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93화 (393/441)

# 393

힐통령 393화

120. 군주(1)

NET미디어는 언노운, 즉 카이와의 독점 계약이라는 홈런을 두 번이나 연달아 쳤다.

그 계약의 산물이 바로 비르 평야 전투와 절대자의 던전이라는 예능.

당연한 말이지만 두 프로그램 모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덕분에 NET미디어는 게임 채널로써의 자리를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그런 이들이 모든 유저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전쟁 콘텐츠에서 손을 놓을 리 없었다.

부랴부랴 프로그램이 편성되었고, 유명한 랭커까지 섭외해 해설 자리에 앉혀놓았다.

바로 블랙마켓 길드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활동 중인 솔로 플레이어, 클라크가 그 주인공이었다.

“아하, 그러니까 클라크 씨는 라시온 쪽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방송의 진행을 맡은 훤칠한 미남 아나운서, 도주완이 미소를 지으며 멘트를 날렸다.

“뭐, 승리를 점친다고 말하면 조금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틀린 말도 아니거든요.”

클라크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수성을 하는 쪽보다는 공성을 하는 쪽이 몇 배나 더 할 일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수성은 적의 공세를 막기만 하면 되니까요.”

“맞습니다. 그런데 라시온 왕국이 꽉 틀어막은 성채들을 한 번 보세요.”

클라크의 시선에 따라, 방송 화면에 입체 지도가 떠올랐다.

“북부 관문, 동부의 시리스 성채, 서부의 온타리나 성채…… 전부 난공불락이라고 불리는 천혜의 요새들입니다.”

“아! 공성하는 입장에서는 까다롭기 그지 없겠습니다.”

“일당백. 즉 한 명의 병사가 능히 백 명을 막아낼 수 있는 영지예요. 게다가 알데바란의 유저들? 솔직히 비옥한 땅에서 열심히 먹고자라면서 레벨 올린 라시온 군대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유저들의 수준도 그렇고 말이죠.”

“역시 클라크 씨. 랭커답게 해설에 막힘이 없는 모습입니다. 오늘 이 자리 함께 해주셔서 정말 영광이군요.”

칭찬이 이어지자 클라크의 가슴이 당당하게 펴졌다.

그리고 그때, 흑룡군을 이끌고 있는 쟈오 린이 전방으로 나섰다.

“말씀드리는 순간, 쟈오 린의 지휘 아래 흑룡군이 즉석으로 공성 병기를 제작하는 모습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성 병기라…… 뭐, 새삼스러운 건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한동안 영지전이 활발했잖습니까.”

“업데이트 된 이후로 꾸준히 사랑받는 콘텐츠이지요.”

“다른 길드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희 블랙 마켓 길드만 봐도 영지전 전략 부서라는게 존재합니다.”

“영지전 전략 부서요?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참으로 궁금해지는 이름입니다만.”

“이름 그대로의 일을 하는 곳이라 보시면 됩니다.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상대방 영지를 점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곳이지요. 당연한 말이지만 이곳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공성 병기들을 연구하기도 합니다.”

“아하, 확실히 미드 온라인은 그 높은 자유도가 장점인 게임이지요. 덕분에 현실에서는 사장되다 싶이 한 직업의 전문가들도 최근 일자리가 생겼다는 풍문이 있더군요.”

클라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흑룡은 머릿수가 많은 집단 아닙니까.”

“그렇지요. 중국 다음으로 인구 수가 많다는 인도조차 2,200만 명이라는 길드원을 거느리지는 못했으니까요.”

“네. 그래서 전 오늘 흑룡이 대량의 공성 병기들을 운용한 돌파를 시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하, 질보다는 양이다?”

“흑룡이 즐겨쓰는 수법이지요. 뭐, 그것 말고는 딱히 내세울 것도 없지만.”

클라크가 독설을 내뱉는 순간, 마침내 제작된 흑룡의 공성 병기.

투석기가 첫 바위를 쏘아냈다.

“어?”

도주완 아나운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새된 소리를 내뱉은 것도 그때였다.

“클라크 씨, 저건…… 저건 어떤 의미로 해석을 해야 할까요?! 자세히보니 투석기가 바위가 아닌, 사람을 날리고 있습니다!”

“어어…….”

말문이 막힌 클라크의 두 눈동자가 희미하게 요동쳤다.

‘저 돌아이 놈들,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야?’

방송이라 차마 내뱉지 못한 욕지거리가 그의 입 안에서 맴돌았다.

흑룡 측에서 준비한 공성 병기는 흔한 투석기였다.

지레의 원리를 이용해 투사체를 발사하는 무게추식 투석기.

당연한 말이지만 전쟁에서 투석기를 운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벽.

바로 무거운 바위를 이용해 성벽을 허물고 성채로 진입하기 위한 용도다.

헌데 그 기본적인 원리를 통째로 부정하고 사람을 태워 날린다니?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이 바위보다 무거울 리는 없었다.

그것은 뒤집어 말하면.

“어어! 포탄처럼 날아간 유저가 그대로 성벽을 넘어갑니다!”

더 멀리 날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순식간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유저들을 보며, 클라크가 미간을 좁혔다.

“저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아무리 장비를 잘 맞춘 탱커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그의 말은 맞았다.

수백 미터 상공에서 떨어지고 무사한 유저가 있을 리 없다.

그건 상식적인 생각만 할 수 있어도 알 수 있는 사실.

흑룡이라고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알면서도 날린 것이다.

슈우우우웅!

투석기를 통해 쏘아진 유저들이 북부 성채의 내부로 떨어졌다.

그들이 떨어지는 순간, 우레와 같은 굉음이 성채를 흔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미친!”

그 모습을 보던 클라크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뱉어냈다.

이제보니 흑룡 측에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유저들을 날린 게 아니었다.

“크, 클라크 씨. 저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도주완 아나운서가 황급히 물었다.

이미 성채의 내부에서는 불기둥이 치솟고, 검은 연기들이 하나둘씩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연금술사입니다.”

클라크가 랭커답게 눈을 빛내며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혹시 미드 온라인에 연금술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들은 유저들에게 도움이 되는 각종 포션을 만드는 직업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들이 만드는 포션 중, 폭발 포션과 화염 포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 그렇다면 설마?”

도주완 아나운서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네, 날아가는 유저들을 자세히 보시면…… 저기! 상체 부분 좀 확대해 주세요.”

클라크의 요청대로 유저들의 상체 부분이 확대되었다.

그들의 몸에는 수십 병의 물약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폭발 포션, 화염 포션을 온 몸에 두른 채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네. 흑룡은 처음부터 저들을 일회성 장기말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지만, 그만큼 효과적이네요.”

클라크가 진지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죽으면 부활한다지만, 같은 유저의 목숨을 파리처럼 가볍게 생각한다는 것.

그건 정상적인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작전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흑룡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작전인가.’

그들은 인원수가 많다.

그냥 많은 것도 아니고, 정말 많다.

지금도 초마다 수십 명씩의 유저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지만, 흑룡군의 수가 줄어든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들지 않을 정도다.

“전쟁을 일으키는 놈은 미친놈이며,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더욱 미친놈뿐이다…… 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군요.”

수많은 병사들이 물통가 모래를 퍼다나르며 화재를 진압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새로운 유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훨씬 더 빨랐다.

“라시온 북부 관문은 끝났군요.”

“아아…… 뒷문이 개방되었습니다. 하인드 백작을 포함한 장군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도주로를 찾는 모습입니다!”

흑룡의 투석기가 동원된 후, 라시온의 북부 관문이 함락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시간이었다.

***

-와, 말을 잇지 못하겠네. 저거 저래도 되는 거냐?

-안 될 이유야 없지. 전쟁에선 이기는 게 전부니까.

-그래도 조금 뭐랄까…… 비인도적인 전술인데.

-세계 길드한테 그런 걸 왜 바라냐? 애초에 사냥터 독점하고 세금 뜯어내던 놈들이야.

흑룡의 새로운 공성법은 커뮤니티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들의 전략이 비인도적이라는 측과, 이기는 것이 장땡이라는 측.

당연한 말이지만 대다수의 유저들이 흑룡을 비난했다.

개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랭커들도 대거 포진해 있었다.

허나 커뮤니티의 여론과는 달리, 알데바란 측의 군대는 기세가 등등한 상태였다.

라시온의 북부 관문을 함락한 그들은 최소한의 병력만을 주둔시킨 채, 군을 세 갈래로 쪼갰다.

서부의 온타리나 성채로 향하는 제1군.

그대로 중앙의 할름 영지로 향하는 것이 제2군.

마지막으로 동부의 시리스 성채로 향하는 것이 제3군인 흑룡군이었다.

“서부와 중앙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사료됩니다.”

“뭐, 그렇겠지. 애초에 그들에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까.”

보고를 듣던 쟈오 린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현재 흑룡의 300만 대군은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동부를 향해 진격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시리스 성채는 그 성벽이 매우 높아 아까와 같은 작전이 통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의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쿤 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용주께서는 그에 대한 혜안이 있으신지…….”

“쿤.”

“예, 경청하겠습니다.”

쿤 팽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옛 진나라의 시황제에 관해 기록해 놓은 진시황본기에 이런 말이 적혀있다. 하결부가부옹(河決不可復壅)이라고.”

“하결부가부옹…… 강물이 터지면 이를 막을 수 없고, 고기가 썩으면 다시 살릴 수 없다는 뜻이군요.”

“맞다, 요컨대 이미 지나간 일을 바꿀 수는 없다는 뜻이지.”

현재의 흑룡은 둑을 터트리며 흘러내리는 강물과 같았다.

시리스 성채의 지리가 아무리 좋아도 그곳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기껏해야 20만.

300만의 대군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였다.

“게다가…….”

쟈오 린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범은 가죽을 아끼고 군자는 입을 아낀다고 하였다. 바로 오늘과 같은 날을 위해 나에 대한 정보를 그렇게 감춘 것 아니겠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불과 1년 전, 히든 클래스로 전직한 랭커들은 제법 많았다.

당장 프레이 길드의 미네르바만 봐도 태양교의 히든 클래스, 성녀(聖女)로 전직하지 않았는가.

쟈오 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영웅급 히든 클래스인 ‘군주’로 전직한 상태.

하지만 그의 최측근이 아닌 이상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정보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힘이 되는 법이니까.’

사실 군주는 일반적이라면 비밀로 부칠 정도로 좋은 직업은 아니었다.

이끌고 있는 부하가 많을수록 당사자의 능력치가 상승하고, 또 아군의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어느 게임에서나 있는 전형적인 ‘지휘관’ 스타일의 히든 클래스였으니까.

하지만 쟈오 린은 그 직업을 얻는 순간, ‘흑룡’이라는 길드를 만들어냈다.

‘이끌고 있는 부하 100명당 모든 스탯 0.1 추가. 그리고 군주의 가장 높은 스탯 100당 아군의 모든 능력치 1% 상승.’

천 명이면 모든 스탯 1.

만 명이면 모든 스탯 10.

십 만명이면 모든 스탯이 100.

백 만명이면 모든 스탯이 무려 1,000이나 상승한다.

‘뭐, 길드원의 수가 1,500만을 돌파하니 본사에서 부랴부랴 패치를 해버렸지만.’

모든 스탯의 최대 상승량을 3,000으로 제한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세간에서는 세계 길드의 마스터들 수준을 비교할 때, 워리어스의 발칸을 제일로 쳐준다.

흑룡의 쟈오 린은 기껏해야 다섯 번째에서 여섯 번째 정도.

하지만 그건 사람들이 그에 대해 모르기에 하는 말일 뿐이다.

‘모든 스탯이 3,000 이상인 사람은 아마 나 정도 밖에 없겠지.’

그가 300만의 대군을 이끌고 다니는 이유였다.

심지어 군주의 효과로 인해 아군의 능력치는 30%나 증가하는 셈.

충직한 군대가 함께하는 한, 흑룡을 이길 수 있는 세력은 이 세상에 없다.

‘굳이 경계가 되는 존재라면 언노운, 카이 정도일까.’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카이의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본 결과, 쟈오 린은 그의 스탯이 최소 1,500을 넘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유일한 걸림돌이 지금은 실종된 상태지.’

하늘이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기분이었다.

“선발대의 보고입니다! 시리스 성채가 보이기 시작했다는군요.”

부하의 보고에 쟈오 린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하나씩 빼앗아보도록 하지.”

카이, 그 남자가 다스리는 보물 같은 영지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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