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힐통령 059화
27장. 경매대란(2)
라이벌.
같은 분야에서 같은 목적을 지녔기에 항상 경쟁을 해야 하는 끈질긴 놈을 지칭하는 말이다.
보통의 라이벌이라 하면 많아 봐야 둘에서 셋 정도.
하지만 미드 온라인의 천상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계 10대 길드.
이 관계를 풀어서 설명하면 라이벌만 아홉 명이라는 소리다.
게다가 호시탐탐 10대 길드의 자리를 노리는 추격자들도 무시할 수는 없다.
결국 세계 10대 길드의 마스터들은 하루하루, 매분 매초를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아홉 명의 라이벌들에게 추월당하고, 순식간에 도태된다.
마치 결승점조차 정해지지 않은 마라톤에 참여한 셈!
그런 와중에 경주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길잡이의 수색 팔찌가 경매장에 매물로 나왔다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10대 길드의 마스터들이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들의 가치관이나 취미, 성격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그 소식을 접한 순간만큼은 열 쌍둥이라고 우겨도 믿을 만큼 똑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무조건 물건부터 손에 넣어.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아홉 명의 라이벌들을 따돌릴 수 있다면 돈 따위는 얼마가 들어도 좋았다.
더군다나 검은 벌 길드는 압도적인 화력을 바탕으로 메인 에피소드를 빠르게 진행시키는 곳.
당연히 요주의 경계 대상 중 하나였다.
‘길드 정보팀의 예상이 맞다면, 그건 고대왕의 유적과 관련이 있는 퀘스트 아이템이다.’
'고대왕의 던전 공략은 최근 검은 벌 길드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가장 파이가 크지.’
‘대현자 키리언의 말에 따르면…… 최소 190레벨 이상의 던전 위치가 수록된 지도나 다름없다.’
‘길드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손에 넣어야 돼.’
10대 길드는 가지고 있는 단서나 정보가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일치하는 부분이 존재했다.
‘이 물건은 무조건 사야 된다.’
‘다른 놈들보다 먼저 사야 돼.’
‘이걸 사는 놈이 한 발자국 더 앞서나간다.’
‘고대왕의 던전 공략을 방송으로 내보내면…… 명성과 돈, 길드원의 성장까지 챙길 수 있지.’
‘우리가 못 사면 최소한 다른 놈들도 못 사게 만들어야 돼.’
그들이 참여한 마라톤에는 룰 같은 고상한 개념이 없었다.
따라오는 놈은 뿌리치고, 앞서가는 놈의 발목을 붙들면서 아득바득 달려가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룰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길드 마스터들은 동시에 의구심도 품었다.
‘그런데 이게 왜 경매장에 올라온 거지? 스팅이 팔찌를 측근 중 하나에게 빼돌렸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측근의 배신인가?’
‘그놈들이 미치지 않은 이상 이걸 경매장에서 판매할 리는 없고.’
‘혹시 검은 벌 놈들이 파놓은 함정은 아니겠지?’
물건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풀렸다.
길잡이의 수색 팔찌는 등록일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 입찰이 마감된다.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은 온갖 정보를 긁어모았고, 그것들은 모두 마스터들의 귀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판매자가 언노운이라는 놈이라고? 그래서 그게 누군데.”
“뭐? 혼자 다니는 놈인데 검은 벌 길드를 물 먹였어? 또라이네.”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놈인가 보군.”
“글렌데일 토벌대라…… 이놈 정체가 뭔지 뒤 좀 캐봐.”
“우선 커뮤니티 계정으로 쪽지부터 보내. 타이탄에서 개인적으로 거래를 하고 싶다고.”
언노운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10대 길드 마스터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
“얼씨구, 아주 널뛰기를 하네. 널뛰기를 해.”
황당한 표정의 한정우가 중얼거렸다.
길잡이의 수색 팔찌가 경매장에 등록된 것은 오늘로 일주일째.
아직 경매 마감까지는 두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가격은 이미 천정부지로 올라간 상태였다.
‘이거 진짜 중요한 아이템이긴 한가 본데?’
고작 매직 등급의 아이템에 1억 4,200만 원이라는 입찰금이 달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시에 이런 일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유저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이게 뭔데? 누가 설명 좀.
└나도 미치도록 궁금한데, 제발 누가 설명 좀.
└난 이미 미친 거 같은데, 제발 아무나 설명 좀 해줘.
-그냥 작전 세력이 시세 조작하는 거 아닌가?
└이게 진짜 팔리는지 안 팔리는지 보면 알겠지.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작전을 하는 곳도 있나?
└작업한다고 보기엔 너무 노골적인데…….
대체 왜 이 아이템이 이렇게 비싼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건 한정우도 마찬가지.
‘나도 이해를 못 하겠다. 그리고 이쯤 되면 나도 불안해지는데.’
이미 아이템의 가격은 한정우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상태였다.
그 말은 즉 아이템의 가치가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뜻!
그래서 더욱 걱정이 되었다.
‘이거 누가 사던 검은 벌 놈들은 열 좀 받겠는데?’
돈을 주고 구매를 해도 녀석들은 화가 날 테고, 구매를 못 하면 더욱 화가 날 것이다.
“어우, 오싹해라.”
녀석들이 작정하고 자신의 뒤를 쫓으면 사냥을 할 때도, 퀘스트를 할 때도, 심지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등 뒤를 조심해야 할 터!
“만약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그땐 진짜 돌아버리겠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검은 벌 길드 아지트로 찾아가서 이 아이템을 돌려줘야 할까?
“그러면 지금 당장 돌아버릴 텐데.”
요컨대 둘 다 싫다는 뜻!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미 한정우는 호랑이의 뒤에 올라탄 상태였다.
여기서 한정우가 어정쩡하게 사과를 한다고 해도 놈들이 받아줄 리 만무!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가보자고.”
어차피 현재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
“결과는?”
“아직 1분 남았습니다.”
“후우. 5분이 이렇게나 긴 시간이었나.”
워리어스 길드의 마스터인 발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자신이 이끄는 길드가 세계 10대 길드 중 하나가 된 후로, 5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흘러간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시간이 쫓기면서 살았는데 말이지.’
그만큼 현재 자신이 초조함을 느낀다는 소리일 터.
물론 지금 이 순간, 더욱 큰 초조감을 느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한 줄기 위안이 되었다.
‘스팅 녀석, 신경쇠약이라도 걸리는 건 아닌가 모르겠군.’
누가 뭐래도 자신의 물건을 돈 주고 사와야 하는 그가 가장 엿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터!
하물며 돈을 주고 사고 싶어도 실패를 한다면?
“그건 재미있겠군.”
초조함이 상당히 가신 발칸이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에게 영상 통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그 성질머리라면 당장 길드전을 신청해도 이상할 게 없었기에 참았다.
“마스터. 경매 마감됐습니다!”
“결과는? 낙찰은 어느 길드지?”
길드원의 보고에 발칸의 눈빛이 진중해졌다.
이제 저 입에서 호명될 길드는 웃게 될 것이고, 나머지 아홉 길드는 한동안 울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길드원의 애매한 표정을 쳐다보던 발칸이 이상함을 느끼며 물었다.
“표정이 왜 그러지?”
“그, 그게…….”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되냐.
그런 표정을 얼굴 위로 띄운 길드원이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길잡이의 수색 팔찌. 마감 3초 전에 판매등록이 취소되었습니다.”
***
세계 10대 길드 마스터들의 입이 동시에 쩌억 벌어진 나름 뜻깊은 시각.
그들은 더 충격적인 소식을 맞이해야만 했다.
“어, 언노운한테 쪽지가 왔습니다!”
“저희 워리어스랑 거래를 하고 싶답니다.”
“큭, 역시 거래하면 블랙마켓이지. 길잡이 팔찌를 팔겠다고 쪽지가 왔군.”
“타이탄과 긍정적인 거래를 추진해 보고 싶다는 쪽지가 방금 도착했습니다.”
“쪽지에 채팅방 주소가 적혀있습니다.”
“마스터와 독대를 하고 싶다고 하니, 마스터께서 이 주소로 직접 들어가시면 되겠습니다.”
검은 벌을 제외한 아홉 개의 길드에 같은 쪽지를 보낸 카이!
동시에 외롭고 쓸쓸하던 채팅창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발칸’ 님이 채팅방에 입장하셨습니다.]
[‘골리앗’ 님이 채팅방에 입장하셨습니다.]
[‘쟈오 린’ 님이 채팅방에 입장하셨습니다.]
[‘산드로’ 님이 채팅방에 입장하셨습니다.]
…….
[‘캐서린’ 님이 채팅방에 입장하셨습니다.]
쪽지를 보낸 지 1분도 지나기 전에 속속들이 들어오는 10대 길드의 마스터들!
그들은 채팅방 멤버들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자신들이 현재 느끼는 감정을 표출했다.
[골리앗 : ?]
[쟈오 린 : ?]
[산드로 : ?]
[미네르바 : ?]
[캐서린 : 엥?]
…….
‘여기서 한 박자 쉬고…….’
10여 초가 지나고 더 이상 채팅이 올라오지 않자, 카이는 홀로그램 키보드를 두드렸다.
[언노운 : 환영합니다. 그럼 길잡이의 수색 팔찌 경매를 재개하겠습니다.]
[쟈오 린 : 지금 이게 뭐하자는 짓이지?]
[미네르바 : 거래를 하고 싶다는 쪽지를 보고 왔는데…… 설명 똑바로 하셔야 될 거예요.]
[골리앗 : 그냥 미친놈이었군.]
채팅창을 훑어보던 한정우는 타이탄 길드의 마스터가 욕설을 내뱉는 순간 입꼬리를 올렸다.
[방장 ‘언노운’ 님에 의해 '골리앗'님께서 퇴장당하셨습니다.]
메시지가 떠오르자 하나둘씩 올라오던 불평불만이 뚝 끊겼다.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채팅창!
[언노운 : 저분은 급한 일이 생기셔서 먼저 가신답니다. 혹시 또 급한 일 있으신 분은 말씀해 주세요^^]
[미네르바 : …….]
[산드로 : …….]
[캐서린 : 어머, 또라이잖아.]
세계 10대 길드의 마스터라면 웬만한 기업의 사장조차 부럽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아봤겠는가.
언노운이라는 측정 불가의 또라이를 마주한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들처럼 조용해졌다.
‘자, 우선 기는 좀 죽여놨고…… 여기서 한 명이 가격만 불러주면 될 텐데.’
그렇게 된다면 경매는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제법 길게 이어진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워리어스의 길드의 발칸이었다.
[발칸 : 금액 제시는 어느 나라의 돈으로 하면 되지?]
[언노운 : 은근슬쩍 신상을 캐는 짓은 그만두시죠. 화폐는 골드로 통일합니다.]
[발칸 : ……미안하군. 300골드.]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여덟 명의 길드 마스터들은 마치 눈치 싸움이라도 하듯 빠르게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 : 350.]
[쟈오 린 : 400.]
[캐서린 : 520.]
[산드로 : 800.]
순식간에 쭉쭉 올라가는 가격!
하지만 정작 카이는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고개만 까딱거렸다.
‘경매 마감되기 직전의 가격이 1억 6천만 원이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하지.’
게다가 그때와 지금은 얼핏 보면 똑같은 상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많이 달랐다.
‘그야 이 양반들, 자존심 하나는 미친 듯이 높을 테니까?’
단순히 부하 길드원을 시켜 경매에 참여하는 것과 본인이 직접 가격 경쟁에 뛰어드는 것.
이 둘의 차이는 명확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채팅창의 분위기는 점점 과열되었고, 어느새 경매가 아닌 서로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갔다.
그 상황에서 발칸이 사고를 쳤다.
[발칸 : 2,000골드.]
“허억……!”
현금으로 무려 2억!
이전에 경매장에서 입찰된 최고액수를 단번에 뛰어넘은 것이다.
다른 이들은 아이템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하는지, 아무런 채팅도 치지 않았다.
‘이 정도 금액이면 워리어스에 단번에 낙찰을 받으려나?’
하지만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채팅창은 다시 주르륵 올라갔다.
[레너드 : 2,150골드.]
[요시아츠 : 2,200.]
[미네르바 : 당신들 정말…… 후우, 2,300골드.]
자존심이라는 건 어쩜 이렇게 비싼 놈인지!
카이는 배를 잡으며 한바탕 폭소라도 터뜨리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아직 웃기엔 일러.’
경매장에 판매 등록한 물건을 취소하려면 입찰 금액의 5%를 지불해야 한다.
카이가 지불한 금액은 무려 800만 원!
‘피 같은 돈 800만원을 지불했으니, 최소한 50배는 남겨야 하지 않겠어?’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조차 물건의 값은 계속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