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힐통령 099화
41장. 라이넬의 던전(2)
“탱커들은 어그로 확보해!”
“어그로 확보!”
“어그로 확보!”
“딜러들 일점사 준비!”
콰아아아앙!
휘몰이 길드의 던전 공략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확실히 버스를 받으니까 편하긴 편하네. 경험치도 그럭저럭 잘 오르고.’
어째서 일반 유저들이 길드 지원을 받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솔플을 하는 것보다 경험치 획득량은 많이 적다지만, 애초에 솔플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레벨보다 높은 몬스터를 빠르게 사냥하는 건 카이 정도나 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플레이 방식!
‘뭐, 버스 타면서 내가 할 일은 없겠네.’
가끔씩 발터 녀석에게 힐을 넣어주고, 버프를 넣어주는 것.
카이가 던전에 들어와서 한 일은 그게 전부였다.
‘민수 녀석이 이 녀석들을 좀 챙겨주라고 하긴 했지만…….’
자신의 옆에 위치한 휘몰이 길드의 신입 길드원들.
하지만 똑같이 버스를 받는 입장에서 자신이 뭔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가끔씩 미아가 되지는 않는지 돌아봐 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듀라한!”
“저놈이 플로어 가디언이다!”
“사전에 보고받은 대로 레벨이 125로군. 한 마리면 굉장히 쉽겠어.”
1층의 리빙 아머들은 금새 정리되었고, 계단을 지키고 있던 듀라한만이 남은 상태!
녀석은 필드에서도 네임드 몬스터로 취급되는 강력한 엘리트 몬스터.
하지만 휘몰이 길드원의 집중 포화를 맞은 녀석은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하고 녹아버렸다.
[이, 비겁한…… 인간놈들…… 어둠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
“터진다!”
“대비해!”
“앞선 단단히 막아!”
‘터지나 보네.’
듀라한은 사망할 때 크게 폭발하며 자신의 갑옷과 무기 조각을 사방으로 날리는 패턴을 지니고 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전리품을 가지러 다가가는 순간, 압도적인 공격력의 폭발에 휘말려 사망하게 된다.
물론 듀라한의 패턴 정도는 훤히 꿰고 있는 버스 기사들이었기에, 방심하지 않고 폭발에 대비했다.
하지만 듀라한의 사망 폭발로 튀어나오는 갑옷과 무기 조각의 방향은 언제나 랜덤!
대비를 한다고 해도 파편을 100% 막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나올 수도 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콰아아아앙!
“놓쳤다!”
“크윽, 파편 두 개! 뒤로 날아갑니다!”
“젠장, 뒤쪽엔 신입 녀석들이……!”
휘몰이 길드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고, 카이는 짜증 난 표정으로 앞을 쳐다봤다.
‘왜 나한테 날아오는 거야.’
재수없는 놈은 길 가다가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지갑이 하수구로 빠진다더니!
가볍게 혀를 찬 카이는 곧장 몸을 움직였다.
“어어? 어어!”
동시에 당황한 음성을 토해내는 카이!
현재 그의 모습은 황급히 무기 파편을 피하려다가 발이 꼬인 사람처럼 보였다.
쿠웅!
결국 꼬인 두 다리 때문에 바닥에 넘어지는 카이.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듀라한의 무기 파편 두 조각을 교묘하게 피해냈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버스 기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운이 좋았군.”
“발터가 데려온 친구라고 했나? 반사 신경이 쓸만한데 그래.”
“오히려 다리가 꼬인 게 다행이야.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이긴 하지만.”
‘다행히 의심을 받지는 않았는데…….’
카이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첫 번째 기사가 쓰러졌습니다. 라이넬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두고 공략대원들이 이런저런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사냥을 계속하자는 것.
카이는 슬며시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이거 왜 이래. 갑자기 또 불안해지네…….’
1층에서부터 이렇게 알 수 없는 일이 생기다니!
더군다나 요즘 들어 안 좋은 쪽으로의 예상은 귀신 같은 적중률을 자랑하는 카이였다.
‘에이, 기분 탓이겠지. 안전하게 버스만 타고 있는데 잘못될 게 뭐가 있겠어.’
카이는 애써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
“음? 뭔가 좀 이상한데?”
1층의 계단을 지키고 있던 듀라한을 처치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휘몰이 길드.
그들은 곧장 지하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선두에 서 있던 흑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정말 이상해.’
고작 한 층을 내려왔을 뿐인데, 던전의 분위기 자체가 바뀌었다.
“뭔가 으스스한데요?”
“적당히 리빙 아머들이 나오는 던전이 아니었나?”
다른 사람들도 이상함을 느끼기는 매한가지.
벽의 색깔은 물론, 던전의 구조부터가 달라졌다.
1층은 어느 던전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갈색 토벽과 단단한 흙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하 1층의 벽은 푸른빛이 감도는 벽돌로 이루어져 있었고, 중간중간에 수상한 문양이 새겨진 기둥이 서 있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사냥 한 바퀴 돌아보자.”
잠시 고민을 하던 흑곰이 결정을 내렸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기껏해야 100레벨 이전의 사냥터에서 발견된 던전이다.
비록 지금 이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휘몰이 길드의 정예 길드원들은 아니라지만,
다들 레벨이 최소 120은 넘는 이들.
당연히 던전 클리어에 애를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음?”
“리빙 아머다!”
“그런데 레벨의 상태가……?”
지하 1층으로 내려온 뒤 처음 만나는 몬스터들.
하지만 그들의 레벨을 확인하는 순간, 일행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위층이랑 차이가 제법 심한데?’
‘원래 플로어 형식의 던전이 위층 아래층 구분이 심하다지만…….’
무려 5레벨이나 상승한 리빙 아머들의 레벨!
당연히 사냥을 하는 데에도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허억. 흑곰 형님. 이거 지원 요청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원 요청이라…….”
2층의 모든 리빙 아머는 물론, 듀라한까지 처치한 흑곰의 얼굴 위로 고민이 떠올랐다.
‘아직까지는 할 만한데, 굳이 지원요청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신입 길드원들의 레벨도 쭉쭉 오르는 중이었다.
그 기분 좋은 흐름을 깨기도 싫었을뿐더러, 길드의 믿음직스러운 모습 또한 보여줘야 했다.
길드에 신입들이 들어오면 버스를 태워주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까.
“몇 층 더 내려가 보고, 무리라고 판단되면 그때 지원을 요청한다.”
“뭐, 그 정도라면 별문제는 없겠네요.”
“여차하면 위층으로 도망쳐도 되니까요.”
그들이 나름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신입 길드원 쪽은 잔뜩 신이 난 상태였다.
“우와, 길드 버스가 좋다고 말만 들어봤는데 진짜 잘 오르네요.”
“던전 들어온 지 이제 겨우 네 시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경험치가 거의 60%나 올랐어요.”
“이러다가 오늘 레벨 업도 하겠는데요?”
잔뜩 상기된 표정의 신입 길드원들.
앞으로 함께 게임을 플레이해 나갈 그들은 빠르게 친해졌다.
그들을 챙겨달라는 부탁을 받았건만, 오히려 카이가 겉도는 느낌!
홀로 무리에서 동떨어진 카이는 혼자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번에도 듀라한을 잡으니까 메시지가 떴어.’
[두 번째 기사가 쓰러졌습니다. 라이넬의 의식이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런 메시지가 뜨지는 않을 텐데…….”
마음 같아서는 던전의 내부를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살펴보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아무래도 버스 받는 입장에서는 개인행동을 할 수가 없으니까.’
아쉬운 마음을 삼킨 카이는 다시 출발하는 일행을 빠르게 따라갔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5개 획득했습니다.]
라이넬의 던전 지하 4층.
출현하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수급되는 경험치 폭 또한 높아졌다.
‘그런데 이 층이 한계일 것 같은데?’
버스를 태워주는 휘몰이 길드원들에게선 더 이상 여유가 보이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리빙 아머들의 레벨은 112부터 117까지 랜덤으로 출현했고.
플로어 가디언인 듀라한의 레벨은 무려 140이었으니까.
“흑곰 형님. 아무래도…….”
“……그래. 오늘은 저 듀라한만 잡고 돌아가자.”
깔끔한 후퇴 선언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듀라한 레벨이 140이기는 하지만 기껏해야 한 마리.’
‘금방 해치우겠지, 뭐.’
순식간에 전투에 돌입하는 휘몰이 길드원들.
듀라한은 전투 시작 30분 만에 잿빛의 폴리곤이 되며 무너졌다.
물론 이번에도 어김없이 메시지가 그들 앞으로 떠올랐다.
[다섯 번째 기사가 쓰러졌습니다. 라이넬이 침입자들의 존재를 확실히 감지합니다.]
[라이넬의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전자들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이게 뭐야?”
“라이넬의 시험?”
“라이넬이면 이 던전 보스로 추정되는 녀석이잖아.”
“앞으로 나아가라니?”
잠시 메시지의 내용을 두고 토론이 이어졌지만, 흑곰은 칼같이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지하 5층은 지금 우리 공략대 수준으로는 힘들어. 조금 아쉽더라도 사망자가 나오기 전에 빠지는 게 낫다.”
“쩝, 이 라이넬이라는 녀석 얼굴을 못 보고 가는 게 아쉽네요.”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대박 아니에요? 5층 이상이 되는 플로어 던전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이제 신입 길드원들 버스 태워주는 장소는 확실히 얻었네요.”
“신입들 레벨을 많이 올려주진 못했어. 한 명당 2레벨 정도씩 겨우 올랐나?”
“몬스터들 리젠되면 또 돌아주면 되죠.”
1층부터 지하 4층까지 공략을 마친 공략대는 아쉬움을 삼키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공적인 던전 공략에 모두가 웃음을 짓던 상황.
문제는 그들이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발생했다.
“어? 이건 또 뭐야?”
내려올 때는 볼 수 없었던 계단을 굳게 막고 있는 석문.
밀거나, 당겨도 열릴 줄 모르는 아주 굳게 닫힌 문이었다.
“이거 안 열리는데요?”
“문을 건들면 앞으로 나아가십시오라는 메시지만 떠요.”
“혹시 밖에서 열어줘야 하는 건가?”
“그럼 근처에 있는 애들한테 와서 열어달라고 해볼게요.”
밖에서 활동 중인 휘몰이 길드원들이 문을 열어줄 수는 없는지에 대한 확인.
그것을 위해 30분이나 기다렸지만 대답은 NO였다.
“젠장, 1층에서부터 못 내려온대요. 거기도 마찬가지로 석문이 계단을 막고 있다네요?”
“끄응…….”
한마디로 그들은 던전에 꼼짝없이 갇힌 셈!
예고 없이 찾아온 상황에 흑곰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상황은 염두에 두지 않았어.’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던전을 끝까지 공략해야만 문이 열리는 구조인 것 같았다.
아니라면 중간에 석문을 개폐할 수 있는 장치라도 찾던가.
‘지하 5층이 마지막 층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문제는 보스였다.
던전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보스 몬스터.
지금 이 파티의 전력으로 라이넬이라는 녀석을 공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아…….”
답을 내리지 못하는 흑곰을 쳐다보던 카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가 크게 꼬인 기분.’
아무래도 라이넬이라는 녀석은 자신의 집을 방문한 이들을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