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103화 (103/120)

103화: 인과응보 (3)

“왜 웃는 거냐?”

이젠 더 이상 시몬에게 존대하지 않았다.

로버츠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6서클에 달하는 엄청난 오러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템페스트는 황태자가 말한 것처럼 정말 대단한 아티팩트였다.

“저번부터 느꼈는데 그 표정 참 맘에 안 든단 말이지. 직계 놈들은 하나같이 재수가 없다더니.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야.”

“이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시몬은 심각한 오러 탈진을 겪고 있었지만 가까스로 버티고 서 있었다.

로버츠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하하하. 당연한 거 아냐? 이제 이 아티팩트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알게 되었을 텐데? 네놈에게는 한 톨의 오러도 남지 않았을 테니.”

“잘 알지.”

“그럼 알아서 눈 깔라고. 싸울 여력도 없는 게 폼 잡는 거 보니까 꼴불견인데? 무릎 꿇고 빌어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지.”

물론 딱 목숨까지만 살려 줄 생각이었다. 오른팔을 잘라 더 이상 검을 들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후환을 남겨 놓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일이니까.

시몬은 엄청난 모욕을 당했다.

그럼에도 드뇌브 후작은 물론, 아크튜러스의 사람들은 개입하지 못했다. 아직 승부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승부가 끝나려면 패배 선언을 해야 했다.

그런데 시몬은 패배 선언을 하기는커녕, 무릎을 꿇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오히려 그 아티팩트에 대해 잘 모르는 건 내가 아니라 로버츠 너다.”

“뭔 헛소리냐?”

“말로 알려 주는 것보다 직접 경험해 보는 게 더 빠르겠지. 슬슬 반응이 오고 있을 텐데?”

시몬의 말 때문일까.

로버츠는 가슴 쪽에서 뻐근한 느낌을 받았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몬의 말이 도화선이 된 것처럼 갑작스러운 불안감이 느껴졌다.

한 세월 충분히 살다 돌아온 시몬은 그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애송이. 너 3서클 유저였던가?”

“무슨……!”

“오해는 마라. 네 경지를 알고 싶어서 물은 건 아니거든. 그 검, 뭔진 잘 모르겠지만 3서클 유저가 쓸 만한 검은 아닐 거다.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설명을 듣지 못한 모양이지?”

시몬은 은근히 조롱하며 힌트를 던져 주었다.

‘대가를 치른다고?’

로버츠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에게 검을 받은 후 지금까지 여러 번 사용했었다. 승계전이 열리기 전에도 믿을 만한 부하들과 충분히 테스트를 거쳤다.

그때 부작용이라고 할 만한 증상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답답하지? 뭔가에 꽉 눌린 것처럼…… 젠장! 질식할 것 같아!’

로버츠는 그 원인을 파악하려 애를 썼다. 오러를 흘려 혈맥 전체를 스캔했다.

곧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템페스트의 마나가 역류하고 있어?’

템페스트에 맺혀 있어야 할 6서클의 가공할 만한 오러가 조금씩 혈맥을 따라 자신의 심장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심장에는 오러 서클이 자리 잡고 있다.

시몬의 지적대로 로버츠는 세 개의 서클을 가지고 있는 상황.

6서클의 엄청난 오러가 심장까지 올라오게 된다면, 기존의 서클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검이 흡수한 6서클의 오러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질적인 것이 체내로 침투한 것이라 인식하고, 내부 방어 기제가 펼쳐질 터.

혈맥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단순 숫자만 놓고 보더라도 3서클의 오러로는 6서클의 오러를 절대로 상대할 수 없다.

‘끄아아악! 이런 미친! 점점 오러가 늘어나잖아!’

휘청!

승계전이 열리고 나서 처음으로 로버트의 신형이 흔들렸다.

‘이, 이대로는 안 돼!’

뭔가 울컥하는 것이 가슴에 느껴졌다.

푸확!

로버츠가 검붉은 피를 토해 냈다. 역류한 오러와 로버츠의 오러가 서로 충돌해 내상을 입은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지?”

“로버츠 공자가 압도적으로 이긴 것 같았는데, 피를 토한 게 로버츠 공자라니!”

“어엇! 쓰러진다!”

털썩!

로버츠가 검을 손에 쥔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미 서클 하나가 부서졌고, 나머지 두 개의 서클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는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간신히 숨만 붙어 헐떡일 뿐이었다.

그 상태로 조용히 시몬이 다가갔다.

이제는 공수가 완전히 바뀌었다.

가까이 다가간 시몬은 로버츠의 머리맡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아까 뭐라고 했었지? 무릎 꿇고 빌라고? 그럼 목숨만은 살려 준다고?”

시몬은 굳이 웃음을 참지 않았다.

로버츠는 엄청난 모멸감을 느꼈으나, 숨이 넘어가게 될 상황이었다. 검을 손에서 놓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템페스트는 손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생명을 모두 갉아먹은 뒤에야 떨어지려는 것처럼.

“우습군. 이제 상황이 좀 바뀐 것 같은데, 어때? 곧 있으면 내 오러가 너의 서클을 모조리 파괴할 거다. 그렇게 되면 너는 두 번 다시 기사로서 명성을 떨칠 수 없게 되겠지.”

부서진 오러는 다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예전처럼 서클이 좋은 자리에 들어서지 못하게 된다.

한마디로 오러 유저로서의 생명은 끝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대로 죽여 줄까. 아니면 그 검, 나에게 넘길래? 어쨌든 검의 소유권은 너에게 있는 것 같은데.”

“사, 살려 주십……! 커헉!”

다시금 피가 뿜어졌다. 이제는 숨이 아예 넘어가려고 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시몬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검을 나에게 넘기면 목숨은 살려 주지.”

“너, 넘기겠……! 으윽! 제발! 살려 줘!”

시몬은 경기 진행자를 손짓해 불렀다. 그리고 그가 증인을 설 수 있도록 다시금 대답을 요구했다.

“힘들겠지만 또박또박 말해. 이 검, 힐스트롱 가문의 아티팩트를 나에게 넘긴다고 말이야.”

“이, 이 아티팩트를…… 끄윽…… 시몬 공자에게…… 넘기겠소…….”

“들었나?”

“예. 들었습니다. 공자님.”

시몬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뻗어 템페스트를 쥐었다.

쑤우욱!

오러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로버츠의 몸에 침투한 오러가 주인의 부름을 받아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로버츠의 손을 따라 검으로 옮겨 왔고, 다시 시몬의 몸속으로 회수되었다.

“커허허허…….”

하지만 조금 늦었다.

로버츠는 남은 오러 서클까지 모조리 파괴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목숨은 건졌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우우웅!

템페스트가 새로운 주인을 향해 울부짖듯 검신을 파르르 떨었다.

“오랜만이군. 템페스트.”

하지만 시몬은 그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5서클의 경지에 올라 있다. 템페스트를 안정적으로 다룰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시몬의 전생을 알아본 걸까.

그가 검을 쓰다듬자 진동이 점점 잦아지더니, 이내 온순한 강아지처럼 꼬리를 내렸다.

“됐군.”

검을 길들이는 것에 성공한 시몬은 검을 뻗어 로버츠의 목에 겨냥했다.

“시몬 공자, 승리!”

판정이 내려졌다.

“정말 대단한 결투다! 음유시인이 이 자리에 없는 게 참으로 유감이군!”

“아티팩트의 능력을 역으로 이용하다니…… 시몬 공자는 정말 엄청난 사람이야!”

“오크 족장들을 모조리 다 참살한 게 우연이 아니었어!”

사방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오러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은 이미 템페스트의 능력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그리고 시몬이 감당하지 못할 강력한 오러로 아티팩트의 능력을 역이용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겉으로는 간단해 보여도 실행에 옮기는 건 쉽지 않다.

“대체 어떻게 교육시킨 겐가? 마치 경험이 풍부한 대장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군.”

밀튼 공작이 드뇌브 후작에게 말을 걸었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드뇌브 후작은 긴장이 풀림을 느꼈다.

“특별히 뭔가를 가르쳐 주진 않았습니다. 알아서 잘 커 준 거지요.”

“정말 대단하군. 저 검은 분명 오러 이터일 텐데…… 사전에 어떤 아티팩트인지 알지 않고선 저렇게 하지 못했겠지. 보기만 한 것으로 무슨 아티팩트인지 알아채다니.”

공작도 나름 이름 있는 오러 유저였지만, 템페스트의 능력을 바로 알아채진 못했다.

그래서 감정이 복잡했다. 자기보다도 식견이 좋은 젊은이가 눈앞에 있으니.

“이런 말씀 드리기 부끄럽습니다만, 요즘은 저를 가끔 놀라게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저 아티팩트의 능력을 알지 못했습니다.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으음.”

“운이 좀 좋게 작용한 것도 있을 겁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후작은 정중한 어조로 밀튼 공작의 마음을 달랬다.

드뇌브 후작은 시몬의 회귀를 인정했다. 하지만, 머리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 경기를 보고 나니 그런 의문마저도 싹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검에 대해 미리 알고 있지 못한다면, 결코 사전에 준비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철컥!

시몬은 템페스트를 검집으로 회수했다.

이전 경기와는 달리 시몬은 귀빈석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황태자를 향해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축하하네. 시몬 경. 과연 아크튜러스 가문이야. 이주 인상 깊은 싸움이었네. 거기에 두 아들이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다니…….”

태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 결투가 방점을 찍었다. 계획했던 것이 모두 어그러졌다.

처음엔 메르세데스에게 남부의 혼란을 일으키고, 알퐁스 가문이 주도할 수 있는 판을 짜 달라고 했었다.

아크튜러스 가문과 알데바란 가문을 서로 싸우게 만들어 두 강자의 힘을 빼놓으려는 전략이었다.

간단히 성공할 줄 알았다.

그만큼 두 가문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평화 협정으로 무산되었다. 거기에 두 가문은 힘을 합쳐 오크족을 몰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거기에 로데론에서 오던 특별한 물건들이 통째로 사라졌다. ‘데저트스톰’이라는 처음 듣는 단체가 물건을 모조리 가져가 버렸다.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상황이 없었다.

그리고 황태자는,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 모두 눈앞에 있는 저 청년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꽈득!

황태자의 손이 꽉 쥐어졌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모두 태자 전하께서 내리신 축하주 덕분입니다. 그 술을 마시니 몸에 힘이 샘솟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시몬이 조용히 도발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겸양을 표하는 것처럼 들릴 터. 그러나 황태자 입장에서는 조롱에 가까운 언행이었다.

“술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

“다음에는 제가 한번 술을 올리고 싶습니다. 전하의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기대하지.”

“그보다 태자 전하. 로버츠 공자를 이긴 기념으로 이 검을 전리품으로 취해도 되겠습니까?”

시몬이 템페스트를 내밀었다.

황태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미 진행자를 증인으로 세워 양도 의사를 확인한 뒤였다.

문득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혹시 시몬 공자가 이 모든 계획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황태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었다. 모든 것은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왜 그걸 나에게 묻는가? 이미 로버츠 공자가 넘기기로 약조하지 않았던가?”

“로버츠 공자는 허락했으나 전하께서 승리를 위한 축배를 내리셨습니다. 신하 된 도리로 먼저 전리품의 처분을 여쭙는 게 순리인 줄 압니다.”

시몬은 원리원칙을 말했으나, 다른 의도가 있었다.

황실의 보물을 내가 접수하겠다고 선언한 것.

그러나 황태자는 그것이 원래 황실의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승계전에 황실이 개입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를 게 없었으니까.

“……실로 충성스러운 자로구나. 기쁘군.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취할 수 있지. 심지어 목숨까지도 말이야. 무기를 거두는 건 문제가 아니지. 허락한다.”

“영광입니다. 전하.”

시몬은 고개를 조아렸다.

사방에서 축하의 박수가 쏟아졌다.

이 한 번의 싸움으로, 시몬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 그에 비해 황태자의 손실은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