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58화 (158/441)

# 158

힐통령 158화

60장 태양이 떠오르는 곳 (4)

[어쩔 생각인가?]

체란티아가 물었다.

“교황의 빈 자리를 추기경과 주교들이 차지했다고 들었습니다.”

짤막하게 대꾸한 카이의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러니 그들을 먼저 만나야겠지요.”

예배실을 지나친 카이는 곧장 본단의 내부 지역을 향했다.

‘우선 그들의 위치부터 알아내야 해. 그렇다면 역시 가장 편한 방법은…….’

주위를 둘러보던 카이는 마침 낯익은 통을 들고 있는 사제를 발견했다.

카이가 곧장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이봐요.”

“음? 아! 손이 크신 형제님 아니십니까.”

헌금통을 들고 있던 사제가 활짝 웃으며 그를 반겼다.

이에 미소로 응답한 카이가 물었다.

“주교와 추기경분들을 만나 뵙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됩니까?”

“하하. 죄송합니다만 형제님. 그분들은 만나고 싶다고 일개 사제가 함부로 만날 수 있는 분들이 아니기…….”

“친근한 형제.”

낮게 중얼거린 카이가 다시 한번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지 말고. 좀 알고 싶다니까.”

“으…… 으음. 그건 함부로 말씀드리면 안 되는데…….”

헌금통을 들고 있던 사제의 동공이 축소되었다가 확대되기를 반복했다.

친근한 형제 스킬로 호감도가 단번에 50이나 상승했기 때문.

심지어 그 전에도 카이는 1골드라는 거금을 헌금으로 넣으며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상태였다.

“끄응. 사실 저도 말단이라 잘 모릅니다만…… 우선 저 안쪽으로 들어가셔서…….”

결국 술술 정보를 말해주는 헌금통 사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짤막하게 감사를 전한 카이는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본단의 안쪽으로 들어갈 때마다 시선은 집중되었지만,

친근한 형제 스킬의 효과 때문인지 그가 그 자리에 있는데 의구심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만약 그런 이가 있다면…….

“형제님,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태양신을 믿는 놈이 아니라는 소리겠지.”

카이는 다짜고짜 자신의 어깨를 붙잡으며 제지하는 남자를 쳐다봤다.

‘교단의 성기사.’

신의 검과 창이며, 사제와 신도들을 지킬 방패가 되어야 할 자.

하지만 태양신을 믿지도 않는 자가 성기사의 갑옷을 입고 본단 근무를 서고 있다니.

‘코미디도 아니고.’

주위를 스윽 둘러본 카이는 자신이 본단의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는 인기척도 쉽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카이의 고민이 사라진 것도 그때였다.

촤르르륵!

성기사의 손을 뿌리치는 것과 동시에 허공으로 튀어나간 사슬은 그의 목을 휘감았다.

바로 인상을 찡그리며 역정을 내는 성기사.

“감히 신성한 교단에……!”

“그걸 아는 놈이 여기 들어와 있는 거냐.”

성기사가 빠르게 검을 뽑으며 휘둘렀지만, 카이는 굳이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촤르르륵.

그저 사슬을 강하게 당길 뿐.

그것만으로도 성기사는 몸의 균형을 잃어버렸고, 당연히 그의 검은 애꿎은 허공을 갈랐다.

“흐읍.”

성기사의 몸이 자신에게 끌려오자, 카이는 그 힘을 그대로 이용해 성기사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업어치기!

“커어억……!”

무거운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채로, 중력과 함께 바닥에 처박힌 성기사.

카이는 끙끙거리는 그의 손목을 강하게 밟아 검을 떨어뜨렸다.

“묻는 말에 대답해. 어디 소속이지?”

“…….”

눈을 부릅뜬 채 입을 꾹 다물어버린 성기사.

카이가 몇 번이나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런, 언제 다른 사제나 성기사들이 올지 모르는데…….’

조급한 마음에 카이가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여태까지 뒷짐만 지고 있던 체란티아가 지나가듯 말을 꺼냈다.

[내가 고문하는 법을 좀 아는데. 배워보겠나?]

“…….”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한 카이가 그런 말을 왜 이제야 하냐는 눈빛을 보냈다.

그 표정을 힐긋 쳐다본 체란티아가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안 물어봤잖나.]

***

“끄흐으윽…… 모라크 님을 따라왔습니다……!”

카이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체란티아를 쳐다봤다.

“……이거 효과 죽이네요.”

[훗. 내가 왜 안식의 체란티아라고 불렸는지 아는가?]

“그야 안식. 환자들을 마음 편히 쉬게 만들어줘서 그리 불린 것 아닙니까?”

[아닐세. 적들에게 제발 죽여달라고, 제발 안식을 취하게 해달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일세.]

“…….”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섭고 흉흉한 수식어!

살짝 질린 표정을 지은 카이는 고개를 흔들며 성기사의 멱살을 흔들었다.

“그래서. 모라크가 누군데?”

“끄윽…… 그, 그건…….”

“아직도 버티시겠다?”

성기사가 머뭇거리자 카이는 다시 한번 체란티아의 가르침을 행하려 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고 있던 체란티아가 다급히 이를 제지했다.

[잠깐, 멈추게!]

“……예? 왜요?”

카이가 못내 아쉬운 표정을 드러내며 묻자, 체란티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모라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자 눈이 충혈되며 피가 흘러나올 조짐이 보이고 있어. 강력한 금제가 걸려 있는 것이 분명하네.]

“금제요?”

[적에게 특정 키워드를 말하려 하면 시전자를 서서히 죽이는 강력한 저주일세. 하지만 이 사악한 술법은 뮬딘 교에서나 쓰던 것이거늘…….]

“지금 뮬딘 교라고 하셨습니까?”

카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성기사를 쳐다봤다.

‘뮬딘 교의 잔당이 태양교 본단에 들어와 있다고?’

헬릭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구름을 치며 울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뮬딘 교 쪽에서 또 작당 모의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지나칠 수는 없었다.

성기사의 멱살을 끌어당긴 카이가 다정하게 물었다.

“그럼 그 키워드라는 걸 피해서 말해봐. 지금 모라크라는 녀석은 어디에 있지?”

***

“어디로 가시는가? 몰리온과 버나드는 대체 어디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거지?”

라피스와 점점 멀어져가는 마차에 타고 있던 알버트 교황이 물었다.

이에 모라크는 싱긋 웃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추기경분들께서는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몇 중이나 보안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하시며 최대한 인적이 드문 장소를 고르셨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가보시면 아실 겁니다. 아, 물론 안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하 직속의 성기사분들도 따라오고 계시잖습니까.”

“…….”

모라크의 거듭된 설득에 알버트 교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하지만 이자, 모라크의 말도 옳다.’

현재 자신과 모라크가 타고 있는 마차의 뒤로는, 외출을 하겠다는 말에 따라붙은 교황 직속 성기사단이 함께하고 있었다.

대대로 교황만을 따르는, 태양교의 정예 성기사단인 태양 기사단.

그뿐만 아니라 태양교의 이단심판관들 다섯도 함께 따라붙어 자신을 보호하는 중이었다.

그러한 전력이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에 절로 안도감이 느껴질 정도.

“오, 거의 다 왔습니다.”

그들을 태운 마차는 가파른 절벽 사이로 들어갔다.

절벽과 절벽 사이의 협소한 공간은 마차 두 대 정도가 겨우 들어갈 만큼 좁았다.

“내리시지요. 교황 성하.”

“……몰디온과 버나드가 이런 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는 소리인가?”

“예.”

모라크의 설명에 알버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마차에서 내렸다.

‘최근 들어 두 사람은 고급스럽고 깨끗한 것만을 추구했다. 그것이 태양교의 경건함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면서 말이지…….’

한마디로 이렇게 누추하고 먼지 많은 장소를 좋아할 리는 없다는 소리.

‘대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에…….’

알버트는 성기사와 이단 심판관들의 보호를 받으며 협곡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어디까지 걸어가야 하나?”

“다 왔습니다.”

고개를 돌리며 씨익 미소를 짓는 모라크.

동시에 앞쪽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비명 소리는?”

“시작 되었나 보군요.”

느긋한 음성을 늘어놓은 모라크는 휘적휘적 걸어나갔다.

“교황 성하.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합니다.”

“태양 기사단, 요인 보호 진형을 취한다. 헬릭을 뵙는 한이 있더라도 성하를 지켜라.”

“태양이 우리의 앞길을 비추기를!”

이단심판관과 성기사들이 각자의 신성력으로 스스로를 강화하며 알버트를 보호했다.

천천히 모라크를 따라간 그들은 곧이어 커다란 공터에 도착했다.

공터에 들어선 알버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 아니? 몰리온! 버나드!”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은 겨우 숨만 붙은 채 바닥을 기어 다녔다.

알버트 교황을 알아본 그들이 떨리는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했다.

“거어억…… 교, 교황 성하…….”

“제발 사, 살려…….”

“큭, 뭐래. 배신이나 하는 이교도 새끼들이.”

콰드득!

거대한 검이 그대로 몰디온의 등을 관통하며 땅에 박혔고, 몰디온의 몸은 폴리곤이 되어 흩어졌다.

“모, 몰디온!”

아무리 부패한 친우라고는 하나, 그들은 20년이 넘게 동고동락한 사이였다.

그런 이가 허무하게 죽어 나가자 알버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아…….”

“교황 성하!”

“이익!”

황급히 그를 부축한 성기사들의 앞으로, 뮬딘 교의 성기사들이 걸어 나왔다.

‘마, 많다.’

‘어떻게 뮬딘 교의 성기사들이 라피스의 근처까지 당도할 수 있던 거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뮬딘 교의 군대!

성기사와 이단 심판관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미 그들이 들어온 통로는 물론, 협곡의 위쪽까지 뮬딘 교의 군세가 가득 들어찬 상황.

모라크는 간지러운지 관자놀이를 긁적이더니 대충 손을 휘저었다.

“정리하세요. 아, 교황은 놔두고.”

그 말 한마디로 그 자리에 있는 수많은 성기사와 이단 심판관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감히!”

알버트 교황은 과연 태양교의 교황다운 막대한 신성력을 뿜어내며 그들을 수호했지만…….

“고작 30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뭘 어쩌시려고.”

모라크의 비웃음과 함께 전달된 조롱은 곧 현실이 되었다.

“아아, 아아…….”

알버트 교황은 자신의 가호 아래에서도 하나, 둘 죽어 나가는 헬릭의 어린 양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푸욱!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성기사의 가슴에 검이 박히고 쓰러지자,

알버트 교황은 조용히 자리에 주저앉아 이 자리에서 죽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했다.

“헬릭이시여. 부디 당신의 어린 양들을 인도하소서…….”

기도를 마친 알버트 교황은 단단한 눈빛을 드러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당당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뮬딘 교에서 라피스 근처로 군대를 보낼 생각을 하다니. 배짱이 크군.”

“아무래도 이쪽 두 사람의 공이 컸…… 어이쿠. 맞다. 이젠 한 사람이었지. 하하.”

모라크가 버나드의 손을 꾹꾹 밟으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알버트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모라크를 쳐다봤다.

“……자네는 처음부터 우리 교단 사람이 아니었군.”

“맞아. 그런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잡신을 믿을 정도로 비위가 좋지는 못해서.”

모라크가 흉신악살과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자, 알버트 교황이 그를 꾸짖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죽겠지. 하지만 태양교의 저력은 고작 교황과 추기경들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빛과 정의는 다시 한번 그대들을 이 대륙에서 몰아낼 것이야.”

“음? 죽이긴 누가 누굴 죽인다고 그래?”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음을 터뜨린 모라크는 품속에서 조그마한 목함을 꺼내 열었다.

그곳에 들어 있는 건 마치 칠흑을 덧칠한 것처럼 검게 일렁이는 조그마한 구슬.

“어둠의 정수라는 거다. 우리 교단이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낸, 뮬딘 님의 힘과 가장 흡사한 형태의 에너지지.”

“으윽…… 보기만 해도 괴롭군.”

알버트는 어둠의 정수에서 수많은 부정적 감정을 느꼈다.

슬픔, 분노, 고통, 우울, 두려움, 질투…….

한 번에 받아들이기에도 힘든 수십 가지의 부정적 감정들이 한데 섞인 모양새.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알버트 교황의 두 귀와 코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크, 자극이 너무 강하셨나 보네.”

목함을 닫은 모라크가 천천히 알버트 교황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베이거스에 이어 두 번째로 뮬딘의 힘을 몸에 받아들일 이가 탄생하는 날.

‘게다가 두 번째 적합자는 무려…… 태양교의 교황.’

가장 까다롭고 짜증 나는 세력의 머리를 자신들의 장기말로 쓸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당신은 어둠의 정수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뮬딘의 충실한 종이자, 그분의 뜻을 행하는 최고의 사제로 말이지요.”

“그런…….”

자신의 믿음이 타인에 의해 조작되어 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알버트의 동공이 흔들렸다.

‘뮬딘 교의 개가 될 바에는, 차라리 내가 스스로…….’

자살은 헬릭이 금기하는 행위였지만, 자신은 교황이었다.

절대 뮬딘 교의 장기말로 쓰여서는 안 될 인물.

알버트가 혀를 깨물려는 순간, 모라크의 손이 그의 턱을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모라크는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렇게 좋은 날에 죽으려고 하시면 안 되지요. 교황 성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턱을 붙잡힌 알버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한 줄기의 음성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네 제삿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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