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00화 (200/441)

# 200

힐통령 200화

71장 몰락한 금속의 왕국(5)

카밀라를 바라보던 카이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 녀석이 내 검을 만든 대장장이였다고?’

그렇다면 그녀가 중급 대장장이였던 솔리드를 가볍게 찍어누른 대장장이 모험가일 터.

언젠가 한 번 만나보고는 싶었다.

물론 지금처럼 갑작스럽게 만나리라고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좋아.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 같은 경우엔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네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우선 오해가 풀렸으면 이거부터 풀어주지 그래? 난 네 적이 아니야.”

“아군도 아니지.”

카이는 불쌍한 표정으로 신성 사슬을 내려다보는 카밀라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눈빛에서 굳은 고집을 느낀 카밀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꾹 다문 입술을 보니 고집 한 번 세보이네. 난 직업 관련 퀘스트를 진행 중이야. 설마 이것까지 자세하게 캐물을 생각은 아니지?”

“맞는데.”

“무, 뭐라고? 아니, 이봐. 사회에는 룰이라는 게 있잖아. 히든 클래스 유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예의고 자시고. 나는 지금 네가 여기에 왜 있는지를 알아야 해. 내 계획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면 배제해야지.”

배제,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냥 죽인다는 뜻이다.

어찌보면 매정하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그 말에 오류는 없었다.

‘나도 드워프들을 구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어.’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이를 벙찐 얼굴로 쳐다보던 카밀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와! 영상을 볼 때도 또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뭐 이런 막되 먹은 놈이 다 있지? 하! 좋아. 하지만 나도 내 정보만 주저리주저리 풀 생각은 없어. 내가 하나를 말해주면, 너도 하나를 공개해.”

“대답해 줄 수 있는 질문이라면.”

“이익…….”

카이는 절대 확답을 하지 않았지만, 카밀라에게 별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 녀석, 정말로 내가 방해물이라고 생각하면 죽일 수도 있어.’

지금까지의 영상과 방송을 통해 공개된 언노운의 이미지는 냉혈한 그 자체였다.

자신을 건드리거나 방해하는 이들은 10대 길드라 할지라도 철저하게 부숴버리는 파괴의 왕.

‘하긴, 저 정도의 검을 들고 있는데…… 과거에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 따위를 하나 만들어줬다고 나한테 잘 보일 필요는 없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눈앞의 남자는 현재 미드 온라인 랭킹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존재였다.

현재의 처지를 빠르게 파악한 카밀라는 누가 갑인지를 깨닫고는 모든 걸 내려놓은 목소리로 말했다.

“글렌데일의 그 대장장이 아저씨…… 이름이 솔리드였나?”

“그래.”

“아마 대충은 들었을 거야. 그 검을 받기까지 했는데 검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안 들었을 리는 없으니까.”

“대장장이들에게 도전을 하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도장 깨기 같은 건가?”

“후우.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될지……. 아 머리 긁고 싶은데.”

카밀라는 제 머리를 벅벅 긁으려다가, 사슬에 묶여있는 두 팔을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방송을 봐서 알아. 너, 히든 클래스라며? 광휘의 성기사.”

“그렇다면?”

“나도 그래. 운 좋게 생산 계열 히든 클래스인 도전의 대장장이로 전직했거든.”

“도전의 대장장이?”

생소한 직업의 이름에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카밀라가 피식 웃었다.

“이름만 들으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정도지만 직업 자체는 히든 클래스 중에서도 나름 최상위권이야. 다른 대장장이와 승부를 겨뤄 승리할 시 손재주를 비롯한 스탯이 상승하고, 스킬 숙련도도 올릴 수 있거든. 게다가 특정 조건만 충족시키면 드워프들의 왕국도 방문할 수 있는 금수저 클래스라고 할 수 있지.”

“흐음.”

카밀라의 맑은 눈빛을 쳐다보던 카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눈빛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정보를 그냥 풀어준다고? 이렇게 쉽게?’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자신이 누군가에게 포박을 당한다면?

자신은 그 때 태양의 사제와 선행 스탯에 대한 정보를 이렇게 쉽게 알려줄 수 있을까?

‘나는 한 번 죽으면 죽었지. 절대 발설 안 해.’

히든 클래스가 왜 히든 클래스인가.

모든 정보가 철저히 숨겨진 직업이기 때문에 그리 불리는 것이다.

만약 히든 클래스가 지닌 특성과 스킬들의 효과 등이 만천하에 까발려진다면?

‘그게 무슨 히든 클래스야. 그냥 때리면 얻어맞는 동네북이지.’

미드 온라인에서는 공략법이 명확한 적만큼 좋은 먹잇감은 없다.

히든 클래스는 정보가 생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 클래스의 경우에는 같은 직업이라도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형태는 제각각이다.

왜냐하면 스킬 트리의 선택 폭 자체가 말도 안 되게 넓으니까.

‘게다가 혹시라도 주요 스킬이 파악되면 빠르게 다른 스킬을 배우고 숙련도를 올려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가능하지.’

하지만 히든 클래스는 그게 안 된다.

태양의 사제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히든 클래스는 직업 고유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한 마디로 전력이 들통 나는 순간 더 이상 활약하는 건 힘들다는 이야기.

‘사실 나도 타이탄 길드와의 전쟁을 통해 어느 정도 패가 까발려진 편이긴 한데…….’

압도적인 스탯의 차이가 있으니 큰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카밀라는?

‘대체 나의 뭘 믿고 이런 말을 해주는 거지?’

카이가 묘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못 미더우면 직업 특성을 스크린샷으로 찍어서 메일로 보내줄 수도 있어.”

“그래? 그럼 보내줘. 내 이메일 주소는…….”

“…….”

자신을 대놓고 못 믿겠다는 발언에 똥 씹은 표정이 된 카밀라가 입을 달싹였다.

그러자 잠시 후 메일이 도착할 때 울리는 알림이 울렸다.

“흐음…….”

그녀가 보낸 파일을 체크한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전의 대장장이와 그것이 지닌 특성은 사실이 맞아.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가 되질 않는다.

“대체 왜?”

카이의 질문에 카밀라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의 도움이 필요해. 언노운.”

“내 도움? 그게 갑자기 무슨…….”

“너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오지를 돌아다닐 리는 없어. 안 그래?”

“…….”

“드워프들의 대피처. 그곳을 찾고 있는 중이지?”

“흐음. 계속해 봐.”

그녀의 말에 흥미가 생긴 카이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재촉했다.

“TV에서 비르 평야 전투를 봤어. 엘프와 인어들이 너를 따르더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네가 아인종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드워프는 엘프, 인어와 함께 아인종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종족. 내 생각이 맞다면 네가 그들을 해칠 이유는 없어.”

“네 생각이 틀리다면?”

씨익.

카밀라가 입술을 쭈욱 올리며 시원하게 웃었다.

“망하는 거지, 뭐.”

“……진짜 대책 없네.”

헛웃음을 터트린 카이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철그렁!

매끈하게 잘린 신성 사슬이 빙판을 두드렸고, 카밀라는 해방된 팔과 어깨를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이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카밀라에게 물었다.

“축하해. 내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어. 그럼 이제 설명해 봐. 드워프들은 현재 어떤 상황이지?”

“그들은…… 후우.”

옅은 한숨을 내쉰 카밀라가 돌아서면서 턱짓을 했다.

“따라와. 직접 보는게 빠를 거야.”

***

카밀라를 따라 빙판을 걸어 나가자 얼마 안 있어 미로가 나왔다.

그녀는 그 미로가 익숙한 듯, 아주 자연스럽게 길을 찾아 걸어갔다.

누가보면 집 앞 골목길이라도 돌아다니는 듯한 모양새!

“여기야.”

미로를 걸은 지 10여 분 정도 걸었을까.

얼음으로 이루어진 문이 두 사람을 반겼다.

카밀라는 따라오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문을 힘껏 밀었다.

“환영해. 드워프들의 왕국…… 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조촐하지만, 현재는 이곳이 잉가르트야.”

“…….”

그녀를 따라 문으로 들어간 카이는 입을 쩍 벌리며 시야를 채우는 광경만 연신 쳐다봤다.

“이게…… 고작 대피소라고?”

그곳에는 얼음을 조각하여 만든 수많은 건축물과 시설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건물들은 하나같이 현실에서조차 쉽게 볼 수 없을 정도의 세련미를 갖춘 상태였다.

심지어 허공에는 램프들도 달려있어, 대피소는 정녕 크레바스 밑바닥에 위치한 장소가 맞는 것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밝았다.

‘드워프들의 손재주가 뛰어나다고는 익히 들었지만, 설마 일개 대피소로 세계적인 수도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씹어 먹을 정도일 줄이야…….’

그 웅장한 자태에 충격을 받은 카이는 계단 근처로 하나둘 몰려드는 드워프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드워프들이 왜 제작계의 마이스터, 마스터피스라고 불리는지를 알겠어. 그런 이들이라면 물론……!’

근엄한 콧수염과 깊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을 터!

하지만 카이의 예상이 깨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밀라 누나?”

“언니이이!”

“와아아! 카밀라 누나가 돌아왔다!”

우르르르.

계단 밑으로는 아기새들처럼 옹기종기 모인 꼬맹이들이 재잘거리며 연신 카밀라를 불렀다.

“워워, 다들 진정 좀 해. 손님 모셔온 거 안 보여?”

“손님?”

“게스트?”

“하지만 여긴 게스트하우스가 아닌데?”

“여기는 우리 대피소인데?”

“손님 안 받아요오!”

재잘재잘.

철과 불을 다루는, 근엄하고 무거운 이미지의 드워프 족 이미지가 단번에 박살 나는 순간!

카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제 허벅지 높이까지 올 것 같은 꼬맹이들을 가리켰다.

“카밀라. 이 꼬맹이들은?”

“당연한 걸 왜 물어. 드워프족의 아이들이지.”

“아아, 아이들…… 역시 그렇구나.”

무릇 어떤 종족이라도 아이들은 귀엽고 깜찍하기 마련.

카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기 드워프들을 쭈욱 둘러보았다.

“그런데…… 어른처럼 보이는 이들이 없어 보이는데?”

“성인 드워프들이라면…… 없어.”

카밀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룡이 잉가르트를 침공할 때 성인 드워프들은 무기를 들었어. 무력은 쥐뿔도 없는 그들이었지만, 치열한 저항 끝에 아이들을 비밀 통로로 보내는 데는 성공했지. 난 이 녀석들의 인솔자 역할을 맡게 되었고.”

“여성 드워프들은?”

“드워프족은 딱히 남녀 구분이 없어. 똑같이 망치를 들고 쇠를 두드리는 장인들뿐이지. 그래서 엄마, 아빠라는 구분도 개념만 있을 뿐 하는 일은 둘이 비슷해.”

“한 마디로 여자들도 무기를 들었다는 소리구나. 멋있네.”

“그리고는 사이좋게 사룡에게 끌려갔지. 젠장, 저주받을 드래곤 같으니.”

그녀의 투덜거림을 듣던 카이가 아차 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내가 이야기 안 했나? 사룡 걔 죽었는데.”

“뭐?! 갑자기 왜? 아니, 어떻게?!”

고개를 휙 돌린 카밀라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묻자, 카이는 검지손가락으로 제 가슴을 쿡쿡 찔렀다.

“서, 설마…… 죽였다고? 네가? 사룡을?”

“죽였어. 내가, 사룡을. 유저들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

“무, 물론이지. 하지만 어떻게…… 잉가르트를 침공했을 때의 사룡은 레벨이 550이었는데……? 혹시 55레벨이었나? 내가 잘못 봤나?”

카이는 혼란에 빠져 횡설수설하는 카밀라의 어깨를 흔들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됐고, 이제 말해 봐.”

“뭐, 뭘?”

“내가 널 어떻게 도와줘야 드워프들을 다시 되찾아올 수 있는지. 계획이 있으니 동아줄 달라고 징징거린 거 아냐?”

“도와달라고 말을 한 입장에서 이런 말하는 건 웃기지만…… 진짜 그들을 데려오는 게 가능해?”

“가능해. 왜냐하면 이제는 내가 있으니까.”

“…….”

꿀꺽.

카밀라의 잔뜩 긴장된 성대가 크게 한 번 출렁였다.

카이의 진중한 눈빛과 함께 공기를 타고 흘러나온 오만한 발언.

게다가 사룡을 죽일 정도의 강자라는 사실이 드러내는 위압감.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실은 그녀에게 희열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게…… 정점의 위압감.’

10억 분의 1.

미드 온라인 최정상을 차지한 남자가 드러내는 강렬한 자신감에 카밀라 또한 진지해졌다.

“아무래도…… 진심인 거 같네. 그렇다면 방법은 있어. 다만, 뮬딘 교의 정예들과 싸워야 할 거야. 자신 있어?”

“싸움?”

카이는 마치 재미있는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한 쪽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렸다.

“그건 내 전문이지.”

비록 사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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