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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113화 (113/120)

113화: 잊을 수 없는 밤 (2)

“고맙습니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신경 써서 하긴 했는데, 요리는 많이 해 놨으니까 많이 드세요!”

“눈으로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군요. 저는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뭐든 잘 먹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몬은 행복했다.

요즘 가문을 잇게 되어서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크튜러스의 소가주라는 운명에서 벗어나 오롯이 즐기고 싶었다.

일단 고기부터 입에 넣었다.

“으음.”

달콤한 소스를 입은 칠면조 고기는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았었는데,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루아 양께 실례를 한 것 같습니다.”

“예? 실례라뇨?”

루아가 깜짝 놀랐다. 시몬이 너무 진지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혹시 간이 맞지 않은 걸까?

요리하는 도중 음식이 좀 타 있었던 걸까?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오히려 빵집이 아니라 레스토랑을 해 보시라고 권유드리는 게 맞았습니다. 정말 고급 레스토랑에 온 느낌이 드는군요. 이 칠면조 요리는 단연코 최고입니다.”

“아…….”

루아는 너무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붉혔다.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손바닥으로 뺨을 가렸다.

“정말 맛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먹고 싶군요. 마음 같아서는 영주님께 진상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 훈훈한 장면을 지켜보던 루아의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비켜 주고 싶었다.

이렇게 완벽한 사윗감이 또 있을까.

“빈말이라도 감사해요. 정말.”

“빈말 아닙니다. 상인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되거든요.”

“아…….”

루아는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너무 좋았다. 오늘만을 기다리고 정성을 들여 만든 요리였다. 그걸 맛있게 먹어 주는 것 이상의 보답이 있을까?

“어머님도 좀 드십시오. 정말 맛있습니다.”

“네에. 사이먼 님도 많이 드세요.”

그렇게 저녁 식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잘 마무리되었다. 시몬은 너무 맛있었고, 다음에도 또 먹고 싶다며 자연스레 약속을 잡았다.

후식으로는 차가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조용한 밖을 거닐며 루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눈에 띄는 일이라 그만두었다.

“사이먼 님. 저는 좀 밖에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 와야겠어요. 우리 딸하고 좀 이야기하고 계실래요? 빵집 일이라 좀 시간이 걸릴 거예요.”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시죠.”

루아의 어머니는 방해하지 않겠다는 것을 넌지시 표현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제는 시몬과 루아만 집에 남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차만 홀짝일 뿐,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어색하면서도 기분 좋은 긴장이 흐르는 분위기였다.

“알피나 쪽 분점 상황은 요즘 어떻습니까?”

“삼촌이 열심히 하고 계세요. 거기도 빵을 사려면 줄을 오래 서야 한대요.”

“잘됐군요.”

다소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이 끊기듯 오갔다.

그러다 보니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만큼 좋은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시몬은 라니에리의 조언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루아 양에게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시몬의 말이 훅 치고 들어갔다. 루아는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 그게…… 사이먼 님은 좋은 분이에요. 자상하시고 배려심도 많으시고, 멋진 능력을 가지신 분이에요.”

“세상에 좋은 사람은 많습니다. 제 부관인 라니도 좋은 평가를 듣는 친구죠. 제가 궁금한 것은 루아 양의 마음입니다.”

물론, 시몬은 비겁하게 상대방의 마음만 떠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저는 루아 양이 좋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좋은 물건을 발견했을 때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지요.”

좋다는 것은 다소 애매한 고백이었다.

그러나 시몬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던 루아는, 그 깊은 눈동자에서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고.

순간,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익숙한 느낌이 다시금 찾아왔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기쁘네요.”

“루아 양은 어떻습니까?”

“저는…….”

시몬은 당연히 긍정의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어렴풋하긴 해도 루아의 마음을 알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고민은 길었다.

수시로 바뀌는 루아의 표정을 보니, 시몬은 조바심이 났다.

“저도 그래요. 가게에서 빵을 팔고 있다 보면 사이먼 님이 오시지 않을까 매일 기대하기도 하고요. 연락이 없으실 때면 가끔 아쉽기도 하고요. 문득문득 생각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여기에서 왜 그런데라고 하지?

시몬은 의아했다.

“사이먼 님에 대해서 전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아크튜러스 상단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어요.”

“아, 미안합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은 것 같군요. 지금이라도…….”

“아뇨. 그런 의미로 드린 말씀은 아니에요.”

“그럼요?”

시몬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를 생각하는 루아의 마음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단지 표현하지 않았을 뿐.

“제가 느낀 사이먼 님은 뭔가 알 수 없는 분이에요.”

“좀 더 정확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세요?”

“물론이죠. 알피나 마을의 부동산 업자 사무실이었지요.”

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좀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요. 굉장히 친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요.”

“마이너 마을에서 종종 빵을 사러 갔다고 말씀드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것과는 좀 달라요.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데…….”

시몬은 채근하지 않고 루아의 말을 기다려 주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 전생과 연관이 되어 있는 건가?’

루아가 느끼는 친숙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이다.

어쩌면 시몬은, 과거의 강렬한 인연이 현재의 루아에게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라니에리에게 이야기하면 합리론으로 부정되는 추정이라며 무시당했겠지만 말이다.

“인연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운명에 관한 이야기도 떠오르고.”

“인연, 좋은 말이네요. 어쩌면 그런 느낌일지도 모르겠어요.”

루아가 그렇게 답하며 웃었다. 인연이라면, 그 감정이 설명되는 듯했다.

“그런데, 사이먼 님은 실제로는 더 대단한 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상단에서 일하고 계시지만 영주님의 일을 보좌하고 계시잖아요?”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아크튜러스 상단은 영주님이 관리하고 계신 거니까 말입니다.”

“어쩌면 저라는 존재가 사이먼 님의 앞길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큰일을 하실 분이니까요.”

시몬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절?’

왠지 목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여인에게 거절당하는 건 전생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 했어.’

씁쓸해졌다.

들떴던 기분이 착 가라앉음을 느꼈다. 자신이 크게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잘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몇 번이든 도전하는 거야. 루아의 마음을 얻을 때까지.’

시몬은 포기하지 않았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현재 자신은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

“루아 양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제가 너무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 죄송스럽군요.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언젠가 루아 양의 마음을 얻을 겁니다.”

“네에?”

루아가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시몬을 쳐다보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시몬이 조심스레 물었다.

“제 마음을 거절하신 것으로 이해했는데, 아닙니까?”

“아.”

루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풋 하고 웃었다.

“반대예요. 제가 좀 오해하게 만들었나 봐요.”

“반대라 하시면…….”

“바쁜 일이 끝나셨을 때, 그때라면 마음을 나누기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수도에서 적응하려면 조금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사이먼 님을 향한 제 마음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온몸이 짜릿했다.

이런 쾌감을 느껴 본 적이 언제였을까?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때도, 대륙 전쟁에서 승리할 때도 경험하지 못한 쾌감이었다.

시몬은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하. 저는 루아 양께 거절당한 줄 알았습니다.”

“사이먼 님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이렇게 멋진 분인데요.”

“그럼, 저는 루아 양의 연인인 겁니까?”

“아…… 그, 그렇죠?”

연인이라는 말이 왠지 마음을 간질였다. 루아의 얼굴은 다시금 붉게 달아올랐다.

시몬은 따로 준비한 이야기를 꺼냈다.

만약 연인이 된다면 꼭 먼저 말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만약 제가 루아 양이 알던 사람과 조금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다른 사람이라뇨?”

“제가 만약 다른 신분으로 상인 활동을 하고 있다면 말이죠.”

마음 같아서는 인피면구를 벗고 정체를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루아의 입장에서 너무나 큰 충격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부모도 생각해야 한다.

좀 더 가문에 긍정적인 인식을 주었을 때 정체를 밝힐 계획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주면서 말이다.

“혹시, 조금 안 좋은 쪽일까요?”

루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시몬은 즉시 부인했다.

“절대 아닙니다.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지금 다른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밀이 필요한 일을 상단에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상단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고. 대륙을 돌며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한다고.

그리고 그 수집된 정보가 아크튜러스 가문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루아는 별다른 의문 없이 수긍했다.

이미 시몬은 상단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혹시 지금 변장하신 거예요?”

“조금 했습니다. 걱정되십니까? 제 원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전혀요.”

루아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했다.

“제가 사이먼 님이 좋은 이유는 저를 생각해 주시는 마음 때문이에요. 매번 따뜻한 진심이 느껴졌어요. 추운 날 모닥불 앞에 앉아 불을 쬐는 그런 느낌이요. 물론 잘생기신 것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저, 언제쯤이면 사이먼 님의 진짜 정체를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시몬은 각오했다. 최대한 빨리 정체를 밝히게끔 만들겠다고.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준비가 끝나면 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루아 양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약속해 주세요.”

루아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시몬은 지체 없이 손가락을 걸었다.

“저…… 그리고 괜찮으시면, 저희 부모님께는 당분간 비밀로 해도 될까요? 사이먼 님과 저의 관계에 대해서요.”

“물론입니다. 편하신 대로 하셔도 됩니다.”

“왜냐고 묻지 않으시네요.”

“루아 양이 저를 믿어 주시는 만큼 저도 루아 양을 믿습니다. 합당한 이유가 있겠죠.”

시몬의 믿음과 애정이 느껴졌다.

그래도 루아는 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인이 되었다는 걸 알면, 당장 그…… 혼인을 올리자고 하실 것 같아서요. 상단하고 하는 일도 있으니, 천천히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고마워요.”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채로 시선을 마주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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