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73화 (373/441)

# 373

힐통령 373화

114. 광산(4)

광산마다 다르겠지만, 7광산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하루일과는 간단했다.

주어진 자유시간은 다섯 시간이었는데, 그 중 한 시간은 자유 시간.

나머지 네 시간은 수면 시간이었다.

그 살인적인 스케쥴이야말로 마계의 악마들이 광산을 기피하는 이유였다.

그런 곳에 새롭게 등장한 카이는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툭툭.

땀을 닦던 악마 하나가 주변 악마의 팔을 치며 물었다.

“……이봐. 갱도에 저런 악마가 있었던가?”

“아니, 아까 전에 새로 들어온 녀석이다.”

“음? 이 시기엔 포획도 안 할 텐데, 어디서 잡아왔지?”

“감독관들이 하는 이야길 들어보니, 광산 앞에서 얼쩡거리다가 잡힌 떠돌이 악마라더군.”

“쯧. 하급 악마 망신은 저 놈이 다 시키는군.”

“생긴 것도 영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며칠이나 버틸런지…….”

“난 일주일 본다.”

“일주일? 흥, 사흘이면 기적이지.”

빠르게 차오른 관심은 그만큼 빠르게 식는 법이다.

약간의 관심을 보이던 악마들은 카이를 빠르게 스캔한 뒤, 관심을 꺼버렸다.

카이의 몸은 악마들의 관심을 드러낼 정도로 좋은 것도 아니었고, 마기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흠.”

카이는 지급받은 곡괭이를 내려다보며 그들의 시선을 덤덤하게 넘겼다.

‘일단 악마들과 대화가 통한다는건 알겠네.’

입구에서도 그랬지만, 이곳에서도 악마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역시 악마들 사이에도 계급이 존재하는 건가.’

여태까지 유하린과 함께 사냥했던 악마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말을 하지 못했다.

짐승처럼 울부짖거나, 우는 것이 전부.

‘그럼 그 녀석들은 죄다 최하급의 악마인건가?’

아니, 어쩌면 악마들이 계급을 나누는 데에는 다른 기준이 있을 지도 모른다.

카이는 마을에 대해 알아보면서, 악마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쌓기로 마음먹었다.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일을 해야할 텐데…….’

그렇지 않아도 등에 꽂히는 감독관들의 시선이 따갑다.

새로운 신입이 일을 잘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마정석을 캐라고 했나.’

주변의 다른 악마들이 하는 것을 잠시 쳐다본 카이가 걸음을 옮겼다.

갱도의 벽 앞에 선 그가 천천히 곡괭이를 휘둘렀다.

까앙!

‘손맛 좋네.’

검을 휘두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검은 보통 찌르거나, 베기를 자주하는데…….’

곡괭이를 휘두를 때는 움직임이 조금 더 커진다.

말 그대로 휘두른다는 느낌.

하지만 몸을 사용한다는 틀 자체는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거라면 할 만하지.’

곡괭이를 휘두르는 카이의 자세는 무너짐 없이 굉장히 안정적으로 보였다.

여명의 검술관과 결투장에서 쌓아놓은 단단한 기본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까앙, 까앙!

일정한 속도와 함께 주기적으로 울리는 소리.

그 모습에 감독관들은 물론, 주변 악마들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 뭐지?”

“영 비실비실해 보여서 갈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흠 잡을 곳이 없군.”

“혹시 다른 광산에서 일하던 녀석 아닌가?”

“아냐. 분명히 떠돌이 악마라고 했다니깐.”

카이는 순식간에 한 무더기의 흙을 파낸 뒤, 그 안에서 반짝이는 돌을 하나 캐냈다.

[마정석]

등급 : 레어

마기가 담겨있는 광석입니다.

주로 마계에서 자라나며, 섭취 시 마기가 소폭 상승합니다.

‘흠. 마정석이라…….’

마기를 상승시켜 주는 광석이라.

과연, 악마들이 이렇게 대규모 광산에서 미친듯이 캘 만한 이유가 있다.

‘혹시 모르니 조금 챙겨둘까.’

카이가 캐낸 몇 개의 마정석은 쥐도새도 모르게 그의 인벤토리로 흘러들어갔다.

***

“인간이요?”

“그렇다고 하던데.”

덱스의 말에 이라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기하네요. 마족이 중간계로 소환되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인간이 마계에 왔다는 말은 처음 들어봐요.”

“실은 나도 그렇다. 다만 이번에 너와 함께 포획된…… 아니, 광부가 된 이들이 들어오기 전에 그런 소문을 들었다고 하더군.”

“헤에. 안타깝네요.”

“안타깝다니, 뭐가 말이냐?”

“인간이잖아요. 이미 떠돌이 악마들에게 잡혀서 한 끼 식사거리가 된 상태겠죠.”

“흐음. 정말 그럴까.”

덱스가 묘한 음성으로 대답하자, 이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뭔가 더 알고계신 거죠? 뭐예요? 저도 알려주세요!”

“하하, 알겠다. 좀 진정해 보거라.”

찡찡거리는 이라를 달랜 덱스가 목소리를 낮췄다.

“저번에 그…… 네가 그들에 대해서 묻지 않았느냐.”

“해방군이요?”

“흐업!”

덱스가 깜짝 놀라하자, 이라가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으로 재촉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들’이라고 해드릴게요. 그래서 걔네가 뭐요?”

“듣고 놀라지 말거라. 마계에 방문했다던 인간들이 웬만한 악마들보다도 강하다고 하더군. 그래서 해방군이 그들을 직접 만나고,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였다는 소문이다.”

“……출처는요?”

“뭐, 언제나 그렇듯 이런 종류의 소문은 출처가 없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구름처럼.”

“그럼 안 믿는 게 낫겠네요.”

“그래도…… 난 제법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왜요?”

“인간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최하급의 악마들이 그들을 먹기 위해 많이 모였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인간들이 걔네를 이겼고요?”

“아니, 네가 그걸 어떻게…….”

덱스가 반문하자, 이라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 최하급 악마들은요. 솔직히 말해서 중급 악마만 되어도 가지고 놀 수 있어요.”

“그건 그렇지.”

“게다가 인간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어요. 최하급 악마들 사이에서나 강한 수준이겠죠. 아마 중급, 상급의 악마들과도 자웅을 겨룰 정도였으면 진작 소문이 났을걸요?”

“흐음…… 하긴, 책에도 인간들은 나약한 존재라고 서술되어 있으니까.”

“아마 해방…… 읍읍이 소문을 듣는다면 비웃을 거예요. 거기 소속된 상급 악마가 몇인데, 아무리 고양이 손이 급하다지만 인간의 손을 빌릴 리가요.”

이라가 상상 이상으로 단호하게 말하자, 무안해진 덱스는 헛기침을 뱉었다.

“험험. 뭐, 애초에 소문이었으니까. 나도 그렇게 진지하게 믿은 건 아니었고…….”

변명을 늘어놓던 덱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라를 쳐다봤다.

“그런데 해방군에 상급 악마가 소속되어 있는 것은 어떻게 아니?”

“뭐, 뭐가요. 제가요?”

이라가 불에 데인 사람마냥 당황했다.

“방금 그러지 않았느냐. 거기 소속된 상급 악마가 몇인데, 라고.”

“그, 그야 당연한 거죠. 해방군이 지금 마계에서 활동한 게 몇 년인데,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잖아요? 상급 악마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흠. 그것도 그렇구나.”

덱스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사건은 항상 불시에 터지는 법이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허리를 펴도 좋다고 했지?”

노예나 다름없는 광부보다 편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감독관도 마냥 편하지는 않다.

흙먼지가 가득한 갱도를 돌아다니며 하루종일 광부들을 감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항상 신경이 예민한 상태인데, 광부 하나가 그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

“가, 감독관님. 허리가 너무 아픕니다…… 제발…….”

“아아, 아프시다?”

감독관이 코웃음을 치며 주변을 가리켰다.

“여기서 너만 힘들고, 다른 놈들은 안 힘들 것 같나? 네 동료들은 일이 쉽고 편해서 허리를 못 피는 것 같냐는 말이다.”

짜악!

감독관의 손에 들린 채찍은 자비 없이 휘둘러졌다.

“어억!”

“며칠 전에 길을 잃어서 들어온 저 머저리도 잘만 일을 하는데, 왜 네가 못하냔 말이다!”

여기서 저 머저리는 카이를 뜻했다.

뚱한 표정을 지은 카이는 불편한 눈빛으로 감독관이 하는 행동을 쳐다보았다.

‘악마족이나 인간이나…… 결국 힘 있는 자가 하는 행동은 다 똑같네.’

카이가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던 찰나.

감독관은 단단히 화가 났는지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래, 차라리 쉬고 싶으면 평생 쉬어라. 너 같은 놈은 자유를 갈망할 자격조차 없으니까.”

광산에서 광부 하나쯤이야 죽어도 별 차이는 없다.

실제로 감독관의 손에 광부가 맞아죽는 것은 매우 잦은 이야기였다.

그 사실을 예견한 광부들은 슬며시 시선을 돌려 다시 제 할 일을 시작했다.

“이건…… 도저히 못 참겠군.”

정의감 넘치는 한 악마의 말만 아니었다면, 언제나 보던 사소한 해프닝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과 함께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허?”

노예의 반란에 기가 막힌 감독관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건방 떨었던 새끼, 누구지?”

“…….”

그의 말에 광부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눈을 내리깔았다.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나다.”

입을 연 것은 하급 악마치고는 키가 크고 몸이 좋은 악마였다.

감독관의 눈이 빠르게 그를 훑었다.

“……며칠 전에 새로 잡혀온 노예냐?”

“그렇다면?”

“후우.”

감독관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천천히 주물렀다.

이 일을 하다보면, 꼭 이런 새끼들이 하나씩 튀어나온다.

제 주제도 모르는 바퀴벌레 같은 녀석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어디선가 또 만들어지고, 튀어나온다.

‘저것도 자유인지 뭐시기를 믿는 나약한 새끼 중 하나인가…… 일진 한 번 사납구만.’

피곤한 표정으로 채찍을 뽑은 감독관이 입을 열었다.

“말씨름하기도 피곤하네. 그냥 죽어라.”

쿠드드득.

그의 몸에서 폭발한 마기가 주변을 울렸다.

“허, 허억.”

“으으으…….”

상황을 지켜보던 광부들의 눈빛이 요동치며 두려움에 물들었다.

그 자리에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 존재는 단 둘.

하나는 제 3자가 되어 이 돌발 상황을 관찰하고 있던 카이였다.

‘흐음. 감독관은 중급의 악마들이라고 하던데.’

너무 약하다.

한껏 거드름을 피우는 중급의 악마마저 자신과 붙는다면 1초 안에 죽을 것이다.

‘그나저나 저 정의감 넘치는 친구는 또 뭐야?’

다른 하나는 바로 감독관에게 대들었던 악마였다.

듬직한 체구의 악마는 마기의 압박을 묵묵히 견뎌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 이걸 버텨?”

감독관의 몸이 한 차례 떨렸다.

하급의 버러지가 자신의 마기를 견딘 것에 대한 분노와 수치를 느낀 것이 그 이유였다.

“쥐뿔만 한 마기 가지고 까불기는.”

서걱!

허나 감독관은 분노를 터트릴 대상을 잘못 골랐다.

제대로 된 분노를 표출하기도 전에, 악마가 들고 있던 곡괭이가 그의 심장을 꿰뚫었으니까.

“커…… 억?”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은 감독관은 천천히 손을 들어 제 가슴에 박힌 곡괭이를 쥐었다.

손바닥은 순식간에 새빨갛고, 뜨거운 피로 축축해졌다.

그 뜨거움이 뇌까지 파고들었는지, 의식은 순식간에 흐려졌다.

털썩.

단 한 수로 깔끔하게 감독관을 해치운 악마가 중얼거렸다.

“자료 수집이고 뭐고…… 이 꼴을 보고 어떻게 참고 있으란 거냐.”

동시에 그의 이마에서 뿔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 수는 무려 두 개.

게다가 7광산의 관리자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의 두께를 지닌 상태였다.

그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광부들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카즈라. 해방군 소속의…… 상급 악마다.”

상급 악마.

그 묘한 울림을 주는 단어에 광부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며칠 전에 나를 포함한 해방군 소속의 동료들 일곱이 이곳 광산에 잠입했다.”

“해, 해방군!”

“그렇다면……?”

광부들의 동공이 일말의 기대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런 시선을 어디 한, 두 번 받아봤을까.

카즈라는 그 시선을 담담하게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와라. 너희들을 해방시키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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