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101화 (101/120)

101화: 인과응보 (1)

B조 4경기의 승자가 결정되었다. 이로써 아크튜러스 가문 승계 토너먼트의 1차전이 모두 끝났다.

A조에서는 가울, 카펙, 케나드, 판다이크 공자가 8강에 진출했고, B조에서는 시몬, 앤서니, 로버츠, 수드라 공자가 8강에 진출했다.

리겔 황실 입장에서는 이보다 완벽한 대진표가 없을 것이다.

A조 4강에서 케나드와 카펙이 만나고, B조 4강에서 시몬과 로버츠가 만나는 그림이 거의 완성되었으니까.

“잠시 휴식 후 8강 경기를 시작하겠소!”

진행자의 선언과 동시에 일꾼들이 청소 도구를 들고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치열한 경기를 거치며 더러워진 경기장을 열심히 치우기 시작했다.

귀빈석은 절반 정도가 비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경기에 대한 감상을 나눴다.

‘황태자와 황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 거기에 딜리토 백작까지.’

왜 함께 자리를 비웠는지는 뻔했다.

그때 라니에리가 다가와 조용히 보고했다.

“뒤뜰에서 태자 전하와 황녀님, 그리고 딜리토 백작이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합니다.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않다고 하는군요.”

“그래?”

이곳은 아크튜러스 가문의 저택이었다.

아무리 으슥한 곳이라고 해도 라니에리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나 다를 게 없었다.

“도청할까요?”

“내버려 둬. 굳이 위험한 일 할 필요 없다. 오토 경이 소드 마스터라는 걸 잊어서는 곤란하지.”

소드 마스터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지할 수 있다.

시몬이 기감을 끌어 올려 자객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도청하려는 것이 적발된다면 가문이 뒤집힐 것이다.

“어차피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알잖아? 지금쯤 물건을 회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겠지. 아니면 꼬리를 자르거나.”

“알겠습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에 따른 대비는 이미 끝내 놓았으니까요.”

한편 드뇌브 후작은 알데바란의 영주와 함께 뮬라타와 대화하고 있었다.

알데바란의 영주, 타이온 후작은 오크어를 할 줄 모른다.

그래서 드뇌브 후작이 통역해 주고 있었다.

파우스트 상단이 습격받은 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조급한 건 타이온 후작뿐이니.’

타이온 후작은 상단을 습격한 내막에 대해 전혀 모른다.

세레스 가문의 진이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그의 책사는 시몬의 편이었다.

드뇌브 후작과 뮬라타는 입장이 다르다. 이미 라니에리의 계략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

상투적인 위로와 보상책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거친 결투였던 것 같습니다. 경기장이 많이 망가졌군요.”

“다들 보란 듯이 아티팩트를 들고나왔으니 어쩔 수 없지.”

“공자님께서는 끝까지 그 검을 쓰실 겁니까?”

“도중에 무기를 바꾸면 좀 없어 보이잖아.”

“역시 공자님께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섬세히 살피시는군요.”

살짝 비꼬는 말에, 시몬이 웃음을 터트렸다.

“대신 비약을 좀 먹을 생각이다. 4강 경기 전에 먹을 거니까 적당한 때 가서 내 서랍에 있는 비약 모조리 챙겨 와.”

“알겠습니다.”

영약이나 비약을 먹는 건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다. 그랬다면 공자들이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것도 막혔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강함을 보여라.

이것이 아크튜러스 가문 승계전의 전통이기도 했다.

몇몇 공자들은 이미 시합 전에 비약을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 시기에 통용되는 비약 중 성능이 확실한 건 별로 없지만.

“근데 율리우스 공자는 어디에 있어?”

“의무실에 있습니다. 워낙 중상이라 면회가 금지되었습니다.”

“누가 금지했지?”

“태자 전하의 수행원 중 의사도 있었습니다. 루스 남작인데, 공교롭게도 그가 치료를 맡게 되었습니다. 외상 전문이라서. 그가 면회를 금지시켰습니다.”

“황실의 의사라. 뻔한 계획이군.”

팔이 한쪽 잘린 율리우스 공자를 제외하고는 중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16강에서 패한 공자들은 남아서 참관하기도 했고, 일찍 짐을 싸서 본가로 돌아가기도 했다.

‘황태자의 계략이겠지. 검을 맞닥뜨리지 않는 이상 템페스트의 능력을 알아챌 수는 없을 테니까.’

실제로 시몬을 제외한 그 누구도 로버츠가 들고 있는 아티팩트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저 대단한 무기라고 생각할 뿐.

황실과 로버츠는 면회객을 막아 아티팩트에 대한 것을 비밀에 부치려 한 것이다.

‘애석한 일이군. 만약 내가 회귀하지 않았더라면 완벽하게 성공했을 텐데.’

시몬은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잘 참아 내었다.

회귀.

아무리 교활한 황태자와 황녀라고 해도 결코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 * *

8강 경기는 16강보다 오히려 시시하게 끝났다.

A조에서는 카펙 공자가 가울을 상대로 손쉽게 승리를 따냈다. 미들즈웨이의 검식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실용적으로 상대를 괴롭혔다.

그리고 케나드와 판다이크 공자의 A조 2경기는 케나드의 압승으로 끝났다.

케나드가 뛰어난 무위를 보일 때마다 카펠라 공작가에서 온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밀튼 공작은 결혼식을 앞당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약혼자인 모니카는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야성적인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리고 B조 첫 경기는 시몬이 참전했다.

상대인 앤서니 공자는 불행하게도 단 한 번도 무기를 휘둘러 보지 못하고 패배를 인정하고 말았다.

“정말 압도적인 위력이군요.”

“대체 저렇게 뛰어난 사람이 왜 가문을 잇지 않겠다고 한 건지…….”

“듣자 하니 검선의 길을 준비한다고 하더군.”

“정말입니까?”

시몬은 귀족들의 품평을 한 귀로 흘려보내며 경기장에서 내려왔다.

다음으로 이어진 2경기는 로버츠 공자가 가볍게 승리를 따냈다.

이번에는 상대로 나선 수드라 공자가 복부에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다. 그 또한 의무실로 실려 갔고, 워낙 출혈이 심해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약을 챙겨 왔습니다.”

4강 진출자가 모두 정해지자, 라니에리가 목제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다음은 미들즈웨이의 카펙 공자와 아크튜러스의 케나드 공자의 결투가 시작되겠소!”

함성이 터져 나왔다.

카펙도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우승 후보끼리 만나는 것은 이 경기가 처음이었다.

“그래도 케나드 공자가 한 수 위인 것 같은데.”

“어찌 될지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카펙 공자가 자기의 실력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맞는 말씀이오. 도저히 어떻게 될지 가늠이 가지 않는군.”

귀족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케나드와 카펙이 경기장으로 올라섰다.

앞서 두 경기를 치렀지만 두 사람은 조금도 지쳐 보이지 않았다.

오러의 소모도 거의 없었고, 휴식 시간도 충분히 주어져 오러를 연공할 수 있었다.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린 황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하! 드디어 진짜들이 남았군. 이 경기를 기념하기 위해 아주 특별한 술을 준비했도다.”

황태자는 황금빛 술병을 들어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아주 비싼 술처럼 보였다.

“경들은 이 술을 마시고 제국의 미래를 위해 싸워 주게.”

곧 술잔이 옮겨졌고, 케나드와 카펙이 그것을 단번에 비웠다.

순간 케나드가 흠칫했다.

지이잉!

강력한 약효가 느껴졌다. 목을 타고 안으로 흘러 들어가더니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퍼져 나가던 악한 기운이 일제히 심장으로 모였다.

오러 서클이 공격당했다.

“…….”

하지만 악한 기운은 서클을 파괴하지 못했다.

시몬의 처방으로 만들어진 해약이 이미 서클에 스며들어 있었고, 악한 기운을 차분히 방어해 내고 있었다.

결국, 악한 기운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모조리 소멸하고 말았다.

툭툭.

케나드가 어깨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었다.

“신호가 왔다. 오러 브레이커가 술에 섞인 모양이군.”

시몬이 예상했던 일이 모두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라니에리는 내심 감탄하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괜찮은 것 같다. 다행히 약효가 잘 먹힌 것 같아. 싸우는 덴 전혀 지장이 없을 거다.”

“이제 남은 문제는 로버츠 공자의 무기겠군요.”

카펙도 해약을 먹었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했다.

구우우우!

케나드는 4서클의 오러를 한꺼번에 터트렸다. 그러자 상대하던 카펙은 물론, 황태자도 의외라는 듯 눈을 빛냈다.

심지어 황태자는 자신이 따라 준 술이 남아 있는 황금색 술병을 다시 내려다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카펙은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다. 오로지 실력으로 쓰러트려 주지.’

그는 애초에 로버츠에게 져 줄 생각이 없었다.

그것을 역이용하여, 결승에 오른 로버츠를 방심하게 만든 뒤 단번에 제거할 생각이었다.

변명 거리는 충분했다.

미리 맞춰 둔 합이 맞지 않았다. 힘 조절을 잘하지 못했다 등.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간다!’

독하게 마음먹은 그는, 3서클에 달하는 오러를 끌어 올렸다.

강력한 오러가 아티팩트에 휘감겼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아티팩트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귀족들이 환호했다.

“역시 카펙 공자도 힘을 숨기고 있었군요! 굉장한 오러입니다!”

“차이가 좀 있긴 해도 재미있는 결투가 되겠군. 케나드 공자는 평범한 장검을 들고나왔으니까.”

“한번 지켜보시죠!”

“나는 카펙 공자가 이긴다에 1억 실링을 걸지!”

채애앵!

두 사람이 격돌했다. 첫 공격은 서로 무난하게 막아 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막은 좀 달랐다.

‘이렇게나 차이 난다고?’

표정은 숨겼지만, 카펙은 내심 비명을 질렀다. 검을 쥔 손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케나드의 서클은 한 단계 위.

그 정도 차이는 아티팩트로 어떻게든 상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극명했다.

‘제길! 선공밖에 답이 없겠어!’

카펙이 돌진했다.

그때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우우우우…….

돌진하던 카펙이 멈칫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케나드는 오러를 한 단계 낮춰 카펙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시켰다.

그 의도를 유일하게 알아챈 것은 시몬뿐이었다.

‘진짜 독한 놈이라니까. 이런 중요한 시합도 수련으로 삼겠다는 건가?’

목숨을 건 싸움은 하기가 어렵다. 기사들과 훈련할 때도 목숨을 걸고 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승계전은 다르다.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카펙은 예선전을 치르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 강자.

케나드는, 목숨을 걸면서 덤벼 오는 카펙이야말로 좋은 수련 상대가 될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오러를 좀 낮춰 동등하게 싸우려 한 것이다.

다시금 카펙의 공격이 전개되었다.

케나드도 응했다.

쑤우욱!

검에 실렸던 오러가 신속하게 방패 쪽으로 움직였다. 보통의 연공술로는 해낼 수 없는 경지.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해낸 케나드가 방패를 들었다.

쩌정!

내질러진 검을 깔끔하게 막아 낸 케나드는, 재빨리 오러를 검으로 옮겨 공격을 가했다.

챠악!

“크윽!”

피가 튀었다. 검이 살갗에 닿은 것이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다. 방어구가 제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현란한 오러 스위칭을 목격한 카펙은 절망했다.

‘이런 미친! 대체 아크튜러스 가문은 어떤 것들을 가르치는 거지?’

너무나도 높은 벽을 만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오래 빠져 있을 순 없었다.

새로운 아크튜러스 검식을 익힌 케나드의 공격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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