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50화 (150/441)

# 150

힐통령 150화

58장 전쟁이 끝나고 (3)

뿌린 대로 거둔다.

평소 행실이 어떠냐에 따라 그 결과가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유명한 속담이다.

“뿌린 대로…… 뿌린 대로? 흠. 뿌린 대로인가…….”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리던 카이는 왕궁의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자네로군. 보고의 열람은 끝났나?”

고개를 까딱이며 아는 체를 하는 바체.

이어서 카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고를 열람했다면 기뻐야 정상일 텐데, 얼굴이 왜 그리 어둡지?”

“바체 님.”

평소 들어보지 못한 카이의 진지한 음성.

예삿일이 아니라 생각한 바체도 덩달아 목소리를 깔았다.

“무슨 일이지? 혹시 보고에 어떠한 문제라도…….”

“제 평소 행실이 어떤가요?”

“음?”

예상치 못한 질문에 바체의 커다란 눈이 깜빡여졌다.

‘카이의 평소 행실이라면…….’

그리 가깝지는 않은 사이다.

하지만 이미 두 번이나 함께 전장을 나서본 적이 있는 만큼, 모르는 사이도 아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바체는 최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주었다.

“착하고 정의로운 속물.”

“음…… 그렇군요.”

찜찜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카이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말을 이었다.

“태양신은 절 버리셨나 봐요.”

“그게 무슨?”

“그 양반한테는 두 번 다시 기도 안 할 거예요. 그럼 다음에 뵐게요.”

“…….”

힘 없는 걸음을 내딛는 카이의 모습을 쳐다본 바체는 고개만 갸웃거렸다.

***

“아! 이래서 니체가 그런 말을 했던 거구나.”

신은 죽었다고.

그의 명언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 카이는 스탯 창을 띄웠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285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45,900

신성력 : 112,200

능력치

힘 : 1056 체력 : 484

지능 : 376 민첩 : 344

신성 : 1127 위엄 : 326

선행 : 193

독 저항력 +30

마법 저항력 +40%

자연친화력 +200

악마/언데드에게 주는 피해 +50%

드디어 1000스탯을 넘은 힘!

뮬딘 교와의 전쟁에서 획득한 160개의 스탯 중, 80개를 투자한 결과였다.

“……거기에 힘 상승의 영약에서 나온 10스탯을 추가.”

똥 씹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카이의 입에서 의문이 흘러나왔다.

“음? 그런데 스탯들이 왜 더 올라가 있어.”

눈만 껌뻑이며 그 원인을 찾던 카이는 제 손뼉을 치며 외쳤다.

“아! 스페셜 칭호!”

미처 확인하지 못한 두 개의 칭호!

카이는 곧장 칭호 도감을 펼쳐 이를 확인했다.

[최초의 지휘관]

등급 : 스페셜

내용 : 최초로 NPC 1,500명 이상을 이끈 자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탯 +15, 휘하의 모든 아군 능력치를 상승.(이 효과는 칭호를 장비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보물 사냥꾼]

등급 : 스페셜

내용 : 최초로 국보급 보물이 놓인 곳을 방문한 자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탯 +10, 주변의 보물을 탐지할 수 있음.(이 효과는 칭호를 장비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모든 스탯 25개에…… 달려있는 효과들도 쏠쏠한데?”

휘하의 모든 아군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는 건 미믹이나 블리자드도 포함이 될 터.

‘게다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완성된단 말이지.’

코로나에게 의뢰해 놓은 장비.

바로 스켈레톤 나이트들을 만들어내는 장비가 곧 완성될 것이다.

‘그 녀석들을 전부 듀라한으로 서임시킨다면?’

웃기지도 않지만, 사제인 주제에 언데드 대군을 이끌 수도 있다는 소리!

“으음. 주변의 보물을 탐지할 수 있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 발동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있어서 나쁠 건 없겠지.”

힘 상승의 영약으로 노리던 잭팟은 불발로 끝났지만, 스페셜 칭호들의 효과가 쓰린 속을 달래주었다.

“자, 그럼 이제 다음 일을 진행해 볼까.”

왕궁을 나선 카이는 메시지 창을 띄웠다.

‘카이와 언노운이 동일인이라는건 전쟁에 참여한 길드 마스터들이라면 다 알겠지.’

그들의 레벨도 제법 올랐고, 당연히 랭킹도 확 올랐다.

그런데 그들과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경험치를 획득한 유저가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이다.

‘그들의 입에서 소문이 퍼질거라면, 그냥 깔끔하게 이쪽에서 말하는 게 낫지.’

더불어 자신이 버그 플레이어라는 오명을 씻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릴 것인지는 이미 정해두었다.

[아리스]

오크 로드 토벌대에서 언젠가 인터뷰를 한 번 해주겠다고 약속한 여자다.

카이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헤엑, 헤엑!”

양쪽으로 휘날리는 두 갈래의 분홍색 머리.

키는 157㎝ 정도 될까 싶은 소녀가 수도 인근의 숲을 힘차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대박이야, 대박이야!’

그녀의 이름은 아리스.

현재 상태는 매우 신남!

그 이유는 간단했다.

‘드디어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어!’

커뮤니티에는 하루에도 최소 수만 개의 인터뷰가 올라온다.

하지만 그 모든 인터뷰들 중에서, 현재 가장 핫한 플레이어인 언노운에 대한 인터뷰는 없다.

‘그 말은 언노운 단독 인터뷰는 내가 최초라는 소리야.’

수년 간 다양한 게임의 BJ로 활동한 그녀였지만, 이 정도의 특종은 그녀로써도 처음이었다.

“헤에엑. 야, 약속시간까지는 아직 20분 남았으니까…… 흐우. 여유롭네.”

숨을 고르던 그녀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자리에 도착했다.

‘언노운은 성격이 차갑고 칼 같기도 유명해. 혹시라도 내가 늦으면 짜증을 내면서 인터뷰를 취소할지도 몰라.’

모든 정보가 베일에 쌓여 있는 언노운이었지만, 여태까지 걸어온 행보는 그 성격을 보여줬다.

‘마음에 안 드는 애들은 마구마구 죽여버려. 그리고 혼자서 레벨 높은 보스 몬스터도 마구마구 잡아버려. 어쩌면 소문대로 성질 급하고, 포악한 사람일지도.’

인터뷰를 앞둔 긴장 때문인지, 그 무서운 언노운을 만난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아리스는 타오르는 갈증에 연신 물만 들이켰다.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언노운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성격인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이 오지 않는 한적한 사냥터를 접선 장소로 고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일단 물어봐야 할 내용이…….”

하나, 둘…….

언노운과의 인터뷰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147개의 질문들을 정리한 메모를 읽으며, 아리스는 헤실헤실 웃었다.

‘꿈만 같아.’

몇 달 동안 연락이 없기에 자신을 잊어버렸나 싶어 시무룩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갑자기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

‘영상을 보니 이번에 커다란 전쟁을 치루는 것 같던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최근 언노운의 행보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이전에는 영상을 올릴 때만 모습을 드러냈지만,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미디어에 노출되었다.

‘검은 벌 사냥 때부터 이번에 엘프들을 이끌고 치루는 전쟁까지……. 큼직한 사건들을 몰고 다니는 남자야. 아, 전쟁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건 꼭 물어봐야지.’

그녀가 몇 분 남지 않은 인터뷰 시간에 잔뜩 두근거리고 있을 때, 뒤쪽에서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 오셨구나!’

밝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린 아리스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항상 특종의 냄새를 맡고 다니는……?”

“오, 진짜네?”

“맞다니까. 내가 얘 방송을 하루이틀 봤었냐?”

낄낄거리면서 나타난 두 명의 남성.

입고 있는 장비들이 하나같이 번쩍거리는 것이, 초보자는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입가에 걸친 비열한 미소를 보니, 좋은 의도를 품고 다가온 것도 아닌 듯했다.

‘레, 레벨이 엄청 높아 보여.’

본능적으로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아리스가 뒷걸음질을 치며 물었다.

“누, 누구세요?”

“아아, 우리는 네 방송 팬인데. 맨날 말 걸어도 대꾸도 안 해주더라고.”

“심지어 저번에 차단까지 당하니까 억울하더라.”

“차단이요……? 제가요?”

아리스는 자신의 방송 시청자들을 함부로 차단하지 않았다.

‘내가 차단하는 경우는 두 가지뿐이야.’

하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방송의 물을 흐리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음담패설로 방송의 격 자체를 떨어트리는 사람들이었다.

“니, 닉네임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혹시 오해가 있었던 거라면…….”

“응? 난 제트.”

“나는 그랑인데. 기억할라나 모르겠네.”

“제, 제트랑 그랑!”

아리스의 커다란 눈망울에 분기가 치솟았다.

‘맨날 나한테 야한 농담이나 하고, 안 받아주면 욕까지 했던 진상 양아치들이잖아!’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게다가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레벨이 높다는 것을 떵떵거리며 자랑했다.

다른 시청자들에게 사냥터에서 만나면 죽는다고 협박을 서슴지 않을 정도.

침을 꿀꺽 삼킨 아리스는 그들을 향해 똑 부러지게 말했다.

“차, 차단은 못 풀어드려요. 두 분 다 제 방송의 규칙을 어기셨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내 자유 아닌가?”

“거, 무슨 소련도 아니고 말이야. 말 몇 마디 좀 한 게 마음에 안 든다고 사람을 차단시키면 쓰나?”

“게다가 우리 두 사람이 후원한 금액 합치면 150만 원이 넘거든?”

“돈은 돌려드릴게요. 돌려드릴 테니…….”

“에이, 누가 돈 받자고 이러나. 예쁘고 귀여운 포즈로 같이 사진 몇 장 찍어주면 물러날게.”

“거기다가 우리가 준비한 예쁜 옷들도 좀 입어줘야겠어.”

“흐흐흐.”

변태 같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두 명의 양아치들.

아리스는 접선 장소로 이런 사냥터를 고른 언노운을 원망했다.

‘씨잉. 왜 이런 곳을 접선 장소로 골라서!’

음유시인인데다가 레벨이 고작 120인 그녀는 전투력이 거의 전무!

딱 봐도 근접 전투 계열로 보이는 눈앞의 남자들을 이길 자신은 없었다.

결국 그녀는 언노운과의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로그아웃!”

“어허, 그렇게는 안 되지.”

서걱!

순식간에 뿜어져 나온 제트의 검이 천으로 된 아리스의 셔츠를 살짝 찢었다.

[전투 상태에서는 로그아웃을 하실 수 없습니다.]

“이, 이런…….”

“어라, 지금 포즈 좋은데?”

“그대로 가만히 있어. 우선 사진 한 장 찍자.”

카메라 앱을 활성화시킨 그랄이 아리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때 조용한 숲속에 퍼진 한 줄기의 음성이 세 사람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봐, 거기 남자 두 명. 내가 좋은 말을 하나 해줄까?”

“뭐, 뭐야.”

“이런 곳에 사람이?”

황급히 몸을 돌리며 주변을 살피는 제트와 그랑.

잠시 후, 우거진 나무의 그림자 밑에서 한 명의 사제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오늘 내가 직접 배운 교훈은,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거였지.”

“……사제?”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등장한 유저를 확인한 제트와 그랑이 긴장을 풀면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웬 병신 같은 새끼 하나 때문에 쫄았잖아.”

“그러니까. 수도 바로 옆 사냥터라서 수도 병사나 기사들도 종종 순찰을 도니까.”

곧장 카이에게 다가온 제트가 움찔 몸을 떨었다.

‘이놈 이거. 입고 있는 사제복이 평범하지는 않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급스러운 질감의 사제복이었다.

최소 유니크 등급은 되어 보일 듯한 아이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제트와 그랄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 녀석, 레벨 좀 있어 보이는데…….’

‘야, 그래봤자 사제 아니겠어? 그리고 가슴 쪽에 길드 마크도 없어.’

‘그 말은 죽여도 뒤탈은 없다는 뜻이겠네.’

빠르게 결론을 내린 제트가 카이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툭툭 밀었다.

“어이,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

“저기요. 사제치고는 레벨도 좀 높아보이시는데, 개죽음 당하지 말고 가던 길 가세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가 약속 해놓고 약속 장소에 늦게 나타나는 놈들이야.”

“……?”

지금 상황과는 관련이 없는, 뜬금없는 말을 꺼낸 사제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내가 선약이 있거든. 그런데 약속 시간까지 한 3분 정도 남았어.”

“……?”

“갑자기 뭔 개소리를…….”

“요컨데, 내 눈앞에서 좀 사라지라는 소리지.”

쿠웅, 쿠웅!

“무, 무슨!”

“이것들 뭐야!”

제트와 그랑은 순식간에 뒤에서 나타나 자신들을 바닥에 눕힌 존재들을 쳐다봤다.

“자, 잠깐만. 뭐야 이거…….”

“이거…… 이거……?”

“크르륵.”

칠흑의 원한 세트를 입고 있는 블랙 리자드맨 한 마리와.

텅텅텅!

자신의 투구를 연신 바닥에 두드리는 듀라한 한 마리.

“언노운의…….”

“소환수?!”

제트와 그랑은 경악한 눈빛으로 눈앞의 사제를 쳐다봤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카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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