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51화 (51/441)

# 51

힐통령 051화

25장. 죽음의 술래잡기(2)

파티 사냥은 보통 다양한 직업을 지닌 유저들이 모임으로써 형성된다.

그리고 그 다양한 직업 중에서, 전장을 바라보는 시야가 남다른 직업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이 사제.’

카이의 번뜩이는 눈이 전장을 한 차례 훑었다.

모두가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전장을 살필 때, 사제는 부상 당한 아군부터 찾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동시에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몬스터의 위치와 공격범위 또한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한마디로 미드 온라인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을 통틀어도, 사제의 직관력을 따라올 수 있는 직업은 없다는 소리다.

‘이 녀석들이 과연 언제 빈틈을 내보일까?’

그 남다른 시야를 지닌 카이는 단 한 순간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 한 번 깜빡이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겨울날의 눈꽃처럼 금방 녹아버리는 찰나의 순간!

‘이미 전장은 개판 5분 전…… 아니지. 이 정도면 충분히 개판이네.’

앞과 뒤.

양 측의 오크들에게 둘러싸인 토벌대는 고군분투했다.

“에라이, 씨! 모르겠다! 그냥 싹 다 죽여!”

“가까이 있는 오크부터 처치해!”

“사제들부터 보호해! 사제들이 죽으면 우리도 끝이다!”

“드루와, 드루와!”

이미 그들은 죽음이라는 벼랑 끝까지 밀려난 상황.

궁지에 물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처럼, 유저들도 독기를 품은 채 오크들을 상대했다.

“덤벼라, 연약한 인간들이여! 크하아!”

물론 그들의 독기조차, 분노 상태에 돌입한 오크 로드 우르간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크 주술사 타로쉬의 주술로 인해 오크들의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오크 주술사 타로쉬의 주술로 인해 토벌대원들의 능력치가 5% 하락합니다.]

“저 삐쩍 마른 멸치 오크부터 좀 죽여봐!”

“저길 어떻게 뚫어! 주변에 오크 히어로랑 워리어가 너무 많아서 무리야!”

바로 오크 주술사의 등장!

게다가 녀석은 아군에게 축복을 주면서 적들에게는 저주를 내리는 성가신 존재였다.

물론 카이는 햇살의 따스함을 통해 저주 따위는 걸린 순간 날려버렸다.

‘자, 발등에 불은 떨어졌고…… 이제 어쩔래?’

카이는 클라드의 뒤통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 물었다.

물러날 수도, 진격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그 상황에서 고민을 이어가던 클라드가 결국 판단을 내렸다.

“우린…… 이곳을 탈출한다.”

“음?”

“어떻게 말입니까?”

같은 길드원들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탈출로는 오크 주술사가 꽉 막고 있기에, 탈출이 불가능해 보였다.

몸을 돌린 클라드는 눈동자를 차갑게 빛내며 말했다.

“토벌대와 유저들을 제물로 바치고, 이곳을 떠난다.”

“……!”

무섭고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이미 패색이 짙은 전장에서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저들이랑 토벌대를 제물로 바친다니?’

로브 아래에서 카이가 주먹을 꽈악 쥐었다.

유저들이 사망 시 겪게 될 페널티도 페널티지만, NPC는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데 자기들이 살기 위해 그런 판단을 내린다고? 그것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카이에게 충격적이었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모든 것을 이용할 줄 아는 것이 바로 검은 벌 길드!

그 사실을 눈앞에서 목격한 카이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그를 한 차례 더 충격에 빠트리게 한 것은, 길드원들의 반응이었다.

“어…… 그래도 돼요?”

“흐음. 토벌대가 다 죽으면 글렌데일 성주가 우릴 의심하지 않을까요?”

“기껏 토벌 포인트를 모았는데…… 이거 사용 못 하게 되는 건 아니겠죠?”

다른 이들을 향한 미안함보다는, 자신들의 이득부터 챙기는 이기적인 모습!

그 모습에 황당함을 느낀 카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 녀석들. 전부 글렀어.’

아예 답이 없는, 타지 않는 쓰레기들이다.

때문에 카이는 오히려 답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

“후우, 후우. 그래도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네.”

“토벌대 NPC들 수준이 상당히 높아. 기사도 10명이나 있고…… 젠장. 그래도 결국 죽겠는데?”

“애초에 검은 벌 새끼들이 우리랑 같이 오크 로드 잡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땀이 송골송골 맺힌 유저들은 잠시 숨을 돌리며 전장을 훑어봤다.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적!

오크 히어로나 워리어 등은 제법 많이 처치해서 이제 몇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유저들은 이미 대부분이 죽었고, 토벌대에 속한 NPC들도 마찬가지였다.

토벌대원의 총인원 수는 이제 겨우 100명 정도가 남은 상황.

그런 와중에 가장 강력한 오크 로드와 오크 주술사가 쌩쌩하니, 결국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검은 벌 이 새끼들은 대체 어디서 뭐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안 보이네.”

“……뭔가 수상한데?”

검은 벌 길드의 공격은 화려하고, 강력하다.

비록 자신들과 함께 움직이지는 않으나, 오크들을 사냥하는 그들의 솜씨는 제법 든든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화려한 마법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유저들이 검은 벌 파티를 찾기 시작했다.

“어! 저기 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유저가 그들을 찾아냈다.

검은 벌 길드원들은, 오크 부락의 목책 근처에 몰래 접근한 상태였다.

“저 새끼들! 설마 지들끼리 탈출할 셈인가?”

“야, 아서라. 아서. 지금 오크 주술사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데 지들이 뭔 수로 나가?”

“……하긴. 그렇지?”

“그럼 쟤네는 지금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건데?”

“…….”

한 유저의 질문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오크 부락의 입구에서부터 크게 피어오른 엄청난 높이의 화염벽!

무려 여덟 명의 마법사가 만들어낸 벽은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오크 주술사조차 몇 걸음 옆으로 물러서게 만들 정도의 위력!

“됐다.”

클라드가 눈을 반짝였다.

화염의 벽이 오크 주술사를 밀어내고, 아주 약간의 틈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저 틈으로 사람이 나갈 수 있느냐는 것인데…….’

클라드가 고개를 돌려 사제를 쳐다봤다.

“사제님. 먼저 탈출하시죠.”

“……제가요?”

“예. 먼저 나가보세요.”

“…….”

저 틈새가 정말 안전한지, 아닌지 시험해 볼 요량!

카이도 바보가 아닌 이상, 클라드의 속내를 모를 수가 없었다.

‘이놈 봐라? 지금 나를 통해서 실험을 해보겠다는 건가?’

그야말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

하지만 카이는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뭐.”

가볍게 대꾸한 카이는 두 다리를 열심히 놀려 틈새를 쏙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검은 벌 길드원들이 쾌재를 불렀다.

“선배, 안전해 보이는데요?”

“작전 성공입니다. 나갈 수 있겠네요!”

“그래. 됐다.”

클라드가 입꼬리가 비틀렸다.

아직 파이어 월은 건재했고, 그 벽의 너머에서는 유저들이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이 개자식들아!”

“너희만 살겠다고 오크 주술사를 이쪽으로 밀어 넣어?”

“두고 보자! 이거 다 영상 녹화했으니까 커뮤니티에 올려주마!”

그들의 악담에도 클라드는 코웃음만 쳤다.

“흥, 멍청한 놈들. 너희는 그러니까 항상 밑바닥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는 거다.”

검은 벌 길드가 추구하는 것은 최고의 자리.

그리고 그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 길드의 규율이다.

클라드는 그 규율이 자신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유저들 간의 암묵적인 룰? 매너 사냥? 개소리.’

그것은 모두 약자의 변명이다.

사회라는 울타리에 갇힌 채 법이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고 자기 위안이나 하는 약자들의 망상!

‘나는 맹수다.’

어찌 사자가 양 떼들 사이에 섞여 그들의 법을 따르겠는가?

클라드는 게임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검은 벌 길드에 가입한 것은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자, 그럼 우리도 나가지.”

클라드는 자신의 파티원들을 이끌고 유유히.

한 발 한 발 기품을 잃지 않고 틈새를 향해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가 밖으로 나가는 틈새의 코앞까지 다가간 순간…….

서걱!

틈새에서 한 자루의 검이 튀어나와 그대로 클라드의 목울대를 그어버렸다.

당황한 클라드가 황급히 몸을 뒤로 내뺐지만, 이미 공격은 당한 후!

[상태이상 ‘침묵’에 빠졌습니다.]

[페르메의 독에 중독당했습니다. 해독되기 전까지 초당 1,000의 피해를 입습니다.]

“……!”

“뭐, 뭐야!”

“선배! 괜찮으십니까!”

“저 새끼 뭐야!”

당황한 놈들이 으르렁거리며 위협을 가할 때, 클라드는 누군가를 찾았다.

말을 할 수 없는 그가 그렇게 격렬하게 찾은 것은 다름 아닌 사제!

‘빌어먹을, 중독당했다! 어서 사제가 정화를 해줘야……!’

일반적인 독이 아니었다. 무려 정화하기 전까지 초당 1,000의 데미지를 주는 지독한 독!

그는 한시라도 빨리 중독 상태를 해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다급함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검은 벌 길드원들이 황급히 목책을 나가려고 했다.

“사, 사제는 먼저 나갔어!”

“나가서 데려와!”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한 명의 전사에 의해 가로막혔다.

조그마한 틈새를 꽉 채운 전사 한 명.

그는 어둠을 덧칠해 놓은 것 같은 흑색 경갑 세트를 입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의 정체는 사제복을 벗고 칠흑의 원한 세트를 장비한 카이!

동시에 그를 알아보는 이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어? 저 녀석 언노운 아니야?”

“언노운? 참교육 영상 찍은 걔?”

“근데 그 녀석도 이번 토벌대에 참가했었나?”

“난 처음 보는데?”

“나돈데…… 대체 뭐지?”

검은 벌 길드는 물론, 다른 유저들조차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이 차츰 밝아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뭐야, 언노운이 입구를 막아주고 있잖아?’

‘검은 벌 길드 새끼들. 우리랑 같이 죽겠구나!’

‘으하하! 욕심부리더니 꼴 좋다, 개자식들!’

참교육 영상의 주인인 언노운의 등장은 그만큼 뜻밖이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가 오크 로드와 주술사를 처치하고 자신들을 구해준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언노운이 뜬 건 영상이 재미있어서였지.’

‘물론 싸움 실력도 나쁜 건 아니었는데…… 뭐랄까,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

‘아무튼 결코 오크 로드와 오크 주술사를 잡을 실력은 절대 못 된다.’

만약 영상이 검을 배운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서 찍은 것이 알려지면 평가도 달라질 터!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유저들에게 언노운이란 그저 인기 동영상의 주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가 검은 벌 길드 소속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

“언노운이라면 나도 들어본 적은 있어. 그런데 갑자기 우리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냐?”

“너와 우리는 아무런 접점도 없었을 텐데?”

“입 아프게 그걸 왜 물어? 보나 마나 명성 얻고 싶어서 이 수작 부리는 거 딱 보면 몰라?”

검은 벌 길드원들이 각자 마법을 캐스팅하며 카이를 노려봤다.

‘그렇게 생각해 주면 나야 고맙지.’

천천히 왼손을 들어 올린 카이가 따악! 손가락을 튕겼다.

그 경쾌한 소리와 함께 쏘아져 나가는 홀리 익스플로젼!

콰아아아앙!

백색 광선은 화염의 벽을 그대로 흩어버렸고, 곧장 오크 주술사를 공격했다.

동시에 검은 벌 길드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미친놈이었군.”

“죽으려면 혼자 죽지그래?“

곧이어 그들의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상황에서 오크 주술사의 어그로를 끌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인가?’

‘오히려 우리는 잘됐군. 적당히 뒤로 빠져 있다가, 밖으로 탈출하면 되겠어.’

클라드를 부축한 그들은 뒤로 멀찍이 떨어졌다.

미친놈 하나가 오크 주술사의 어그로를 끌었으니, 그 공격에 휘말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오크 주술사는 오히려 그들을 향해 쿵쿵 뛰어오기 시작했다.

“……어? 어!?”

“뭐, 뭐야!”

“우리는 공격도 안 했는데 대체 왜!?”

‘왜긴 왜야.’

어깨를 으쓱거린 카이는 인터페이스 창을 띄어 올렸다.

[파티에서 정말 탈퇴하시겠습니까?]

“응.”

[파티에서 탈퇴하셨습니다.]

‘내가 너네 파티였거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