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06화 (306/441)

# 306

힐통령 306화

97장 자유의 날개(6)

“다시 한번 설명해 주게.”

거스트의 요청에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은 간단합니다. 제가 할리를 상대하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이 장소를 탈출해서 최대한 빨리 칠흑의 해역에서 벗어나 주십시오.”

“목적지는 라시온 왕국의…… 리퍼디아? 맞나?”

“리버티아입니다.”

“아아! 그랬지 참. 나이가 드니 이것 참…… 리버티아, 리버티아…….”

집결지의 장소 이름을 몇 번이고 중얼거린 거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네. 이제 잊어버리지 않겠어. 한데 자네는 비행 수단이 있는가?”

“예. 있습니다.”

카이는 그 자리에서 미믹을 소환해 와이번 폼으로 바꾸었다.

“호오, 와이번인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빠르게 걱정을 덜어낸 거스트는 날개가 뒤덮인 손으로 카이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무운을 비네. 그리고 정말 고맙네.”

“아직 감사를 받기에는 이릅니다. 인사는 리버티아에서 받도록 하죠.”

“아아, 그렇군. 그럼 인사는 리버티아에서…….”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을 흘리기를 잠시.

한 무리의 조인족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달려왔다.

“조, 족장님! 큰일입니다!”

“……순찰조장 아닌가. 무슨 일이지?”

“다수의 가고일들이 먹구름을 뚫고 이곳으로 몰려오는 중입니다! 그 수가 무려 백여 마리입니다!”

“으음!”

난데없는 보고에 거스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할리가 손을 쓰기 전에 이쪽에서 더 빨리 움직이고자 D-Day를 오늘로 잡은 것이 아니었던가.

“차가운 바닷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어서 그런지 손속도 시원하네요.”

“……자네는 걱정이 안 되는가?”

“만약을 위해 블리자드를 이곳에 남겨놓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이카루스까지 있으니…… 두 사람이라면 피해 없이 그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휴우…… 정말 고맙네.”

“아니요. 오히려 블리자드는 비행을 할 수 없으니 이곳에서 여러분을 지키는 게 나을 겁니다.”

옆에 있던 블리자드가 잠깐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를 눈치챈 카이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자 그러한 기색이 눈 녹듯 사라졌다.

“블리자드, 조인족을 잘 지켜줄 수 있지?”

“반드시 지켜내 보이겠습니다.”

***

펄럭, 펄럭!

먹구름의 파도 속을 한 마리의 와이번이 맹렬하게 뚫고 나가고 있었다.

“저쪽이다.”

저 멀리의 아래쪽 바다에 비늘로 덮인 꼬리가 보이자, 카이는 미믹을 그쪽으로 이동케 했다.

[흐음?]

낯선 자가 다가온다는 것을 감지한 할리가 무겁게 가라앉아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타악!

미믹이 군도 주변의 바위 하나에 착지하자, 카이가 소리쳤다.

“씨 서펜트 할리! 거래를 하러 왔다!”

[……오만하고, 건방지군. 감히 지고의 존재에게 거래를 요청하는 것이냐? 그것도 감히 네놈들이?]

“지난번부터 생각했지만, 넌 나에 대해 한 가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입을 닫아라!]

할리가 노성을 터트리며 잠겨 있던 몸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바닷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해일을 일으켰다.

철-써억!

다행히 바위섬이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하여 카이가 해일에 휘말리는 일은 없었다.

물론 카이는 해일이 오든 말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할리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난 뮬딘교에서 온 사람이 아니야.”

[그 입…… 닫으라고 했을 텐데?]

할리가 입을 벌리자 바닷물이 중력을 거스르며 그의 입으로 흘러들어 갔다.

“말 끝까지 들어.”

우우우웅!

카이가 손을 뻗어 중력장을 시전했다.

그러자 할리의 입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던 물들이 다시 밑으로 떨어졌다.

이에 할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카이를 노려봤다.

[네놈이 죽고 싶어서 끝까지 건방을…….]

“성검, 프리우스 소환.”

허공에 생성된 성검을 낚아챈 카이는 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

“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세히 봐. 너라면 알 수 있겠지.”

[…….]

카이의 말에 성검이 뿜어내는 막대한 신성력을 느낀 할리가 입을 천천히 다물었다.

[확실히…… 네놈은 그 씹어먹어도 마땅찮은 곳에서 나온 놈이 아니군.]

“그래. 엄밀히 말하면 그놈들과는 대적하는 사이지.”

[그래서?]

할리의 물음에 카이가 눈을 깜빡였다.

“……뭐?”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이지? 그것이 내가 널 살려줄 이유가 되나? 네놈은 지금 나의 애완용 새들을 훔쳐가려는 도둑놈이 아니던가.]

“그들은 애완용 새 취급이나 받을 존재들이 아니야.”

카이의 항변에 할리가 피식거리며 조소를 터트렸다.

[내가 인간을 오만하고, 건방지다고 평가하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는군. 그렇다면 인간이 키우는 새들은 그런 취급을 받기 위해 태어나는 존재이던가?]

할리의 일침에 카이가 일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은 나름의 철학을 지니고 있었고, 반박하는 것이 힘들었으니까.

카이가 아무 말도 못하자, 할리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어갔다.

[할 말이 없겠지. 왜냐하면 그런 취급을 받기 위해 태어나는 생물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 기준은 인간들이 정한 것이다. 자신들보다 약한가, 강한가를 기준으로 그어버린 약육강식의 선이지. 하지만 나는 용. 내가 굳이 인간들이 만든 규칙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다.]

“그건…….”

카이가 열심히 반박할 말을 떠올리고 있을 때, 할리가 돌연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의 입에서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즈룬! 가고일들을 이끌고 새장으로 가라. 이놈이 이곳에 왔다는 건, 새들이 빠져나갈 꿍꿍이를 품고 있다는 뜻일 터. 새장을 탈출하려는 새들은 모조리 죽여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가고일들의 왕, 카즈룬은 카이를 힐긋 쳐다보더니 빠른 속도로 날아올랐다.

그 뒤를 수백의 가고일들이 벌 떼처럼 날아오르며 뒤따랐다.

“안 돼…… 미믹!”

미믹의 등에 올라탄 카이가 그들을 추격하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엄청난 중력이 그와 미믹을 짓눌렀다.

“크윽!”

[중력을 다루는 마법 기술이 인간의 것이라 생각했더냐? 이 또한 오만하고 건방지군.]

“젠장. 뮬딘교 이놈들…… 대체 뭘 만들어 놓은 거야.”

천공신 이스카의 말이 맞았다.

동양의 용을 베이스로 삼되, 드래곤 같은 존재를 만들기 위해 탄생시킨 괴물.

그것이 바로 씨 서펜트 할리였다.

“중력장!”

카이는 중력장을 사용해 자신과 미믹에게 걸려있는 중력을 해소시켜 버렸다.

물론, 그 대가로 지불한 마나는 매우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

마나 사용이 원활하지 못한 할리의 영역에서 중력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분 남짓.

그 시간 동안 할리와 승부를 보거나,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미믹!”

“까아아악!”

카이의 생각을 찰떡같이 읽어낸 미믹이 두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

그런 카이를 지그시 내려보던 할리의 머리에 달린 뿔이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띠링!

[해룡, 할리가 썬더 스톰을 시전했습니다.]

콰르르르릉!

동시에 수십 줄의 천둥이 내리쳤다.

노리는 것은 카이가 아닌 미믹.

아예 카이가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지금 미믹이 역소환되면 난 말 그대로 끝이다.’

이 넓은 바다에서, 해룡을 상대로 수중전을 펼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때문에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듀라한들 전용의 철제 무기를 빼 들었다.

파지지직!

피뢰침 역할을 훌륭히 한 검은 까맣게 타버려서 사용하지 못하는 수준이 되었다.

유니크 등급의 검이라 최소 수백만 원에 거래되었지만, 카이는 미련 없이 검을 놔버렸다.

이 급박한 상황에선, 검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는 시간조차 아까웠으니까.

‘크윽, 데미지가 대체 왜 이래?’

카이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현재 그의 마법 저항력은 모든 유저를 통틀어서 최상급 수준.

바로 최초의 오크 주술사 사냥꾼 칭호와 더불어, 주문 저항의 피부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카이도 그것을 믿었기에 망설임 없이 할리의 천둥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낸 것이었다.

‘마법 공격 한 번으로 전체 체력이 21%밖에 안 남았다고?’

말 그대로 두려울 정도의 공격력!

“햇살의 따스함!”

물론 카이의 생명력은 힐 스킬 두 번에 100%까지 빵빵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건 위험해.’

지금과 같은 도박을 계속 이어갈 수는 없었다.

이번에야 운이 좋아서 즉사는 면했다지만, 같은 행운이 두 번씩 찾아오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웬만해서는 성물 3세트의 신성력 효과 증가, 소모량 감소 효과 때문에 이걸 깨고 싶지는 않았지만…….’

카이의 입이 달짝였다.

“인벤토리 오픈, 하얀 죽음의 용 세트 장비.”

거대 길드에서 그토록 모셔가고 싶어 하는 1순위 대장장이, 갓 핸드.

카밀라가 사룡 시네라스의 비늘과 뼈를 이용해 만들어낸 최강의 방어구 세트!

찰칵, 찰칵.

백룡 세트의 장착과 동시에 성물의 3세트 효과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를 메꾸기라도 하듯, 새로운 능력치들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백룡 세트의 장비에는 신성력 관련 옵션이 없었지만, 방어력과 스탯 상승량은 끝내주게 높았기 때문.

그뿐만이 아니었다.

띠링!

[하얀 죽음의 용 세트를 착용하셨습니다.]

[5세트 효과로 약자멸시가 발동됩니다.]

[5세트 효과로 모든 스탯이 50만큼 증가합니다.]

[5세트 효과로 모든 속도가 10% 증가합니다.]

“좋아.”

비록 성물 3세트의 신성력 관련 능력들을 사용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기본 데미지는 높아진 셈.

[죽어라! 건방진 인간이여!]

콰르르르르르릉!

수십 다발의 천둥이 미믹을 향해 쏟아졌다.

물론 카이는 다시 한번 인벤토리에서 철검을 뽑아 이를 제 몸으로 받아냈다.

결과적으로 카이의 도박은 성공이었다.

“이 정도면…… 할 만해.”

남은 체력 54%.

할리의 맹공을 연속으로 두 번 받아내고도 죽지 않을 정도의 맷집을 보유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선 안 되지.’

방어력이 크게 증가했다고 해서 방어적인 태도로 임해서는 안 되었다.

얼핏 보기엔 카이가 전투의 기세를 가져온 것 같지만, 그의 마나는 여전히 부족했으니까.

[인간이 어떻게…… 나의 공격을…… 잠깐, 그 방어구는 설마…… 드래곤의 비늘로?]

백룡 세트의 재료를 알아본 할리가 크게 당황했다.

만들어진 존재라고는 하나 그 또한 용.

드래곤이 얼마나 무섭고 강력한 존재인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심해선 안 될 놈이었군.]

할리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천둥 공격은 쉴 새 없이 이어졌고, 그와 함께 할리의 입에서는 몇 다발의 수압포가 쏘아졌다.

‘무슨 슈팅 게임도 아니고……!’

카이는 미믹의 등을 꽉 움켜잡고는 공격을 쳐내고, 피할 공격은 피하며 할리에게 접근했다.

쐐애애애액!

태양의 축복, 헤이스트 등의 온갖 버프를 때려 박은 미믹은 마치 섬광처럼 움직이며 할리의 공격들을 피해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가까워졌어.’

카이는 할리가 자신의 유효 사거리 안에 들어오는 순간,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미믹의 등에 섰다.

“크윽!”

엄청난 바람이 그의 몸을 흔들었지만, 카이는 엄청난 집중력을 통해 몸의 균형을 맞춰나갔다.

그 상태에서, 카이는 성검으로 할리를 겨누었다.

[고오오오오……!]

입을 쩍 벌린 할리가 수압포를 준비했다.

여태 쏘아오던 것보다는 몇 배는 더 커다란 수압포였다.

하지만 미믹은 등 위의 주인을 믿고, 할리를 향해 망설임 없이 나아갔다.

“미안한데, 내가 시간이 얼마 없어서.”

카이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강림, 패트릭.”

그와 동시에 성검에서 엄청난 빛이 폭사되 듯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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