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5화
난쟁이들의 왕 가르가르.
레벨은 약 35 내외.
원래 서울역 튜토리얼 필드에서 나타났던 가장 강력한 개체는 '붉은 보아뱀'이었고 그 개체의 평균 레벨은 25가량이다.
그런데 갑자기 35짜리 개체가 튀어나온다니?
최악의 튜토리얼 던전이라 불리는 부평역 던전에 나오는 놈보다 레벨이 더 높다.
'강한 놈이다!'
튜토리얼 필드의 배려 덕분인지 가르가르가 바로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보스몬스터 필드에 진입합니다.]
[부활 설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어두운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너비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꽤 넓었다.
벽면 가장자리에 수십 개의 원형 기둥이 박혀 있는 널따란 공간이었다.
'마법진?'
바닥에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저기서 가르가르가 생성되는 것 같다.
"얘들아, 잘 들어. 지금 나타날 놈은 절대 못 이겨."
"그, 그걸 어떻게 알아요?"
"중계자의 시선. 이걸로 많은 걸 알 수 있거든."
"그, 그럼 어떡해요?"
"무조건 방어에만 치중해. 한 번만 막아봐. 그다음은 내가 어떻게 할 테니."
미래 기준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 9인 군주의 힘은 꽤 뛰어난 편이었다.
"9인 방벽을 사용하면 한 번은 버틸 수 있을 거야. 한 번만 버텨.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게."
바닥에 진동이 일기 시작했다.
마법진에서 투구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가르가르는 일반적인 난쟁이들보다 훨씬 컸다.
[LV35/가르가르/스킬]
이름이 붉은색으로 표시됐다.
지금 내 수준에서 위험한 마물이라는 뜻이다.
"내가 오른손 들어 올리면 함성 내질러. 알겠지?"
"형은요?"
"설명할 시간 없어."
일단 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나는 정면으로 부딪쳐 마물을 사냥하는 것도 즐거워했지만, 머리를 써서 공략하는 것도 좋아했다.
'중계 상점.'
나는 스트리머 전용 상점인 '중계 상점'을 열었다.
가격이 더럽게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만 꽤 많은 것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개비싸다.'
──────────
[중계상점]
* 밧줄(12m) - 500,000 다이아
──────────
[밧줄(12m)를 구매하시겠습니까?]
내가 여태까지 후원받은 총액이 70만 다이아였다.
고민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미 가르가르의 상체까지 튀어나왔다.
[마비알약(검정)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후원받은 총액이 70만 다이아인데, 20만짜리 마비알약(검정)까지 구매했다.
'아, 떨려.'
직업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저레벨 구간.
이 구간에서는 비교적 제대로 싸울 수 있다.
가르가르를 마주한 나는 생각했다.
'레벨 30까지는 플레이어로도 안 치니까. 좀 적극적으로 싸워도 되지 않을까?'
레벨30까지는 튜토리얼급 플레이어라고 해서, 초저레벨로도 안 친다.
여기서 아무리 훌륭하게 싸워봤자 정자가 잘 헤엄친 수준이다.
정자가 잘 헤엄쳐봤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어차피 제대로 안 싸우면 죽어. 제대로 싸워야 돼.'
가르가르의 하체가 솟아올랐다.
가르가르의 몸에서는 미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잡몹이라도 초반 등장만큼은 위협적이네.'
크리링도 첫 등장에는 강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가르가르가 어슬렁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2미터나 되는 거대한 몸집을 지닌 난쟁이들의 왕.
그 오른손에는 투박한 철도끼가 들려 있었다.
'이때다.'
내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소리 질러서 유인해!'
함성을 질러 가르가르를 유인해야 했다.
'음, 소리를 안 지르네.'
못 봤나 싶어서 다시 오른손을 들어 올렸지만 애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 * *
가르가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기 전.
차진혁은 꽤 멀리 떨어져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뭘 하는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9인군주, 강남일이 작게 말했다.
"저 형, 우리를 미끼로 두고 도망칠 생각이 틀림없어."
"야, 설마."
"그렇지 않고서야 왜 저렇게 멀어지는 건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저 새끼가 그랬잖아. 우리 힘으로 상대할 수 없는 놈이라고."
"하, 한 번만 공격을 막으라고 했잖아."
"아니. 우리도 저쪽으로 가야 돼. 출구가 저쪽에 있는 게 틀림없어. 저 형은 뭔가 알고 있다고!"
강남일은 차진혁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차진혁이 시킨 대로 하지 않았다.
"난쟁이 마물은 소리에만 반응하잖아. 근데 소리 내라는 건 이상하지도 않냐?"
"그, 그건 그렇지."
"최대한 조심히, 소리 내지 말고 움직이자. 소리만 안 내면 괜찮을 거야."
"야,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지X하지 마. 내가 군주야. 내 말 들어."
꽤 멀리 떨어진 차진혁은 담담하게 방송을 이어갔다.
"아마도 저 애들은 저를 믿지 못한 모양입니다. 시간이 없어 자세히 설명해 주지 못한 영향이 큰 것 같네요. 아쉽네요."
그러나 이 또한 저들의 선택이었다.
가르가르는 일반적인 난쟁이 마물과 다르다.
'움직임'에도 반응한다.
'그리고 일단 움직임을 읽히면…….'
그러면 끝이다.
9인이 진을 이루어 방어에만 전념해도 한두 번의 공격을 막아내는 게 전부였을 터.
한 번의 공격만 막아내면, 그 이후는 차진혁 자신이 해결하려고 했다.
가르가르가 가까이 있던 애들에게 달려들었다.
"그오오!"
괴성을 내지르며 도끼를 휘둘렀다.
"크아아악!"
전투라기보다는 도륙의 현장이었다.
가르가르의 도끼를 제대로 막아낸 이들은 없었다.
순식간에 6명이 죽었다.
"세 명 남았네요."
가르가르는 일반적인 난쟁이들보다 훨씬 빨랐고,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9인 군주, 강남일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미, 미, 미친.'
공포감에 짓눌렸다.
약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압도적인 괴물이었다.
뒤로 필사적으로 기다가 등이 벽에 닿았다.
'아, 안 돼……!'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르가르가 강남일을 향해 펄쩍 뛰어올랐다.
그때, 차진혁이 버럭! 소리 질렀다.
"야! 새끼야! 여기다!"
쿵!
가르가르의 손도끼가 쓰러진 강남일의 바로 옆을 찍었다.
강남일은 바들바들 떨며 울었다.
죽음의 공포가 몸을 잠식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기!"
크릉?
"여기라고!"
가르가르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이내 차진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차진혁도 살짝 놀랐다.
'어그로가 이렇게 잘 잡혀?'
의아했지만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쿵! 쿵! 쿵!
땅이 흔들렸다.
* * *
강남일은 몸을 일으켰다.
'살아야 해.'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이 공포를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쿵쾅대며 달려가던 괴물의 몸이 기우뚱-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저, 저건?'
무언가가 보였다.
바닥에 설치된 밧줄이었다.
가르가르가 줄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어?'
그와 동시에 차진혁의 몸이 제비처럼 날았다.
'뭐, 뭐야?'
넘어지는 가르가르를 향해 몸을 던진 뒤, 그 입속에 무언가를 툭 던져 넣었다.
차진혁은 마치 기계체조 선수처럼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킨 뒤 가르가르의 등 언저리에 착지했다.
강남일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차진혁을 바라보았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 움직임인데?'
지극히 일반인인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수부대 출신이거나 체조선수 출신이거나.
아무튼 굉장한 훈련을 거친 사람이 틀림없었다.
'저 괴물은 왜 안 움직이지?'
이상하게도, 가르가르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것은 마비알약의 효과였으나 강남일은 알지 못했다.
차진혁의 손에는 날카로운 단도가 들려 있었다.
차진혁은 양손으로 단도를 쥐고서 후우- 심호흡을 했다.
그의 눈은 가르가르의 등을 향하고 있었다.
등 가운데.
커다란 반점이 보였다.
차진혁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말했다.
"저 반점은 숨을 쉬는 것처럼 보이네요."
반점이 열리는 타이밍이 있다.
그때를 노려야 한다.
"지금이 타이밍인 것 같습니다. 한 번 찔러볼게요."
그대로 단도를 찔러넣었다.
그 동작들이 모두 자연스러웠다.
푸욱!
차진혁의 얼굴에 녹색 피가 튀었다.
'와, 이 손맛.'
분명히 크리티컬 샷의 손맛이었다.
괜스레 반갑고 즐거운 감정이 들었지만 이내 그 감정을 외면했다.
그는 스트리머니까.
"확실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차진혁은 축- 늘어진 가르가르의 목 쪽으로 가서 목 뒷덜미를 수차례 찔렀다.
푹! 푹! 푹!
그때마다 녹색 피가 어지러이 튀었다.
이미 움직임이 없었으나 차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악마 같았다.
['가르가르'를 처치하였습니다.]
[업적, '작은 왕의 최후'를 달성하였습니다.]
그제야 차진혁은 허리를 일으켰다.
피범벅이 된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나는 겁에 잔뜩 질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강남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왜 그랬어?"
"그, 그, 그 게…… 저는 말 듣자고 했는데 애들이……!"
강남일은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세요."
"죽인다고 안 했는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죽인다고 한 적 없다.
게다가 나는 지금 방송 중이고, 사람을 죽이는 취미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았다.
저들의 선택이 아쉽기는 했지만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애초에 그렇게 쑥덕거리면서 우왕좌왕하면 못 알아채는 게 등신이지."
그래서 나는 애들이 내 말을 듣지 않을 거라 가정하고 움직였다.
우리 사이에는 동료라고 할 만큼 끈끈한 유대감이 쌓이지 않았고, 애들이 내 말을 들어야 할 의무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내 말을 듣지 않겠다고 말해줬다면 더 좋았겠지만 나도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된 설명을 못 해줬으니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나는 나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자기가 유리한 대로 행동했고, 그 책임은 각자 지게 된 것뿐이다.
살아남은 세 명이 같이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 바람에 조금 난처해졌다.
"그나마 9인 방벽으로 버티는 것이 가장 유리했을 거야. 너희도 느꼈겠지만 놈은 한 번 공격하고 나면 그다음 공격까지 꽤 딜레이가 있었거든."
"……딜레이가 있었다고요?"
조금만 집중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너무 겁먹은 모양이었다.
친구들을 잃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상관없었다.
애들과 대화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수천 명의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거였으니까.
내가 어떻게 약점을 파악했고, 왜 이런 전투방식을 채택했는지에 대한 개연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딜레이 동안 검은 반점이 열렸다 닫혔다 하더라고."
"그, 그랬어요?"
"어. 전투에 조금만 집중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야."
"누, 누구나 알 수 있다고요?"
디텍팅 계열의 플레이어들은 훨씬 더 정교하고 정밀한 약점을 찾아내기까지 한다.
오죽하면 어떤 재질의 무기로, 어느 정도의 깊이를, 어느 정도의 세기로 찔러야 한다는 것도 아주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나온다.
"나는 거기가 약점이라고 판단했어. 그 약점을 찌르기 위해 최적의 상황을 설정한 거야. 어쨌든 난쟁이 마물의 연장선이고, 왕이니 덩치가 클 거라 예상했으니까 밧줄을 미리 구매해서 넘어뜨릴 계획을 세운 거야. 너희가 한 번의 공격을 받아내면, 그 다음 내가 유인해서 공격하려고 했던 거지."
과정은 좀 달라졌지만 다행히 결과가 꽤 좋게 나왔다.
"결국 운 좋게도 가르가르를 사냥할 수 있었지."
"운…… 이군…… 요."
애들은 아직도 황망한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아무튼 이 정도면 충분한 개연성이 됐겠지.
'업적이나 살펴보자.'
그런데 솔로잉으로 인정되면서 상향 조정이 이루어졌다.
['작은 왕의 최후' 업적이 '튜토리얼의 제왕' 업적으로 상향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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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의 제왕]
서울역 튜토리얼 필드의 제왕 가르가르를 처치하였습니다.
제왕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특성/스킬 중 하나를 선택하여 상시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단, 해당 효과는 튜토리얼 필드 내에서만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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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간 찝찝해졌다.
'이건 3등이 아니라 1등이 확실한데.'
근데 이게 또 기뻤다.
'경계해야 해. 이 몹쓸 마음.'
어쨌든 효과 자체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튜토리얼의 제왕' 업적 효과를 적용하시겠습니까?]
나는 곧바로 '중계결계'에 업적 효과를 적용시켰다.
중계결계가 곧바로 활성화되었다.
[업적 효과가 적용되어 '중계결계'가 상시 활성화됩니다.]
말하자면 상시 펼쳐져 있는 보호막 같은 것이었다.
적어도 튜토리얼 필드 내에서는 상처를 입거나 다칠 일이 거의 없을 것이었다.
'슬슬 멈추고 설렁설렁해야 하는데…….'
지금 멈추기에는 조금 아쉽기는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제일 강한 놈인 보아뱀이 튀어나오거나 실력 있는 암살자가 공격해 주면 재미있을 거 같은데.
'아이씨, 정신 차려라 차진혁.'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래로 내려갈까?
내려가면 애초 이곳의 목적이었던 '여벌 목숨'을 획득할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좀 천천히 해야 할 거 같은데…….'
['튜토리얼의 제왕'은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여 승강장에 진입하십시오.]
[승강장 진입을 거부할 시, 업적이 회수됩니다.]
아, 이건 어쩔 수 없네.
승강장까지는 가야 할 것 같았다.
진짜 어쩔 수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