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66화 (366/441)

# 366

힐통령 366화

113. 신세계(1)

암흑 지대에 위치한 뮬딘 교의 사원.

최신식 마나 램프 같은 설비는 일절 없는 매우 오래된 곳이었다.

복도나 방에 걸려있는 횃불을 꺼버리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기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항상 벌레들이 기어 다녀서 그런지 꿉꿉한 냄새조차 났다.

“흐흐음.”

빈말로도 좋은 곳이라고 하기 힘든 사원의 복도에서, 한 남자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앞을 기어 다니는 이들을 쳐다보며 손가락을 휘저었다.

마치 교향곡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처럼, 우아하고 교양 있는 움직임이었다.

“제발…….”

“사, 살려…….”

촤아아아악!

목숨을 구걸하는 이들의 몸이 마법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저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휘저은 것만으로도 이 같은 일을 해낸 남자는 계산을 시작했다.

“이걸로 56명째 죽였고…… 한 삼십 명 정도만 더 죽이면 되나.”

파멸의 마법사 스팅.

카이와 유하린의 방해로 다른 제물을 구하지 못한 그는 끝내 동맹을 파기했다.

그 결과가 지금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평소에 마음에 안 들던 것들을 깨끗하게 치우니, 쓰레기를 청소하는 기분이 드는군.’

물론 여전히 이 상황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골리앗. 그 병신이 맡은 일만 제대로 했어도.’

이미 그들은 모든 제물을 구한 뒤 ‘신세계’ 프로젝트를 가동시켰을 텐데.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쩔 수는 없는 법.

스팅은 최대한 빠르게 사원 내부를 돌아다녔다.

***

“어딜!”

촤아아아악!

앞으로 달려가던 유하린이 다가오는 암흑 기사의 가슴을 사선으로 크게 베었다.

그녀가 잠깐의 틈을 만든 사이.

뒤에서 달려오던 카이는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네 개의 창.”

스킬을 시전하자 그의 등 뒤로 신성력이 형상화된 창 네 개가 소환되었다.

일반적인 창보다 족히 두 뼘은 더 길고, 두꺼운 창이었다.

동시에 카이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가며 표적들을 하나씩 지정했다.

그러자 창들이 움직임을 개시했다.

사아악!

엄청난 빠르기로 움직인 네 개의 창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졌다.

부드럽게 회전을 하고,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창들은 적들의 심장과 머리를 터트렸다.

물론 그 효과가 말도 안 되게 좋은 만큼, 페널티 또한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다루기 힘드네.’

바로 계속해서 창들의 위치를 컨트롤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 엄살을 피울 시간은 없었다.

‘워리어스가 벽을 세우고 있는 동안 최대한 돌파한다.’

현재 카이와 유하린의 양 옆으로는 워리어스 길드원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좀비 떼처럼 달려드는 암흑 기사와 이단심판관들을 저지하는 벽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져나오는 암흑 기사들이 있을 정도였다.

‘다 합치면 천 명은 가볍게 넘겠어.’

발칸과는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약속해 놨다.

“한계라고 생각되면 그 땐 빠지셔도 됩니다. 은혜를 갚으려고 죽을 필요는 없으니까.”

“고맙군. 최대한 지원하지. 더 이상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신호를 주겠다.”

카이는 주변으로 몰려드는 적들의 숫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린 씨, 몰려드는 적을 보니 워리어스는 한계입니다. 아마 곧 물러날 거예요.”

“괜찮아요. 조금만 더 가면 도착이니까.”

챠-오르에게 받은 좌표의 위치는 코앞이었다.

그 때문인지 암흑 기사들의 방벽이 더욱 두터워졌다.

“크윽, 이봐, 언노운! 우린 여기까지다!”

“더 이상 못 버텨!”

양옆을 지탱해 주던 워리어스 길드원들이 잔뜩 상처를 입은 채 소리쳤다.

카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쳤다.

“충분합니다! 이제 빠지세요!”

“건투를 빌지!”

끝까지 응원을 보낸 발칸이 길드원을 이끌며 서서히 달리던 속도를 늦췄다.

불과 몇 초 만에 점이 되어 사라진 그를 보던 유하린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이런, 카이 님! 앞에 삼십 명 더 와요!”

“……쯧. 끝이 없네.”

워리어스 길드의 빈자리가 확 실감나기 시작했다.

양 옆을 막아주던 방파제 같은 이들이 사라지자마자, 모든 공격은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하린 씨, 저 좀 올려주세요!”

카이의 요청에 유하린의 몸이 빙그르르 반 바퀴 돌아갔다.

그녀는 대검을 옆으로 눕히며 밟기 좋은 위치에 갖다 댔다.

카이는 주저 없이 땅을 박차고, 그녀의 검을 발판삼아 하늘 높이 떠올랐다.

파지지직!

동시에 그가 장비한 자탄의 중력 장갑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중력장!”

방대한 마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감과 동시에 서른 명의 암흑 기사들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중력장 내부에는 강력한 전기가 흐르는 중이었기에 초마다 데미지가 들어가는 중.

하지만 카이가 그들을 띄워 올린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움직임이 멈춰있으면…….’

목표로 설정하기 쉬우니까.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여 적들의 위치를 모두 파악한 카이가 창을 쏘아냈다.

쇄애애애액!

바람을 찢으며 날아간 네 개의 창은, 두둥실 떠있는 적들을 그대로 관통한 뒤 돌아왔다.

“읏차.”

카이가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하자, 그의 뒤를 이어 암흑 기사들의 시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쿵! 쿵!

정확히 서른두 번의 소리가 들렸다.

“와…… 방금 좀 멋있으셨어요.”

유하린이 엄지를 척 들며 감탄했다.

평균 레벨 400이 넘는 암흑 기사 서른 명을 이토록 깔끔하게 처리하다니.

조금 더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한 유하린이 고개를 돌려 앞을 쳐다봤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그들의 눈으로 오래된 사원이 들어왔다.

겉모습만 보면 마치 앙코르와트의 사원들 같기도 하다.

오래된 돌의 겉면에는 이끼와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상태였다.

“저곳에 정말 아트록의 영혼함이 있을까요?”

“글쎄요. 하지만 뭔가 있기는 한 것 같네요. 병력이 이토록 많은 걸 보니.”

대화를 나누는 사이 또 두 사람을 포위한 끈질긴 적들.

스르릉. 유하린이 검을 꼬옥 잡으며 눈을 빛냈다.

“이번엔 제가 뚫을게요.”

***

스팅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이 괴물 같은 놈들…… 어떻게 그 병력을 이토록 짧은 시간에 뚫느냔 말이다!”

골리앗이 암흑 지대에 풀어놓은 병력만 2천이 넘는다.

당연히 스팅은 카이와 유하린이 사원까지 당도하는데 못해도 이틀은 걸릴 줄 알았다.

헌데 고작 여덟 시간 밖에 안 걸렸다.

꿀꺽.

목울대를 크게 출렁인 스팅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요즘도 가끔씩 악몽으로 나오는 ‘그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날의 무대도 숲이었지.’

바로 카이와 천화 길드에게 검은 벌이 패배하던 날이었다.

특히 당시 언노운의 존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숲 전체에 퍼트려놓은 길드원들은 분 단위로 죽어나갔으니까.

‘후우. 진정하자. 흥분해서 좋을 것은 없어.’

정신을 가다듬은 스팅은 지하의 거대한 공동에서 계획의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젠장. 일손이 없으니 혼자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군.”

단순한 일을 거들어줄 부하만 몇 명 있었어도 진행 속도는 훨씬 빨라졌을 것이다.

하나 평소에는 골리앗을 시켜 부리던 신관들을 자신이 모두 죽여 버렸다.

당연히 현재 사원에는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 계획만큼은 절대적으로 성공시켜야 한다.’

마왕 추종자들이 유수한 세월 동안 준비한 것이 바로 이 ‘신세계’ 계획이었다.

그리고 스팅은 이것이야말로 카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멍청한 골리앗 놈. 애초에 우리가 지금부터 성장해서 카이를 뛰어넘는 건 글렀다고 말했거늘.’

방법은 모르겠지만, 카이 녀석은 신화 등급 직업을 매우 일찍 획득했다.

당연히 500레벨이 넘은 현재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린 능력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어쩌면 상위 랭킹 2위에서 5위…… 아니, 10위까지 다 덤벼도 못 이길지도 모른다.’

그런 괴물을 직접 잡으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큰 착각이자 오만이다.

‘괴물은 얌전히 괴물끼리 싸우게 해야 하는 법.’

그것을 위한 신세계 프로젝트였다.

마계, 그 저주받은 공간에 있을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계획이었으니까.

‘만에 하나 대악마라도 소환된다면…… 페가수스 사에겐 미안하지만 이 게임은 나의 뜻대로 주무를 수 있다.’

마치 모바일 게임의 뽑기를 돌리는 것 같은 두근거림이 스팅의 심장을 노크했다.

“후우.”

뮬딘 교 사원의 지하 공동에는 거대한 문이 세워져있었다.

그것은 과거 마계의 악마들이 이 땅으로 건너올 때 사용했다는 지옥문이었다.

666명의 인간을 재료로 만들어진 이 문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을 갉아먹는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물이 살짝 모자라기는 하다.

하지만 더 이상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내가 사원을 직접 나가서 제물을 구해오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다.

암흑 지대를 배회하는 괴물 두 마리가 언제 사원에 도착할지는 아무도 몰랐으니까.

결국 스팅은 바닥에 그려놓은 거대한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우웅!

이내 파랗게 빛난 마법진은 어두운 공간을 은은하게 비췄다.

그 빛은 이내 잔뜩 녹이 슬어있던 지옥문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스팅은 손가락을 튕겨 미리 준비해 놨던 시체와 핏물들을 마법진 위에 쏟아부었다.

오랜만에 식사를 시작한 마법진은 더욱 탐스럽게 피와 살을 먹어치웠다.

그러기를 잠시, 삐걱!

기나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지옥문이 비명을 내질렀다.

‘……마법진이 성공적으로 발동되었다는 신호다.’

지옥문 너머에 어떤 존재가 있을 지는 스팅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두 주먹을 꽉 쥔 그는, 강력한 악마가 소환되었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삐걱삐걱!

지옥문의 손잡이가 점점 더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반대쪽에 있는 악마의 성격이 어지간히도 급한 모양.

그리고 마침내.

끼이익 소리와 함께 지옥문이 손가락 하나 들어갈 크기만큼 열렸다.

‘드, 드디어……!’

스팅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지옥문을 쳐다보는 순간.

우르르르릉!

천장이 무너졌다.

***

카이와 유하린은 암흑 기사 수백 명을 뚫고 사원으로 들어왔다.

물론 그 녀석들을 모두 죽인 것은 아니었다.

[뮬딘 교…… 저주받을 족속들!]

[흠.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숲이라. 제법 마음에 드는 장소로군.]

사원의 바깥쪽에선 할리와 데스몬드가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 틈에 안쪽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빠르게 내부를 돌아다녔다.

“이제 뭐 어떡하죠?”

들어오는 것만 목표로 삼았지, 들어와서 뭘 해야할지 몰랐던 유하린이 물었다.

“음. 우선…….”

물론 그것을 모르기는 카이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그는 유하린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띠링!

[보물 사냥꾼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아래쪽에 저주받은 유물이 존재합니다.]

오랜만에 스페셜 칭호, 보물 사냥꾼의 효과가 발동한 것이다.

게다가 가리키는 대상도 의미심장했다.

‘가만, 저주받은 유물이라면…… 혹시 영혼함?’

눈을 반짝인 카이가 입을 열었다.

“하린 씨, 아무래도 밑으로 내려가야겠습니다.”

“밑이요? 그럼 계단을 찾아봐야겠어요.”

두 사람이 주변을 꼼꼼하게 수색했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발견할 수 없었다.

“혹시 아래층이 없는 거 아닐까요?”

“음. 그럴 리가 없는데…….”

보물 사냥꾼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실제로 예전 사룡의 레어에서도 잘 숨겨진 비밀 공간을 찾아낸 전적이 있었다.

‘그렇다는건…….’

아마 비밀 통로가 있다는 소리겠지.

하지만 지금 비밀 통로를 찾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할리와 데스몬드가 얼마나 버텨줄 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결국 카이는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를 본 유하린이 깜짝 놀라 물었다.

“카, 카이 님. 설마 지금…… 바닥을 부술 생각이세요?”

“예.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그럼 저 귀 막고 있을게요.”

멀찍이 떨어진 유하린은 제 귀를 꼼꼼하게 막으며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카이는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태양광자포.”

콰아아아아앙!

홀리 익스플로젼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광선이, 사원의 지하 네 개 층을 그대로 무너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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