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힐통령 196화
71장 몰락한 금속의 왕국(1)
이용 시간에 제한이 있는 뷔페에 가본 사람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한 그릇이라도 더, 맛있는 음식만으로 배를 채운다!’
지금 카이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5분이라는 제한적인 시간.
카이는 그 시간동안 시네라스에게 최대의 피해를 선물해줘야 했다.
‘우선 시네라스의 약점은 비늘이 덮고 있지 않은 곳이야.’
발바닥이나 손바닥, 눈동자처럼 피부를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곳이 놈의 약점.
게다가 현재 시네라스는 스킬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카이는 녀석의 눈동자에 박혀있던 검부터 거칠게 뽑아냈다.
촤아아아악!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피!
아무리 가상현실이라 해도, 검붉은 혈액이 자신의 몸을 뒤덮는 것은 끔찍한 경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는 이를 무시하며 제 왼손을 갈라진 놈의 눈동자 속으로 집어넣었다.
“업그레이드.”
스킬을 강화할 수 있는 스킬!
남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유니크 등급의 스킬을 사용한 카이는 주저없이 입을 열었다.
“푸른 역병!”
뽀그르르…… 콰아아아아아앙!
스킬의 사용과 동시에 놈의 눈동자에서는 폭죽을 터트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강화된 푸른 역병이 놈의 눈동자 내부에서부터 거칠게 폭발한 것이다.
침공 이벤트 때 몬스터를 충분히 죽였기에 역병 기운은 이미 최고치인 100을 모아둔 상태!
[……!]
시네라스가 제 입을 쩍 벌렸지만 그 사이에서는 그 어떤 비명이나 단어, 심지어는 음절 하나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전신의 세포가 모두 죽어버린 것 같은 엄청난 고통!
눈에다가 후추나 소금만 뿌려도 아픈 법이다.
그건 상처에다가 뿌려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다친 눈에다가 푸른 역병을 끼얹으면?’
푸른 역병은 후추나 소금 따위를 애들 장난으로 치부할 정도의 극독이다.
“사람의 눈에 존재하는 시신경은 뇌를 비롯해서 전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던데…… 드래곤은 과연 어떠려나?”
시네라스의 눈동자에서 폭발한 푸른 역병은 곧장 놈의 시신경과 혈관을 내달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몇 박자나 뒤에 튀어나오는 엄청난 비명!
시네라스가 그 큰 몸뚱이를 뒤흔들었다.
“웃차.”
가볍게 뒤로 물러난 카이는 땅에 착지하며 녀석을 살폈다.
[아파! 아파! 아프다! 어흐흑…… 아프단 말이다! 크아아아아악!!]
피 눈물을 줄줄 흘리던 시네라스가 그대로 쓰러졌다.
놈의 브레스 때문에 눈이 모두 녹아버린 봉우리에 몸을 눕힌 녀석은 바닥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아프겠지. 상상만 해도 아픈데, 직접 당하면 얼마나 아프겠어.”
카이는 자신이 행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쳤다.
“거, 체력 한 번 잘 빠지네.”
시네라스의 체력은 매우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빛의 군단과 듀라한의 폭발로 가한 피해는 겨우 2% 남짓이었지만,
카이의 공격은 이미 15%가 넘는 체력 피해를 입힌 상태였다.
‘거기다가 상태이상도 아주 예술처럼 제대로 들어갔어.’
상태이상 출혈과 중독, 그것들이 한데모인 시너지 효과까지!
“이대로면 5분만 가만히 놔둬도 죽겠는데?”
어차피 시네라스는 5분이 지나기 전까지는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그 말은 푸른 역병을 정화시킬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다는 뜻.
“해츨링이라 그런지, 드래곤이라는 네임밸류 치고는 싱거운 녀석이었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카이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네라스의 최후를 감상했다.
[크아아아아악!]
화르륵, 화르르르르륵!
시네라스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크게 부푼 가슴과 함께 브레스를 열심히 뱉어냈다.
‘소용 없어. 애초에 자신이 없다. 저런 거 맞고 죽을 자신이.’
물론 그건 카이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였다.
시네라스가 발악을 하면서 브레스를 뱉어낼 때마다, 빛의 전사 두세 명 정도는 꼭 이에 얻어맞아 소멸했다.
“체력 한 번 쭉쭉 빠져서 좋네. 그럼 이제 가볼까.”
본래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시네라스의 체력이 절반까지 떨어지는 것을 기다린 카이는 더 이상 상황을 방관하지 않았다.
‘아무리 해츨링이라고 하지만 드래곤이야. 변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여기서 끝낸다.’
화르르르르륵!
“웃차.”
카이는 곧장 허리를 숙여 자신에게 쏘아지는 브레스를 가볍게 피해냈다.
안타깝게도 카이의 뒤편에 있던 빛의 전사들 몇 명이 그대로 녹아 사라졌다.
“기습이라. 의도는 좋았지만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그의 행동에 대해 짤막한 평가를 내린 카이는 묵직하게 검을 휘둘렀다.
카이가 가장 먼저 노린 곳은 다름 아닌 날개.
혹시라도 고통에 적응한 녀석이 날아서 도망치지 않을까라는 고민 때문이었다.
서걱!
한 쌍의 날개가 종이처럼 부드럽게 잘려나갔다.
카이는 다 잡은 먹잇감을 상대로도 최선을 다하는 자.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한 시네라스는 카이의 무자비한 공격 앞에 걸레짝이 되어갔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힘없이 한쪽 눈만을 깜빡이는 시네라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는 카이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끝까지 자존심은 지키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 의지를 존중해 줄 수밖에.
***
사룡 시네라스.
수백 년 동안 이 세계의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면서, 본인이 공포 그 자체로 군림한 희대의 악룡.
서거걱 쿠우우웅!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받았을 사네라스의 두꺼운 목은 허무하게 땅에 떨어졌다.
“후우…….”
운이 좋아서 이겼다.
아닌 게 아니라, 놈이 해츨링이 아니라 성체였으면 이미 자신이 죽어도 일백 번은 고쳐죽었을 터.
게다가 푸른 역병을 놈의 몸 전체에 흘려보낸 것이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피곤한 표정을 짓던 카이의 눈앞으로 수많은 알림창이 눈에 들어왔다.
[설산의 악몽, 사룡 시네라스를 처치하셨습니다.]
[설산의 남매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하셨습니다.]
[스페셜 칭호, ‘해츨링 슬레이어‘를 획득하셨습니다.]
[스페셜 칭호, ‘최초의 용살자(龍殺者)‘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다.
그것도 아주 많이.
카이는 지친 표정으로 그 알림창을 쳐다보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만약 분신으로 뒤통수 치는 게 실패했다면…….”
시네라스가 조금 더 신중했다면, 죽은 것은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눈을 감은 카이는 가볍게 지난 전투를 복기해 보았다.
‘아직 강하다고 하기에는 멀었구나.’
자신의 부족함을 여실히 알 수 있는, 말 그대로 허접한 전투였다.
‘대형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는 신성 사슬에만 의존해왔는데…….’
시네라스처럼 머리가 있는 몬스터라면 신성 사슬을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할 터.
카이는 자신의 전투가 완벽하지 않다는 쓰라린 사실을 깨우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찜찜한 건 찜찜한 거고. 우선은 당장의 승리부터 좀 누려볼까.”
미처 읽지 못한 시스템 로그는 한참이나 더 남아 있었다.
[사룡 시네라스를 처치하여 던전 - 사룡의 둥지의 소유권을 획득하셨습니다.]
[시네라스는 드래곤 일족에서도 배척을 당하던 이단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드래곤들은 당신이 일족의 일원을 사냥했다는 것에 매우 큰 불쾌감을 느끼는 중입니다.]
[드래곤 일족과의 호감도가 대폭 하락했습니다.]
[사룡의 저주가 사라집니다.]
[저주의 낙인이 새겨져있던 129명의 인간들이 당신을 칭송하기 시작합니다.]
[선행이란 면전에서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받는 사람이 모르게 은밀히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헬릭은 당신이 구해낸 세계의 주민들을 보며 눈물을 글썽거립니다.]
[선행 스탯이 50개 상승하였습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로 선행 스탯이 25만큼 추가로 상승하였습니다.]
“후우…….”
카이는 노곤한 기분을 느꼈지만 스페셜 칭호들의 효과를 곧장 확인했다.
[해츨링 슬레이어]
등급 : 스페셜
내용 : 해츨링을 살해한 자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드래곤 공격시 30%의 추가 데미지.(이 효과는 칭호를 장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최초의 용살자(龍殺者)]
등급 : 스페셜
내용 : 최초로 드래곤 일족의 일원을 살해한 자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탯 +30, 사용자는 항시 드래곤 피어를 두르게 됨.(이 효과는 칭호를 장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흠. 무난한가.”
성체 드래곤을 잡았다면 해츨링 슬레이어가 아닌 드래곤 슬레이어를 받게 되었을 터.
‘그랬다면 스페셜 칭호의 효과도 더 좋았겠지.’
카이가 못내 아쉬움을 삼켰지만, 아쉬움은 말 그대로 아쉬움일 뿐이었다.
“뭐,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게다가 최초의 용살자 칭호는 그의 눈으로 보기에도 좋아보였다.
‘모든 스탯 +30에 드래곤 피어라.’
드래곤 피어.
상대방을 경직시키고 능력치를 감소시키는 능력…… 이라고 알고 있다.
‘나야 신화 등급의 직업 덕분에 드래곤 피어에 안 걸렸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제외한 모험가들은 이 주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
카이는 곧장 스탯을 분배하기 위해 상태창을 띄웠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343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67,400
신성력 : 137,400
능력치
힘 : 1396 체력 : 674
지능 : 551 민첩 : 554
신성 : 1374 위엄 : 501
선행 : 338
남은 스탯 : 115
독 저항력 +30
마법 저항력 +40%
자연친화력 +200
악마/언데드에게 주는 피해 +50%
“……와우.”
시네라스를 잡고 레벨 업을 대체 몇 번이나 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상태창을 보니 확실해졌다.
‘23레벨이나 했어?’
얼떨떨한 기분이 가장 먼저 들 정도.
아닌 게 아니라 시네라스는 레벨이 비해 굉장히 쉽게 잡은 편이었다.
난이도로 치자면 오히려 아오사 때가 훨씬 패턴도 복잡했고, 신경 쓸 구석도 많았다.
‘뭐, 그건 시네라스가 드래곤 우월주의에 찌들어서 날 너무 무시한 부분이 제일 크긴 했지만.’
그리고 자세히 생각해 보면 320레벨의 유저가 550레벨짜리 레이드 몬스터를 홀로 잡았는데 겨우 23레벨이 오른 것뿐이다.
“이제는 진짜 레벨 올리는 게 힘든가보네.”
확실히 최근 자신의 뒤를 잇고 있는 천상계 랭커들의 레벨 업 속도는 많이 느려진 상태.
물론 이번에 자신이 폭업을 이루면서 격차는 확 벌어졌다.
‘작정하고 두 달 정도는 사냥하지 않아도 여전히 랭킹 1위일 거 같은 예감이 드는데.’
카이는 레벨이 올라 얻은 모든 스탯을 체력에 투자했다.
“상대하는 몬스터들의 레벨이 올라가면서 공격력도 너무 강해졌어. 체력을 올려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스탯 분배를 마친 카이는 몇 남지 않은 빛의 전사들을 이끌고 시네라스의 시체에 다가갔다.
“자, 아무리 새끼라고는 하지만, 명색이 드래곤이니 거지는 아니겠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이번만큼은 카이도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 루팅.”
촤르르르르륵!
입을 달싹임과 동시에, 카이의 시야로는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루팅 목록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