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61화 (61/441)

# 61

힐통령 061화

29. 인스턴스 던전(1)

“이거, 헛걸음을 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네.”

도시를 떠나기 전, 인사를 하러 들린 유하린을 향해 아르센 남작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정작 유하린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 아니, 근데, 대체 그건 뭔가?”

유하린의 어깨에 올려진 두 장의 오크 가죽!

아까부터 계속 그것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아르센 남작이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요즘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저런 패션이 유행인가?’

진지하게 이런 고민을 할 정도!

유하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선물 받았어요.”

“그것참, 선물 주는 사람 패션 센스가 엉망이군.”

도리도리.

유하린은 오크 가죽이 덮고 있는 어깨를 으쓱으쓱했다.

그때마다 오크 가죽이 위아래로 덜렁덜렁 흔들렸다.

“따뜻해서 마음에 들어요.”

“본인이 좋다니 할 말은 없군. 자네는 이제 어디로 가나?”

“저는…….”

고개를 돌린 유하린이 성채 너머로 보이는 남쪽의 지평선을 쳐다봤다.

“피베즈 산맥으로 갈 거예요.”

피베즈 산맥.

레벨 200 이상의 몬스터들만 나온다는, 최고 레벨 수준의 사냥터였다.

***

“그럼 정말 가보겠습니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마라. 혹시 맞게 되면 나한테 배웠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고.”

“그런 일이 생기면 여명의 검술관 관장인 후이 님이 복수해 주실 거라고 위협할게요.”

“에잉.”

여명의 검술관 관장인 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은 카이가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때려도 제가 더 때리고 다닐 테니까.”

“걱정은 누가 걱정을 한다고? 그래도 그…… 뭐냐, 감옥 가기 싫으면 사람도 봐가면서 때리고.”

“명심하겠습니다.”

끝까지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는 고마운 스승!

후이와 깔끔한 이별을 마친 카이가 향한 곳은 대장간이었다.

“뭐? 벌써 떠난다고!”

눈을 휘둥그렇게 뜬 솔리드가 대뜸 소리쳤다.

“물론 자네도 모험가이니 언제가 되었든 떠날 줄은 알았지만…… 너무 빠른 것 아닌가?”

“하하, 제가 워낙 빠르게 성장하거든요.”

“쩝…… 그만큼 강해졌다는 소리일 테니 축하해 줘야겠군.”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삼킨 솔리드는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큼지막한 상자 하나를 들고나왔다.

“이걸 가져가게나.”

“솔리드 님, 이 상자는 분명……?”

처음 보는 상자가 아니었다.

솔리드와 대장장이 기술을 겨룬 모험가가 만들었던 유니크 검!

그것이 담겨있는 상자였다.

“가져가게. 그리고 이 검을 만든 모험가를 만난다면 꼭 이 말을 전해주게.”

근육이 불끈거리는 두툼한 팔을 들어 올린 솔리드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렌데일 최고의 대장장이인 솔리드가, 언젠가 재대결을 하기를 원한다고”

“하, 하지만 이 검은…….”

“그냥 가져가게. 볼 때마다 속에서 뭔가가 울컥울컥 솟아올라서 거슬리거든.”

솔리드는 검이 든 상자를 노려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물론 절대 내가 겁먹은 건 아니네. 다음에 다시 붙게 된다면 진심으로 상대해서 이길 테니까.”

“예에…….”

카이가 맥빠진 목소리를 흘려내며 검을 집어 들었다.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를 획득하셧습니다.]

‘뭐, 이것도 나름 득템이니 기쁘긴하네.’

물론 지금 당장은 쓸 수 없는 검이었다.

착용 제한인 레벨 80과 힘 500은 언제 도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 내 힘이 몇이더라?’

카이는 곧장 스탯창을 확인했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68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19,700

신성력 : 26,100

능력치

힘 : 222 체력 : 197

지능 : 104 민첩 : 112

신성 : 261 위엄 : 78

선행 : 68

캐스팅 시간 -30%

스킬 쿨타임 –9%

받는 피해 -3%

독 저항력 +30

마법 방어력 +40%

‘222…….’

무려 278스탯을 더 올려야 겨우 착용할 수 있는 검!

카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현실적으로 이 검을 쓰게 될 일은 없겠네.’

물론 언젠가는 힘 스탯도 500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더 좋은 무기들도 장비할 수 있을 터였다.

“만나게 된다면 꼭 전해드릴게요. 혹시 인상착의나, 이름 같은 거 아세요?”

“이름은 모르겠고, 인상착의라…… 흠.”

천장을 쳐다보며 기억을 더듬던 솔리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키는 자네의 어깨 정도까지 오겠군.”

“생각보다 작네요?”

“암. 그리고 나이도 조금 어려 보였네.”

“나이가 어리고 키가 작다라…… 더 없습니까?”

위와 같은 조건의 대장장이만 해도 몇만 명은 넘을 터!

하지만 솔리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기억나는 건 그게 전부로군. 아, 그리고 생각보다 예의 바르다는 것 정도겠군.”

“예의라…… 그러고 보니 이 검도 선물 받으신 거였죠?”

“흥, 선물은 무슨!”

검을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린 솔리드가 다시 카이를 쳐다봤다.

“이제 가면 언제쯤 오나?”

“글쎄요……?”

기약 없는 여정이다.

솔직히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글렌데일에 다시 찾아올 일은 없을지도 모르고.

“거, 죽기 전에 얼굴 정도는 한 번 더 보세나.”

“에이, 아직 정정하시면서. 30년은 더 사시겠는데요?”

“몸이 예전 같지는 않아. 망치질도 점점 힘들고. 뭐, 못해도 10년은 더 버티겠지만.”

“그 안에는 꼭 한 번 찾아오도록 하죠. 그 모험가 대장장이와 함께요.”

“흐흐, 기대하겠네.”

솔리드와의 만남을 뒤로한 카이는 곧장 텔레포트 게이트로 향했다.

“나도 이제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할 정도는 되지.”

마르지 않는 통장에서 흘러나오는 끝도 없는 자신감!

순식간에 아쿠에리아에 도착한 카이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곳이 아쿠에리아!”

프리카가 산골 마을의 정겨움을, 글렌데일이 도시의 세련됨을 담고 있었다면 아쿠에리아라는 도시는 막힌 가슴을 뻥 뚫리는 시원함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카이를 놀라게 만든 것은 바로 수로 시설!

도시를 거미줄 모양처럼 관통하는 수많은 물줄기가 그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꺄르륵!”

“자기야 좋아?”

“응! 너무 좋아!”

수로 위에는 카누처럼 생긴 배들이 둥둥 떠다녔고, 그 위에는 무거운 짐이 실려 있거나 연인들이 다정하게 데이트를 즐기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다른 도시에서 마차들이 하는 일을 이곳에서는 배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과연 물의 도시라고 불릴 만하구나.”

새로운 도시의 모습은 카이의 마음에 쏙 들었다.

더군다나 이곳에는 자신의 물음에 해답을 줄 존재까지 살고 있었다.

‘아르센 남작님의 말이 맞다면 물의 현자, 그가 내 질문에 답을 해주겠지.’

***

물의 현자가 기거하는 저택은 아쿠에리아의 중심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카이가 천천히 저택으로 다가가자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이 빠르게 그를 저지했다.

“멈춰라! 이곳은 물의 현자 타르달 님의 사유지다. 길을 잃어버린 거라면 돌아가도록.”

“저는 물의 현자를 만나 뵙고 여쭤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현자님께서는 일개 모험가를 만나실 만큼 한가로우신 분이 아니다.”

“하지만 저를 보낸 건 아르센 남작님이십니다.”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르센 남작의 이름을 들먹이는 카이!

반응은 곧장 튀어나왔다.

“뭐? 아르센 남작이라고?”

“아르센 남작이면…… 혹시 글렌데일의?”

“예. 맞습니다. 바로 그 아르센 남작님이십니다.”

카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든든한 뒷배를 가지고 있으니 괜히 자신의 콧대가 높아지는 기분!

하지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던 병사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우하하하하!”

“이거 웃긴 녀석이로군. 이봐, 현자님께서는 가끔씩 폐하가 보낸 손님조차 돌려보낸다고.”

“남작이 보낸 손님이라고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는 소리다.”

“…….”

카이는 병사들의 반응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무 안일했나? 하긴, 아무리 은퇴했다지만 일국의 재상이었던 사람을 보는 건데…… 준비가 너무 어설펐어.’

하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뭐? 아르센 남작님의 계급이 낮아서 안 된다고?’

그렇다면 뒷배로 더 높은 사람을 데려오면 될 뿐!

카이는 ‘친근한 형제’ 스킬을 활성화 상태로 돌리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타르달 님을 뵐 수 있습니까?”

“말했잖은가. 타르달 님은 모험가 따위를 만날…… 음?”

말을 이으려던 병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융통성 없게 구는 것 같기도 하고…….’

따지고 보면 기회 정도는 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주변의 병사들도 그에게 넌지시 의견을 제시했다.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타르달 님을 만날 자격이 되는지 정도는 알아봐 주는 게 어떤가.”

“귀족의 추천을 받아온 걸 보니 영 어중이떠중이도 아닌 것 같고.”

“뭐…… 그건 그렇군.”

동료들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던 병사는 카이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흠. 그래도 자네는 타르달 님과 대화를 나눌만한 최소한의 자격은 갖춘 것 같군. 확실히 아주 무명소졸은 아니야.”

‘무명소졸이라면……? 명성! 타르달을 만나려면 일정 수준의 이상의 명성이 필요하구나!’

지금까지 꾸준히 쌓아놓던 명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아, 물론 최소한의 자격을 말하는 것일세. 타르달 님은 증명된 것만 믿으시는 분. 그분을 만나 뵙고 싶다면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게.”

“어떤 방법으로 입증을 하면 될까요?”

“음…… 그거야 자네의 선택 아니겠는가? 강력한 몬스터를 잡거나, 악명 높은 수배자를 잡아도 되네. 물론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던전을 공략해도 되는 것이고.”

한 마디로 실력을 입증하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 근처에서 실력을 입증할 만한 장소가 있나?’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카이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증표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기대하지. 하지만 꼼수를 부려선 안 되네.”

“물론이지요.”

높은 레벨의 몬스터가 뱉어내는 전리품을 돈 주고 사는 등의 방법은 안 된다는 소리!

애초에 그럴 생각 자체가 없던 카이는 다시 도시의 시가지로 돌아와 인터넷을 뒤졌다.

“오, 근처에 인스턴스 던전이 하나 있잖아?”

인스턴스 던전.

이름에서 그 뜻을 알 수 있겠지만, 간편하게 입장할 수 있는 던전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던전의 형태를 지닌 필드라고나 할까?

확실한 것은 놀의 무덤, 페르메의 둥지와는 개념 자체가 다른 장소였다.

‘생각해 보니 인던 다닌 것도 굉장히 오래된 것 같네.’

카이도 레벨이 낮을 때는 인스턴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여러 파티를 거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카이는 곧장 던전의 정보를 확인했다.

“쥐들의 왕국이라면……?”

카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 던전에서는 사람처럼 이족보행을 하는 거대 쥐가 나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뮤튜브의 랭커들이 남긴 공략 영상을 봤기에 보스의 패턴 또한 숙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여기라면 내 실력을 입증하기에는 충분하겠지.’

그곳은 무려 적정 레벨 75의 인스턴스 던전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스턴스 던전은 보통 파티 위주의 공략이 이루어지는 장소.

혼자서 도전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성공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서둘러 아쿠에리아의 던전이 위치한 장소로 이동하자 대기 중인 유저들이 보였다.

카이는 도시에서 줄곧 사제복을 입고 다녔기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78레벨 방패 기사가 파티 구합니다!”

“74레벨 광전사 데려가실 분!”

“10분 동안 모든 스탯을 1 상승시켜주는 요리 팝니다! 맛은 자신 없지만, 가격이 싸요!”

“숙련도 올릴 겸 무료로 장비 수리해드려요~”

언뜻 보기에도 백 명이 가볍게 넘어가는 유저들!

그 인파를 뚫고 지나가던 카이는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대화에 걸음을 멈췄다.

“야야, 저기 봐. 쥐들의 왕국 솔로 랭킹 2위인 그림즈다.”

“오늘 또 신기록에 도전한다며?”

“듣기로는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래.”

“확실히 레벨 제한이 걸릴 테니까 말이지.”

“응원할게요! 1등 한 번은 꼭 해보셔야죠!”

“하하.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훤칠하게 생긴 마법사는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로브와 스태프를 장비하고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솔로 랭킹? 아! 그러고 보니…….’

카이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바로 인스턴스 던전에만 기록되는 공략 랭킹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저 사람이 랭킹 2위라고?’

그 사실 여부를 알아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순위는 던전의 입구에 위치한 게시판에 기록되니까.

카이는 2인 이상의 파티가 세운 기록은 모두 건너뛴 채, 솔로 랭킹을 확인했다.

[쥐들의 왕국 - 1인 파티 순위표]

1. 락타샤 LV.85 3시간 42분 16초. 종합 점수 A+

2. 그림즈 LV.85 3시간 44분 02초. 종합 점수 A

3. 스밀라 LV.84 3시간 44분 08초. 종합 점수 A

…….

“오, 정말이잖아?”

확실히 그림즈라는 남자는 쥐들의 왕국 던전에서 랭킹 2위나 차지한 인물이었다.

‘마법사로 보이는데 인던에서 솔플이라…… 대단한데?’

카이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물론 거대 쥐들의 화염 내성과 마법 저항력이 낮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쉽게 돌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종합 점수가 A인 걸 보니 운이 좋아서 클리어한 것도 아닌 것 같고.’

유저의 레벨이 인던의 적정 레벨과 11레벨 이상 차이 나면 기록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랭킹 순위권에 등록된 이들은 보통 적정 레벨보다 9에서 10이 높은 유저들뿐!

그렇다고 레벨이 높은 유저가 무조건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종합 점수는 플레이어의 레벨과 클리어 시간, 피격 횟수 등을 합산하여 도출되었으니까.

한 마디로 능력만 있다면 레벨이 낮아도 상위권에 랭크될 수 있다는 소리!

‘지금 내가 68레벨인데…… 전력으로 하면 몇 위 정도 하려나?’

그 결과가 궁금해진 카이는 재미있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어차피 도전할 거라면 제대로 해서 최고의 결과를 내보자.”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떠올리는 카이의 눈은 평소보다 더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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