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0
힐통령 310화
98장 동부의 신성 (1)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방해물이 없어진 조인족들은 바다 위를 날아 리버티아 쪽으로 향했다.
“그럼 리버티아에서 보세.”
“네, 거스트 님도 조심해서 와주세요.”
“물론이지. 조인족들이여, 날개를 펴라!”
거스트가 이끄는 조인족들은 생에 처음 겪어보는 비행에 맛이 들려 금새 점이 되어 사라졌다.
“그럼 이제 나도 움직여볼까.”
카이는 신출귀몰 스킬을 이용해 천공신을 방문했다.
“그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지.”
천공신이 말했다.
띠링!
[천공신의 부탁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레벨이 10 상승했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50개 획득했습니다.]
[명성이 100,000 상승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저도 재미있었습니다.”
“……태양신이 질투 날 지경이군.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토록 유능한 이가 따르는 건지.”
부럽다는 표정을 지은 천공신 이스카는 한숨을 쉬었다.
“나의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기를 바라네. 새장에 갇혀 평화에 찌들어있던 그들은 빠르게 야성을 찾아가고 강해져서 그대에게 보답을 할 걸세.”
“기대하겠습니다.”
천공신과의 짧은 해후를 마친 카이는 곧장 리버티아로 이동했다.
리버티아는 이제 24시간 내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명실상부한 도시였다.
유저들이 갑자기 나타난 카이를 쳐다보며 숙덕거렸다.
“와, 장비 퀄리티 무엇?”
“레벨이 대체 몇이지? 최소 랭커 같은데…….”
“그건 모르겠고, 아이템 때깔 죽인다.”
다행히 백룡 세트의 투구까지 완벽히 착용한 카이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물론 다른 의미로 큰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후, 지친다.’
칠흑의 해역에서 지낸 것이 근 한 달이었다.
말은 안했지만 그 시간 동안 축적된 피로는, 모든 일이 끝나자 카이를 덮쳐왔다.
카이는 유저들을 지나쳐 영주의 자신의 저택으로 향했다.
“앗, 카이다.”
“집 주인 왔다.”
“피곤해보이는데?”
“그런 것 같은데.”
요정들이 재잘거리며 오랫만에 방문하는 카이를 반겼다.
입구에서부터 차가운 엘프의 차와 물에 적신 손수건, 그리고 신기 편한 슬리퍼까지 준비해주는 유능한 요정들!
“고마워. 좀 낫네.”
장비를 해제하며 그대로 침실로 향한 카이는 그 위로 엎어지며 물었다.
“천하제일야장대회는?”
“우리는 집에만 있어서 잘 모르는데.”
“그래도 띄엄띄엄 듣기로는 잘 끝났다고 들었어.”
“우승자가 드워프래!”
“바보, 드워프들끼리 경연한거거든?”
“경연이 뭔데?”
“어…….”
요정들의 귀여운 수다를 듣고있자면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카이는 얼음이 동동 띄워진 엘프의 차를 마시며 스탯 창을 띄웠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474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213,200
신성력 : 385,500
능력치
힘 : 2,967 체력 : 2,132
지능 : 1,984 민첩 : 1,477
신성 : 3,855 위엄 : 1,424
선행 : 654
남은 스탯 : 170개
독 저항력 +30
마법 저항력 +101.5%
자연친화력 +200
2위를 두고 다투는 유하린과 크리스가 이제 겨우 400레벨에 진입한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레벨이었다.
‘쌓인 스탯이 제법 많네. 어디다 쓰지?’
딱히 올릴만한 스탯이 없어서 계속 모아두고 있었더니, 무려 170개가 되어버렸다.
‘지능을 좀 올려볼까? 최근 마나가 좀 부족한 것 같으니까.’
요즘 들어 중력장을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고, 이번에 절대영도 스킬도 배웠으니 지능을 배워둬서 나쁠 건 없었다.
“힘에 10스탯, 지능에 160스탯 투자.”
[힘에 스탯 포인트 10, 지능에 스탯 포인트 160을 분배합니다. 맞습니까?]
“맞아.”
[힘 40, 지능 640이 상승했습니다.]
스탯을 올릴 때마다 절로 흐뭇해지는 목격자 칭호들의 어시스트였다.
카이는 드디어 3천대를 돌파한 힘과, 2천대를 넘긴 지능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심지어 할리를 처치한 자의 효과로 마나 재생 능력도 대폭 강화된 상태였으니, 이 정도면 급한 불은 껐다고 볼 수 있었다.
카이는 손을 휘저어 스탯 창을 치우며 요정들에게 물었다.
“다른 특별한 일들은?”
“우리는 잘 몰라.”
“그런데 자꾸 엘프 여왕님이랑 인어 국왕님, 드워프 국왕님이 여기 찾아오셔.”
“……여긴 왜?”
“몰라. 영주님 안 오셨냐고 맨날 묻던데.”
“품에는 맨날 서류 뭉치 엄청 많이 들고오던데.”
“그거 집 주인이 다 해야되는거 맞지?”
“끄응.”
결제 서류들임이 틀림없다.
‘영지 하나 관리하는 것도 이렇게 힘들구나.’
카이가 밀린 결제 도장을 찍기 위해 지친 몸을 일으키는 순간.
“아, 맞다. 편지 왔는데.”
“……편지?”
“응. 국왕한테서 왔어.”
“무슨 국왕? 카리우스님? 아니면 카룬달님?”
카이의 질문에 요정들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이돌의 칼 군무는 봤어도, 요정들의 칼 도리도리는 처음 본 카이는 살짝 감탄했다.
“인간 국왕한테서 온 거야.”
“……인간 국왕이라면, 베오르크 국왕님?”
“나는 모르지.”
“바보, 그것도 몰라?”
“그럼 너는 알아?”
“헤헤, 사실 나도 몰라.”
카이는 다시 장난을 치는 요정들을 보며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과연 그 위에는 라시온의 인장이 박혀있는 고급스러운 편지 한 장이 놓여져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로…… 아! 설마?”
그 내용을 대충 짐작해낸 카이가 울상을 지으며 편지지를 뜯었다.
[카이 남작에게. 하인드 백작과의 조율이 드디어 끝이 났다. 영지의 인계를 위해선 그대가 필요하니 사흘 후 왕궁을 방문하라.]
안부 따위는 없고, 자신의 할 말만 적은 간단한 내용이었다.
‘하긴, 그 호랑이 같은 국왕님 성격에 안부 인사를 적을 리가.’
후우, 카이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격적으로 돌리는 영지가 두 개만 되어도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침공 이벤트 때 카이의 도움을 받아 겨우 살아남은 바덴 성의 영주, 하인드 백작은 그에게 두 개의 영지를 주기로했다.
‘생각보다 조금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영지 일이니 어쩔 수 없나.’
카이는 정상적인 공성전을 치루지도 않았고, 하인드 백작과 가족 관계인 것도 아니었다.
영지는 귀족이 다스리고 있다지만, 이 나라의 모든 재산은 국왕인 베오르크의 것.
당연히 영지를 두 개나 넘기는 데에는 그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 조율이 이제야 끝났나보네.’
카이는 편지지의 뒤에 적힌 발신 날짜를 보며 계산했다.
‘편지를 보낸게…… 이틀 전이잖아?’
바로 내일 또 수도를 방문해야하다니.
심지어 왕궁에는 아직 조금 껄끄러운 인물도 있었다.
‘파발, 그 녀석 좀 부담스러운데.’
자신에게 큰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파발은 대머리를 반짝이며 열렬한 호의를 보냈다.
문제는 그 정도가 좀 과하다는 것이었다.
“끄응. 최대한 안 마주치길 바래야지, 뭐.”
베오르크의 편지는 일종의 초대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카이는 그의 편지를 인벤토리에 잘 갈무리하며 요정들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진짜 다른 일은 없는거지?”
“음, 다른 건 별로.”
“아! 하나 있다.”
“뭔데?”
카이가 묻자, 꺄르르 웃은 요정들이 날갯짓을 하며 침실을 나섰다.
“따라와, 집 주인!”
“카이는 깜짝 놀랄걸.”
장난스러운 그녀들은 카이를 저택의 서재 방 앞으로 안내했다.
“열어봐.”
“놀랄걸, 놀랄걸.”
“……대체 뭔데 그래. 이제 좀 불안하다.”
고작 한 달 동안 집 좀 비웠다고 밀린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끼이이익.
카이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여는 순간, 그는 무언가가 자신을 덮쳐오는 것을 느끼며 옆으로 피했다.
“와! 멋있어!”
“반사신경 좋아!”
“막막 빨라!”
그의 재빠른 몸놀림에 요정들이 손바닥을 부딪치며 박수를 쳤다.
“이게 다 무슨…….”
우르르르.
카이는 방 안쪽에서부터 쏟아져나온 선물 꾸러미를 보며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서재 방은 15평 정도의 크기로, 절대 좁은 공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서재방 내부는 선물 상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천하제일야장대회 끝나고 다른 귀족들이랑 상단, 왕족과 황족까지 뭘 보냈어.”
“제발 드워프 좀 파견해 달래.”
“저기 안에 보면 유니콘의 뿔을 갈아서 만든 차도 있다? 그거 맛있더라.”
“얘, 조용히 해!”
“…….”
카이는 선물 상자를 보고도 두려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깨달았다.
***
“이 사람아, 어디있다 이제 오나!”
“서류! 서류에 결재 사인 좀 해주게!”
“지금 밀린 서류들 때문에 도시가 마비될 지경이라구요!”
“끄응.”
카이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각 종족의 우두머리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알았으니 서류 주세요.”
오랜만에 영지를 방문한 영주를 기다리는건 축제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업무의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뿐!
카이는 꼬박 한나절 동안 자리에 앉아 결제 서류에 사인을 했다.
피곤해서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면…….
“사도께서는 스스로 치료하실 수 있잖아요. 엄살 부리지 말고 어서 사인해 주세요.”
“꼬박 한 달을 기다렸네. 더 이상은 나도 양보 못 함세!”
“…….”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인종 대표들은 그를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아침 해가 뜰 때 시작한 서류 정리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이렇게 하죠. 그냥 앞으로 간단한 사안은 여러분의 권한으로 처리하세요.”
“하지만 그렇게되면 영주의 권위가…….”
“괜찮습니다. 제가 허락할게요.”
앞으로도 얼마나 자주 자리를 비워야 할 지 모르는데, 이런 일을 매번 겪을 수는 없었다.
“흠흠. 그럼 드워프 장인들을 파견하는건 어떤 식으로 진행하면 되겠나?”
“그건 제가 리스트를 대충 추려놨습니다. 이거 보고 진행해 주세요.”
카이는 자신이 짜놓은 리스트를 그들에게 한 부씩 분배했다.
“호오, 사실 이득을 보고 싶다면 두 제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나을 텐데…….”
“아뇨. 두 제국의 배를 불리기보다는 다른 왕국과 세력, 영지들을 상향 평준화 시키는게 낫습니다.”
물론 카이는 세계 8대 길드.
특히 자신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이들에게는 드워프 장인들을 파견보내지 않았다.
세계 8대 길드 중에서 드워프 장인이 파견나간 곳은 단 두 곳.
바로 워리어스와 천화 길드 뿐이었다.
‘워리어스의 발칸은 자탄 레이드 때 내 사정을 많이 봐줬고…… 설은영 씨는 워낙 날 도와준 적이 많으니까.’
이렇게라도 갚아나가는 것이었다.
“그럼 영지에서의 일은 대강 끝난 겁니까?”
“음. 대충 급한 불은 끈 것 같군.”
“조인족들이 머지않아 도착할 겁니다. 혹시 제가 없을 때 온다면 따뜻하게 잘 맞아주세요.”
“조인족의 우두머리는 아직 네이르 님이신가?”
“아뇨, 거스트 님이던데요.”
“오, 거스트라, 그 녀석과는 안면이 있는 사이이니 잘 챙겨주겠네. 큰 걱정하지 말게나.”
카리우스의 말에 마음을 놓은 카이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왕궁을 방문해야 하는 건 오전 11시. 그러니까…….’
한 네 시간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선물 온 것들 중에서 해외의 유명한 과자와 사탕들도 제법 많았지?’
그 사실을 떠올린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표들에게 인사했다.
“그럼 오늘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대가 제일 많이 수고했지 뭘.”
“고생하셨어요, 카이 님.”
“고생했네.”
인사를 마친 카이는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가 과자와 사탕 꾸러미들을 바리바리 싸들었다.
“신출귀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