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93화 (193/441)

# 193

힐통령 193화

70장. 설산(3)

“으으음…….”

루나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작은 소리를 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설산의 햇빛이 그녀의 단잠을 깨운 것이다.

몸을 뒤척이며 다시 한번 잠을 청하려던 그녀는 이내 눈을 번쩍 떴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모험가 신관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기절한 것이 기억이 났다.

루나는 자신을 침대에 눕혀준 그에게 상냥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거실로 나갔다.

“……없네.”

누군가 있었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평소보다 조금 더 따뜻한 온기만이 존재할 뿐.

거실은 조용했다.

‘그래.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저 험한 설산으로 들어가 사람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겠지.’

참 따뜻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루나는 자신의 욕심이 과했음을 탓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채앵, 챙, 채애앵!

“응?”

하지만 집 앞의 자그마한 공터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그녀의 몸을 멈춰 세웠다.

‘이 소리는?’

남동생이 있을 때는 자주 들어봤던 소리다.

동네 친구들이나 사냥꾼 아저씨들과 함께 검술 대결을 하는 소리였으니까.

‘설마 소라, 그 녀석이?’

루나는 황급히 현관문을 열고 공터를 확인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동생은 그 자리에 없었다.

“아, 일어나셨어요?”

“……모험가님?”

전날 밤 재워준 모험가와 그의 동료로 보이는 리자드맨 하나가 검을 나누고 있었을 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끝나니까요.”

루나는 뒤로 물린 카이가 검으로 블리자드를 겨누며 말했다.

“너무 느려. 네 장점은 두 자루의 곡도를 통해서 쉴 새 없이 적을 몰아치는 거잖아. 하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절대 지금부터 만날 적들을 몰아칠 수 없어.”

“롸…….”

블리자드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물론 그것도 잠시, 전사의 피를 타고난 그는 다시 한번 곡도를 빼 들고는 무릎을 낮추며 부족 특유의 전투 자세를 취했다.

“와 봐.”

카이가 검 끝을 까딱이며 도발하는 순간, 블리자드의 두 다리가 바닥을 박찼다.

화아아아악!

‘빨라!’

각자의 일을 하는 척하면서 두 사람의 대결을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은 물론, 루나까지 깜짝 놀랐다.

이제 레벨 250이 되는 블리자드는 주 스탯이 힘과 민첩에 치중되어있는 전사였다.

물론 숙련된 플레이어라면 레벨 230 정도만 되어도 블리자드를 상대할 수 있을 터.

‘그야 보유한 스킬들의 숫자가 다르니까.’

때문에 카이는 블리자드의 검술 등급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두 자루의 곡도를 다루는 유저에 대해선 들어본 적 없어.’

한마디로 블리자드를 상대하는 유저들은 생소한 무기를 상대하는 것과 다름없다.

블리자드의 강점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처음 상대하는 무기. 그리고 생각을 길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맹공!’

그것이야말로 블리자드가 지닌 최고의 강점!

카이는 블리자드가 최소 동레벨 유저 두 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성장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내 옆에 있어서는 그게 잘 안 될 수도 있어.’

블리자드와 자신의 레벨 차이는 이제 70에 가깝다.

게다가 선행 스탯으로 능력치가 뻥튀기된 자신은 레벨에 비해 훨씬 어려운 사냥터를 전전할 터.

‘혼자 수행을 보내는 것도 이야기는 해놨으니까.’

카이는 이번 대련이 끝나면 블리자드에게 홀로 사냥을 시킬 생각이었다.

그는 알아서 자신의 레벨에 맞는 사냥터를 찾아갈 것이고, 그곳에서 끝없는 싸움을 통해 강해질 것이다.

‘블리자드가 혹시 죽는다고 해도 내가 다시 소환시켜 주면 되고.’

이미 본인과도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블리자드는 자신이 이대로 있으면 카이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오히려 수행 이야기가 나왔을 때 뛸 듯이 기뻐했다.

채애앵!

매서운 곡도 공격의 사이, 찰나의 빈틈을 꿰뚫은 카이의 검날이 블리자드의 가슴을 두드렸다.

“빈틈 많아. 고쳐.”

끄덕끄덕.

카이가 검을 집어넣자 블리자드도 자신의 검집에 곡도를 잘 집어넣었다.

“…….”

어린아이를 학교에 처음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카이는 블리자드에게 골드 주머니와 식량을 챙겨주며 신신당부했다.

“정 배가 고프면 그걸로 밥이라도 좀 사먹고.”

끄덕끄덕.

“싸우기 전에는 꼭 상대방의 수준을 확인하고 덤벼야 된다.”

끄덕끄덕.

“그리고 하루 두 시간씩 국어 공부도 하고.”

“…….”

카이는 블리자드의 어깨를 강하게 두드렸다.

“강해져서 돌아와라.”

“크라라라!”

블리자드가 오른손으로 제 가슴을 쿵쿵! 짧게 끊어치며 함성을 터뜨렸다.

“기특한 녀석.”

어깨에 봇짐을 매달고 하산하는 녀석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카이가 피식 웃었다.

‘뭐, 그래도 계속 싸우다 보면 한 번쯤은 죽을 테니. 길어야 일주일 정도 뒤면 볼 수 있겠지.’

미믹은 굳이 딸려 보내지 않았다.

왜냐고?

신기한 능력을 지닌 몬스터를 발견할 경우, 흉내내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볍게 생각을 정리한 카이는 루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루나 님, 사룡에 대해서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루나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각오를 드러냈다.

***

‘어디 보자…….’

코르도를 뒤로한 카이는 설산의 깊은 곳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루나가 선물해 준 방한 마스크와 모자, 신발과 장갑은 추위를 막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설산이라. 에베레스트 같은 산을 기대하고 있었다만.’

눈보라가 몰아치는 순백의 세상은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카이는 얌전히 고개를 숙인 채 다리만 놀리며 사룡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다.

‘사룡 시네라스. 수백 년 전 패트릭에게 큰 상처를 입은 뒤 도망친 드래곤.’

시네라스가 패트릭의 검에 큰 상처를 입고 설산으로 도망쳐왔을 때, 녀석을 본 사람들은 많다고 한다.

물론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 죽고 없지만, 당시의 상황은 입에서 입으로.

마치 설화처럼 전해져 오고 있었다.

“하얀 눈보다도 깨끗한 순백의 비늘의 드래곤.”

루나는 근래 순백의 비늘을 지닌 용이 저 먼 봉우리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카이는 이 문장에서 시네라스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시네라스는 아마 화이트 드래곤이겠지.’

커뮤니티를 뒤져 조사한 결과, 미드 온라인의 드래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우선 비늘의 색에 관한 정보였다.

‘붉은 비늘은 화염을 사용하는 레드 드래곤, 푸른 비늘은 물을 사용하는 블루 드래곤, 검은 비늘은 암흑의 힘을 사용하는 블랙 드래곤…… 그렇다면 하얀 비늘은?’

이건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눈과 얼음을 관장하는 화이트 드래곤일 것이다.

‘사실 비늘 색이 어떻고는 별 상관이 없어.’

중요한 건 레벨이다.

‘아마 성체는 아닌 것 같아.’

해츨링과 성체, 그리고 고룡.

미드 온라인의 드래곤은 이렇게 세 개의 성장기로 분류되었다.

당연히 해츨링은 덩치도 작고, 마법도 미숙하며 지닌 힘이 약했다.

물론 드래곤은 딱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사기적인 종족.

성체가 된 드래곤은 국가에서도 신경을 쓸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그리고 마지막이 고룡.’

제국조차 무서워할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

‘커뮤니티에 따르면 이제 대륙에는 고룡이 없다고 들었는데.’

애초에 드래곤 자체가 몇 남아 있지 않았다는 설정이다.

성체 드래곤들은 다들 자신의 영역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추가적으로 입수한 정보.

‘그렇다는 말은…….’

사룡 시네라스는 해츨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애초에 드래곤 성체라면 아무리 패트릭이라고 할지라도 이길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든다.

“화이트 드래곤의 해츨링일 가능성이 크구나.”

정리를 마친 카이는 한참이나 산을 올랐다.

설산의 몬스터들도 눈보라 치는 곳에서는 습격을 하지 않는지 조우한 몬스터들도 없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가 걸려 봉우리의 정상을 차지한 카이는 함성을 터뜨렸다.

“하……!”

구름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이 제 발아래에 깔려 있는 아찔한 광경!

그것은 산의 정상을 차지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였다.

‘이곳 봉우리에 오면 시네라스의 둥지가 보인다고 했는데…….’

경치를 감상하며 여운에 잠기는 것도 잠시.

카이는 몸을 돌려 시네라스의 둥지를 찾기 시작했다.

“저곳인가?”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눈의 산맥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

그곳의 정상에는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은 커다란 굴이 보였다.

동시에 카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저기까지 가려면 최소 며칠은 걷기만 해야겠는데?’

루나의 남동생은 코르도 마을 제일의 전사라고 했다.

그리고 평생을 설산에서 살았으니 자신보다 산을 훨씬 잘 탈 것이고, 이틀 정도 먼저 출발했으니 이미 한참이나 앞에 있을 것이다.

‘이대로는 못 쫓아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걷기 대회에 단 한 번도 참여해 보지 않은 카이였다.

아무리 게임 속이라고 해도, 며칠 동안 한 곳을 향해 걷는다는 건 끔찍한 일.

‘뭔가 방법이…….’

카이가 턱을 괴고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알림창이 떠올랐다.

[블리자드의 사냥으로 7,102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아.”

수행을 떠난 블리자드가 마침내 첫 번째 사냥감을 무사히 사냥한 것이다.

‘녀석, 레벨에 맞는 사냥터를 찾았나 본데? 역시 내 펫들은 하나같이 기특하다니까.’

팔불출처럼 흐뭇한 표정을 짓던 카이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 혹시…….”

카이는 다시 한번 몸을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한참이나 무언가를 찾던 그는 제법 가까운 봉우리와 봉우리의 사이.

이름 모를 협곡에서 열심히 찾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있다! 와이번 둥지!’

카이는 미믹의 흉내내기를 통해 와이번으로 변신, 시네라스의 둥지까지 단숨에 날아갈 생각이었다.

‘킹 샌드웜으로 변신해서 갈 수도 있지만…….’

그건 무조건 산사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방법이다.

설산 아래에 마을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

카이는 자신의 목적지를 변경했다.

***

끼룩, 끼룩! 까아아악!

“…….”

와이번이 왜 갈매기 소리를 내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카이는 그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자 미소를 지었다.

‘대충 방향만 보고 온 건데, 이쪽이 맞나 보네.’

봉우리에서 쳐다본 와이번의 둥지에는 어른 와이번이 두 마리밖에 없었다.

‘레벨이 몇인지는 모르겠지만. 와이번 두 마리라면 문제없지.’

허공을 날아다니는 몬스터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한 대비책도 끝났다.

“업그레이드, 신성 사슬.”

철그렁.

두꺼운 사슬을 손에 쥔 카이는 살금살금 협곡을 지나갔다.

‘있다.’

협곡에 위치한 절벽.

와이번의 둥지는 그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위를 날아다니며 경계를 서는 것이 한 마리.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둥지를 감시 중.’

카이는 지체 없이 사슬을 붕붕 돌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자신이 눈여겨본 위치에 경계를 서던 와이번이 날아드는 순간.

카이의 왼손에서 두꺼운 신성 사슬이 포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콰드드드득!

“끼라라락!”

사슬에 목을 휘감긴 와이번이 비명을 터뜨렸다.

“흐읍!”

카이는 두 다리로 바닥을 강하게 밟으며 양손으로 사슬을 당겼다.

펄럭, 펄럭!

와이번은 곧장 날개를 펼쳐 이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날갯짓이 생각보다 센데?’

마치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좀처럼 녀석과의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이에 카이는 황급히 중얼거렸다.

“업그레이드, 추적하는 빛의 화살!”

[추적하는 빛의 화살의 크기가 커지고, 관통력과 데미지가 증가합니다.]

많이는 필요 없다.

단 두 개, 그 정도면 충분했다.

피이이잉!

날카로운 파공음을 터뜨리며 쏘아진 빛의 화살은 와이번의 두꺼운 날갯죽지를 단번에 꿰뚫었다.

“끼루루루룩!”

허공을 부유하던 생물의 날개가 부러지면 다가올 미래는 하나뿐이다.

“으랴아압!”

추락이다.

카이가 젖먹던 힘까지 쏟아내 신성 사슬을 당기자, 죽어도 당겨지지 않던 것이 당겨지기 시작했다.

‘온다!’

사슬의 끝에 묶인 와이번은 열심히 날갯짓을 하며 발악했지만, 구멍 뚫린 날개는 큰 도움이 되지를 못하는 모양.

순식간에 끌려온 녀석을 기다리던 건 차디찬 협곡의 바닥이었다.

쿠우우웅!

“후우. 데미지가 상당한데?”

레벨 310짜리 와이번은 허공에서 추락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절반이나 날아갔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놈은 현재 기절 상태!

“일단 미믹으로 이 녀석 흉내내기를 좀 해야 하는데…….”

현재 미믹의 레벨은 와이번보다 훨씬 낮아서 흉내내기 스킬이 실패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

“뭐, 상관없나.”

꽁꽁!

와이번 한 마리를 성공적으로 속박한 카이는 미믹을 소환했다.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면 되겠지.”

카이는 신성력을 머금은 손으로 와이번의 날개를 잘 문질러줬다.

혹시라도 미믹이 날개 뚫린 와이번에 스킬을 쓰면 정말 큰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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