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화
차진혁은 '중계자의 시선'으로 살펴봤다.
[LV15(+2)/적색살귀/암살자/스킬/구살(九殺)]
휘익!
여자가 칼을 휘둘렀다.
'오, 암살이다!'
차진혁의 몸이 자연스레 반응했다.
보통 60레벨까지는 저레벨로 구분한다.
레벨에 따른 직업 경계가 거의 없는 수준의 구간.
차진혁의 눈에 여자의 몸동작이 슬로우모션처럼 훤히 들여다보였다.
왼손으로 여자의 오른 손목을 쳐내 칼을 떨어뜨렸다.
'아참, 나 중계결계 있었지?'
그냥 막아도 되는데 이렇게 반응했다.
습관이란 게 무서웠다.
'다음에는 중계결계로 막아봐야겠다.'
차진혁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서렸다.
인벤토리에서 단도를 꺼냈다.
단도는 범용성이 아주 좋은 물건이었다.
파괴력과 내구도는 약하지만 직업을 별로 가리지 않는다.
레벨이 많이 올라도 다룰 수 있다는 뜻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스트리머가 사용하기에는 꽤 괜찮은 무기였다.
'어딜 찌를까?'
찌를 곳이 너무 많았다.
'목덜미가 좋겠다.'
푹!
여자가 꺄아악!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처음 겪는 고통에 괴로워하며 바닥을 뒹굴다가 이내 쇼크가 와서 쓰러졌다.
목에 단도가 꽂힌 채 반쯤 기절하여 경련했다.
오랜만에 암살자와 검을 나누었다.
'후, 즐거울 뻔했다.'
차진혁은 차분히 방송을 이어갔다.
"아마도 십살(十殺) 업적을 채우려고 했던 것 같네요. 본신 레벨은 15인데 2레벨 추가 산정 받아서 17레벨로 읽혔고요."
그것은 이 여자가 이룬 '구살' 업적과 관련이 있었다.
업적효과로 +2레벨 효과가 적용된 것이었다.
"십살 업적 효과를 받으면 아마도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일 수 있을 줄 알고 때를 노렸던 것 같아요. 제가 약해 보이니까 저를 제일 먼저 노린 것 같네요."
차진혁은 감전된 것처럼 파드득거리는 여자의 몸을 힐끗 봤다.
"적색살귀라는 이름을 제 스스로 지었다는 것은 좀 충격적이군요. 나이도 꽤 있어 보이는데. 아무튼 무기는 회수하겠습니다."
차진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단도를 슬쩍 빼냈다.
푸악!
피가 솟구쳤다.
차진혁의 몸 전체를 축축하게 적셨다.
"아직은 직업 간 경계가 거의 없는 구간이라 별로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여자는 죽었다.
플레이 도중 기습을 한 자는 죽이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룰은 부활 불가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완전히 죽여야 하는데.'
그렇지만 미래의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초보 구간.
기준을 한참 낮춰서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끈적끈적한 피가 온몸을 적셨지만 별로 특별할 건 없었다.
원래 '플레이를 하다 보면 피칠갑 되는 게 당연하다'라는 것이 차진혁의 기준이었으니까.
"너희도 다친 데는 없지?"
"네, 네!"
"네!"
애들이 아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대답했다.
그들은 차진혁의 눈길을 피했다.
그들은 공포감에 물들어 있었으나, 차진혁은 그걸 읽어내지는 못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착하고 예의 바른 친구들이네.'
* * *
내가 경험했던 애들은 이렇지 않았다.
국정원 소속의 플레이어였던 나는 애들을 상대한 경우가 별로 없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상대해야 했던 애들은 진짜 심각한 빌런들이었지.'
세상의 모든 애들이 그런 빌런들은 아니겠지만, 내가 경험한 애들은 다 끔찍한 빌런들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나한테 굉장히 깍듯했고 예의가 발라서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저 친구들도 모두 레벨이 1 혹은 2 정도는 올랐고, 난쟁이 마물을 사냥하는 것에는 도가 텄다.
어느새 자정이 됐다.
자정이 되자 시체들에서 금색 가루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스킬, '중계자의 시선'을 사용합니다.]
새삼, 중계자의 시선의 위력이 느껴졌다.
중계자의 시선으로 보니 저 현상이 무엇인지 시스템이 친절하게 알 수 있었다.
머릿속에 정보가 저절로 입력되었다.
"리젠 시간이네요. 12시가 되면 시체들이 되살아난다고 하니까 인터뷰를 따야겠네요."
쓰러져 있던 시체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들은 몸을 일으키고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만져보았다.
"내, 내가 살아 있잖아?"
"지, 진짜 살아난다고?"
아까까지 시체였던 남자 둘은 당황한 상태였다.
애들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런 생생한 반응, 아주 좋다.
엘튜브 각이다.
"그러면 인터뷰를 한 번 나눠보겠습니다. 죽어보니까 어땠……."
그러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아까 내 등 뒤에서 칼을 꽂으려 했던 중2, 아니 적색살귀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단도를 다시 주워들고 나를 찌르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죽어!!!"
이 여자, 참 한결같네.
나는 중계를 이어갔다.
솔직히 말해서 아까 처음 습격받았을 때는 좀 설렜는데, 이제는 아니다.
내 이성이 본능을 이겨냈다.
나는 흥분하지 않았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스트리머답게 중계를 이어갔다.
"아참, 저는 중계결계로 보호받는 스트리머고요."
이번에야말로 진짜 중계결계 써본다.
'중계결계.'
여자의 단도는 내 중계결계를 뚫지 못했다.
이름만 거창하지 단도는 허접했다.
"악!"
적색살귀는 짧은 비명과 함께 단도를 놓쳤다.
반탄력 때문이었다.
손목이 연신 욱신거리는 모양이었다.
"아까 찔렀던 데를 다시 찔러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단도를 주워들고서 아까 찔렀던 데를 또 찔렀다.
이러면 트라우마 비슷한 게 발동해서 훨씬 쉽게 제압된다.
적색살귀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마무리는 역시 심장이 확실하겠죠."
푹!
심장을 찔러 마무리했다.
뒤에서 기습하는 건 악독한 빌런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나랑 싸우자고 덤벼들던 미친놈들도 기습은 안 했다.
"참 쉽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우 한 명밖에 안 죽었다.
아주 평화롭고 무난한 방송이었다.
* * *
에건 폴.
그는 미국의 유명 스트리머로서, 글로벌 히트 게임 '오르딘'의 랭커였다.
그는 최근 일어난 기현상에 매우 빠르게 적응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왔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
그는 선제 각성 스트리머로 각성하여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살려 스트리밍을 시작했고 빠르게 레벨 15를 달성했다.
각성 공간으로 이동한 그는 각성명으로 '에건 폴'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랭킹보드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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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머 계열(미국 맵)]
[1위. 에건 폴(LV: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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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죠셉과 대화를 나눴다.
죠셉은 에건 폴의 매니저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다.
"또 그 이상한 방송이냐?"
"그래. 잘 좀 협조해 줘라."
"그거, 시청자가 몇이나 돼?"
"1,500명."
"왓 더 퍽? 겨우? 너 엘튜브 구독자가 2,000만이 넘잖아. 그걸 그만두고 이걸 한다고? 정신 나갔냐?"
에건 폴이 어깨를 으쓱했다.
"다가올 미래를 미리 준비해야지. 살아온 대로만 살면 도태돼."
"에휴, 그래라.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돈이라면 썩어 넘칠 정도로 많은 녀석이니 걱정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다.
"근데 왜 1,500명밖에 안 돼?"
"정원 리밋이 1,500명으로 걸려 있어. 내가 알아보니까, 이것도 엄청 많은 편이더라. 재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레벨 당 정원수가 정해지는 것 같아."
"그러면 1레벨당 100명?"
"그렇지."
에건폴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나는 1레벨당 100명. 근데 보통은 1레벨당 30명 수준이더라고."
"인터넷에 보니까 3,000명쯤 되는 애도 있다던데?"
에건 폴이 씨익 웃었다.
"그게 나야."
"뭐?"
에건 폴은 죠셉과 둘도 없는 친구였고, 죠셉에게만큼은 그 어떤 비밀도 가지지 않았다.
에건 폴은 특성으로 '중계결계'와 더불어 '유명세'를 가지고 있었다.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더 유리한 설정이 걸려 있어. 시청자 숫자도 속일 수 있고."
"그래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어. 지금 내 능력으로는 2배 뻥튀기할 수 있지."
현재 그는 '시청자수 x2' 표기를 적용한 상태였다.
그래서 시청자수를 1,500명에서 3,000명까지 부풀릴 수 있었다.
3일 정도가 흘러 그는 레벨 20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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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머 계열]
[1위. 에건 폴(LV: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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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무려 2,000명이었다.
이제는 '시청자수 x3'이 적용되어 6,000명으로 표시되었다.
그는 정보망을 풀어 타 스트리머들과 자신의 격차를 체감했다.
'내가 압도적인 1위다.'
그는 바다 건너편, 김철수의 존재를 몰랐다.
김철수는 레벨 20에 순수 시청자 6,000명을 달성했다.
[시청자들과의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채팅/후원이 가능합니다.]
에건 폴은 본격적으로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유명세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뛰어난 재력을 바탕으로 각 계열의 랭커들을 섭외했다.
돈이야 이미 썩어날 정도로 많았다.
각 계열 랭커들을 섭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신, 저희 스토리 작가가 짜주는 각본대로 어느 정도는 연출에 협조해 줘야 합니다."
가끔은 들끓는 전우애를, 가끔은 생각지 못한 반전을, 가끔은 팀원끼리의 갈등을 연출해야 했다.
전문 서사 작가가 일곱이나 붙었다.
"그러죠."
"그럽시다."
"돈만 준다면야."
그들은 어벤져스 군단이라 불리며 튜토리얼 필드들을 하나하나 섭렵해 가기 시작했다.
* * *
"창술에 대해 정확히 아는 건 아닌데."
물론 그것은 차진혁 본인의 기준이었다.
그가 창술을 모른다는 건 비교대상을 최소 창후 정도 되는 랭커들로 설정했을 때였다.
차진혁의 기준은 늘 그랬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가 아는 대로 설명해 줄게."
"네!"
"중단이 양손 창술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자세야. 너희는 9인 방벽을 위주로 해서 찌르기를 위주로 사용하니까 중단세를 취하는 게 가장 유리할 거야."
"네, 네!"
"알겠습니다."
차진혁은 이들을 일컬어 고딩이들이라 불렀고, 그들과 좋은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었다.
차진혁이 보기에 애들은 굉장히 협조적이었고 착했다.
'아무래도 시청자 수가 너무 많은데.'
레벨 20의 에건폴이 시청자수 6,000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차진혁 또한 레벨 20에 6,000명을 달성했다.
그가 목표하는 건 비밀상자이지 에건 폴이 아니었다.
'같은 콘텐츠 계속 보여주면 좀 지루하겠지.'
그래서 이 필드를 벗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곳에서 플레이했다.
요 며칠간, 난쟁이 마물을 벌써 300여 마리나 사냥했다.
'그래도 후원 자체는 꽤 쏠쏠한 편이네?'
하루에 5만 다이아 정도 후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다이아가 대략 1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설렁설렁 일하고 일당 5만 원을 받는 셈이니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참고로 에건폴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스트리밍 수익을 공유하고 있었다.
'에건 폴이 하루에 50만 다이아 정도를 후원받는다고 했지?'
물론 그것도 뻥튀기된 숫자였지만 차진혁은 그 사실을 몰랐다.
에건 폴도 현시점에서는 5만 다이아 수준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1/10 수준이니까 후원은 딱 좋은 수준이네.'
그런데 그때, 알림이 들려왔다.
[히든 피스, '300마리의 난쟁이 마물 사냥'이 만족되었습니다.]
'엥?'
차진혁은 이렇게 저레벨 던전의 히든 피스들은 잘 모른다.
몇몇 외우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그것들은 아주 굵직한 것들이거나, 꼭 필요한 특성을 얻을 수 있는 곳들이었다.
'이런 히든 피스가 있었어?'
근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스트리머 전용 히든 피스, '해당 필드 시청자의 숫자 6,000명'이 만족 되었습니다.]
[새로운 히든피스가 발동됩니다.]
차진혁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왜 이렇게 거창해지는 기분이 드냐?'
['난쟁이들의 왕-가르가르'가 시작됩니다.]
'설마 내가 아는 그 가르가르?'
저 이름은 튜토리얼 필드에서 나올 이름이 아니었다.
차진혁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