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힐통령 027화
13장 여명의 검술관(3)
카이는 매일 팔굽혀 펴기 1,000개를 준비 운동 삼아 해치웠다.
그 뒤에는 검술 훈련을 한다.
수평, 수직 베기와 대각선 베기, 그리고 찌르기까지 모두 1만 번씩.
첫날의 고통은 이틀이 지나 나흘, 닷새가 되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애초에 인간이 고통에 금방 익숙해진다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사람 따윈 없으리라.
“하아, 하아.”
하지만 그 고통을 참는 것도 오늘이 드디어 마지막!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훈련은 이전보다 배는 힘들었다.
팔 굽혀펴기를 2천 개나 해야 했고, 검은 종류별로 각각 2만 번씩을 휘둘러야 했다.
하지만 카이가 아무런 불만 없이 묵묵히 수련에 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본이 중요하다Ⅶ]
난이도 : C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검술관에서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습니다.
평소보다 두 배는 더 힘든 훈련을 소화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십시오.
퀘스트 보상 : 힘 +3, 민첩 +3, 체력 +3.
‘스탯을 무려 아홉 개나 주는 퀘스트!’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보상이 평소보다 더 좋았기 때문이다.
‘대신 수련 횟수도 두 배가 증가했지만 말이지.’
하지만 강해지는 것에 목이 마른 카이는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에도 연신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은 관주인 후이조차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정신 나간 녀석…….’
이곳에서 검을 가르친 지 족히 수십 년은 되었지만, 저런 녀석은 처음이다.
본인에게 말을 한 적은 없지만, 후이는 카이를 상당히 높이 평가했다.
‘본인이 자각하지 못했을 뿐, 이 녀석의 재능은 상당하다. 고작 일주일 만에 이 정도의 성장을 이뤄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겠지. 지니고 있는 잠재능력과 운동신경 자체가 뛰어난 놈이야.’
이 정도 신체 능력으로 여태 남들 뒷바라지나 하는 사제였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게다가 처음 몇 번을 제외하곤 실수도 잘 안 하는 편이었으니, 집중력은 물론 머리도 꽤나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재능이 출중한 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 중 태반이 그랬으니까.’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존재하듯, 달콤한 과실은 높은 나무에서 열리는 법이다.
그런데 카이는 그 열매를 딸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수 있는 녀석은 흔치 않지.’
애초에 카이가 하고 있는 훈련은 숙련된 기사들도 끝까지 버티기 힘든 훈련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수련을 받게 되면 모든 스탯이 10으로 고정되고, 스킬도 사용할 수 없으니까.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는 법이고, 높은 곳에서 추락하면 받는 데미지는 더욱 커진다.
‘한 마디로 실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이곳에서의 훈련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뜻이지.’
힘을 잃었을 때의 극심한 박탈감, 그것을 버텨내야만 이 훈련을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애초에 팔 굽혀 펴기나 목검 휘두르기 같은 것은 훈련의 축에도 끼지 못했다.
자신의 모든 힘을 잃어버리고 그 상실감을 견딜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여명의 검술관이 주는 진정한 시련이었다.
‘……이 녀석도 분명 약하지는 않은데, 신기하게도 적응을 잘한단 말이지.’
카이는 현재 선행 스탯으로 모든 스탯이 올라간 상태다.
단순히 스탯의 합만 따지면 무려 100레벨이 넘는 수치.
당연히 후이의 입장에서는 카이가 기사급의 강자로 보일 만했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카이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약한 사제였기에, 오히려 스탯이 다운된 이 상태가 더 익숙했던 것 뿐이었으니까.
물론 그 사실을 후이 관장이 알 리는 없었다.
‘정신력이 대단한 녀석이야!’
동시에 그의 눈동자는 오래전에 식어버렸던 열기를 피워올렸다.
‘패트릭 님이 남기신 유산을 얻으려면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로 심성이 악하면 안 된다.
만약 심성이 악한 자가 검술관에 들어오면, 그는 그 자리에서 눈을 까뒤집으면서 기절하게 된다.
‘……그 때문에 귀신 붙은 검술관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찾아오는 사람이 더욱 줄어들었지.’
검술관의 슬픈 역사를 떠올린 후이가 침울한 표정으로 잠시 묵념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모든 수련을 완벽하게 마치는 것.’
자신의 힘을 모두 잃어버린 박탈감을 극복해내고, 육체의 고통을 이겨내는 정신의 소유자!
패트릭이 찾던 인물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만약 게으름을 피우는 자들이 있으면 그들에게는 기본 검술만을 가르쳐주고 쫓아냈다.
‘물론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킨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지.’
만약 이 두 가지 조건이 전부였다면, 패트릭의 예상대로 그는 자신의 후예를 수년 안에 찾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패트릭의 마지막 변덕이 모든 일을 틀어버렸다.
[잠깐만, 나와 같은 길을 걷는 후배에게 모든 유산을 물려주고 싶구나.]
어디서나 존재하는 학연!
결국 그는 세 번째 조건을 추가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시험을 통과한 ‘태양교의 사제’에게 나의 유산을 물려주어라.]
‘이 빌어먹을 조건만 없었어도!’
보통 태양교의 사제가 검을 배우고 싶다면, 본단에서 성기사 수업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애초에 검술관에 다니는 이들은 보통 전사나 기사를 목표로 하는 이들이었기에 검과 전투의 신인 카잔을 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건에 맞는 이가 있을 턱이 있나!’
이 조건 때문에 여명의 검술관은 패트릭의 유산을 물려줄 이를 수백 년간 찾지 못했다.
가문의 대를 이으면서도 찾지 못한 후계자!
자식이 없는 후이는 패트릭의 유산이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고 소실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런데 며칠 전 검술관 앞을 서성이는 카이를 발견한 것이다.
‘이 녀석, 사제다!’
후이의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검을 가르쳐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가르쳐보니, 이 녀석이 제법 물건이었다.
‘심성도 이 정도면 통과점인데 끈기와 재능까지 있다.’
저 녀석이 오늘의 수련만 무사히 마친다면, 가문의 기나긴 사명도 드디어 끝이 나는 것이다.
‘드디어……!’
오늘과 같은 날만 기다려왔던 선조들을 떠올리니, 눈시울이 절로 붉어졌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카이를 응원했다.
“힘내라! 너는 할 수 있다! 절대 포기하면 안 돼! 포기하면 죽여 버릴 테다!”
“…….”
카이는 질색한 표정으로 노인을 쳐다봤다.
‘뭐지? 노망이라도 나신 거야?’
지난 며칠간 엄마보다 더한 잔소리를 퍼붓던 그가 돌연 응원을 하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하지만 그의 말과 눈빛에는 자신이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흐, 흥.”
부웅, 부우웅!
지쳐가던 카이의 목검이 내는 소리가 조금 더 강해졌다.
***
[검술관의 모든 수련을 완벽하게 마쳤습니다.]
[기본이 중요하다Ⅶ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힘 3이 상승하셨습니다.]
[민첩 3이 상승하셨습니다.]
[체력 3이 상승하셨습니다.]
“드, 드디어…….”
카이의 얼굴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후이는 천천히 다가와 손수건을 건넸다.
“지금 네가 흘린 한 방울의 땀은, 나중에 네가 흘릴 한 방울의 피를 대신할 것이다.”
“예!”
열심히 응원을 하느라 목이 쉬어버린 후이는 피곤한 표정으로 방석을 가리켰다.
“앉아 보거라. 해줄 말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방석에 앉자, 후이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수염을 쓸어내렸다.
“생각해 보니 내 소개가 조금 늦은 것 같군.”
“…….”
이미 조금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그야 자기소개가 무려 일주일이나 늦었으니까.
“내 이름은 후이 라둔. 대대로 패트릭 님을 모시던 가신이 바로 우리 일족의 정체다.”
“그렇군요.”
“사실 여명의 검술관은 일반적인 검술관과는 조금 다르다.”
‘역시.’
카이는 자신의 코끝을 스치는 익숙하고도 기분 좋은 냄새에 미소를 지었다.
‘냄새가 난다.’
이것은 히든 피스의 냄새!
첫날 후이가 이야기를 했던 대로, 이 검술관은 패트릭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지옥 같은 훈련도 끝났으니, 뭐라도 주겠지.’
카이는 상체를 앞으로 쭉 빼고 후이의 말을 최대한 경청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쳐다본 후이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검술관을 패트릭 님께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만났을 때 해줬지?”
“물론입니다.”
“사실 패트릭 님께서는 자신의 유산을 물려줄 인재를 찾고 계셨네.”
“그게 저로군요!”
“아닌데.”
“…….”
카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후이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네 능력에 따라 유산을 물려받을 수는 있겠지.”
“그게 무슨 뜻입니까?”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문장에 카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이 검술관에서 시험한 것은 대상의 선량함과 정신력이다.”
“……과연!”
카이는 이곳에서 느꼈던 점을 가감 없이 말했다.
“분명 관주님의 독설은 저처럼 선량하고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이가 아니면 버티기 힘들겠지요.”
“…….”
후이의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그는 패트릭의 유산을 잇는 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덕목을 설명해 주었다.
“아…… 그렇군요.”
“이것으로 너는 나의 가르침을 모두 수료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카이에게, 후이가 지도 한 장을 내밀었다.
“그럼 이제 이곳으로 가거라.”
“이것은 지도군요.”
“후후. ‘하녹스의 시련’이라 불리는 곳을 표기해놓은 지도이다.”
“하녹스의 시련이요?”
“암. 그곳은 패트릭 님이 본인의 강력한 신성력으로 만들어낸 던전이지.”
“던전! 그렇다면 위험으로 가득찬 곳이겠군요.”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후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 여명의 검술관이 정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장소라면, 하녹스의 시련은 극한의 체력과 전사로써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장소라는 것!”
“전사로서의 가치…….”
카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난 사제잖아.’
솔직히 자신이 왜 전사로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건 무려 광휘의 패트릭이라 불리던 태양교의 전설과 얽혀있는 히든 퀘스트야.’
이름만 들어도 꿀 냄새가 풀풀 풍기는 히든 퀘스트!
카이는 자신의 눈동자에 굳은 의지를 가득 담으며 말했다.
“그럼 그 시험의 장이라는 것을 통과하면 되는 겁니까?”
“물론이다. 그것이 너에게 내려지는 두 번째 시험! 그곳을 통과하면 너는 또 한 걸음 성장하게 될 것이다.”
[하녹스의 시련을 통과하라!]
난이도 : C
태양교의 역사상 최고의 성기사로 꼽혔던 광휘의 패트릭.
그가 말년에 만들어 놓은 시련의 장은 방문자가 전사로써의 소양을 지니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장소입니다. 당당히 시련의 장을 통과하여 패트릭의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십시오.
퀘스트 보상 : 모든 스탯 +1, 레벨 1 상승.
실패 페널티 : 패트릭의 유산을 상속할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됨.
“후후.”
카이는 퀘스트 설명에서 마음에 드는 단어만 쏙쏙 골라서 읽었다.
역사상 최고의 성기사, 그리고 위대한 유산!
‘자고로 유산이라고 하면 돈이지!’
게다가 역사상 최고의 성기사라고 하니, 황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카이는 감출 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련은 제가 반드시 통과하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