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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115화 (115/120)

115화: 조건부 승인 (2)

“제가 전수하는 것보다는 아버지께서 전수해 주시는 게 모양새가 좋을 것 같습니다. 아크튜러스 검식은 가문을 상징하는 검식입니다. 어쨌든 지금 가주는 아버지시니까요.”

시몬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언젠가 드뇌브 후작이 이런 말을 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역시나 드뇌브 후작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나에게 신식 검술을 전수하라는 말은, 내가 너에게 검술을 배우라는 말이냐?”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시몬은 얄밉게 웃었다.

기사단 전체, 그것도 두 개의 기사단에 검술을 가르치는 것은 정말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그래서 시몬은 그 대상을 하나로 압축시키기로 했다.

딱 그 목적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드뇌브 후작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검술명가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검술을 전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에게 검술을 전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버지께서도 수련이 필요하실 겁니다. 혹시 모르죠. 새로운 검식을 익힌 게 기연이 되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으음.”

시몬의 입에서 ‘소드 마스터’라는 표현이 나왔다.

검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달하고 싶어 하는 꿈의 경지.

드뇌브 후작은 이미 시몬의 회귀를 어느 정도 인정한 상황이다. 그래서 그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아, 혹시 아들에게 검술을 배워야 하는 게 부담스러우신 겁니까? 하하하. 이거 제가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군요.”

그때 누군가 허리를 쿡 찔렀다. 라니에리였다.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였다.

시몬은 좋다 만 사람처럼 미소를 지웠다.

“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지만 사용하시는 연무장도 있고, 케나드에게도 비밀리에 전수했으니 소문이 퍼지거나 하지 않을 겁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만 입을 조심한다면야.”

이 방에 있는 사람은 라니에리와 로빈뿐이었다. 두 사람은 입이 무겁기로 유명했다.

라니에리와 로빈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명을 따르겠다는 의미였다.

결국, 드뇌브 후작의 마음이 움직였다.

“좋다. 내일 바로 수련을 시작하지. 전수까지는 얼마나 걸릴 것 같나?”

“케나드는 사흘 만에 신식 검술의 살검 단계까지 마스터했습니다.”

“고작 사흘?”

“예. 아버지 정도의 실력자라면 하루 정도로 단축시킬 수 있겠지요.”

내심 부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케나드가 노력파에 천재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건 이미 승계전을 통해 검증된 사실이다.

아들보다 습득이 늦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드뇌브 후작도 한때 제국의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한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들보다 못하다는 말은 들을 수 없지. 좋아. 한번 해 보지.”

“반쯤은 농담으로 드리는 말씀이긴 한데, 이미 아들보다 못하십니다. 저는 신식 검술의 심검까지 대성했거든요.”

“…….”

생글생글 웃는 시몬을 보니 울화가 치밀었지만, 굳이 화까지 내고 싶진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원래는 신식 검술을 마스터했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승계전에서 이기고 가문을 잇게 되었으니 상관없었다. 만약 케나드에게 졌다면 문제가 됐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솔직하게 말해서 일을 빨리 진행시키는 게 좋다.

‘그래야 침대에 누워 쉴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시몬의 철학은 확실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검술에 대해서만큼은 아주 엄격합니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수련 중에는 제 말을 꼭 따라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마.”

시몬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아버지를 어떻게 굴리면 좋을까 벌써 기대가 되었다.

옆에 있던 라니에리가 은밀하게 허리를 찌르지 않았더라면 선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게 하나 있구나. 네게 전에 약조한 것 말이다. 네가 마음에 둔 사람과 혼인하겠다는 것. 그 상대가 있느냐?”

“있습니다.”

“어느 가문의 누구인가?”

역시나 드뇌브 후작은 상대가 귀족임을 전제로 질문을 던졌다. 시몬은 잠시 생각하곤 답했다.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왜지?”

“아버지 때문에요.”

“나 때문이라니?”

“요즘 미온 부인과 지나치게 가까우십니다. 친모께서 심기가 불편하신데 어찌 혼인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가족 여행도 좋지만 너무 들뜬 마음은 수련에 방해가 될 겁니다.”

시몬이 나름 진지하게 말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미온 부인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한쪽만 편애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어쨌든 시몬은 친어머니가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미온 부인을 내칠 순 없으니 적당히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었다.

“살다 보니 아들에게 꾸중을 듣는 날도 오는군.”

“꾸중이라뇨? 아들로서 걱정되는 말씀을 올린 것이니 너무 마음에 담지 마십시오.”

“할 말 다 하고 마음에 담지 말라는 것은 무슨 궤변이더냐?”

쓴웃음을 지은 드뇌브 후작이 밖으로 나갔다. 시몬은 그제야 편히 침대에 누웠다.

“부하들이 생긴 기분이 어때? 로빈.”

깜짝 놀란 로빈이 정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시리우스를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게끔 해 주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열심히 해야 할 거야. 케나드만큼은 바라지 않지만 너도 노력해야 할 거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거든.”

“예! 소가주님.”

시몬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럼 다들 나가 봐. 낮잠 좀 자야지. 라니에리. 혹여라도 드비안느 만나면 나 자고 있다고 해라.”

“단원들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가셔서 격려라도 한번 해 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작게 한숨을 내쉰 라니에리는 고개를 숙이곤 밖으로 나갔다.

* * *

적당히 어두운 집무실 안.

호화로운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카인 황태자가 과일을 입에 넣었다. 달콤한 과즙이 입 안 가득히 퍼져 나갔다.

시종이 넌지시 물었다.

“태자 전하. 과일은 입맛에 맞으십니까? 화이트필드 공작가에서 진상한 것들입니다.”

“아주 훌륭하군.”

과일도 과일이지만, 황태자는 다른 이유 때문에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동부의 화이트필드 공작가에서 충성 서약을 해 왔기 때문이다.

아크튜러스가 아직 굴복하지는 않았지만, 서부와 동부가 충성을 맹약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입이 심심할 때 과일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앞으로 내가 언제든 먹을 수 있게끔 준비해 놓거라.”

“예. 전하.”

마약을 끊은 이후로, 그는 간식을 자주 찾았다.

오래도록 즐겨 했던 마약을 끊은 것은 승계전이 끝난 바로 직후였다.

밀수에 문제가 생겨서는 아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다른 밀수 통로를 개척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다만, 이런 정신머리로는 시몬 아크튜러스라는 놈에게 복수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거기에 황실의 보물까지 빼앗겼다.

이런 치욕을 그냥 넘기기엔 황태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놈은 보통이 아니야. 권력에 눈이 먼 다른 장남들과는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느낌이었지.’

물론 약을 끊음으로 인해 금단 증상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황태자는 좋은 약재와 솜씨 좋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손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아주 단기간에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보다 더욱 차분해질 수 있었다. 예전의 총기를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놈은 약점을 잡으려 할 거다. 밀수를 방해한 것이 그 시작이겠지. 머리를 써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오히려 당하고 만다.’

어느덧 접시가 비워졌다. 시종은 고개를 조아리며 접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시몬 아크튜러스. 너에게 경의를 표하지. 네놈이 이렇게 일찍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야.’

시몬의 예감은 맞았다. 곧 다가올 미래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집무실 안으로 검은 갑주를 입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메르세데스 황녀의 수호기사인 제너릭 경이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동생은?”

“지금 침소에서 쉬고 계십니다.”

카인 황태자가 똑바로 앉았다. 그리고 다리를 꼬더니 거만하게 말했다.

“여전히 약을 하고 있나?”

“예전보다는 많이 줄였습니다. 곧 완전히 끊을 수 있게 될 겁니다.”

“고생이 많군.”

“고생이라니요.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태자 전하의 종일 뿐입니다.”

비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너릭 경은 황녀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 황녀에게만 의지할 생각은 없었다.

적절한 시기에 줄을 바꿔 잡는다.

그것이 이 정글 같은 황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사는 어떻게 되고 있나?”

“실력 좋은 자들을 파견했습니다만, 흔적이 아예 사라졌습니다. 밀수품도 찾지 못했습니다. 보통 놈들의 소행이 아닙니다.”

승계전이 끝난 직후 황태자는 밀수품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의심 가는 자들은 없나?”

“이 정도로 완벽하게 뒤처리를 할 수 있는 곳은 근방에 있는 세레스 가문 정도일 겁니다.”

“세레스 가문이라면 알데바란의 참모가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아크튜러스와 그다지 관련이 없는 이름이었다. 황태자는 여전히 진이 시몬에게 충성 서약을 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수상하군. 뭔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을 거다. 끈질기게 찾아보도록.”

“명을 받듭니다.”

제너릭은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잠시 후, 휘황찬란한 갑옷을 걸친 중년 남자가 알현을 청했다.

그는 아크튜러스 행을 보좌했던 오토 경이었다.

“북부의 팬드래건 백작가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태자 전하.”

“뭐라더냐?”

“우리는 북부 방벽을 지킬 뿐이다, 라고 합니다.”

“끝까지 자존심을 세우는군.”

황태자는 부단장 오토 경을 시켜 팬드래건 백작가에게 사람을 보냈다. 와서 충성 서약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북부 방벽을 지킬 뿐이라는 말은 그 요구에 대한 대답이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놈들은 어차피 황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지 않습니까?”

팬드래건 백작가는 북부의 변경백으로, 제국이 탄생한 이후로 지금까지 북방 이민족의 남하를 막고 있었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들은 단 한 번도 황도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그들은 거대 가문이라기보다 제국의 북부를 수호하는 방파제 같은 느낌이었다.

“북부의 상황은 어떠한가?”

“잠잠하다고 합니다. 당분간은 전쟁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서부와 동부, 그리고 북부의 문제는 얼추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남부였다.

“아크튜러스 가문은 요즘 어떻지?”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새로운 기사단이 창설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시리우스라는 이름의 기사단이지요. 총 300명의 기사가 충원되었다고 합니다.”

“300명이나? 시몬의 장난감치고는 규모가 너무 큰데?”

황태자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한쪽 벽면에 걸려 있는 거대한 지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황태자는 지도에 나타나 있는 무수히 많은 국가들의 이름을 훑었다.

머릿속에서 재미있는 생각들이 무궁무진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말이다. 아바마마께서 요즘 너무 힘들어하시는 것 같더군. 병환을 너무 오래 앓으셨어. 슬슬 편하게 해 드리는 게 좋지 않겠나? 아들 된 도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속히 준비하겠습니다. 전하.”

오토 경은 결연한 표정으로 군례를 취했다. 그가 물러간 이후까지도, 황태자는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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