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00화 (100/441)

# 100

힐통령 100화

41장. 라이넬의 던전(3)

휘몰이의 버스 기사들이 회의를 나누는 동안 카이는 얌전히 기다렸다.

‘벌써 30분이나 지났어.’

이미 대기 명령을 받은 신입 길드원들의 눈빛은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흔들리는 중이었다.

그만큼 마음이 불안하다는 증거다.

‘뭐, 불안할 만도 하지. 이렇게 결론이 안 나오는 경우는 하나밖에 없으니까.’

도저히 견적이 안 뽑힐 때, 한마디로 답이 없는 경우!

‘사실 30분이나 회의하는 것도 조금 웃기네.’

지금 이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적들과 싸우는 것만이 유일했다.

이미 플로어를 한 차례 훑어본 트레져헌터와 레인저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니까.

카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신입 길드원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는 중이었다.

“저희는 어떻게 될까요?”

“음…… 회의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우선 우리는 이 층에 대기하게 될걸?”

“만약 아래층으로 내려간 분들이 모두 사망하시게 되면…….”

“끄응. 그때는 진짜 골치 아파지는 거지.”

“그럼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죠?”

“버스 타면서 올린 경험치를 다 뱉어내게 생겼네요.”

“더 안 좋죠. 죽으면 스킬 숙련도까지 같이 떨어지니까요.”

한숨을 푹푹 쉬는 신입 길드원들.

그들 중 한 유저가 혼자 동떨어진 채 뭔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카이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사제님은 이제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 말입니까?”

“네. 아무래도 저희보다 레벨이 높으시니까 경험이 더 많으실 것 아니에요.”

“음…….”

카이는 어느새 자신을 어미 새 바라보듯 쳐다보는 이들의 눈빛에 부담감을 느꼈다.

하지만 성격상 한 번 받은 질문에 대충 답해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 생각도 여러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휘몰이의 레벨 높으신 분들이 따로 내려가서 공략을 해보겠다고 하시겠죠. 신입분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으니까.”

“그럼 혹시 공략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그건 이 던전이 몇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다음 층이 마지막이라고 해도 공략의 성공 여부는 불투명했다.

‘리빙 아머, 그리고 듀라한까지는 어떻게든 가능하다 치더라도…….’

라이넬.

녀석에 대한 정보는 무엇하나 공개된 것이 없으니까.

“자자, 회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때마침 길고 긴 회의가 끝났는지 길드원을 이끈 흑곰이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신입들은 이 자리에서 대기합니다. 이 아래층으로는 저희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니 함께하는 건 너무 위험하거든요. 그리고 만약 저희가 실패하게 되면…… 하하.”

말끝을 흐리던 흑곰은 고개를 꾸벅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망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은 길드 차원에서 책임지고 복구를 해드리겠습니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저희의 준비 부족이 확실하니까요. 죄송합니다.”

“에이, 사과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

“맞아요. 저희들 버스 태워주시려다 이렇게 된 건데…… 오히려 저희가 죄송하죠.”

“혹시 포션 부족하신 분 계시면 저한테 받아가세요.”

휘몰이 길드원들 사이에서 대화가 오고갈 때, 카이는 조용히 흑곰에게 다가갔다.

“혹시 저도 아래층으로 같이 내려갈 수 있을까요?”

“음? 카이 님께서요?”

흑곰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의 옆에 있던 마법사 하나가 짜증을 부렸다.

“저기요. 레벨 100도 못 찍은 분이 끼어들 때가 아닙니다. 시키는 대로 좀 합시다. 예?”

대번에 흑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의 입에서 굵직한 호통이 튀어나왔다.

“코밋! 카이 님은 길드의 손님이다. 네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발터와 내 입장이 뭐가 되지?”

“죄, 죄송해요.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사과는 내가 아니라 카이 님에게 해야지.”

“……그쪽한테도 미안하게 됐습니다.”

코밋의 사과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카이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제가 딜러나 탱커라면 이런 말을 드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힐러는 레벨이 낮아도 도움이 될 수는 있으니까요.”

“흠, 확실히 97레벨이라고는 하지만 후방에서 힐과 버프는 줄 수 있겠네요.”

휘몰이 길드의 버스를 받아 경험치를 90% 올린 카이의 레벨은 어느새 97이 되어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해보던 흑곰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정식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시죠.”

“부탁은요. 오히려 제가 부탁드렸던 일인걸요.”

“만약 사망하시게 되면 그 피해에 관해선 저희 길드에서 무조건적으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흑곰이 아래층 공략을 준비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향하자, 카이가 슬쩍 발터를 쳐다봤다.

그러자 빠르게 다가온 발터는 제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하다. 원래 코밋 형이 저런 성격이 아닌데 상황이 너무 꼬여서 좀 예민해졌나 봐. 내가 대신 사과할게.”

“됐어. 본인한테 직접 사과도 들었으니까. 그것보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뭐든 말해줄게.”

“넌 이 길드에 왜 들어온 거냐?”

카이의 뜬금없는 질문에 눈을 깜빡인 발터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어…… 무슨 뜻이냐?”

“아, 오해할까봐 미리 말해두는데 길드를 욕하는 건 아니야. 진짜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래.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들었는지 말이야. 넌 예전에 게임 할 때도 만년 솔플 유저였잖아.”

“그때야 그랬지. 음…… 사실 미드 온라인에서도 딱히 길드에 가입할 생각은 없었는데…….”

멀어져가는 흑곰의 등을 쳐다본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함께 게임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랑 게임을 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런 의문이 들어서.”

“함께 게임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라…….”

발터의 말을 조용히 입안에서 굴려보던 카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예상대로 발터는 국내 랭킹 4위라는 수식어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흑곰을 보고 따라온 건가.’

그 녀석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애초에 소문보다는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것만 믿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떤 느낌인데?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하는 게임은.”

“좋아. 진짜 재밌어.”

발터가 바보처럼 흐흐거리며 웃었다.

“길드에 가입하기 전에도 미드 온라인은 재미있었지. 게임에서 친해진 사람들이랑 파티도 하고. 던전도 다니고…… 그런데 뭔가 2% 부족했거든? 근데 길드에 들고나니까 그 부분이 채워진 기분이야.”

“대체 어떤 부분이?”

“음…… 대충 설명하자면 게임에서도 집이 생긴 기분이라고 할까?”

“집?”

“어. 내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집. 조금 낯간지럽지만, 길드 아지트가 그렇게 느껴지네.”

그의 해맑은 미소를 지켜보던 카이가 피식 웃었다.

“많이 변했네. 너도.”

“너만 하겠냐. 그러고 보니 이번이 두 번째네. 네가 변하는 모습을 보는 거.”

“두 번째라고?”

카이의 질문에 발터의 눈빛이 깊어졌다.

“첫 번째는 석우 녀석들한테 뒤통수 얻어맞았을 때였지. 솔직히 그때 난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마저 들더라. 마냥 사람 좋은 호구 놈이 그걸 계기로 경계심, 의심이라는 걸 조금은 깨달았으면 했으니까. 솔직히 넌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았어.”

“말도 마라. 덕분에 요즘은 아주 의심병 환자 수준이라니까.”

“그래도 NPC 상대로는 아직 호구짓 하고 다니겠지, 뭐.”

“글쎄, 너 내가 요즘 플레이하는 거 보면 그런 소리 못 할 텐데.”

“킥킥, 하여튼 이번에 너 동창회 나왔을 때 나 되게 놀랐다. 마지막으로 봤을 땐 진짜 사람한테 눈곱만큼도 관심 없다는 눈을 하고 있었는데…… 이젠 안 그렇더라고. 그래서 안심되더라.”

“내가 그랬었나?”

어깨를 으쓱거린 카이는 자신의 지난날들을 회상했다.

‘……확실히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파티를 안 했었지.’

전직을 해야 하는 10레벨까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솔플로 진행이 가능했다.

물론 사제로 전직을 하게 된 순간 솔플은 불가능해졌다.

결국 며칠이나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을 하던 그는 어쩔 수 없이 파티에 가입했었다.

그렇게 조금씩, 다른 사람들과 파티를 꾸리며 카이는 인간 불신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제법 재미있었지.’

결과적으로 미드 온라인이라는 게임을 통해 마음의 병이 크게 나아진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 석우 패거리와의 관계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것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사람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데 갑자기 그런 걸 왜 묻는데?”

대화 주제가 언제 여기까지 넘어왔는지 깨달은 발터가 물었다.

이에 카이는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그냥.”

자신의 친구에게 휘몰이 길드란 어떤 존재인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여기서 싹 다 죽으면 이 녀석도 제법 슬퍼하겠어.’

카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생각보다 많이 바빠질 것 같았다.

***

“배우신 스킬이 어떻게 되세요?”

“아, 힐이랑 블레스, 원기 회복의 샘이랑…….”

세 명의 사제에게 호출을 받은 카이는 그들이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해줬다.

“음? 헤이스트 안 배우셨어요?”

“순간 치유는요?”

“마나 릴리즈랑 천사의 가호, 매스 힐도 안 배우셨어요?”

빈약한 카이의 스킬 트리에 난색을 보이는 사제들.

카이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까먹고 교단에 안 가서 스킬들이 많이 부족하네요.”

“아니…… 배우신 스킬들을 보니 60레벨 이후로는 교단을 아예 안 가신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허…….”

난색을 보이는 사제들이었지만, 그들은 빠르게 답을 도출해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럼 메인 탱커들이랑 딜러들은 저희 세 명이서 커버칠게요. 대신 카이 님은 스킬들 아끼고 계시다가 진짜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게 힐이랑 버프 넣어주세요. 저희 회복량이 모자를 수가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음…… 스킬 쓸 때는 어그로 튈 수 있으니까 조심하시고요.”

“어그로 수치 항상 확인하세요.”

카이를 아예 초보자 취급하는 사제들이었지만, 카이는 되려 만족했다.

‘나한테 관심 안 가져주면 오히려 잘 된 거지, 뭐.’

그만큼 자신의 활동 영역이 늘어나는 셈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출발합시다.”

여태까지와는 남다른 각오를 얼굴 위로 드러낸 흑곰이 계단을 내려갔다.

[라이넬의 던전 지하 5층에 입장하셨습니다.]

“크윽…… 몬스터들 레벨이 또 올라갔네.”

“리빙 아머들은 레벨 120짜리까지 보이는데?”

“버스를 태우긴 개뿔. 내 사냥터로 쓰기에도 힘든 곳이구만.”

“몬스터 색칠 놀이하는 거 보소. 그냥 숫자랑 색깔만 바꿔놨네.”

“던전 이거 알고 보면 겁나 대충 만든 거 아니야?”

휘몰이 길드원들의 투덜거림을 듣던 흑곰이 명령했다.

“탱커들은 우선 한 무리만 몰아와 봐. 한 번 잡아보고 견적 뽑는다.”

“예!”

순식간에 세 마리의 리빙 아머들을 끌고 오는 탱커.

“어그로 확보 완료!”

그가 어그로를 단단히 붙드는 순간, 딜러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크윽, 졸라 아파!”

“어우, 피 쭉쭉 까진다!”

“사제들, 정신 똑바로 차려! 힐 타이밍 어긋나면 앞선 무너지는 거 순식간이다!”

물론 그런 주의를 듣지 않아도, 이미 카이를 제외한 세 명의 사제들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위층 돌 때보다 훨씬 힘들잖아……?’

‘아니, 탱커들한테는 계속해서 힐을 넣고 있는데…….’

‘이거 왜 이렇게 안 차? 힐 고장 났나?’

물론 모든 결과에는 이유가 있는 법!

약점 파악 스킬을 통해 그 이유를 발견한 레인저가 비명을 내질렀다.

“야이, 미친! 이 새끼들 치유 감소랑 치명타 증가 패시브 들고 있어!”

“호에엑?! 치, 치감이라고?”

“거기다가 치명타 증가까지?”

“아니, 몬스터를 뭐 이렇게 엿 같이 만들어놨어?!”

순식간에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들!

그때 카이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터뜨리는 비명이 들렸다.

“이런, 헬프! 힐 좀 주세요!”

발터였다.

‘리빙 아머 두 마리의 광역기를 동시에 맞았구나. 심지어 한 대는 치명타까지 떴다.’

순식간에 30%까지 떨어진 발터의 생명력!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른 사제들은 모두 앞선의 다른 탱커들을 돌보고 있는 중이었다.

‘내 차례다.’

카이의 양손에서 제각각 다른 스킬들이 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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