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힐통령 246화
84장 신들의 연회(2)
“여어, 히사시부리~ 오랜만이구만!”
“자네도 그간 잘 지냈나?”
[재회의 신, 히사시부리를 목도했습니다.]
[스페셜 칭호, ‘재회목격자’를 획득했습니다.]
‘신 이름이 왜 저런…… 아니,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미 획득한 스페셜 칭호만 70개가 넘은 지 오래.
그 말은 연회에 참석한 신들의 숫자도 70명이 넘었다는 소리였다.
‘음식, 음식이 부족하다!’
아직까지는 신들이 간만의 재회에 웃고 떠드는 중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음식들의 냄새를 맡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이들이 눈에 보인다.
‘지금부터 내가 지상에 내려가서 준비하는 건 늦어…….’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이 오늘 사온 음식들은 모두 최상급의 요리들이다.
현실에서도 미슐랭 3성을 받은 레스토랑의 셰프들이 만든 음식도 있을 정도.
‘하지만 지금부터 그런 요리를 공수하지는 못해.’
무려 신들이 즐기는 연회다.
그들은 자신을 기쁘게 만들면 축복을 내려주지만, 노하게 만들면 저주를 내리는 존재들.
‘음식을 지금 당장 머릿수에 맞게 준비하는 방법은…….’
지금 상황에선 단 하나밖에 없다.
카이는 곧장 메시지 창을 띄워 가상 키보드를 현란하게 두드렸다.
[카이 : 미네르바.]
[카이 : 미네르바.]
[카이 : 미네르바.]
정확히 세 번의 부름이 끝났을 때, 답장이 돌아왔다
[미네르바 : 뭐, 뭐예요? 이렇게 다급하게.]
그녀가 당황했다는 것이 텍스트 너머로도 느껴졌다.
[카이 : 미안한데 심부름 하나 해주셔야겠어요.]
[미네르바 : 후우…… 정말 잘 부려먹으시네요. 하지만…….]
프레이 길드는 성혈단에 소속되어, 그들의 노하우와 기술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봤다.
당연히 성장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받은 것이 있으니 토해낼 수밖에 없다.
[미네르바 : 알겠어요. 무엇을 하면 되나요?]
[카이 : 지금부터 제가 부르는 음식들을 준비해 주세요. 양은…… 넉넉하게 100인분씩이요. 대금은 나중에 드릴게요.]
[미네르바 : 그렇게나 많이요? 어디서 구휼이라도 하시나요?]
[카이 : 음……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생에 맛있는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존재들이 바로 신이니까.
이건 구휼과 다름없다고, 카이는 생각했다.
[카이 :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주십시오.]
[미네르바 : 걱정 마세요.]
미네르바가 자신감을 드러내 보였다.
세계 9대 길드 중 한 곳인 프레이 길드.
그들의 유능함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하면서.
***
“휴우.”
카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미네르바의 당당함은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정확히 25분 만에 자신이 원하던 모든 음식들을 100인분 씩 정확히 준비해 놨으니까.
‘역시 길드는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어.’
대륙 곳곳에 길드원들을 흩뿌려 음식점에 줄을 서게 하고, 음식을 사온다.
매우 간단한 방법이지만, 카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덕분에 한숨 돌리긴 했는데…….’
새롭게 도착한 음식들의 세팅도 마친 카이였지만, 그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끄응.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이번에 사온 음식들은 고급 요리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어.’
세계적인 셰프들이 조리한 요리들은 당연히 구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카이가 공수한 것은 패스트푸드라고 불리는 것들.
바로 햄버거와 피자 같은 음식들이었다.
‘부디 좋아해 줬으면 좋겠는데.’
걱정도 잠시.
서로의 재회에 이야기꽃을 피우던 신들은 마련된 연회석에 하나둘 앉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나서 실컷 떠들었더니 목이 마르네요.”
“허허, 나는 배도 좀 고픈 것 같은데.”
“쯧쯔. 거 아무리 신위가 약해졌다고 해도, 신이라는 작자가 식욕 하나 절제 못 하나?”
“하지만 아까부터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지 않아요? 저도 배가 좀 고픈 것 같아요.”
“크, 크흐흠. 확실히…….”
신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향했다.
바로 갖가지 음식들이 놓여 있는 길다란 테이블.
‘이제 곧 식사 시작이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헬릭 님.”
상석의 옆에 서있던 카이는 조심스럽게 헬릭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자 앉아 있던 헬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위로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모든 신들을 내려다보게 된 헬릭!
“음음. 오늘 나의 연회에 참석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바이니라. 맛있는 음식과 술을 준비해두었으니, 부디 입과 눈, 귀가 호강하는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기를. 아참, 가장 추천하는 메뉴는 역시 케이크이니라.”
“케이크?”
“그게 무슨 음식이지?”
“뭐, 하나씩 먹어보면 알지 않겠나.”
카이는 그대로 신들을 인도하며 음식을 덜어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이곳에서 그릇을 가지고, 오른쪽으로 가시면서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담으시면 됩니다.”
“호오, 재미있는 방법이로군.”
“확실히 이런 식이라면 지저분해지지 않아서 좋겠어.”
“이제보니 음식들 옆에 이름과 설명도 쓰여져있군?”
“햄……버거? 처음보는 음식인데 신기하게 생겼군. 난 이걸 먹어보겠네.”
신들은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춰서 자신들의 그릇에 음식을 차곡차곡 담았다.
자리에 먼저 돌아온 신이라고 입에 음식을 그대로 우겨넣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릴 뿐.
이윽고 모든 신들이 착석하자, 헬릭은 케이크만 네 조각이 담긴 접시를 쳐다보며 식사 기도문을 낭송했다.
“사랑하는 나여,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어 감사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내일 모레도 케이크만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태양신 헬릭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그야말로 듣도보도 못한 기도문!
하지만 기도를 드리는 대상이 본인인 이상, 태클을 걸고 싶어도 걸 부분은 없었다.
이윽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음? 이 맛은……!”
가장 먼저 음식에 입을 댄 것은, 호른에게 영업을 당해 양념치킨을 가져온 신이었다.
“어때?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 아닌가?”
그의 기분을 백분 이해한다는 듯,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호른.
하지만 양념치킨을 먹은 신은 그 말이 들리지도 않는 듯, 빠르게 손과 입을 움직였다.
오물오물.
“오, 오오오……! 내 입 안에서 닭이 푸드덕거리며 날갯짓을 하는 기분일세!”
“후후. 그것이 끝이 아닐세. 이 맥주도 함께 마셔보게나.”
스윽.
호른이 베스트 블레테렌 12가 가득 담겨 있는 맥주잔을 그에게 밀었다.
“맥주? 설마 맥주까지 맛있단 말인가?”
“아, 일단 마셔보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벌컥벌컥.
목을 넘기는 맥주의 신선하고도 획기적인 맛!
신은 아예 졸도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 허억……!”
“흐흐흐. 놀랍지? 이게 바로 치맥이라는 것일세. 치맥.”
자신은 경험자라는걸 강조라도 하듯, 어깨가 한없이 높아지는 호른!
다른 신들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호른에게 좋은 걸 배워왔네. 치맥이라는 것이 맛이 기가 막히더군. 한 번 먹어보지 그러나?”
“나는 이 음식을 한 번 먹어보려고 하네.”
힘의 신 가우스의 접시에 담긴 것은 두 장의 빵 사이에 고기 패티와 특별한 소스, 토마토나 양상추를 비롯한 다양한 채소가 들어있는 햄버거였다.
“호오, 빵과 채소, 고기와 야채가 한데 들어있는 음식이라? 이름이 뭐던가.”
“햄버거라고 하더군.”
“설명만 들으면 그야말로 완전식품 아닌가! 맛은 어떨지 궁금하군.”
“글쎄, 나도 궁금하니 지금 바로 먹어보겠네.”
그대로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먹는 가우스.
한 입, 두 입.
입 안의 햄버거를 꼭꼭 씹을 때마다, 그의 얼굴 위로 다양한 감정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놀라움에서, 다음으로는 행복함이, 마지막에는 황홀함이.
햄버거 하나를 순식간에 해치운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자네 어디 가나?”
“햄버거 가지러가네.”
“그렇게 맛있는가? 생긴 건 영 별로인데.”
그 말에 가우스가 울컥한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뭐? 네가 감히 햄버거를 모독해? 지금 당장 사과해라.”
“허허. 그래봤자 치맥 아래에서 평등할 뿐이네. 치맥은 음식과 음료가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이니까.”
“크윽…….”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가우스가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저 자의 말이 맞았다.
햄버거는 자신의 기준으로 완벽, 그 자체인 식품이었지만,
치킨과 맥주처럼 같이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영혼의 단짝은 없었다.
하지만 그 때, 돌연 아래쪽에서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짚신에게도 짝이 있는 법이거늘, 설마하니 햄버거에게 어울리는 음료가 없을까.”
두 신이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순백의 드레스를 입을 헬릭이 종이 컵 하나를 내밀었다.
“힘의 신 가우스여, 가엾은 그대에게 이 음료를 권하니라.”
“이건……?”
“햄버거의 영원한 단짝이자, 감자칩의 단짝이기도 한 그 이름.”
헬릭이 광채를 반짝반짝 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이름하야, 콜라이니라.”
“코, 콜라!”
입안에서 떠도는 그 영롱한 울림 때문이었을까.
가우스는 저도 모르게 경건한 자세로 두 손을 뻗어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쪼옥- 검은색 액체를 마시는 순간.
그는 입 안에서 톡톡 튀어 오르는 강렬한 맛을 느끼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아아, 신위 박탈당하지 않고 살아 있길 잘했다…….”
신으로 하여금 삶의 감사함을 느끼게 만드는 음식!
가우스가 감동을 느끼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을 때, 헬릭이 접시 하나를 더 내밀었다.
“자, 식사가 끝나면 후식으로 케이크를 먹는 것이니라. 먹고 나서 나의 대리인에게 이렇게 전해다오. 신들은 케이크를 하루에 한 조각씩은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라고.”
“…….”
***
‘반응 좋은데?’
신들의 만찬을 지켜보던 카이는 입에서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그야말로 대성공.
신들은 카이가 공수한 음식들에 미치다 못해 환장을 한 상태였다.
‘물론 신들이 입맛에 따라 여러 개의 파로 나뉜 것은 웃기지만…….’
카이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호른이 이끄는 치맥 파.
가우스가 이끄는 패스트푸드 파.
마지막으로 헬릭이 이끄는 간식 파.
신들의 입맛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서로 자신들이 먹는 음식이 최고라고 우기고 있었다.
‘뭐, 토론이 나쁜 건 아니니까.’
어깨를 으쓱거린 카이는 헬릭에게 다가갔다.
“헬릭 님. 신들께서 식사를 다 마치신 것 같은데 뒷정리 좀 부탁드립니다.”
“응! 알겠느니라.”
짝!
헬릭이 박수 한 번을 치자, 음식물 쓰레기와 식사의 잔해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 보상으로 카이는 헬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이거 기분 좋으니라.”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연회의 다음 단계를 시작하지요.”
“응? 이 다음도 있었느냐?”
“물론이지요. 연회인데 설마 밥만 먹고 끝나겠습니까?”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치는 카이.
‘오늘 같은 기회가 언제 올지 누가 알겠어.’
자고로 뽕이란 한 번 뽑을 때 제대로 뽑아야 하는 법.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기 시작했다.
“후후후.”
***
“자네는 이게 뭔지 알고 있나?”
“글쎄? 우선 한 장씩 가지고 있으라고 하던데. 용도는 모르겠네.”
“흐음. 정말 맛있는 식사를 했으니 조금 쉬고 싶은데 말이야.”
“재미가 없다면 난 곧장 돌아가서 식사의 여운을 즐기겠어.”
각자 종이 한 장 씩을 손에 쥐고 있는 신들이 금세 따분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성질 급한 양반들…….’
마음이 조급해진 카이는 서둘러 수레 하나를 끌고 신들이 앉아 있는 좌석 중앙으로 향했다.
“음? 저게 뭐지?”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통이로군.”
“흐음…….”
카이가 들고 온 것은 속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통이었다.
“흠흠.”
주변의 신들을 한 바퀴 쭉 훑어본 카이가 입을 열었다.
“자, 연회의 다음 단계로는 ‘빙고‘라는 것을 준비했습니다.”
“빙고?”
“그게 뭐지?”
“인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인가?”
“예. 어떻게 하는 것이냐면…….”
카이가 간단한 룰을 설명하자, 신들이 제법 재미있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 재미있겠군. 그런데 1등부터 3등까지는 상품이 있다고?”
“예. 원하시는 음식을 한 달간 무료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
“…….”
카이의 말이 끝나자, 게임에 임하는 신들의 자세가 돌변했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게임에 참가하려면 참가비를 내셔야 합니다.”
“얼마가 되었건 내겠네!”
“하지만 우린 인간들이 사용하는 화폐가 없거늘…….”
“에이, 어찌 존경하는 신들께 인간의 화폐를 달라 청하겠습니까.”
카이가 씨익 웃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지 않은가.
바로, 신성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