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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117화 (117/120)

117화: 제자가 된 아버지 (2)

시몬의 뒤끝은 대단했다.

팔굽혀펴기 100회는 시작에 불과했다.

대 아크튜러스 가문의 주인인 드뇌브 후작은, 다른 사람도 아닌 큰아들 앞에서 견습생들이나 하는 기초 훈련을 받아야 했다.

팔굽혀펴기가 끝나자 시몬은 철봉에 매달릴 것을 주문했다. 지구력을 보겠다면서 말이다.

당연히 오러는 한 톨도 사용하지 못했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를 앞둔 강자라고 해도, 오러를 사용하지 않는 행동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오러를 이용해 근력에 힘을 불어넣을 수 없었으니까.

철봉을 쉬지 않고 천 번이나 해낸 드뇌브 후작은 팔에서 저릿한 감각을 느꼈다.

“힘드십니까?”

“할 만하군.”

“힘들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아버지는 가주시니까 특별히 좀 봐드리겠습니다. 사흘이라는 시간을 너무 마음에 두지 마셨으면 좋겠군요.”

이런 식으로 말장난까지 하며 드뇌브 후작을 놀려 먹고 있었다.

사흘은 케나드가 신식 검술의 살검 단계를 마스터하기까지의 걸린 시간이었다. 아크튜러스의 가주라면, 당연히 그것보다 습득이 빨라야 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염장을 지르고 있는 중이었다.

‘망할 놈! 이런 식으로 아비를 괴롭히다니!’

드뇌브 후작은 아들이 장난질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뭐라고 따지지 못했다.

검법의 기초가 근력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으니까.

새로운 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보겠다는데 어떻게 토를 달 수 있을까?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이처럼 무서운 일이었다.

특히나 그것을 인정한 드뇌브 후작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후우, 훅!”

드뇌브 후작은 시몬이 요구한 동작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상체 테스트는 이쯤 하지요.”

“상체 테스트는?”

후작은 다시금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상체가 있다면 하체도 있는 법이니.

“다음으로는 하체 테스트입니다. 아버지의 실력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신식 검술은 익히기 까다롭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니 제 말을 따라 주십시오.”

시몬이 넓은 연무장의 끝 쪽을 가리켰다.

“오리걸음으로 최대한 빨리 저곳을 찍고 돌아오시면 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러를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

드뇌브 후작은 신식 검술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시몬이 했던 ‘소드 마스터’라는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만인이 우러러보는 경지인 그곳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못할까.

만약 이곳이 공개된 연무장이었다면 거부했겠으나, 지금은 시몬과 단둘뿐이었다.

못할 것은 없었다.

“후읍!”

기합을 내지른 드뇌브 후작이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자세는 오리걸음이었는데, 속도는 뛰는 것과 다를 게 없을 정도로 빨랐다.

100미터 정도 되는 곳을 왕복하는 데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일반인의 뜀박질보다 빠르다고 할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아버지의 체술은 언제 봐도 감탄만 나옵니다.”

“다음은?”

“10회 반복하겠습니다. 근지구력을 평가하기 위함이니 최대한 빠르게 다녀오십시오.”

“…….”

드뇌브 후작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오리걸음을 뛰었다.

10회 왕복을 끝낸 후작이 몸을 일으켰다.

입에서 단내가 나는 듯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드 마스터의 눈이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요즘 훈련을 게을리하신 것 같군요. 기초 체력이 좀 떨어지신 것 같습니다.”

“오러를 쓸 수 있는데, 그것을 제한하니까 그렇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보는데?”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만, 상황에 따라서 오러를 쓰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승계전을 겪어 보셨으니 잘 아시지 않습니까?”

드뇌브 후작도 황태자가 ‘오러 브레이커’를 강화시킨 독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뭐라 반문하지 못했다.

이처럼 시몬은 과거의 경험을 섞어 아주 교묘하게 후작을 괴롭히고 있었다.

“검식은 물론 제가 발전시킨 체술도 기초 근력이 중요하게 활용됩니다. 앞으로는 매일 수련에 임하십시오.”

은퇴 라이프를 방해한 아버지를 편하게 놔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에 상응하는 일거리를 줄 생각이었다.

“그보다 언제 검식을 가르쳐 줄 생각이냐? 이대로라면 날이 저물고 말겠군.”

“저와 케나드는 밤을 새우며 검식을 익혔습니다. 설마 밤이 되었다고 편히 주무실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시몬의 입가가 얄밉게도 살짝 올라갔다.

드뇌브 후작은 포기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괜히 입만 아플 뿐이다. 한숨을 내쉬고,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이제는 하체의 지구력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투명 의자 자세를 취하고, 30분을 버티십시오.”

“투명 의자 자세는 또 무엇이냐?”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시몬은 양팔을 앞으로 뻗고 무릎을 굽혔다. 허벅지와 정강이가 직각이 된 자세로, 마치 보이지 않는 의자에 앉은 자세였다.

드뇌브 후작은 그 자세를 바로 따라 했다.

조금 해 보고 나니 허리와 허벅지에 엄청난 부하가 걸렸다.

“이건 마치 벌을 서는 것 같은 느낌이군.”

후작은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기사들과 같이 훈련을 받는 도중, 상관이 다른 훈련생을 벌세운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비슷했던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자식 된 몸으로 어찌 제가 감히 아버지를 벌하겠습니까. 아버지의 몸 상태를 꼼꼼히 살펴야 하니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

어쩔 수 없이 후작은 시몬이 지시하는 모든 체력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검식 수업에 들어간 것은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 * *

“오늘은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꽃병에 싱싱한 꽃을 채워 넣던 드비안느가 물었다. 오늘도 시몬은 정오쯤이 되고 나서야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평소였다면 어서 일어나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을 터.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은, 시몬이 연무장에서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하암…… 당연하지. 화풀이도 실컷 했고 짐도 하나 덜었거든.”

“화풀이는 매번 하시는 거니 그렇다 치는데 어떤 짐을 넘기신 건데요?”

“아버지에게 검술을 전수했다. 이제 기사단 훈련에서 한발 뺄 수 있다는 거지.”

놀랍게도 드뇌브 후작은 그 자리에서 새로운 검식의 심득을 모두 익혔다. 격검을 너머 살검까지 모두 마스터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심검의 검식을 전수받는 걸 거부했다는 것.

드뇌브 후작은 자신의 힘으로 심검의 경지를 완성해 보겠다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다.

당연히 시몬은 받아들였다.

뒤늦게 훈련에 대한 열정이 붙었는데 굳이 그 불을 끄는 것은 자식 된 도리가 아니었으니까.

“가주님께서도 자존심이 좀 상하셨겠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큰아들에게 검을 배운다는 게 좀 그렇잖아요?”

“억울하면 강해져야지 뭐.”

“와…… 이런 말씀 드리기 정말 죄송한데 너무 패륜적인 거 아닌가요?”

“마음대로 생각해라.”

씨익 웃은 시몬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레니가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간단히 세안을 마친 그는 얼굴을 닦고 환복했다.

“라니에리는?”

“외출했어요. 이따 오후에나 돌아온다고 하던데요.”

“잔소리꾼 하나 줄어서 좋군.”

“하나 줄었다면 다른 하나는 누군데요?”

시몬은 드비안느를 빤히 바라보았다. 드비안느가 자신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자,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시녀인 제가 하녀 노릇까지 하고 있는데 잔소리꾼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완전 서운하네요.”

“내가 하랬어?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

“물론 그렇긴 한데, 사람의 정성을 그렇게 무시하시면 안 되죠.”

“아침부터 너랑 말싸움할 시간 없다. 숙제해야 돼.”

“숙제요?”

시몬은 서류가 잔뜩 쌓인 책상 앞에 앉았다. 이것을 다 처리하지 못하면 라니에리에게 참교육을 당하게 된다.

“공자님도 참 고생이 많으시네요. 왜 후계자가 되지 않으려고 하셨는지 이해가 되네요.”

“그렇게 동정하기만 하지 말고 불쌍해 보이면 간단히 먹을 거나 좀 가져와.”

“알겠어요. 그런데 공자님. 혹시 오후에 시간 괜찮으세요? 저희 아버지께서 한번 뵙고 싶다고 여쭤봐 달라고 하셨거든요.”

“퀘백 남작이?”

무슨 일일까 싶었다.

퀘백 남작은 ‘오러 브레이커’ 해약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서클을 늘리는 비약도 열심히 만들어 주고 있는 상황.

딱히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일은 없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언제든 오라고 전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드비안느 양의 부친이라면 일을 미루고서라도 만나야지. 신세 진 것도 있는데.”

“빈말이지만 듣기 좋네요. 앞으로 많이 좀 해 주세요.”

“알았으니까 먹을 거나 좀 빨리 가져와.”

점심 메뉴는 역시나 샌드위치였다.

신선한 채소와 햄, 그리고 치즈와 피클이 들어간 요리.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면 주재료인 빵을 루아의 빵집에서 납품했다는 것 정도다.

그래서 시몬은 연인인 루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샌드위치를 단숨에 먹어 치웠다.

‘내일은 시간 좀 내서 루아를 보러 나가 봐야겠군.’

그러기 위해서는 서류 처리에 속도를 올려야 했다.

한참 후, 노을이 질 무렵 로이드 가문의 퀘벡이 알현을 청했다.

시몬은 빈말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서류에서 즉시 손을 떼고 그를 맞았다.

“오랜만이군. 퀘벡 경.”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소가주님.”

“나보단 그대가 더 바쁘겠지. 비약 할당량이 늘어서 고생이 많다고 들었네. 그보다 딸에게 듣지 못한 모양이군. 이 공간 안에서 소가주라는 칭호는 금기어야.”

“예?”

고개가 갸웃했지만, 퀘백은 바로 수긍했다. 하지 말라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그보다 무슨 일인가?”

“공자님께 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특별한 비약을 좀 만들어 보았습니다.”

“특별한 비약?”

퀘백 남작은 들고 온 길쭉한 목재 가방을 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열었다.

알싸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아주 잘 만들어진 단약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딱 열 개였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독이 있습니다. 이 약은 대부분의 독에 저항력을 올려 주는 비약이지요. 전에 주신 오러 브레이커의 해약을 만드는 조합식을 좀 바꿔 보았습니다. 나름 로이드 가문의 비전을 만든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호오.”

시몬은 일전에 만독불침의 비약에 관한 힌트를 준 적이 있었다.

그걸 이렇게 빨리 만들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아주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제조식을 좀 볼 수 있나?”

퀘벡은 즉시 제조식이 적힌 종이를 바쳤다. 곰곰이 살펴보던 시몬이 만족스레 웃었다.

“아주 좋은 조합식이군.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말이야.”

“어떤 부분을 보완하면 좋겠습니까?”

“이것 자체로도 훌륭한 비약이 될 거야. 하지만 두어 가지 약재를 첨가한다면 금상첨화겠지.”

시몬은 즉시 펜을 들어 추가할 만한 재료를 종이에 써 주었다. 너무나도 쉽게 비약 조제법이 완성되었다.

“그 정도면 가문의 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오……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간 경이 약초학과 연금술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안다. 아크튜러스에 헌신한 것도 알고 있고. 소소한 답례라고 생각하도록.”

퀘벡 남작이 무릎을 꿇었다.

“로이드 가문은 공자님께 영원히 충성을 바칠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시몬은 퀘벡 남작을 일으켜 주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앞으로도 포기하지 말고 연구를 계속해 줬으면 좋겠군. 지원금은 내가 넉넉히 주도록 하지.”

“감사해요. 공자님.”

드비안느도 인사했다. 평소처럼 너스레를 떨 분위기는 아니었다.

시몬은 상자에 들어 있던 비약 세 개를 꺼내 하나는 입에 넣고, 나머지 두 개는 퀘백과 드비안느에게 권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줄 생각인데, 온 김에 같이 먹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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