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화
프롤로그
회귀 전의 나는 강함에 미쳐 있었다.
미공략 던전을 공략하고, 위험한 마물과 싸우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한 번 잘못 움직이면 목이 베일 수도 있다는 그 긴장감이 짜릿했었다.
극악 난이도의 던전에 도전하여 클리어할 때의 그 쾌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쾌락이었다.
남들은 모르는 히든 피스를 찾아내 공략하는 것 또한 내게는 큰 자극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한국의 검왕이라 불리게 됐다.
뭐라더라.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 앞장서서 전진하는, 희생정신 투철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나 뭐라나.
그냥 플레이가 즐거워서 그랬다고 밝혔는데도 아무도 안 믿어주더라.
진짜였는데.
소속은 국정원.
말하자면 공무원 플레이어였다.
내가 국가 소속 플레이어가 된 이유도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받으면 더 빨리 강해질 수 있겠지' 혹은 '극악 난이도의 던전에 제일 먼저 투입될 수 있겠지'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래도 회귀 직전에 정신 차려서 다행이야.'
마지막 순간, 죽음을 맞이했던 반얀트리 던전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건 반얀트리 던전의 최종보스였던 지옥여제의 저주 덕분이었다.
최후의 순간에 돌이켜보니 내 인생은 꽤 가혹했었다.
'매일같이 반복된 암살 위협.'
새로운 세계에 먼치킨은 없다.
최정상급 랭커들의 실력 차이는 한 끗 차이였다.
최정상급 암살자들의 공격은 늘 예리했고 위험했다.
'그땐 그게 왜 그렇게 쫄깃했는지.'
누가 날 암살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에 난 늘 즐거웠었다.
아, 그리고 암살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나를 노리는 자들 중에는 내 능력 자체를 노리는 각성자 사냥꾼들도 많았다.
맘 편히 잠을 자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플레이는 또 왜 그렇게 다 치명적이고 위험한 것만 골라서 했는지 몰라.'
목숨 걸고 안 싸우면 플레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목숨을 걸지 않고 싸운 적이 없었다.
뛰어난 전투계열 플레이어라는 이유로, 시스템의 강제징집이나 위험 퀘스트에 강제로 동원된 적도 많았다.
다들 그게 불만이었는데 난 그게 좋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난 분명 미쳐 있었던 건데 사실 내 주변에는 나 같은 놈들밖에 없어서 그게 이상한 줄도 몰랐다.
다시 말해 나도, 내 동료들도 모두 미친놈들이었다.
지옥여제의 저주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줬다.
약간은 정신을 차렸다고 할 수 있겠지.
최후의 순간, 다시 눈을 떠보니 나는 과거로 돌아와 있었다.
왜 회귀를 하게 됐는지는 나도 모른다.
지옥여제의 저주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는 기억이 없다.
처음 회귀라는 것을 자각했을 때 나는 정신 못 차리고 또 설레했다.
'이번에는 훨씬 강해질 수 있겠다.'
검왕으로서의 노하우와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다.
누구보다 빠르게 최정상 랭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빨리 검을 손에 쥐고 싶었다.
회귀 2일 차.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또 미친 짓을 반복할 수는 없지.'
운이 좋아서(?) 반얀트리 던전에서 죽을 수 있었던 거지, 조금만 운이 나빴어도 요절했을 거다.
나는 내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나라는 놈의 본질은 미친놈이 맞았다.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고서도 -사실 여러 번 최후를 맞이할 뻔했는데도- 또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 하는 걸 보면 말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강해지고 싶지 않은 거다.'
그간 잊고 지냈던 끔찍했던 과거를 다시 상기해 냈다.
'그래. 이번에 또 미치면 사람이 아니지.'
내가 플레이에 미쳐서 가족을 잘 돌보지 못하던 시절.
내가 던전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던 사이, 내 가족들은 연쇄살인마 전남길에 의해 살해당했다.
던전에서 돌아와 보니 가족들은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이후 나는 전남길을 추적하여 죽였다.
다시 말해, 나는 가족을 지킬 힘이 있었는데도 지키지 못했었다.
내가 신경을 좀 더 썼다면 분명 지킬 수 있었는데.
내가 또 미치면 사람이 아니다.
'이번에는 적당히 강해지자.'
그렇게 내 스스로를 세뇌했다.
'대격변은 약 7년 후.'
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 * *
회귀로부터 7년이 흘렀다.
"에라이, 불효자 새끼야.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내 오래된 친구 종철이 녀석은 나를 만나자마자 잔소리를 퍼부었다.
사실 불효자 소리 들어도 할 말은 없었다.
공시에 합격하겠다며 집에서 나와 고시촌에 들어온 지 벌써 7년이다.
그나저나 이 집, 콩나물무침이 맛있네.
"공무원 하겠다고 고시촌 들어와서 7년 내내 시청자 1명 따리 방송하고 있는 게 잘하는 짓이냐?"
"……."
"너 지금 몇 살이냐? 어?"
뭐라고 자꾸 말을 하고는 있는데 늘 그렇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무도 플레이 안 하는 개똥망겜에서 랭킹 1위 찍으면 뭐할 건데? 아니, 씨X, 아무리 망겜이어도 그렇지 명색이 랭킹 1위가 플레이하는데 시청자가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뭔가 위기감을 느낄 수는 없는 거냐? 그 게임 속에서 유저 만난 게 언제인지 기억은 나고?"
제육볶음도 맛있고.
"밥 잘 먹었다."
"야, 어디가?"
"방송하러."
"하아, 이 미친놈이."
"잔소리 들어준 값으로 돈은 네가 내."
"야! 야! 차진혁! 이 새끼야! 거기 안 서냐!"
종철이 녀석과 헤어진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언제 넣어놨는지 내 가방 안에 1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종철이 녀석이 몰래 넣어둔 모양이었다.
말을 좀 싸가지 없이 해서 그렇지 제법 고마운 녀석이었다.
예전 삶에서도, 이번 삶에서도.
'은혜는 갚으마.'
스트리밍 플랫폼 엘튜브에 로그인하여 내 방송 시간을 확인해 봤다.
'약 4만 9998시간.'
앞으로 두 시간만 더 채우면 5만 시간이 된다.
오늘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한 뒤 방송을 켰다.
방송장비는 아주 오래된 고물 캠과 컴퓨터.
내 콘텐츠는 지금 겨우 명맥만 잇고 있는 옛 게임 '어둠의 언덕'이었다.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하긴 해야 하나?'
원종철이 말했다시피 똥망게임이 맞았다.
장르는 MMORPG.
재벌 3세 누군가가 취미로 운영하다가 방치해 뒀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용 유저가 나 말고는 거의 없는데 서버가 폐쇄되지 않는 걸 보면 어지간히 돈이 많은가 보다.
어쨌든 나는 오늘도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시청자는 아직 0명.
"오늘 콘텐츠는 발롱두아 레이드입니다."
발롱두아는 커다란 흑소 형태의 몬스터였다.
혼자서 레이드하기에는 빡센 몬스터였지만 무려 5만 시간 가까이 플레이해 온 내게 있어서 그리 난이도 높은 몬스터도 아니었다.
[ㅇㅇ님이 입장하였습니다.]
[ㅇㅇ : 뭐야, 이새끼 아직도 방송 중이누?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제 연봉 7천인뎈ㅋㅋㅋㅋㅋ 뚝심하나는 미쳤따맄ㅋㅋㅋㅋ밥은 먹고 다니누?ㅋㅋㅋ]
[ㅇㅇ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아 또 저 새끼네.
1년에 두어 번씩, 자기 연봉이 인상될 때나 성과급 받았을 때마다 찾아오는 그 미친놈이 분명했다.
[강퇴껒여님이 입장하였습니다.]
[강퇴껒여 : 배알 꼴리쥬? 식충이쥬? 열등감이 폭발해버리쥬? 아무고토 못하쥬?]
IP를 우회해서 들어오는 정성이 대단하다.
그냥 강퇴할까 하다가 내버려 뒀다.
[강퇴껒여 : 왜 강퇴 안 함?]
"오늘은 막방입니다."
오늘, 이 무의미한 방송을 그만둔다.
엘뷰트 설정창을 통해 다시 한번 내 방송시간을 확인해 봤다.
'4만 9998시간.'
두 시간만 더하면 5만 시간을 채운다.
대격변 이전까지 정말 빠듯한 시간이었는데 어찌어찌 채울 수 있었다.
내 방송의 유일하고도 고마운 고정시청자인 '아기상어'는 오늘 바쁜지 접속하지 않았다.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7년이 넘는 대장정.
하루 18시간 이상을 이 방송에만 매진했다.
[강퇴껒여님이 1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강퇴껒여 : 옛다. 나처럼 대기업은 못가겠지만 사람 구실은 해야지.]
[강퇴껒여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나는 방송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버느라 쪽잠 두세 시간밖에 못 잤다.
진짜 빡셌는데 결국 해냈다.
천장을 바라보니 바퀴벌레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몸은 굉장히 피곤했지만, 가슴이 두근거려서 통 잠이 오질 않았다.
회귀 2,782일 차.
오늘은 한국시간으로 2022년 5월 7일.
'4시간 후 자정.'
결국, 00시가 되었다.
회귀 2,783일 차.
한국시간, 2022년 5월 8일 00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메시지창이 생성되었다.
[신서버, '지구 서버'가 편입되었습니다.]
[신서버, '지구 서버' 오픈 베타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알던 세상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