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화
[3,000/3,000]
차진혁의 채널에는 무려 3,000명이 들어와 있었다.
지구 서버, 오픈 베타 서비스에는 도합 500여 명의 선제각성 스트리머들이 존재했는데 그중 압도적인 1위였다.
'에건 폴의 시청자수도 3,000명쯤이라던데?'
에건 폴은 지구가 낳은 위대한 스트리머였다.
오픈베타부터 차진혁이 회귀하기 직전까지, 스트리머 계열 부동의 1위.
전체 레벨 랭킹으로도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하는 스트리머였다.
'왜 나랑 똑같냐?'
차진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에건폴보다 방송을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유를 모르겠네.'
어떤 유명인이 홍보라도 해줬나 싶을 정도였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에건 폴보다 시청자 숫자가 비슷하다는 건 곧 1등이라는 소리다.
그 사실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그는 또 깨달았다.
'정신 수양이 부족해.'
비전투 계열 직업을 고르면 승부욕이 좀 덜할 줄 알았더니.
여전히 1등이 기쁘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의지로 부정해야만 했다.
'나는 3등을 원한다. 진짜로.'
다시 한번 다짐한 차진혁은,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방송을 진행했다.
어느덧 차진혁의 레벨은 15가 되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LV 15를 달성하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변화가 생겼다.
[정식 각성룸에 입장합니다.]
* * *
오픈 베타 서비스는 보통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지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지구와 거의 똑같은 환경을 지닌 '오리얼스'의 사람들이 지구서버에 관심을 가졌다.
비록 마이너 서버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꽤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한 플레이어가 있었다.
- 지구 서버에 미친놈 나타남.
- 왕발토끼 정수리에 단도를 쑤셔넣음. 내가 직접 봄.
- 그게 뭐가 미친놈임?
- 직업이 스트리머임.
저레벨 플레이어.
그것도 비전투계열 플레이어치고 너무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 저레벨이니까 가능하지. 저레벨은 직업간 경계가 거의 없는 거 모름?
- 마즘. 저레벨에 전투계열 흉내 내는 스트리머는 레벨 100이전에 무조건 도태각임.
- 저런 컨셉 원투데이봤누? 이젠 안 속는닼ㅋㅋㅋ
그런데 차진혁은 확실히 범상치 않은 스트리머였다.
- 미친놈이 마물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관찰도 함. 붉은여우 이빨 몇 갠지 입을 벌려서 보여주더라. 심지어 그때 걔 레벨 2였음.
- 붉은여우 레벨 6아님?
- 그러니까 미친놈이짘ㅋㅋㅋㅋ 중계결계 덕분에 손가락은 안 잘리더라.
오픈베타 서비스 중인 서버의 스트리머들이 보이는 행동들은 얼추 비슷하다.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중계결계를 차진혁처럼 자유자재로, 적재적소에 사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물에게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거나 심지어는 직접 사냥하거나 하는 등의 위험한 행동들은 거의 하지 못했다.
마물 앞에서 지나치게 긴장하여 아무 말도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 중계결계 활용능력이 흡사 고인물임. 그게 아니라면 개쌉재능러일듯.
- 오픈베타에서 그게 어떻게 가능함?
- 혹시 회귀자일지도?
- 미친소리하눜ㅋㅋㅋ 회귀자면 관리자들이 먼저 나서서 목 잘랐겠짘ㅋㅋㅋ
차진혁 회귀자 썰은 금방 묻혔다.
- 근데 전투를 보는 눈은 진짜 탁월함. 전문 해설자 보는 줄.
- 아무튼 전무후무한 스트리머가 나타난 건 확실함.
오픈 베타 서비스에서 이 정도 모습을 보여주는 스트리머는 차진혁이 유일했다.
차진혁 본인이 모를 뿐.
그건 어쩔 수 없는 환경 탓이기도 했다.
차진혁은 최상위 랭커였고, 그 주변도 모두 최상위 랭커였다.
차진혁의 말을 빌리자면 모두가 미친놈들이었다.
따라서 그의 기준은 상당히 비상식적인 면이 있었다.
이를테면, '죽을 뻔한 위기를 일곱 번쯤 겪지 않으면 아주 평온했던 것이다'와 같은 기준 말이다.
* * *
레벨 15.
정식 각성룸에 입장했다.
내 시야가 까맣게 물드나 싶더니 어두운 공간에 저절로 이동되었다.
내 앞에는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천사가 한 명 서 있었다.
별 감흥은 없었다.
저 천사는 그냥 AI니까.
"플레이어의 이름, 각성명을 생성하여주십시오."
생각해놨던 이름이 있다.
평범하게 3등만 하자는 염원을 담은 이름.
"김철수."
"김철수, 맞습니까?"
"어."
"플레이어의 정보를 공개하시겠습니까? 공개 시 랭킹보드에 랭킹이 등재됩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랭킹에 공개되어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의무만 잔뜩 늘어나고 적만 많아진다.
명예롭기는 한데 그 명예는 이제 필요 없다.
"거부."
형식적인 절차를 거친 뒤, 나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사람들이 흠칫 놀랐지만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이제 모두가 익숙해질 현상이니까.
'랭킹보드나 한 번 살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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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보드(한국 맵)]
[검 계열][궁수 계열][체술 계열]……[힐러 계열]……[기타 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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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계열별로 랭킹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나는 검 계열을 확인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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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이현성(LV: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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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반가운 이름이 보였다.
사적인 친분은 별로 없지만, 공적으로 만나 몇 차례 함께 플레이를 진행했었다.
'랭킹 1위가 아직도 레벨이 15라고?'
나랑 레벨이 같았다.
참고로 회귀 전의 나도 이 시기에 15정도였던 거 같다.
'내 레벨업 속도가 엄청 빠른 거긴 하네.'
스트리머가 괜히 레벨업 최고봉이 아니구나 싶다.
시청자수와 비례하여 레벨업 속도가 빨라진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좀 천천히 해야겠다.'
속도를 조금 조절하기로 했다.
아직까지는 의지가 본능을 이겼다.
* * *
3일이 흘렀다.
천천히 한다고 했는데(차진혁 기준에서) 벌써 레벨 19를 달성했다.
'아무리 스트리머라지만, 레벨업이 왜 이렇게 빨라?'
──────────
[검술 계열]
[1위. 이현성(LV:21)]
[체술 계열]
[1위. 김상희(LV: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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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계열의 랭킹 1위는 대부분 레벨 21.
최상위권들답게 서로 비슷비슷했다.
'아직은 다들 헤매고 있나 보네. 나랑 2밖에 차이 안 나는 걸 보면.'
그의 본능은 '다행이다'를.
그의 이성은 '더 천천히'를 외쳤다.
시청자 수는 이제 5,700명.
레벨 1당 300명씩 정원 제한이 올라갔다.
다시 하루가 지났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 20을 달성하였습니다.]
벌써 레벨 20이었다.
[시청자들과의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채팅/후원이 가능합니다.]
채팅창이 열림과 동시에 차진혁은 '채팅 금지' 설정을 걸고서 모든 소통창구를 다 닫아버렸다.
'됐다.'
차진혁이 롤모델로 삼았던 건 '에건 폴'이 아니라 '비밀상자'였다.
에건 폴은 엄청난 유명인이었던 것에 반해 비밀상자는 베일에 가려진 스트리머였다.
'철저히 1인칭 시점으로만 방송을 진행해서 자신의 신분을 최대한 감추었고 시청자들과 소통도 안 했었지.'
어떤 사람들은 비밀상자를 일컬어 불통의 아이콘, 개썅마이웨이라고 욕하곤 했지만 그래도 비밀상자는 제법 성공을 거두었다.
초반에 이런 컨셉으로 꽤 큰 후원을 받아서, 연희동에 빌딩을 올렸었다.
참고로 연희동은 훗날 금싸라기 땅이 된다.
서울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지는 곳이 바로 연희동이다.
그곳에 안전지대를 생성해 주는 수호수(守護樹)가 자라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비밀상자가 그런 땅에 건물을 몇 채나 가질 수 있었다는 거지.'
그리고 젊은 나이에 은퇴하여 떵떵거리며 잘먹고 잘살았다.
차진혁이 생각하기에 비밀상자가 스트리머계의 딱 3, 4등 정도 느낌이었다.
각성자 사냥꾼들한테 습격도 안 당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테크가 최고지.'
예나 지금이나 조물주 위에 있는 건 건물주였다.
"레벨 20을 달성한 기념으로 튜토리얼 필드에 들어가 보려 합니다."
예전에는 각성하자마자 쳐들어가서 여러 번 죽었다가 레벨 1로는 무리겠다 싶어서 레벨 5부터 다시 도전했었던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 * *
지하철 역사들을 따라 '튜토리얼 필드'가 생성되었다.
차진혁이 가려는 곳은 서울역이었다.
서울역 입구에 발을 내딛자 알림이 들려왔다.
[튜토리얼 필드: '서울역'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서울역'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같은 입구이지만 플레이어들은 서울역이 아닌 '서울역 필드'에 들어갈 수 있다.
'일단 튜토리얼 좀 보여주다가, 적당히 때 봐서 [여벌 목숨] 얻어야겠다.'
여벌 목숨은 오로지 몇몇 튜토리얼 필드에서만 얻을 수 있는 희귀한 특성이다.
그걸 얻어놓으면 '즉사'에 해당하는 공격을 한 번 무효화 시켜준다.
'검왕 시절에 그게 있었으면 훨씬 과감한 전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튜토리얼 진입 전.
차진혁은 다시 한번 스스로의 마음을 점검했다.
'이건 내가 강해지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야.'
안전을 위해서 얻어놓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응?'
예전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져 있었다.
중계자의 시선으로 살펴보니 플레이어들의 레벨이 대략 15 정도 되었다.
그런데도 시체가 셋이나 있었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정확히는 두 구.'
두 남자는 확실히 시체였다.
한 여자는 쓰러져 있기는 했는데 호흡이 멀쩡했다.
척 보니 암살자 계열이었다.
'죽은 척하는 애들은 어딜 가나 있구나.'
별로 위협은 안 될 것 같아서 신경은 껐다.
'와, 레벨 15짜리가 난쟁이 마물한테 죽다니.'
서울역 입구에서 나타나는 마물들은 '난쟁이 마물'이다.
눈이 보이지 않고 완력이 약해서 상대하기 무척 쉬운 마물.
'솔직히 레벨 10만 되어도 쉽게 잡는 놈인데.'
참고로 회귀 전의 차진혁은 레벨 5 때 난쟁이 마물과 싸웠다.
여기저기서, 레벨 10~15 내외의 플레이어들이 사력을 다해 난쟁이 마물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이 시기의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내 생각 이상으로 처참하네.'
너무 오래전이라 잘 기억이 안 났는데, 그의 기억보다 더 약한 것 같았다.
'아, 싸우고 싶다.'
그렇지만 이건 고쳐먹어야 할 마음이었다.
그는 스트리머로서, 스트리머답게 행동하기로 했다.
차진혁은 시선을 돌려 한쪽 구석을 바라보았다.
'쟤네들로 방송각 잡아야겠다.'
9명의 소년이 보였다.
나이는 대략 1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모두 또래의 친구였다.
한 명을 중심으로 하여 8명이 원을 그리고 서 있었다.
직접 싸우고 싶어지기 전에 얼른 말했다.
"그럼 본격적인 중계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 * *
8명의 소년은 쓸데없이 꽤 비장했다.
흐아압!
기합성을 내며 창을 내질렀다.
나이는 어리지만, 변화할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이 제법 기특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움직였다.
난쟁이 마물들이 나한테 안 달려들도록 루트를 잘 설정해서 접근했다.
어린 새싹들에게 가벼운 조언만 좀 해줬다.
"소리를 내지 말고 싸워봐요. 놈들은 아무래도 청각에 예민한 것 같으니까."
내 말을 들었는지, 소년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내 조언을 들은 그들은 난쟁이 마물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렸고 한숨 여유를 돌릴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소년들은 내게 무척 고마워했다.
"형은 뭐하는 사람이에요?"
"스트리머요."
"엥? 스트리머라는 직업이 있어요?"
"창술가도 있는데 스트리머 있는 게 이상해요?"
"그, 그건 그렇죠."
"청각에 예민한 건 어떻게 알았어요?"
"제3자가 돼서 관찰하다 보면 보여요. 그쪽 친구들이 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난쟁이들이 반응하더라고요."
'중계자의 시선'으로 애들을 살펴봤다.
[LV15/고수1호/제1창술가/스킬/달성업적없음]
[LV14/고수2호/제2창술가/스킬/달성업적없음]
직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것도 모자라서 상대의 스킬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스트리머들의 '중계자의 시선'보다 확실히 빼어난 능력이었다.
다들 대동소이했는데, 한 명이 조금 특이했다.
[LV17/고수대장/9인군주/스킬/달성업적없음]
직업명이 초록색이었다.
훗날 사람들은 각 직업마다 등급을 붙이는데 초록색은 5성을 의미했다.
스킬을 살펴보니 '9인 방벽'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파티를 맺은 9명이 함께 할 때 커다란 버프를 걸어주는 능력인 것 같았다.
'으음, 낭만이 있을 때네.'
친구들과 함께 저렇게 플레이하는 게 꽤 귀여워 보였다.
뭐, 반드시 9명이 함께해야만 시너지가 난다는 점에서 쓰레기 직업이기는 했지만 내가 왈가왈부할 건 아니었다.
나는 내 할 일을 했다.
"9명이 함께 할 때 시너지가 나는 모양입니다. 난쟁이 마물을 상대하는 것이 여기서 제일 안정적인 것 같네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을 중간중간 덧붙여주며 내 나름대로 해설을 진행했다.
"거기서, 거기, 끝에 있는 친구, 소리쳐서 어그로 끌어봐요. 청각에 예민하니까."
라든가,
"거기, 가운데 친구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서 상대해 봐요. 지금 거리가 너무 멀어."
라든가.
애들은 내 말을 꽤 잘 수행했고 난쟁이마물 여럿을 사냥할 수 있었다.
얼마 후, 주변의 난쟁이마물들을 모조리 사냥한 소년들은 난쟁이마물이 드랍한 아이템들을 인벤토리에 챙긴 뒤 내게 다가왔다.
저들의 대장 격인 소년, 9인 군주가 내게 말했다.
"형, 스트리머 맞죠?"
"맞아요. 지금 방송 중입니다."
"진짜 대단하신 거 같아요."
"……그래요?"
"네. 무슨 족집게 과외받는 느낌이었어요. 진짜 고맙습니다."
"……그래요?"
"군주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한 건 별로 없는데, 애들이 너무 고마워해서 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때, 내 뒤쪽에서 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응?'
뭐랄까 너무 조잡한 기운인데, 이걸 살기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여자가 나를 향해 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까 죽은 척 쓰러져 있던 여자였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