
──────────
"마물 죽여도 되잖아요?"
개이득이네.
* * *
"그게……."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생각보다 어렵단다.
회색 늑대는 리젠 속도가 빠른 편이고, 세 마리를 죽이면 다섯 마리가 튀어나온다나 뭐라나.
'하긴. 수목산성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유리한 스킬이니까.'
미래의 목재현은 저 수목산성으로부터 줄기를 뻗어내서 공방일체의 스킬로 발전시키기는 하지만 아직은 무리인 모양이었다.
"그냥 2번 조건 만족시킵시다. 나가죠."
"아, 안 돼요."
목재현은 또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안에서 나가면 수목산성이 해제돼요."
"바로 다시 쓰면 되잖아요?"
"못해요."
스킬을 사용하면 정신력이 소모된다.
이 정신력이라는 것이 참 애매한 것이었다.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낼 수 없을뿐더러,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그 총량이 달라지기도 한다.
참고로 나와 내 동료들은 최면과 심리 테라피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멘탈을 케어받았다.
우리에게 늘 강조되었던 것은 일종의 부동심이었다.
기복 없는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건 지금의 목재현에게는 불가능한 얘기인 듯했다.
"수목산성이 이렇게 거대할 필요 없어요."
"……예?"
왜 편의점 전체를 덮는 건지 도대체.
"그냥 몸만 보호할 정도로 작게 만들면 되지."
"그, 그건 그렇죠."
"그럼 됐네. 편의점까지 보호할 필요 없이, 그냥 본인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작은 수목산성을 상상해 봐요."
"그, 그게 돼요?"
아마 이 수목산성은 본능적으로 펼친 모양이었다.
"그게 훨씬 쉬울걸요?"
이렇게 물질을 구현하는 종류의 스킬은 이미지의 구체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 몸이 더 소중하니 구체화가 더 쉬울 거다.
"어때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아, 그리고, 위험할 거 같으면 저기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튀어요. 그건 무조건 보장해 줄 테니까."
지금의 목재현에게 있어서 퀘스트 클리어보다는 생존이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았다.
"아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럼 일단 도망부터 치게 해줄까요?"
"지, 진짜요?"
"물론이죠. 그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어요."
"……."
약간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봤다.
나도 솔직하게 말해줬다.
"그러면 퀘스트 보상 나 혼자 독식할 수 있잖아요."
"……아."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어쩐지 더 안도하는 것 같다.
왜 화를 안 내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결국 목재현은 내 보호를 받아 에스컬레이터 앞까지 이동했다.
내가 말했다.
"나중에 또 봐요."
"네!"
퀘스트를 빼앗겼는데 목재현은 기뻐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지만, 서로에게 이득이 되었으니 별문제는 없겠지.
"근데 형……."
"네?"
"에스컬레이터 활성화가 안 돼요."
진짜였다.
'왜 이러지?'
필드 내의 기물들이 망가지는 건 일상다반사다.
그렇지만 여긴 튜토리얼 필드.
튜토리얼 필드에서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있다면, 이 위에 어떤 커다란 변화나 업데이트가 있을 때뿐이다.
'서울역 필드에서 에스컬레이터가 멈춘 적이 있었나?'
내 기억에는 없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네?"
원래 던전에서는 예상 못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
목재현이 울상을 지었으나 내 책임은 아니다.
"일단 수목산성 펼쳐서 본인 몸만 보호해 봐요."
* * *
차진혁은 흘러나오는 미소를 감추고 말했다.
"7일의 시간을 아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7일을 기다리는 것도 괜찮지만, 7일 동안 지루한 콘텐츠를 참아야만 하는 시청자분들을 기다리게 하기 죄송하니, 제가 직접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냥 싸우는 것과 전멸시키는 건 다른 문제다.
그냥 싸우는 건 시시하지만, 리젠 되기 전에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미션이 걸려 있으니 꽤 승부욕이 돋았다.
목재현은 벌벌 떨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차진혁은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늑대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미친…….'
그의 시선은 단도를 들고 회색 늑대를 도륙하는 한 남자에게 향해 있었다.
'뭐, 뭐하는 사람이야?'
한 늑대가 깨갱- 거리며 도망쳤다.
잽싸게 도망쳤는데, 저 남자가 더 빨랐다.
마치 도주경로를 이미 예측하고 있는 것 같았다.
푹!
남자의 단도가 회색 늑대의 정수리를 찍었다.
회색 늑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축- 늘어졌다.
'왜, 왜 저렇게 강한 건데? 스트리머라며?'
다른 회색 늑대들이 남자에게 덤벼들었으나 저 날카로운 이빨이 남자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남자의 몸에 얇은 막이 둘러져 있는 것만 같았다.
'하, 한 마리 남았어.'
크게 충격을 받은 목재현은 수목산성이 해제되는 것도 몰랐다.
그저 입을 쩍 벌리고 차진혁을 쳐다봤다.
깨갱!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끝."
차진혁의 온몸이 피에 젖어 있었다.
마치 피에 미친 악귀 같았다.
목재현이 겁에 질린 것과는 별개로, 차진혁은 성에 차지 않았다.
'미션이 재미는 있었는데…… 겨우 이거 했다고 숨이 이렇게 찬다고?'
회색 늑대의 리젠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단순 사냥만으로는 리젠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리젠 포인트를 계산하여 동선을 최소화하고, 사냥의 최적화 루트를 짜야만 했다.
'스트리머의 한계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차진혁은 이게 스트리머의 한계라고 판단했다.
그의 기준에서 이 정도 움직임으로는 숨이 차면 안 되는 거였으니까.
만약 검술가 계열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면 훨씬 더 쉬웠을 거라 생각이 들어 약간 아쉽기까지 했다.
[히든 퀘스트, '승강장에서의 생존'이 클리어되었습니다.]
[클리어 보상이 주어집니다.]
차진혁이 말했다.
"히든 퀘스트가 클리어되었고요, 이제 클리어 보상이 주어질 차례입니다."
차진혁 앞에 자그마한 상자가 하나 생성되었다.
차진혁이 손을 대자 상자가 열리며 무엇인가가 튀어나왔다.
스크롤 형태의 종이였다.
[여벌 목숨]
'튜토리얼이 진짜 혜자긴 하다.'
이런 걸 이렇게 턱턱 퍼주는 곳은 저레벨 구간밖에 없다.
차진혁이 '여벌 목숨'이라 적힌 스크롤을 찢자 특성이 흡수되었다.
[특성, '여벌 목숨'을 획득하였습니다.]
죽어도 되살아나는 능력이다.
사람의 정신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쿨타임은 1주일 정도라고 알고 있다.
"여벌 목숨을 얻었네요. 퀘스트도 클리어했으니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가보겠습니다."
다시금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현재 상태는 여전히 '운행 중지'였다.
'음, 곤란하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침착한 차진혁에 비해 목재현은 그렇지 못했다.
"저, 저희 여기 갇혀 죽는 거 아니에요?"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요?"
튜토리얼 필드에 영영 갇혀 죽었다는 소리는 한 번도 못 들어봤다.
튜토리얼 필드는 앞으로 오픈될 모든 필드를 통틀어서, 플레이어에게 가장 친절하고 안전한 필드였으니까.
"혀, 형은 왜 하나도 당황 안 해요?"
"당황해야 돼요?"
"당황하는 게 정상 아니에요?"
"별로 안 당황스러운데……."
좀 당황하는 척을 해줘야 방송이 더 재미있으려나?
"그…… 형 사람은 맞죠?"
"당연히 사람이죠. 왜요?"
"그…… 저랑 똑같이 플레이 시작한 거 맞죠?"
"당연히 그렇죠? 똑같이 선제 각성자잖아요. 며칠 정도 차이는 날 수 있겠지만."
"근데 왜……."
이토록 지독한 고인물의 냄새가 나요?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스트리머인 것도 맞죠?"
"맞죠. 지금 방송 중인데."
"……."
차진혁은 잠자코 주변을 둘러보았다.
'1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왜 막힌 거지?'
일단은 단서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그때 새로운 알림이 들려왔다.
[돌발 미션이 생성됩니다.]
[돌발 미션 생성자 : 바람 나그네]
퀘스트가 아니라 '미션'이 생성되었다.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퀘스트와 달리 미션은 시청자가 인위적으로 생성하는 것이었다.
미션을 성공시키면 큰 후원이 뒤따른다.
다시 한번 알림을 살펴보았다.
[돌발 미션 생성자 : 바람 나그네]
'바람 나그네라면 설마?'
차진혁이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