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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102화 (102/120)

102화: 인과응보 (2)

결국 카펙은 케나드의 벽을 넘지 못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케나드의 쾌검에 끝내 검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승부가 금방 끝난 것은 아니다.

16강전부터 지금까지 열린 결투 중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싸움에 임했다. 케나드는 오러를 낮추면서까지 결투 시간을 늘렸다.

그 이유는 딱 하나.

시몬이 짐작하는 대로, 이 결투조차도 자신의 경험으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제가 졌습니다.”

설마 자신이 패배 승복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케나드는 그의 목을 겨누고 있던 검을 거두고 검집으로 갈무리했다.

“케나드 아크튜러스, 승리!”

승리 선언이 울려 퍼지고, 사방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약혼녀 모니카 공자는 기립 박수를 보낼 정도로 기뻐했다.

케나드는 결승전에 진출했다.

‘로버츠 놈…… 분명 이번 계획이 성공할 거라고 했었는데!’

쾅!

카펙은 맨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분했다.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소문은 내지 않았지만 미들즈웨이 가문에서도 아티팩트와 비약을 구하기 위해 거의 전 재산을 투자했다.

그런데 그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설마, 먼저 뒤통수를 친 건 아니겠지?’

카펙과 로버츠의 눈이 마주쳤다.

로버츠는 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은 경계심을 보였으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내심 잘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카펙은 차분하고 냉정하기로 소문났지만, 안으로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의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러 브레이커는 분명 술에 섞여 있었다.’

술을 마신 이후, 서클을 파괴하기 위해 미친 듯이 휘몰아치던 그 불길한 기운을 분명히 느꼈다.

황태자는 분명 같은 술병으로 술을 따랐다.

물론 그 안에 특별한 장치가 있어 물길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번에 만든 오러 브레이커는 정말 강력한 효능이 있어서 특수한 용기에 보관하지 않으면 주변을 오염시키고 마니까.

특수 장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막기가 어렵다.

즉, 케나드도 오러 브레이커가 섞인 술을 마셨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견뎌낸 거지? 우리의 계획을 알아챌 리는 없는데…….’

수많은 의혹과 의심들이 뿌리를 내릴 무렵, 진행자가 다가와 카펙을 부축했다.

“괜찮나?”

“괜찮습니다.”

“슬슬 내려가지.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하니.”

패배를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카펙이 경기장을 내려갔다. 로버츠가 대기하고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형편없는 놈. 결승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잊은 거냐?”

“오러 브레이커가 듣지 않았다.”

“우습군. 그걸 변명이라고 하다니.”

오러 브레이커가 소용이 없었다는 건 로버츠도 잘 알고 있었다. 술을 마신 케나드는 전과 동일한 위력의 오러를 발출했으니까.

“너는 마치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당연하지. 미들즈웨이 가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힐스트롱은 다르거든. 기대하고 있으라고. 시몬 놈을 박살 내고 돌아올 테니까.”

로버츠가 템페스트를 꼭 쥐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대편에서는 시몬이 케나드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었다. 동생의 어깨를 다독이며 웃었다.

“너 꽤 잔인한 취미가 있더라?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아주 재미있게 싸우던데.”

“좋은 상대였습니다. 나중에 따로 인사할 생각입니다.”

“넌 다 좋은데 눈치가 없는 게 문제야. 굳이 그러진 마.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일 테니까.”

케나드는 겸손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의 칭찬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 해약, 정말 굉장하더군요. 독이 정말 강하게 올라왔는데도 잘 막아 냈습니다.”

“로이드 가문에서 애썼지. 나중에 드비안느 누나 보면 밥이라도 한 끼 사 줘라. 약초 구해 오느라 고생 많이 했어.”

“알겠습니다.”

“이제 결승에서 만나겠구나.”

시몬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케나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생각엔 변함이 없나? 네가 나를 넘어설 수 없을 거라는 그 뻔한 생각 말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닌 듯합니다. 형님. 로버츠 공자가 사용하는 검,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아주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할 거 없다. 일격에 날려 버리고 결승 무대에 설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

시몬이 손을 뻗었다.

곁에 있던 라니에리가 목각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시몬이 제조한 비약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몬은 상자를 뒤집어 비약을 손바닥에 털었다.

“적당히 가려라.”

“예.”

라니에리와 케나드가 몸으로 시몬을 슬쩍 가렸다.

돌아선 시몬은 물을 마시는 척 비약을 모조리 입에 털어 넣었다.

싸아아아!

목을 타고 넘어간 오러가 혈맥을 타고 전신을 휘돌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오러 연공을 해서 서클로 오러를 모아야겠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게 활용할 계획이었다.

시몬은 오러를 한곳으로 집중시켰다. 이미 그는 극도로 효율적인 연공법을 알고 있는 상황.

오러는 마치 의지가 담긴 것처럼 시몬이 원하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목적지는 손이었다. 정확히는 오른손.

비약 하나를 먹어 잘 운용시키면 1서클에 달하는 오러를 얻을 수 있다. 시몬의 손에 모인 것은 3서클에 해당하는 오러였다.

“다음은 아크튜러스의 시몬 공자와 미들즈웨이의 로버츠 공자의 결투가 시작되겠소!”

웅장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상태로, 시몬은 경기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반대편에서도 로버츠가 올라서고 있었다.

참가자들이 경기장에 올라서자 황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 않았다.

케나드가 이긴 것은 그렇다 쳐도, 오러 브레이커가 효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한 변수였다.

변수가 생겨 계획을 망치는 것은 황태자가 제일 혐오하는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분노에 차 있었으나, 이곳에 모인 고위 귀족들이 너무 많았다. 옥좌에 앉기 전까지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이 경기로 결승전에 설 주인공이 가려지겠군. 마찬가지로 황금주를 준비했노라. 이 술을 마시고 오래도록 회자될 명경기를 펼쳐 주길 바란다.”

황태자는 술잔에 술을 따랐다.

잔이 각각 시몬과 로버츠에게 전해졌다. 시몬은 오러를 품고 있는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잔을 받아 마셨다.

술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질적인 독기운을 느꼈다. 오러 브레이커였다.

생각보다 약효가 강했다.

‘미리 정보를 얻지 못했더라면 애 좀 먹었겠어.’

경기장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라니에리를 향해 시몬은 미소를 지어 보냈다. 고마움을 담아서.

라니에리는 여전히 걱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문득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라니에리는 말했었다. 벌어지지 않을 일까지 걱정하는 것이 책사의 임무 중 하나라고.

그때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일을 쉽게 풀어 갈 수 있었던 거니까.

‘이제는 문제없다.’

시몬은 오른손에 품고 있는 오러를 유지한 채, 심장에서 벌어진 난장판을 정리해 나갔다.

오른손에 쥐어진 오러는 외부에서 가져온 오러다.

그의 심장에는 5서클에 달하는 막강한 오러가 잠자고 있었다.

‘움직여라.’

두근!

시몬의 의지가 닿았고, 그의 오러는 해약의 기운을 받아 독기운과 맞서 싸웠다.

해약은 마치 성수와 같은 역할을 했다.

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천상의 빛처럼 어둑한 기운을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곧 독기운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에 성공한 시몬은 검을 뽑았다.

그 모습을 로버츠는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올라올 때부터 오러를 손에 쥐고 있더군요. 무슨 수작이십니까?”

“무슨 수작이긴. 너를 한 방에 날려 버릴 개수작이지.”

“하하하하. 말씀 참 재미있게 하시는군요.”

로버츠는 이제야 아크튜러스의 두 형제들이 어떻게 오러 브레이커를 피해 냈는지 알 것 같았다.

품고 있던 오러를 구석으로 몰아 뒀다가, 독약의 효능이 떨어지면 다시 원위치로 복귀시킨다.

케나드의 경기는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몰랐으나 지금 시몬은 눈앞에 있었다. 오러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명백한 착각이었다.

“칭찬해 드리죠. 이렇게 신중한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겁니다. 한 방에 날려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저를 이기고 결승으로 올라가는 것 자체가 말이죠.”

스릉!

로버츠도 템페스트를 꺼냈다.

시몬의 눈엔 분명히 보였다. 탐욕스럽게 오러를 먹어 치울 괴물의 등장이.

“말이 많구나. 먼저 올 건지 막을 건지만 딱 정해.”

“오십시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방어하는 척 시몬의 오러를 흡수한 다음 공격에 나설 테니까.

그러나 그것은 시몬이 바라는 일이기도 했다.

시몬은, 심장에 박힌 오러 서클을 모조리 활성화시켰다.

구오오오…….

주변에 진동이 생길 정도로 강력한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그 오러는 팔을 타고 내려가 시몬의 검에 응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손에 뭉쳐 있던 3서클의 오러도 가세했다.

지이잉!

놀랍게도 6서클에 해당하는 위력의 오러가 생성되었다. 오러를 느낄 수 있는 모든 이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그것은 로버츠도 마찬가지였다.

5서클에 3서클 오러가 더해진다고 해서 산수 하듯 8서클의 위력을 내는 것은 아니다.

한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기하급수적인 차이를 보인다.

1서클에서 4서클까지 오러를 모두 더한다고 해도, 5서클보다 많지 않다.

그다음 단계는 더욱 차이가 심하다.

그래서 5서클과 6서클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일 정도로 위력이 다르다.

그런데 시몬은 고작 3서클의 오러를 더한 것으로, 6서클의 오러를 응집시키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꿈에도 모를 거다. 내가 전생에 9서클 소드마스터였다는 사실을.’

이미 서클의 묘리를 모조리 꿰고 있는 시몬은, 내부 오러와 외부 오러를 합칠 때 어떻게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시몬이 만든 비약의 성능이 좋은 것도 한몫했다.

잘 운용한다면 케나드의 경우처럼 서클을 하나 늘리고 다음 서클이 들어설 자리까지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 결과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6서클의 강력한 오러. 이제는 푸른 빛을 넘어 보랏빛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슬슬 가볼까?”

시몬이 검세를 잡았다.

굳이 진보된 아크튜러스 초식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오른 시몬은, 빠르게 쇄도하며 로버츠에게 강력한 일격을 날렸다.

로버츠는 그 일격을 막기 위해 검을 수평으로 들었다.

‘아무리 강한 오러라고 해도, 이 검이라면 모조리 먹어 치울 수 있을 것이다! 크하하하!’

로버츠의 눈에 환희가 차올랐다. 아크튜러스의 인장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바로, 그것이 시몬의 노림수라는 것을 조금도 깨닫지 못한 채.

쐐액!

검과 검이 가까워졌다.

닿기 직전, 엄청난 변화가 나타났다. 그 찰나의 순간에 템페스트가 시몬의 검에 서린 오러를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시몬의 검과 로버츠의 템페스트가 일격을 나눴다.

채애앵!

쑤욱!

오러를 모두 뺏긴 시몬은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눈앞이 핑 돌 정도였다.

“으하하하하하!”

몸을 휘청이는 시몬을 보며 로버츠가 광소를 터트렸다.

시몬이 오러를 모두 쏟아 낸 덕에, 그는 매우 강력한 오러를 얻게 되었다. 6서클에 달하는 오러가 템페스트에 맺힌 것이다.

“이제 네 목을 따 주마. 시몬 아크튜러스. 아니면 무릎을 꿇고 빌어 보는 건 어떠냐? 내 부츠를 핥는다면 팔 하나 정도로 끝낼 수도 있는데 말이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몬이 웃고 있었다. 그는 조금도 굴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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