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힐통령 049화
24장. 웰컴 투 더 오크 월드(2)
토벌대의 첫 번째 전투는 아주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비록 오크 부락을 점령하지는 못했지만, 그곳에서 쏟아진 오크들을 모두 처치했기 때문이다.
유저들이 전투의 승리로 쟁취한 것은 잠깐의 휴식 시간.
그 꿀같이 달콤한 시간을 주변의 나무 그늘에서 보내고 있던 카이의 얼굴 위로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보유한 토벌대 포인트 : 9P]
“아홉 마리 잡았으니까 9포인트. 계산 확실하네.”
현재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만약 오크 부락에서 이런 식으로 오크들을 몇 번만 더 내보내 준다면, 일반 오크만 잡아서 100포인트 이상을 모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게 겨우 첫 번째 전투였으니까…… 두 번째, 세 번째 전투 때는 오크 워리어나 히어로도 내보내겠지.’
그럼 벌어들이는 포인트도 점점 더 많아질 터!
행복한 상상도를 그리던 카이의 귓가로 다른 유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도덕도 없는 새끼들. 양심이란 게 있긴 한가?”
“있겠냐? 그딴 게 있었으면 이런 짓거리는 하지도 않았지.”
“젠장, 결국 보상은 저들끼리 독식하겠다는 소리잖아?”
“아오! 하여튼 길드 없는 놈은 이벤트도 하지 마라 이건가?”
“애초에 10대 길드 놈들이 이런 이벤트에 왜 참여하냐고.”
세 명의 유저가 깊은 분노를 가감 없이 드러낸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카이의 얼굴 위로 호기심이 떠올랐다.
‘뭐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이야기만 들어보자면 토벌대 내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듯하다.
만약 그 문제가 심각한 것이라면 오크 주술사를 잡는 데 애로사항이 꽃필 수도 있다.
결국 카이는 그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저…… 우연히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저희 얘기를 들었다고요?”
유저 하나가 경계심 어린 눈초리를 풍기면서 쏘아붙이자 그 옆에 있던 유저가 이를 막았다.
“저 사람은 아까부터 저기 있었어. 우리가 멋대로 떠든 거지 뭐. 그리고 그쪽은 혹시 토벌 포인트 순위표 봤습니까?”
“토벌 포인트 순위표요? 그런 게 있습니까?”
카이가 눈만 멀뚱멀뚱 뜨자, 남자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역시 못 보셨나 보네. 토벌 포인트 창을 보면 순위표도 따로 있어요. 일단 그것부터 보세요.”
“그럼 잠시만…… 아, 진짜 있네요.”
남자의 말처럼 순위표 확인이라는 부분이 분명히 보였다.
‘그런데 이게 대체 왜 문제가 된다는 거지? 내 포인트와 다른 이들을 비교할 수도 있잖아?’
한마디로 선의의 경쟁이 벌어지는 판이 제공된 것이다.
그들의 분노에 고개를 갸웃거린 카이는 곧장 순위표를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카이의 얼굴에 당황이라는 감정이 크게 떠올랐다.
“뭐, 뭐야. 이게 말이 돼?”
“그쵸? 말 안 되죠?”
“짜증 나죠?”
“엿 같죠?”
“…….”
카이의 반응이 자신들과 비슷하자 잔뜩 신이 나서 추임새를 넣는 유저들!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던 카이는 순위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토벌 포인트 순위>
1위 - 144P
2위 - 32P
3위 - 28P
4위 - 27P
5위 - 25P
…….
공개된 토벌 포인트 순위는 총 10위까지.
2~9위의 포인트 차이가 비슷비슷한 반면, 1위는 독보적인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카이의 눈을 날카롭게 뜨며 물었다.
“대체 누굽니까?”
카이의 질문에 앞에 있던 세 사람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검은색 로브를 세트로 맞춘 8명의 유저가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세계 10대 길드 중 하나인 검은 벌(Black Bee) 놈들입니다. 1등은 맨 앞에 있는 놈이고요.”
“아시죠? 길드원 전원이 마법사로만 이루어진 또라이들.”
“혹시 두 사람이 오크를 잡으면 포인트가 어떻게 쌓이는지 아십니까?”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이곳에서도 솔플만 주야장천 했는데.
“글쎄요. 기여도 순……은 아닌 것 같네요.”
“맞습니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녀본 결과, 막타를 치는 사람에게 포인트가 일괄 부여됩니다.”
“그 부분을 악용한 거군요.”
한마디로 검은 벌 길드는 한 명에게 모든 포인트를 모아주고 있다는 소리!
카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토벌대장이나, 다른 NPC들은 뭐라고 안 합니까?”
“그쪽에서는 뭐라 못 하죠. 이러니저러니 해도 NPC는 오크 잘 잡아주는 놈들이 최고니까요.”
“고작 여덟 명이서 오크 수백 마리를 잡았어요. 더럽고 치사한 놈들이지만,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눈앞의 유저 세 명이 분노한 까닭이었다.
검은 벌 놈들은 더럽고 치사하지만 그만큼 능력이 있는 놈들이었다.
게다가 시스템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었기에 대놓고 처벌을 할 수도 없었다.
“흐음…… 그렇게 된 거군요.”
카이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그래, 실수는 개뿔. 어쩐지 느낌이 싸하더라고.’
아까 전에 자신에게 공격을 잘못 날렸다는 마법사.
그 녀석도 검은 벌의 로브를 입은 채 놈들과 함께 걸어가는 중이었다.
카이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벌인 판 위에 시커먼 벌들이 꼬였다, 이거지?’
유저들과 헤어진 카이는 슬쩍 뒤로 빠져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그는 사제복을 장비한 상태였다.
* * *
“이거 완전 대박인데요?”
“후후, 선배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거 먹힌다고 했죠?”
“이런 식이면 1등은 무조건 확정이네요.”
“그래, 다들 수고 많았다.”
세계 10대 길드 중 한 곳인 검은 벌 길드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루키이자, 화염 속성의 마법사인 클라드는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 모여있는 일곱 명의 동료를 믿음직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확실히, 이 작전은 먹힌다.’
처음에는 그저 순수한 실력으로 토벌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잘 굴러가는 동료 하나가 아이디어를 냈고, 그 아이디어는 번쩍번쩍 빛났다.
“선배님, 이 이벤트 저희가 독식할 수 있겠는데요?”
그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란 바로 토벌 포인트를 몰아주는 것!
확실히 자신들처럼 인원이 많은 파티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있어도 두세 명의 조그마한 규모가 전부.
그런 배경을 뒤로 삼은 그들은 첫 번째 토벌에 참가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44포인트!’
압도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격차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전투도 성공적으로 마친 클라드는 그 순간 확신했다.
‘끝났군.’
세 번째 전투가 끝난 시점에서 2위의 포인트는 고작 84P.
나름대로 분발은 한 모양이지만,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 점수 차를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클라드는 1위에게만 씌워지는 황금색 왕관과 그 옆의 472P라는 글자를 쳐다봤다.
‘물론 오크 로드랑 오크 워리어의 막타를 모두 빼앗기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클라드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경쟁자를 죽이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어차피 전장이란 곳은 너나 나나 정신이 없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라면 아군의 ‘실수’로 발사된 마법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법.
만약 실패하면? 그땐 실수했다고 발뺌하면 그만이다.
‘뭐,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붙어도 질 것 같지는 않지만. 확실한 게 좋으니까.’
검은 벌 길드는 숙련된 마법사들만 뽑기로 유명한 길드!
압도적인 공격력은 물론, 길드의 철저한 선후배 관계 덕분에 배신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이 두 가지 이유가 클라드로 하여금 승리를 확신하게 만들었다.
뿌우우우우우우-
쉬고 있던 유저들을 불러내는 네 번째 뿔나팔 소리가 초원 가득 울려 퍼졌다.
“네 번째 전투다!”
“갑시다.”
“이번에는 페이스를 조금 더 올려봐요. 한 200P 정도 모아보죠?”
강자의 여유로움을 뽐내며 전장에 합류한 그들은 이번에도 오크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파이어 필드!”
“버닝 핸드!”
”파이어볼!”
그들이 주문을 시전할 때마다 온갖 마법이 튀어나왔고, 그것들은 순식간에 오크들의 체력을 깎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이어 스피어.”
푸욱!
화르르르륵!
길드원들이 피를 깎아놓으면 막타를 꼼꼼하게 챙기는 클라드까지!
그들의 호흡은 완벽했다.
한 명을 위해 나머지 모두가 희생하는 완벽한 조합!
하지만 모든 파티에게 그렇듯, 위기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었다.
“뭐, 뭐야! 오크 히어로가 왜 여기에!”
“빌어먹을, 마법 저항력이 너무 높아!”
좌측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리의 오크 히어로!
그들은 일반적인 오크보다 더욱 질기고 단단한 몸통을 앞세우며 순식간에 검은 벌 길드원들에게 돌진했다.
“취이익, 죽어라. 인간 마법사들!”
“동료들의 복수다! 취이익!”
서걱, 서걱!
퍼억, 퍼억!
그들의 큼지막한 도끼와 몽둥이에 연신 가격당하는 검은 벌 길드원들!
하지만 주변의 그 어떤 유저도 그들을 도와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꼴 좋다.’
‘이참에 확 죽어버렸으면.’
“크아아악!”
“젠장! 아무나 좀 도와줘……!”
그들이 도움을 요청했지만 다른 유저들의 싸늘한 시선만이 쏟아졌다.
‘주, 죽는다!’
검은 벌 길드의 마법사 중 체력이 얼마 없던 마법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 위의 도끼가 떨어지면 그대로 죽을 터!
그 순간, 바닥까지 내려갔던 그의 체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힐, 힐, 힐!”
“어…… 어?”
“누, 누구?”
한 사제의 도움에 검은 벌 길드원들은 멍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였다.
도와달라는 말은 했지만 진짜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괜찮으십니까?”
그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제 하나를 쳐다봤다.
피가 낭자하는 전장과는 어울리지는 않는 백색의 고결한 사제복.
물론 후드를 깊숙이 눌러 써서인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그를 신비롭게 만들어줬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군요. 제가 치료를 해드릴 테니, 여러분은 열심히 싸우십시오.”
“아…… 예!”
“그, 그러죠, 뭐.”
떨떠름한 반응을 내보이며 다시 사냥을 시작하는 검은 벌 길드원들!
기습을 당했지만, 제대로 진형을 잡자 그들은 오크 히어로조차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
“우측에서는 오크 워리어 세 마리. 옵니다!”
“중앙에 있는 놈부터 일점사한다!”
그렇게 마법사 여덟 명과 사제 한 명의 기묘한 협력 관계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후우, 후우.”
“네 번째 전투도 끝났나.”
지난 전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지친 유저들.
그야 첫 번째 전투부터 도합 4천 마리의 오크를 상대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클라드는 동료 길드원들을 이끌고 자신들을 도와준 사제에게 다가갔다.
“도와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남들 치료해 주려고 사제 한 건데요, 뭐. 그럼 수고하세요!”
사제는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밝은 인사를 남기고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검은 벌 길드원들의 칭찬이 하나둘씩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저 사제, 개념 제대로 박혀 있는데요?”
“설마 지금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맞아요. 꼼짝없이 로그아웃당하는 줄 알았는데…….”
“흐음…….”
그 말들을 귀담아듣던 클라드는 사제가 떠난 자리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는 화력이 강력하지만 아까처럼 진형이 한 번 뚫리면 복구하기 힘들지.’
물론 그 방벽이 안 뚫리도록 집중력을 높여야 하겠지만, 그들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언제 누가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진형이 뚫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렇다면 만에 하나를 위해서 사제 하나 정도는 데리고 다니는 게 좋겠군.”
자신들은 세계 10대 길드인 검은 벌에 속한 마법사들이었다.
파티를 해준다고 하면 상대방도 얼씨구나 하고 승낙을 할 것이 분명했다.
10대 길드와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은 누구나 바라지만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사제라면 뒤통수 맞을 일도 없지.’
그것이 이 결정을 내리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어떤 상황이 되어도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는 놈은 절대 아군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그것이 검은 벌 길드의 철칙이었다.
‘하지만 사제 같은 쓰레기 직업은 백 명이 모여봐야 별로 무섭지가 않아.’
여분의 목숨을 얻었다고 생각한 클라드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