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화 (1/441)

# 1

힐통령 001화

프롤로그

퀘스트를 완료했다.

볼품없는 보상 때문에 아무도 깨지 않던 퀘스트였다.

“와. 결국 저 퀘스트를 깨는 사람이 나오네.”

“저거 보상이 쓰레기라서 적자날 수밖에 없는 퀘스트 아니었나?”

“맞아. 저걸 대체 왜 깨는지 이해가 안 되네…… 호구인가?”

“남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가자고.”

등 뒤에서 멀어지는 소리에 카이는 슬쩍 그들을 돌아봤다.

‘호구는 무슨.’

입 꼬리를 말아올린 그의 눈앞으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띠링!

[곤경에 처해있는 NPC에게 선행을 베푸셨습니다.]

[선행 스탯이 1 상승했습니다.]

[선행 스탯의 수치만큼 모든 스탯이 추가적으로 상승합니다.]

1장 착한 사람을 위한 엔딩(1)

한정우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좋았다.

이유? 그야 간단했다.

유치원을 다닐 때 넘어진 친구를 세워주고, 선생님에게 사탕을 받은 기억이 있었으니까.

-남을 도와주면 보상을 얻는다.

이 간단한 공식이 그의 가슴을 울렸고, 그때부터 정우는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며 소소한 보상을 받아왔다.

이러한 정우의 취미는 게임에서까지 이어졌다.

미라클 드림 온라인.

줄여서 미드 온라인이라고 불리는 이 게임은 사람의 오감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는 최고의 게임이었다.

출시와 동시에 기존의 모든 기록을 최단 시간에 갱신하고,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기록을 세운 게임.

정우는 그곳에서 퀘스트라는 형태로 NPC들을 도우며 보상받는 것을 최고의 낙으로 여기며 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와 같은 자신의 취미를 후회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까까지는 없었는데 말이지.”

후우. 옅은 한숨을 내쉰 그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당시 그는 마을에서 파티를 구해 사냥터로 향하던 중이었다.

목표는 경험치와 보상을 잘 주기로 소문이 난 붉은 놀.

하지만 공교롭게도 사냥터 진입로에 누군가가 쓰러져있었고, 카이는 이를 지나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퀘스트의 냄새가 났으니까.

“으음.”

“괜찮으세요?”

“여기는……?”

카이의 치료를 받고 정신을 차린 남자는 우선 고개부터 숙였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테루, 태양교의 사제입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본인을 테루라고 소개한 남자가 파티원들을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초면에 실례지만…… 혹시 모험가분들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오오, 이 또한 신의 계시! 여러분! 잠시 저에게 시간을 좀 내주시지 않겠습니까?”

“음…….”

골치 아픈 상황을 감지한 파티원들이 뒤에서 은밀히 속삭였다.

“저기 카이 님? 여기서 갑자기 퀘스트를 받는 건 좀…… 저희 붉은 놀 잡으러 가고 있었잖아요.”

“맞아요. 그리고 어떤 퀘스트인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덥석덥석 받고 그러지 마세요. 저희 지금 파티 상태라서 한 명이 퀘스트를 받으면 다 같이 공유 되어버리니까요.”

“아, 역시 그렇죠?”

카이가 부탁을 거절하려는 순간, 테루는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늦는단 말입니다!”

동시에 떠오르는 퀘스트 창.

띠링!

[테루의 부탁]

난이도 : A

태양교의 사제인 테루는 우연히 악신의 교단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혼자서 그곳의 사이한 기운을 없애려고 했지만, 도리어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를 도와 악신의 교단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기운을 파괴하십시오.

퀘스트 보상 : 태양교와의 공헌도와 친밀도 대폭 상승, 경험치 대폭 상승, 명성 대폭 상승.

실패 페널티 : 태양교와의 공헌도와 친밀도 대폭 하락, 경험치 대폭 하락, 명성 대폭 하락.

파티원들은 떠오른 퀘스트창을 읽으며 경악했다.

“A, A급 퀘스트라고!?”

“말도 안 돼. A급 퀘스트가 왜 40레벨 구간에서 생기는 건데?”

“음…… 아무래도 네 명으로는 무리인 것 같네요.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잠깐. 난이도가 A면 보상도 어마어마할 텐데……. 그걸 네 명이서 나눠먹을 기회라고요?”

파티원들의 뜻은 좀처럼 일치되지 못했다. 이를 보다 못한 테루가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제님들, 그렇게 다툴 시간이 없습니다. 악신의 교단에서는 현재 사악한 의식이 펼쳐지고 있는 중입니다. 때를 놓치면 대륙에 마왕이 강림할 수도 있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테루의 부탁 퀘스트가 강제로 수락되었습니다.]

[테루의 부탁 퀘스트의 상태가 시간제한으로 변경됩니다.]

[두 시간 안에 악신의 교단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의식을 저지하고, 교단을 정화하십시오.]

“두 시간!? A급 퀘스트인데?”

“아, 이러면 사람 모으는 것도 시간이 애매한데…….”

파티원들이 난색을 표하자, 테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들을 달랬다.

“형제님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가 사악한 의식을 저지하는 주문을 외우는 5분. 그 시간 동안만 저를 지켜주시면 됩니다.”

테루의 당당한 눈빛을 마주한 파티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5분 정도라면…….”

“우리들만으로도 괜찮지 않나?”

결국 결정을 내린 그들은 테루를 따라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흐르자, 교묘하게 숨겨져있던 신전의 입구가 그들을 반겼다.

“이런 곳에 신전이 있었군요.”

“흐음. 악신의 교단이라…… 제법 걱정되는데.”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고. 카이 님이 사제니까. 그렇죠?”

파티원 궁수의 질문에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악신의 교단이라면 언데드나 유령, 타락한 신관이 나오겠네요. 모두 신성력에 취약한 몬스터들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좋네요. 그럼 갑시다!”

퀘스트 실패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한 시간.

그들은 신전 안을 능숙하게 이동하는 테루를 따라 이동했다.

“형제님들, 이곳입니다.”

그를 따라 신전의 방에 들어온 파티원들은 주변을 돌아보며 한 마디씩 했다.

“여긴 어디죠?”

“아까 무슨 의식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오는데 몬스터가 안 보인 것도 조금 이상한데…….”

“자자, 형제님들. 의심은 접어두시고 저쪽을 봐주십시오.”

테루가 그들의 이목을 한 쪽에 집중시켰다.

그곳에는 어두운 기운을 줄기차게 뿜어내고 있는, 사람 모양의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지금부터 저 석상의 어둠을 정화할 겁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저에게로 향하는 공격을 모두 막아주십시오.”

테루는 곧장 알아듣지 못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문이 시작되자, 석상의 눈이 번쩍! 빛을 뿜어냈다.

지이이이잉!

석상의 눈에서 쏘아져나오는 백색의 광선!

기겁을 한 탱커가 황급히 방패를 내세우며 이를 막기 시작했다.

“크윽! 다짜고짜 이게 무슨……!”

“5분만 버텨!”

카이는 탱커에게 꾸준히 힐을 넣었고, 마법사와 궁수는 연신 공격을 퍼부어서 광선의 위력을 줄였다.

그렇게 약속했던 5분이 지났을 때, 테루가 소리쳤다.

“주문이 끝났습니다! 이제 석상의 이마에 박힌 보석을 빼주십시오!”

이에 탱커가 항변했다.

“미친 소리 하지 마요! 지금 저길 어떻게 뚫고 갑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쿨럭!”

말을 하던 테루가 돌연 귀와 코에서 까맣게 죽은 피를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이런, 테루가 쓰러지면 우리도 다 죽어요!”

“젠장…… 젠장!”

결국 파티의 탱커는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석상을 향해 전진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석상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방패를 두드리는 광선의 위력은 더욱 거세졌다.

“으아아아! 방패 내구도가 눈 녹듯이 녹잖아! 이거 퀘스트 끝나면 장비 수리비는 제대로 정산해줘야 돼!”

악을 쓰며 전진한 탱커는 결국 석상의 이마에서 반짝이던 보석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우르르르.

그러자 광선을 뿜어내던 석상은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그제야 긴장감이 풀린 파티원들은 참아왔던 숨을 뱉어냈다.

“후우, 끝난 건가?”

“진짜 힘드네. 저런 몬스터가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어.”

“그런데 A급 퀘스트치고는 너무 쉬운 것 같은데…….”

“고작 40대 레벨 구간의 퀘스트라서 그런 거겠죠 뭐.”

“대체 레벨이 얼마나 오를까요?”

“전 경험치보다는 태양교와의 공헌도가 더 기대되네요. 공헌도 포인트를 쓰면 유니크 무기도 받을 수 있다던데.”

그들이 A급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을 때, 테루가 탱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보석을 주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용맹한 전진이었어요.”

“아아, 신경 쓰지 마세요. 퀘스트 보상 때문에 한 거니까.”

“후후. 그래도 고마운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지요.”

“별말씀…….”

서걱!

탱커의 말이 끝나기도 전, 한 자루의 낫이 그의 목울대를 훑고 지나갔다.

“……?”

탱커가 제 목을 더듬거리며 의문을 뱉어냈지만, 갈라진 성대에서는 바람빠지는 소리만이 흘러나왔다.

스르륵.

이윽고 하얀색 폴리곤이 되어 흩어지는 탱커. 그 모습을 목격한 카이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대체 무슨 짓입니까!”

“큭…… 크하하하!”

테루는 광소를 터트리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어서 그와 눈빛이 마주친 파티원들은 오싹한 감정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무, 무슨 놈의 눈빛이…….’

‘저런 녀석이 정말 태양교 사제라고?’

‘……저놈은 절대 사제가 아니야.’

유일하게 사제 클래스를 지닌 카이만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순간, 테루의 머리 위로 검붉은색의 선명한 글자가 떠올랐다.

[지르칸 LV.???]

NPC의 이름이 머리 위로 떠오르는 경우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저, 적대 상태의 NPC!”

“게다가 지르칸이라면……?”

“웃는 낯의 지르칸!?”

그의 정체를 깨달은 일행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지르칸은 게임 설정상 대륙의 공적으로 선포되어 있는 흑마법사임과 동시에, 마왕의 부활을 꿈꾸는 네임드 NPC!

‘대체 레벨이 얼마나 차이가 나길래 제대로 된 수치조차 표시되지 않는거지?’

카이가 침만 꿀꺽 삼킬 때, 파티원들이 무기를 빼들었다.

“개자식! 감히 우리를 속여?”

“아이스 에로우.”

궁수와 마법사가 지르칸을 공격했지만,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서걱, 서걱!

[파티원 ‘디폰’님이 사망하셨습니다.]

[파티원 ‘아칸’님이 사망하셨습니다.]

공격 한 번에 로그아웃이 돼버리는 나약한 동료들!

카이는 바닥에 흩뿌려진 폴리곤들을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에 쓰러져있던 것도 전부 연기였구나.”

“하하하. 제 연기력이 제법 훌륭했나요? 이 보석은 제가 직접 뽑을 수 없기에 대신 뽑아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그런 사정이 있었나. 카이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당했어.’

앞서 죽은 세 명의 파티원들처럼 자신도 곧 죽게될 터.

그 예상처럼 지르칸이 천천히 카이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음? 이런…….”

지르칸이 돌연 인상을 찌푸렸다.

“봉인을 풀면 발동하는 마법이라니…… 서둘러 나가야겠군요.”

중얼거린 지르칸이 손을 휘젓자, 텔레포트 게이트가 나타났다.

그는 카이를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운이 나쁘시군요. 차라리 죽으시는게 편하셨을텐데…… 그럼 부디 힘내시기를.”

“뭐?”

카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지르칸은 이미 게이트 너머로 사라진 상태였다.

“……이 상황 무엇.”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띠링!

[테루의 부탁 퀘스트가 소멸되었습니다.]

[잊혀진 신전의 방어 체계가 발동됩니다.]

[지금부터는 그 어떤 존재도 잊혀진 신전에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습니다.]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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