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5
힐통령 425화
128. 룰 브레이커(2)
“그런데 다른 드래곤들은 어떻게 하죠?”
이오스와 함께 중간계에 떨어진 드래곤들.
그들도 자신이 하나하나 메모리 다이브를 해야 하는 건지.
카이의 물음에 이오스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더 이상 신의 몸은 아니지만, 어렴풋이 남아 있는 신격 정도로도 그들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 수는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다행입니다.”
“나도 그렇지만, 아마 그들 모두 자네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이야.”
“재미있겠네요.”
믿었던 드래곤에게 브레스를 맞는 뮬딘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가벼운 미소를 지은 카이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오스 님, 제가 격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격?”
이오스가 빙그레 웃었다.
“그대는 이미 답을 알고 있네.”
“예?”
몰라서 물은 것이다.
헌데 이미 답을 알고 있다니?
거의 선문답에 카이는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대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하나씩 되돌아보게. 그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어. 이제 남은 것은 답안지에 그 답을 채워 넣는 것뿐일세.”
“…….”
아무래도 직접 알려줄 생각은 없는 듯하다.
하나 그의 태도도 이해는 되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입니까.”
“무엇이든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 가장 좋은 법일세.”
말 잘 듣는 학생을 바라보듯, 뿌듯한 눈길을 보낸 이오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무얼, 나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을 보낸 걸세. 정말 고마우이.”
이오스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가 한때 신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기분이 참 오묘하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화이트홀로 가려는가?”
“그것까지 알고 계시나요?”
“그야 자네가 사용하려는 것은 약간의 제조가 필요할 테니까.”
“대단하시네요.”
“텔레포트 게이트를 열어주겠네. 어차피 거리도 가까우니까.”
“거리가 가깝다니…… 그러고 보니 이 레어는 어디에 위치한 겁니까?”
레드 드래곤을 따라 이동했을 뿐, 이오스의 레어가 어디 있는 건지는 알지 못했다.
“음? 라시온 왕국의 동부 쪽 평원 지하에 있다만.”
이오스가 별 생각 없이 말을 내뱉자, 카이의 눈이 빛났다.
“……라시온 동부요?”
“그렇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물론 있다.
그곳은 이제 자신의 나라이자, 땅이니까.
카이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토지세 내셨어요?”
***
두둑해진 인벤토리를 흐뭇하게 쳐다보는 카이는 화이트홀을 걷는 중이었다.
‘역시 드래곤, 그 중에서도 로드라 그런지 돈이 많네.’
무려 1만 년이라는 세월 동안 모아온 보석과 광석들.
그리고 금화들까지.
이오스의 레어는 보물 창고나 따로 없었다.
‘이렇게 떼어왔는데도 그렇게 많이 남아 있다니.’
당연한 말이지만 드래곤이 세금 따위를 내왔을 리가 없다.
때문에 카이는 여태까지 밀린 세금 10만 골드를 일시불로 받았고.
앞으로는 해마다 1만 골드의 세금을 받기로 이오스와 약속했다.
‘100억이 한 순간에 생기다니. 역시 게임은 돈 벌기 쉽네.’
기쁜 마음으로 과자 가게에 들린 카이는 간식들을 사서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천상의 정원이 아니라, 화이트홀의 도심지에서 조금은 떨어진 공터였다.
뭉게뭉게.
그곳에 위치한 오두막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냄새, 오랜만이네.’
마치 한의원을 방문한 듯한 코를 찌르는 약재의 냄새.
이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 카이는 오두막, 스마일 진료소로 들어섰다.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약을 달이고 있던 소녀가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세…… 어?!”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카이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 아야나.”
“카이 님!”
그녀는 미식축구 선수처럼 맹렬한 기세로 카이의 품에 뛰어들었다.
“쿨륵! 쿠흠!”
그냥 얼굴만 봤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어깨를 토닥이고 있으니 새삼 그녀가 많이 자랐다는 것이 느껴진다.
예전에 같이 생활할 때는 이보다 더 작았는데.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그야 바빠서…….”
“으으응. 아니에요, 잊지 않고 찾아와주신 것만도 감사해요.”
아야나는 카이가 마냥 좋은지, 그의 바지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오는 길에 사왔는데, 나중에 먹어.”
그녀가 좋아하던 과자와 사탕을 기억하고 사온 카이는 그것들을 아야나에게 선물했다.
“이건 제가 좋아하는…… 고마워요!”
“뭘, 오랜만에 와서 이 정도야.”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아야나의 아버지가 현관 쪽으로 슬며시 나왔다.
“왜 이리 소란이…… 어!? 카이 님 아니십니까.”
“예, 잘 지내셨습니까.”
“어유, 저희야 카이 님 덕분에 잘 지냈지요. 아참, 소문은 들었습니다.”
그의 눈망울이 마치 존경하는 보는 사람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모험가의 몸으로 백작의 자리에 오른 것도 모자라서, 이번에 대공이 되셨다고요.”
“제 몸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친 건 아닐까 걱정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카이 님이 언젠가 큰 인물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훌륭하게 잘 해내실 게 분명합니다. 진심이에요. 아, 집사람이 이럴 때 있었어야 제 진실력을 증명해 주는데…….”
“그러고 보니 아내 분이 안 보이시네요.”
“어렸을 때 친구들 만난다고 리버티아에 놀러갔습니다. 아, 그곳도 카이 님의 영지셨죠? 아인종들을 이렇게까지 위해주시는 건 카이 님밖에 없을 겁니다.”
대화가 길어지려고 하자, 아야나가 제 아버지를 타박했다.
“아빠. 자리에 앉아서 대화하세요.”
“이런, 내 정신 좀 봐. 안쪽으로 들어오시지요.”
자리에 앉은 세 사람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떠한 이유로 방문을 하신 겁니까?”
“부탁하고 싶은 재료가 있어서요.”
아니, 이걸 약재라고 설명해야 하는지는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물론 가능합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다뤄보지 않은 약재가 몇 없을 정도예요.”
“아마 처음 다뤄보시는 걸 겁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카이는 테이블 위로 두 개의 약재를 올려놓았다.
여전히 펄떡거리면서 뛰고 있는 심장과, 기다란 뿔이 각각의 정체였다.
“이건…….”
재료를 쳐다보던 아야나의 아버지가 눈을 잘게 떨었다.
“무슨 재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기운이 느껴집니다.”
“각각 마계 대공의 심장. 그리고 마왕의 뿔입니다.”
“허, 허억!”
마치 옛날 동화책의 용사들이나 들고 다닐 법한 재료의 출현에, 아야나는 물론 그녀의 아버지도 화들짝 놀랐다.
“죄, 죄송하지만 이런 재료를 다뤄본 적은 없습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그냥 짐승의 심장이라 생각하시고, 짐승의 뿔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두 가지 재료를 섞어달라는 요청이신가요?”
“아뇨. 절대 섞으시면 안 됩니다. 절대로요.”
카이가 신신당부했다.
“각각 따로 만들어주셨으면 해요. 특히 이 뿔은 마시기 편한 음료 형태로. 그리고…….”
심장을 쳐다보던 카이가 말을 이어나갔다.
“저 심장 쪽은 알약의 형태로 만들어 주세요.”
“……물론 가능합니다. 헌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재료의 성분을 알아봐야 하고, 그 재료의 개성을 증폭시키려면 어떠한 약재들을 곁들여야 하는지 연구할 시간이 필요해요.”
“문제없습니다.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릴까요?”
“2주…… 네. 2주만 주십시오.”
그가 자신 있게 말하자,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2주라.’
딱 좋다.
2주 후, 어떤 식으로든 결판이 날 것이다.
***
카이는 약이 완성되는 2주라는 시간 동안 최종 정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은 나의 상태부터.’
스탯창을 불러오자, 화려한 수치들이 그의 시선을 강탈해 갔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685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308,700
신성력 : 457,500
힘 : 3,862 체력 : 3,087
지능 : 3,199 민첩 : 2,157
신성 : 4,570 위엄 : 2,029
선행 : 859
남은 스탯 : 425
독 저항력 +30
마법 저항력 +101.5%
자연친화력 +200
신성력을 소모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 +50%
악마/언데드에게 주는 피해 +100%
모든 공격력 +10%
모든 스킬의 위력 +15%
모든 능력치 +10%
……
화려하다.
화려한 말로 수식을 해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정도다.
‘모든 스탯의 합이 1만 9천 정도나 되네.’
단순히 1레벨 당 5스탯으로 따진다면 무려 4천 레벨에 가까운 수치다.
물론 대부분의 랭커들은 장비나 스킬, 업적 칭호들을 통해 스탯들을 올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스페셜 칭호가 많은 사람은 없겠지.’
선행 스탯의 몫도 톡톡히 한몫하고 있었다.
선행 스탯의 수치는 859.
모든 스탯을 859개나 올려주는 사기 스탯이었으니까.
‘게다가 스탯창에도 표시되어 있듯, 사실상 저 스탯들은 10% 더 높게 봐야해.’
대공 키네사를 처치하고 얻은 스페셜 칭호.
대공 처단자의 효과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신성 스탯은 5천이 넘는 셈인가.’
물론 순수 스탯은 아직 4,000대지만.
“흐으음.”
카이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더 강해질 수 있는지.
‘남은 시간은 2주.’
계획 없이 무작정 몸만 휘두른다고 다가 아니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놓고, 그 계획에 따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우선 스탯 분배.’
마계에서 돌아온 뒤 카이는 정확히 85레벨을 올렸다.
그 중 대부분은 흑룡 길드와의 전쟁에서 올린 레벨인 셈.
‘스탯 425개를 어디에 투자하느냐도 중요하지.’
목격자 칭호를 포함하면 총 1,700개의 순수 스탯을 올릴 수 있다는 소리다.
카이는 남은 스탯을 어디에 분배해야 할지 고심했다.
‘우선 위엄은 제외.’
최상급 신인 뮬딘을 상대할 때, 인간의 위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그가 자신의 위엄이 높다고 위축될 인물은 아닐 테니까.
‘지능은…… 이 정도면 충분해.’
그가 지능을 올렸던 가장 큰 이유는 중력장과 헬 파이어, 절대영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스킬들은 지능 스탯이 3천이 넘은 지금 충분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지능에 스탯 포인트를 더 투자하는 건 비효율적이야.’
그러므로 지능도 탈락.
자연스럽게 민첩도 마찬가지다.
‘회피율과 크리티컬 확률, 크리티컬 데미지를 높여주는 민첩…….’
뮬딘을 상대할 때는 그리 큰 메리트가 없어 보이기에 탈락.
‘그럼 남는 것은…….’
힘과 체력, 신성뿐이었다.
“우선 체력은 조금 더 찍어야겠어.”
뮬딘이 얼마나 강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의 공격에 원킬(One kill)이라도 나는 순간, 모든 것은 허사가 된다.
‘즉사만 안 되면 어떻게든 살 수 있어.’
자신에게는 햇살의 따스함이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뮬딘의 공격을 한 턴만 버틸 수 있다면.
절대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체력 스탯에 스탯 포인트 150개 투자.”
띠링!
[체력 600이 상승했습니다.]
[체력 : 3,087 -> 3,687]
[현재 생명력 : 368,700]
‘좋아. 그럼 남은 스탯은 275개.’
힘과 신성.
두 가지 스탯을 놓고 저울질하던 카이의 마음이 힘 스탯 쪽으로 기울었다.
‘신성 스탯은 이미 차고 넘쳐.’
신성 계열 스킬을 사용할 때의 에너지 소모값은 대폭 줄어든 상태였고.
반대로 각종 칭호와 스킬의 효과로 인해 신성력 회복 속도는 대폭 증가한 상태였다.
한 마디로 현재 카이의 신성력은 메마르지 않는 바다와 같은 상태.
‘그럼 역시 힘으로…….’
카이의 손가락이 인터페이스에 위치한 힘 스탯으로 향하는 순간.
띠링!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들려왔다.
[이오스가 드래곤들의 기억을 되살려냈습니다.]
[자신들이 뮬딘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드래곤들이 깊은 분노를 느낍니다.]
[드래곤과 뮬딘 교의 관계가 원수 상태로 변경됩니다. 이제 두 세력은 어느 한쪽이 사라질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오스를 포함한 43마리의 드래곤들이 당신에게 엄청난 호감을 느낍니다.]
[명성이 1,849,520만큼 상승합니다.]
[드래곤들이 뮬딘을 적대함으로써 운명이 비틀렸습니다.]
[메인 에피소드 : 드래곤의 시대(Dragon Age)의 발동 조건이 파괴되었습니다.]
[드래곤의 시대 에피소드가 소멸됩니다.]
[이와 관련된 하위 퀘스트 47,120개가 함께 소멸됩니다.]
[태양신 헬릭이 드래곤들의 탄생에 얽힌 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드래곤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한편, 그들을 뮬딘의 마수에서 풀어준 당신을 격하게 칭찬합니다.]
[선행 스탯이 100만큼 상승합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선행 스탯이 추가로 50만큼 상승합니다.]
“……음?”
힘 스탯으로 나아가던 카이의 손가락이 허공에 뚝 멈춰버렸다.
카이는 제 앞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읽고 또 읽었다.
‘이게…… 이렇게 되네?’
삐질삐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닌 게 아니라 불과 얼마 전에 페가수스의 사장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국에 방문했다.
자신을 만나 제발 마계 콘텐츠 좀 남겨달라는 사정사정을 하기 위해서.
한데 이번엔 그와 비슷한 규모로 추정되는 메인 에피소드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어…… 음.”
한참을 고민하던 카이는, 이내 고개를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하! 나도 이제 모르겠다. 일단 선행 스탯 150개 개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