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힐통령 149화
58장 전쟁이 끝나고 (2)
다른 길드 마스터들의 요구도 대동소이했다.
그들이 원하던 것도 결국은 땅.
결과적으로 땅을 얻긴 했지만, 카이처럼 엄청난 조건의 땅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영지를 일구기엔 너무나도 작은 땅이다.’
‘그렇다고 입지가 좋은 것도 아니야.’
‘사냥터나 몇 개 더 개발, 관리하는 정도에서 그치겠군.’
‘뭐, 그래도 저주받은 땅을 받은 언노운보다는 나으니까.’
바라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스타트를 끊은 언노운이 꽝을 뽑아서 그런지.
마스터들은 대부분으로 만족스러워 표정을 지었다.
“모두 잘 싸워주었다. 자네들이 전쟁에서 쌓은 공적치는 왕궁의 보고에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군대에 참여한 모든 모험가들에게 30골드씩 포상을 내리도록 하지.”
고작 몇 시간 동안 전투를 치루고 300만원씩 챙긴 유저들!
그 말을 끝으로 마스터들을 물린 베오르크는 홀로 남은 카이에게 말했다.
“자네의 공적치가 압도적으로 높더군. 그 공을 치하하는 의미로 특별히 왕궁 보고의 열람을 허락하지. 공적치가 허락하는 선에서 어떤 물건을 골라도 좋다.”
왕궁 보고의 열람!
여태껏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한 라시온 왕국의 보물 창고에 입장할 권한이 생긴 것이었다.
카이는 절로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의 성은에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알현실을 나온 카이를 반갑게 맞이한 건 여섯 명의 마스터들이었다.
“언노운. 이번 전쟁의 영상에 대해 조율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물론 자네의 무대였고, 자네의 활약이 뛰어나긴 했지만 우리의 얼굴도 나왔으니까.”
“영상을 혼자 편집해서 개인 계정으로 올릴 생각은 아니겠지?”
카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영상을 통해 얻는 수입은 정확히 N분의 1로 나누겠습니다. 대신 편집과 협상, 유통은 제가 맡도록 하죠.”
“잠깐. 언노운 네가 편집을 하는 것보단 우리 골리앗에게 맡기는 게 나을 텐데? 헐리우드의 유명 감독인 제레미 코발트가 이끄는 편집부의 영상은 그야말로 영화나 다름없지.”
“협상은 우리 길드에 맡기면 되겠군. NBA 과정을 수료한 마케터들이 영업부에 수두룩하게 포진되어 있다. 그들이라면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낼 거야.”
마스터들의 설득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카이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그토록 대단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왜 저 한 사람보다 못합니까?”
“…….”
“…….”
그 질문에 마스터들이 입을 꾹 다물어졌다.
실제로 언노운의 야심작, ‘달빛과 함께 춤을’은 벌써 3주 동안이나 동영상 게시판 랭킹 1위의 자리를 꽉 잡은 채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스터들이 그토록 떠들어대는 잘난 영상들의 성적을 최단 기간에 따라잡은 상태.
반론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 다들 허락하신 걸로 알고 영상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모두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캐서린만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난 47도에서 찍었을 때가 제일 예쁘게 나오거든? 그거 꼭 지켜. 못 지키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그 의견도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대화가 끝나자 시종들이 다가와 마스터들을 궁 밖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자리에 남은 설은영은 카이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것으로 은혜는 확실하게 갚았어요.”
“예, 깔끔하게 갚으셨습니다. 다시 한 번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그럼 더 높은 무대에서 봐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설은영은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시종을 따라갔다.
‘더 높은 무대인가.’
기꺼이 가줄 의향이 있다.
아니, 최고의 자리를 가리고 싶다면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쌓인 일이 산더미 같으니까.”
그것들을 모두 처리한 후에야 별들의 전쟁에 끼어들 수 있을 터.
‘그럼 우선 하나 해결하러 가볼까.’
카이는 자신을 기다리는 시종에게 입을 열었다.
“안내해 주세요. 왕궁의 보고로.”
***
라시온 왕궁의 보고.
유저는 물론이고, 귀족 NPC에게조차 쉽게 공개되지 않는 미지의 장소이다.
“들어가십시오. 입장 제한 시간은 한 시간. 카이 님의 공적치는 12,000점이니 3구역까지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구역이 나뉘어져 있는 겁니까?”
“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물건의 가치는 상승하나, 그만큼 지불해야 할 공적치의 값도 커집니다. 모쪼록 마음에 드는 물건을 얻을 수 있으시기를.”
입구를 지키던 두 명의 기사가 옆으로 물러서자, 함께 따라온 일곱 명의 마법사가 각자 주문을 외웠다.
‘대체 잠금 마법이 몇 개나 설정되어 있는 거야?’
특별히 암호화된 마법이 일곱 개나 해제되자, 그 때서야 보고의 문은 열렸다.
‘제한 시간은 한 시간.’
천천히 내부로 들어선 카이의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띠링!
[라시온 왕궁의 보고를 모험가 중 최초로 방문하셨습니다.]
[스페셜 칭호, ‘보물 사냥꾼’을 획득했습니다.]
“아, 스페셜 칭호.”
그러 고보니 최초의 지휘관이라는 칭호도 얻었는데 효과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우선 확인은 나중에.’
지금은 제한 시간이 걸려있는 장소를 수색하는 중이니까.
보고의 1구역을 스윽 둘러본 카이는 제 앞의 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이템 감정.”
[얼어붙은 서리의 검]
등급 : 레어
공격력 321~362
힘 +30 민첩 +20
*빙결 효과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공격 시 5% 확률로 적을 빙결 상태로 만듭니다.
얼음을 다루던 대마도사가 심심풀이로 만들어낸 무기.
다만,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내구도가 약한 편이다.
착용 제한 : 레벨 300이상. 힘 700이상.
내구도 41/53
필요 공적치 : 1,200
“1구역인데 벌써 이런 아이템이 나온다고?”
어이가 없어진 카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변의 아이템들을 닥치는대로 감정하던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최소 레어 등급. 효과도 끝내주게 좋아. 좋은데…….’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씩 붙어 있다.
이를테면 얼어붙은 서리의 검은 내구도가 문제.
그리고 미쳐버린 도적의 단검은 일정 확률로 사용자의 생명력이 감소된다.
‘장비들의 품질은 뛰어나지만…… 막상 쓰기에는 조금 미묘한 구석이 있어.’
그 사실을 깨달은 카이는 다른 아이템들은 감정도 하지 않고, 다음 구역으로 넘어갔다.
‘뭐, 1구역에도 단점이 없는 보물이 숨어 있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카이는 2구역에 놓여 있던 검 하나를 들어 올렸다.
“아이템 감정.”
[몰아치는 광풍의 롱소드]
등급 : 레어
공격력 347~392
힘 +32 민첩 +21 체력 +10
*광풍 효과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치명타 공격 시, 광풍이 불어 주변의 모든 적들에게 추가 피해를 줍니다.
폭풍의 언덕에서 완성되었다고 전해지는 드워프의 무구.
희대의 보물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검이다.
착용 제한 : 레벨 280이상, 힘 700이상.
내구도 87/118
필요 공적치 : 5,420
“호오.”
1구역의 무구들이 품고 있던 단점은 2구역에선 엿볼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레어 아이템 중에서 최상위 등급이 모여 있는 구역!
‘그렇다면 3구역은?’
자신이 입장할 수 있는 건 3구역까지.
카이는 망설이지 않고 3구역으로 이동했다.
“오오…….”
아이템들이 뿜어내는 빛부터 다르다!
보는 즉시 감이 온 카이는 무기들을 감정하기 시작했다.
“역시.”
최소 레어. 그래고 최대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까지 존재하는 구역!
다만, 유니크 장비의 경우에는 1구역처럼 미묘한 구석이 하나씩 존재했다.
‘유니크 장비이지만 단점이 있는 물건이 3구역에 있고. 4구역에는 흠 잡을 데 없는 유니크 장비가 있겠지. 그렇다면 5구역은……?’
왕궁의 보고는 총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곳에 위치한 아이템들들의 등급은 단 하나뿐.
“레전더리 아이템이겠지.”
레전더리 아이템에는 단점 따위가 있을 리 없으니 6구역이 없는 것이리라.
‘혹시 구경 정도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카이가 호기심삼아 4구역으로 향하는 문 앞에 다가가자, 시스템이 그를 제지했다.
[권한이 없습니다.]
[필요 공적치가 부족합니다.]
“구경도 안 되나 보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카이는 3구역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1구역, 2구역까지 둘러보기엔 시간이 촉박해.’
있을지도 모르는 보물을 그곳에서 찾는 것보단, 3구역에서 쓸 만한 아이템을 찾는 것이 빠르다.
게다가 3구역에 놓인 물품은 1, 2구역에 있는 것보다 개수가 적으니 조사 시간도 단축된다.
40분 가량 아이템들을 감정하고 다닌 카이의 귓가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감정 스킬의 레벨이 고급 2레벨이 되었습니다.]
“……개꿀.”
수백개가 넘어가는 유니크 아이템을 감정한 결과물!
‘이제 슬슬 결단을 내려야겠지.’
카이는 제 눈앞에 놓인 두 개의 물건을 쳐다봤다.
[저주받은 귀족의 망토]
등급 : 유니크
방어력 : 812
마법 방어력 : 781
힘 +25 체력 +25 위엄 +50
착용 시 독에 중독되어 초당 1,500의 피해를 입습니다.
기울어가는 가문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악마와 계약을 한 귀족이 즐겨 입던 망토. 끝내 악마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그는 지금도 지옥의 대지를 걷고 있습니다.
착용 제한 : 레벨 250 이상.
내구도 70/100
필요 공적치 : 10,800
[힘 상승의 영약]
등급 : 유니크
복용 시 80%의 확률로 힘이 10 증가합니다.
복용 시 15%의 확률로 힘이 100 증가합니다.
복용 시 5%의 확률로 힘이 1,000 증가합니다.
필요 공적치 : 11,450
“으으으…….”
카이가 비틀린 신음을 뱉어냈다.
‘매사에 긍정적이며, 품행이 올바르고 성실한 미남, 미녀들만이 겪는다는 선택 장애!’
이어서 두 개의 물건을 몇 번이고 쳐다본 카이는 한숨을 뱉어냈다.
“남은 시간은 이제 겨우 15분인데…….”
자신이 보유한 공적치는 12,000.
두 가지 물품 중 하나밖에 사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망토를 사면 당장 전력이 올라갈 테지만…….’
카이의 눈이 영약으로 돌아갔다.
‘5%면 그리 낮은 수치도 아니잖아?’
낮은 수치 맞다.
하지만 대박의 꿈에 눈이 먼 카이의 머리는 이상한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뭐. 15% 확률에 걸려서 힘이 100개만 올라가도 압도적인 이득이야. 꽝이나 다름없는 80% 확률에 걸린다면? 힘 10개는 땅을 파도 안 나오니 그것도 이득이지. 그러다가 잭팟이라도 터지면…….’
힘 스탯 1,000개 상승!
이 말도 안 되는 수치에 카이는 연신 침만 꿀꺽꿀꺽 삼켰다.
평상시의 카이가 봤다면 정신 차리라고 뒷통수를 한 대 때린 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며 한 대를 더 때릴 만한 모습!
“으으으. 미치겠네.”
물론 스스로도 망토를 고르는 것이 훨씬 안정적으로 스펙을 올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내 운빨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야.’
엄밀히 말하자면, 하는 일마다 연달아 홈런을 치기 일쑤.
게다가 지난번에 스킬 북 도박을 할 때도 대박을 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혹시…… 헬릭이 날 몰래 도와주고 있는 것 아닐까?”
옆에 헬릭이 있었다면 뭔 개소리냐고 소리칠 법한 생각!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듯, 선택 장애가 찾아왔을 때 해결법은 단 하나뿐이다.
‘지, 지를까?’
눈 꼭 감고 지르는 것.
수중에 있는 돈을 털어내서 더 이상 물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
“카이 님의 공적치를 바탕으로 힘 상승의 영약 반출을 허용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쿠웅!
“…….”
굳게 닫히는 보고의 문.
다시 생성되는 일곱 개의 잠금 마법.
그리고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여져 있는 조그마한 병 하나.
카이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대,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저주받은 귀족의 망토는 그만한 단점이 있더라도, 경매장에 올리면 최소 수백만 원은 받을 수 있는 물건이다.
게다가 포이즌 마스터인 자신이라면 독 데미지를 무시할 수 있는 것이 당연지사!
‘힘 스탯 25개, 체력 스탯 25개, 위엄 스탯 50개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반짝!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약 한 병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건 행운 아이템으로 행운을 올려도 소용없어.’
애초에 확률이 고정되어 있는 아이템이다. 행운 아이템을 덕지덕지 입는다고 5%의 확률이 7%가 되지는 않는다는 소리.
벌컥벌컥!
카이는 우선 성수 한 병을 비워 입 안에 신성력을 가득 머금었다.
그런 뒤, 복도에 무릎을 꿇은 그는 눈을 꼬옥 감고 헬릭에게 기도했다.
“헬릭님. 전직할 때 이후로 처음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저는 잘 지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얘기하자면,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제가 평소에 헬릭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있었냐면…….”
뜬금없이 시작된 고해성사!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던 기사와 마법사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살다살다 이런 또라이는 처음 보는군.’
‘폐하께서 정말 이런 놈한테 왕궁 보고의 열람을 허락하셨다고?’
‘하는 짓 보면 사제인 것 같은데…….’
‘저걸 신앙심이 깊다고 봐야하나? 태양교의 미래가 몹시 걱정되는 날이다.’
그들의 생각이 어떻든, 묵묵하게 기도를 가장한 구걸을 마친 카이는 병따개를 열었다.
[힘 상승의 영약을 복용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물음에, 카이는 말 행동으로 답했다.
벌컥벌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