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73화 (273/441)

# 273

힐통령 273화

89장 흡혈왕 데스몬드(9)

데스몬드가 죽자 당연하다는 듯 알림창이 떠올랐다.

카이는 별 감흥 없이 메시지들을 읽어내렸다.

[흡혈왕 데스몬드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스탯 포인트를 40개 획득했습니다.]

[뱀파이어 백작의 예복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북-메모리 다이브를 획득했습니다.]

8개의 레벨 업과 1개의 아이템, 1개의 스킬 북.

‘생각보다 거지네.’

하지만 추가적인 메시지가 떠오르자, 카이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띠링!

[권선징악 효과가 발동합니다.]

[사악한 뱀파이어 영주를 처치했습니다.]

[처치한 영주의 작위는 '백작'입니다.]

[선행 스탯이 60 증가합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로 선행 스탯이 30만큼 추가적으로 상승합니다.]

설마 몬스터 영주를 죽여도 권선징악의 효과가 발동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작위를 박탈하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목숨을 거두어도 적용이 되다니.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수확인데?’

선행 스탯이 90만큼 상승하면, 각종 목격자 칭호로 인해 모든 스탯이 360만큼 상승한다.

돈으로는 환산을 할 수 없는 보상을 얻은 카이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흐음. 그런데 저건…….”

아까부터 무언가가 신경 쓰인 카이는 데스몬드의 시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이마 위에는 지르칸 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빛이 떠올라있었다.

‘이건 역시 그거겠지?’

잠시 자신의 반지를 쳐다보던 카이는 손을 뻗었다.

“영원한 안식.”

성환 페트라가 반짝였다.

띠링!

[영원한 안식을 사용하셨습니다.]

[데스몬드의 영혼을 불러냅니다.]

-으음…….

반투명한 몸을 하고 있는 데스몬드는 전투를 시작하기 전처럼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녀석은 이내 카이를 발견하고는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의 살벌한 눈빛을 마주한 카이는 태연스럽게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음?

시선을 아래로 내린 데스몬드는 자신의 시체를 쳐다보고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물었다.

-혹시 내가…….

“응, 죽었어.”

-…….

데스몬드는 잠시 말을 잊더니, 이어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군.

자신의 시체를 목격한 감상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죽어서도 귀족으로서의 자존심만큼은 내려놓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그는 오만하고 고압적인 표정으로 카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자신이 죽인 이를 구태여 불러낸 이유는 뭐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털썩.

폐허가 되어버린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주저앉은 카이가 입을 열었다.

“네가 내뱉은 말에 대해 생각을 해봤거든.”

-나의 말이라면?

“인간은 다 똑같다고. 자신들을 기준으로 삼고 다른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하.

데스몬드가 코웃음을 쳤다.

-별 시답잖은 이유로 나를 불러냈구나.

“하지만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었거든. 네 말이 맞다고.”

-……뭐?

“제대로 들었어. 네 말이 맞다고.”

설마 인간이 자신의 말을 인정할 줄은 몰랐기에, 데스몬드의 고운 얼굴 위로 당황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비단 인간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돼. 모든 생물은 모든 생태계에서 자기 자신이 기준이거든. 그야 척박한 야생에서 다른 존재의 기분이나 감정을 헤아릴 여유 따위는 없으니까.”

-그런 식으로 포장을 해도…….

“포장이 아니라 진실이야. 그렇다면 반대로 물어보지. 너는 뱀파이어가 된 뒤로 인간들의 입장, 혹은 1층을 지키던 구울들의 입장에서 뭔가를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

당연히 있을 리가 없었다.

데스몬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없겠지. 그야 당연해. 너의 기준점 역시 너였을 테니까.”

-궤, 궤변이다…… 그렇게 말한다고 인간의 추악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혼란에 빠진 데스몬드는 아무 말이나 뱉어내기 시작했다.

카이는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중지시켰다.

“진짜 인간이 추악하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네 어머니도 추악한 인간이었겠군.”

-뭐, 뭐라? 감히!

난데없이 어머니에 대한 비난을 듣게 된 데스몬드가 씩씩거리며 펄쩍 뛰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이 날 모멸하고 무시했지만 그분만큼은. 나의 어머니만큼은 사랑으로 나를 키워주셨다. 나를 괴물처럼 보지도, 생각하지도 않으신 훌륭한 분이시란 말이다!

“그래. 그 훌륭한 어머니 또한 인간이지.”

카이의 착 가라앉은 두 눈동자는 맑은 호수처럼 고요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인간들이 있어. 너를 학대하고 못살게 굴었던 마을 사람들. 그들만을 보고 인간 전체를 판단하는 건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할 수 있지.”

-내가 봐온 대다수의 인간은 그런 놈들뿐이었다.

데스몬드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의지가 없다는 듯, 팔짱을 끼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가 피식 웃었다.

“완전히 우물 속에 갇힌 개구리네.”

-……뭐라고?

“우물에 갇힌 개구리는 하늘을 동그란 형태의 작은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지금 네가 보고 있는 하늘은 어떤 모양이지?”

할 말이 끝난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먼지를 털어냈다.

-잠깐.

데스몬드가 카이를 불러 세웠다.

-그래서 결국 날 불러낸 이유가 뭐지? 고작 그 말을 하기 위해서인가?

“물론 아니지. 난 너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은 것뿐이야. 네가 살면서 느꼈던 생각을 부정하기 싫다면 그 뜻을 존중하지. 하지만 진짜 제대로 된 하늘을 보고 싶다면 말해.”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은 데스몬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기를 잠시, 그는 반항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카이를 쳐다봤다.

-좋아. 네 놈을 따라가서 인간들이 추악한 존재들이 맞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겠다. 만약 인간들이 내 인식을 바꾸지 못할 경우에는…….

“너의 영혼을 자유롭게 만들어주지.”

거래가 성사되었다.

띠링!

[흡혈왕 데스몬드를 빛의 전사로 영입했습니다.]

[영혼과 계약을 하여 빛의 전사로 만들었습니다.]

[흡혈왕 데스몬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기 위해 당신을 따라다닐 것입니다.]

[스킬, ‘빛의 군단’을 획득하셨습니다.]

‘호오.’

설마하니 새로운 스킬까지 생길 줄이야.

카이는 곧장 스킬의 정보를 확인했다.

[빛의 군단 Lv.1]

등급 : 유니크

영혼을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는 체란티아의 고유 기술 중 하나.

빛의 전사로 계약을 마친 강력한 영혼을 소환할 수 있다.

계약 가능한 영혼 : 1/3

빛의 전사 한 명을 소환할 시, 초당 500의 신성력을 소모합니다.

‘드디어…….’

빛의 군단은 체란티아를 강림시켰을 때만 사용할 수 있던 스킬.

허나 이제는 굳이 강림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하면 자신만의 빛의 군단을 보유하게 되었으니까.

-흐음.

계약을 마친 데스몬드의 외형적인 부분이 살짝 변했다.

우선 유령처럼 반투명하던 몸은 생전처럼 실체를 가지게 되었다.

-내 옷을 돌려줄 수 있나?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예복을 돌려주었다.

예복을 장비한 데스몬드는 다시 봐도 뱀파이어 군주보다는, 미청년의 역할에 더 어울렸다.

-……그리고 염치가 없지만 부탁이 하나 더 있다만.

“아이와 여자들에 관해서지?”

데스몬드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지?

“모를 리가 있나. 뱀파이어들을 쓰러트리면서 온 게 나니까. 마이클은 성 내부에 여자와 아이들도 있다고 했어. 하지만 내가 쓰러트린 적들 중에는 없었지.”

-일족의 전사들이 싸우다 죽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약자의 패배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들은…… 전사가 아닐 뿐더러 지닌바 힘도 미약하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기를 부탁하지.

자존심이 강한 데스몬드가 부탁이라는 말까지 입에 담았다.

애초에 사람이랑 똑같이 생긴 아이들을 죽이는 건 카이도 거부감을 느끼던 일.

“흠…… 좋아. 그 부탁을 들어주지. 대신, 너도 일 하나만 해줘야겠는데.”

카이는 여전히 전투 중인 광장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

“크윽, 조금만 더 버텨!”

“팔이 떨어질 것 같다고! 젠장!”

뱀파이어 귀족들의 맹공을 버텨내던 발터가 우는 소리를 했다.

연신 레이피어로 뱀파이어들을 견제하던 설은영의 눈밑에도 다크써클이 짙게 내려온 상태였다.

‘안 좋아.’

상황은 안 좋았다.

카이가 만들어낸 듀라한들은 분명 강력했지만, 뱀파이어 귀족의 수가 훨씬 많았다.

이제 남아있는 듀라한의 수는 겨우 일곱.

상대적으로 약한 스켈레톤들은 진작 전멸한 상태였다.

‘대체 언노운은 언제쯤…….’

설은영은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에게 쉽게 의지하는 편이 아니었다.

의지하고, 기대를 하게 되면 실망을 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언노운이라면 뭘 어떻게든 해줄 거야.’

근거 없는 믿음이었고, 신뢰였다.

하지만 언노운은 그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기적을 만들어내는 마술을 곧잘 부려냈다.

그것이 사람들이 그의 싸움에 열광하고, 막연한 기대를 품는 이유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데스몬드. 뱀파이어들의 군주.’

몬스터들의 도시를 통치하는 말도 안 되는 존재.

당연히 플레이어가 1대 1로 대결을 해서 이길 수 있는 존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플레이어가 언노운이라면?

설은영은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모두 멈춰라.

촤아아아악!

데스몬드가 수백 마리의 박쥐가 만들어낸 발판을 타고 등장했을 때, 그녀는 누구보다 절망했다.

“아아…….”

“결국 카이 녀석이 패배한 건가.”

“어쩔 수 없지. 아무리 브로라도 레벨 차이가 이 정도나 나버리면 이기는 게 이상한거야.”

일행들은 곧 다가올 죽음을 예상했다.

-모두 후퇴해라.

“……예?”

“데스몬드 님?”

뱀파이어 귀족들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재차 질문했다.

데스몬드가 붉은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감히 내 입에서 같은 말을 두 번 나오게 할 셈이냐.

“아, 아닙니다.”

“저희가 경솔했습니다.”

군주의 분노를 사게 된 뱀파이어 귀족들은 아차한 표정을 짓더니 황급히 광장을 빠져나갔다.

“직접 마무리를 지을 셈인가.”

“악취미를 가진 배트맨이로군.”

일행은 죽을 때는 죽더라도, 곱게 죽지는 않겠다는 듯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었다.

그 모습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던 데스몬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됐나?

“아주 훌륭해. 연기 잘하는데?”

광장의 무너진 건물 틈새에서 한 줄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이!”

“오 마이 브로!”

카이의 등장에 일행들이 반색했다.

발터는 데스몬드를 경계하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직 승부가 안 난 거야?”

“아니. 내가 이겼어.”

“……그런 것치고는 흡혈왕의 상태가 훨씬 더 좋아 보이는데?”

빛의 전사로 새롭게 태어난 데스몬드는 그 흔한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반면 바닥을 구르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카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겉모습만 본다면 데스몬드가 가볍게 승리한 듯한 모습.

카이는 자신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일행들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던전, 클리어되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파티 사냥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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