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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100화 (100/120)

100화: 황실의 아티팩트

B조 제3경기는 로버츠 힐스트롱과 율리우스 폰티나의 대결이었다.

로버츠는 이미 승계전이 열리기 전부터 우승 후보로 꼽히는 사람이었다.

특히 황태자와 황녀가 경기 전 특별히 접견한 후보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러한 특혜를 받은 것은 미들즈웨이의 차남인 카펙도 마찬가지.

경우에 따라선 주변의 눈치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주어진 특권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 그 자체만으로도 가문을 빛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

“크윽!”

첫 공격을 간신히 막아 낸 율리우스는 몸속에서 오러가 쑥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정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불쾌한 느낌.

마치 피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처럼 시야가 어둑해지고 아찔해지는 현기증이 일어났다.

“고작 한 방에 나가떨어지다니, 쯧. 폰티나가 아크튜러스의 방계라는 말은 이제 입에 담지도 말아라.”

로버츠가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목을 노린 살수.

이대로라면 죽고 만다. 강직한 기사였던 율리우스의 생존 본능이 번뜩였다.

채애앵!

이번에도 율리우스는 간신히 공격을 막아 냈다. 하지만 첫 공격 때보다도 더욱 큰 오러가 빠져나가는 더러운 기분을 느꼈다.

정말이지 짜증이 극도로 치솟는 느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력해지는 신체의 변화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이나 버티다니. 제법이군. 하지만 이제 끝이다. 괜히 버티지 마.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지금이라도 싹싹 빌면 목숨이라도 살려 주지.”

“닥쳐라!”

“인상적인 유언이군.”

로버츠가 전방으로 돌진했다.

그제야 율리우스는 로버츠의 공격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놈의 오러가 느껴지지 않아!’

자신은 2서클의 오러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고 있었으나,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오러는 조금도 없었다.

상식적으로 오러가 실린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오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무기나 방어구가 부서진다.

물론, 오러가 부족하면 장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승계전에 참가한 아크튜러스 방계의 공자들이 하나같이 아티팩트를 들고나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시몬과 케나드의 오러가 더욱 강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서.

그런데도 로버츠는 오러를 일으키지 않은 것이다.

이기지 못하면 다음 경기를 치를 수 없는 매우 중요한 토너먼트 경기에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말도 안 돼! 검에는 오러가 맺혀 있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오러를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상대의 검엔 오러가 맺혀 있었다.

‘분명 첫 공격 때는 오러가 보이지 않았었지.’

로버츠가 지나치게 방심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갔다. 오러를 실은 자신의 공격이 깔끔하게 막혀 버렸으니까.

찰나의 순간 여러 생각이 지나갔으나, 언제까지 생각만 할 수는 없었다.

로버츠의 일격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까강!

로버츠의 돌진을 막을 수 없어 검을 슬쩍 흘렸다. 검로를 이탈한 로버츠의 검은, 놀라운 속도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율리우스의 목을 노렸다.

스슥!

간발의 차이로 허공을 가르는 로버츠의 검.

율리우스는 바닥을 구르는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그의 검을 피해 내고 있었다.

“주군. 경기가 너무 위험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주의를 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지켜보던 파월 단장이 넌지시 물었다. 드뇌브 후작은 고개를 저었다.

“다들 이 자리에 서기 위해 목숨을 걸었을 것이다. 만약 좋지 않은 공격을 당한다면 그조차 운명이라고 생각해야겠지.”

“알겠습니다.”

파월이 군례를 취하고 물러났다.

그만큼 로버츠의 공격은 악랄했다. 하나같이 살수만 쓰고 있었다.

‘젠장, 이대로는 놈을 이길 수 없어! 오러가 더 이상…… 음? 가만. 이 느낌은?’

율리우스는 검세에 긴장을 유지하며 로버츠의 검에 맺힌 오러를 주목했다.

로버츠는 오러를 일으키지 않았으나 그의 검은 더욱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런 미친!’

순간 율리우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로버츠의 검에 맺혀 있는 오러에서 매우 친숙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어! 내 오러가? 저 검이 내 오러를 흡수한 거라고?’

그보다 더 정확한 설명은 불가능해 보였다.

아크튜러스의 적자 두 명을 제외한 모두가 아티팩트를 들고 승계전에 참전했다.

하나같이 굉장한 물건들이었다.

모든 것을 찢어발길 벼락을 내리치게 하는 검도 있었고, 어떤 공격이든 막아 낼 것 같은 방패도 있었다. 찬연한 황금빛을 발하는 갑옷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로버츠의 검은 다른 공자들이 들고나온 아티팩트보다도 한층 더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러를 흡수하는 아티팩트가 있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말 그대로 사기적인 무기다.

자신의 오러를 소모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힘을 흡수하여 역으로 돌려줄 수 있는 거니까.

“대체 손에 쥔 그 무기는 무엇이냐?”

율리우스가 물었으나 로버츠는 콧방귀만 뀌었다.

“알려 줄 의무는 없는데? 나름 가문의 보물이거든.”

“젠장할!”

“네 불행한 운명을 탓하라고.”

율리우스는 이어지는 공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

서걱!

“끄어어억!”

검을 휘둘러 막아 내려던 오른팔이 송두리째 잘려 나갔다.

푸화학!

피가 사방으로 튀며 검을 쥔 오른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으나, 로버츠는 광기에 서린 채로 검을 휘둘렀다.

목표는 율리우스의 목이었다.

매끈한 검날이 목을 잘라 내려던 바로 그 순간.

뚝!

놀랍게도 로버츠가 검을 멈췄다. 살갗에 닿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순간, 로버츠의 얼굴에 서렸던 광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허헉.”

목이 달아날 뻔한 율리우스는 주저앉고야 말았다.

오줌까지 지렸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으나, 목이 잘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서 응급치료를 해라!”

“지혈부터 서둘러!”

대기하고 있던 의사들이 달려갔다. 출혈이 심해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정말 잔인하군. 목까지 자르려고 한 거 봤나?”

“승계전일세. 그것도 아크튜러스 가문의 후계자 자리가 걸린 대회란 말일세. 이 정도 싸움은 당연한 거야. 팔 하나 잘린 걸로 끝났다면 다행이지. 안 그런가?”

“그렇소. 결투에 심취하다 보면 무아지경에 빠질 때가 있지. 로버츠 공자가 바로 그렇게 된 것 같던데?”

귀족들이 저마다 품평해 대는 탓에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그 장면을 빠짐없이 지켜본 시몬이 중얼거렸다.

“저 검, 예전에 본 적이 있다.”

로버츠의 아티팩트는 일반적인 장검보다 더 길어 보였는데, 검신이 매끈하고 날이 매우 잘 손질되어 있어 무엇이든 베어 낼 것 같았다.

그리고 시몬은 분명히 저 검을 전생에서 본 적이 있었다.

“어디서 보셨습니까?”

라니에리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무예에 무지한 사람이 보더라도 로버츠의 검은 놀라운 성능을 발휘했으니까.

“황실 비밀 창고에서.”

“그곳은 황제 이외에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곳 아닙니까?”

시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이 재미있어지고 있었다.

“전생의 황제였던 카인이 나를 데리고 들어간 적 있다. 황실의 보물을 몇 개 소개해 줬는데 저 검이 들어가 있었지.”

“황실의 보물이라면 상당히 위험한 물건이겠군요.”

“템페스트라 불리는 검이다.”

폭풍검 템페스트.

고대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이 검의 능력이 시몬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원래는 마나 이터라는 이름으로 불렸었지.”

“마나 이터라면, 마법사를 상대하는 검이었습니까?”

“그래. 마나를 흡수하는 검이니까.”

하지만 ‘마나의 황혼’이라는 전역적인 재앙이 닥쳐오면서 마법사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래서 지금은 오러를 흡수하는 ‘템페스트’라는 검으로 바뀌었다.

마나와 오러는 결국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힘이었으니까.

“아무래도 황태자는 로버츠를 밀기로 한 모양이군.”

“황실의 보물을 맡길 정도라면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고 봐야겠지요. 그렇게 성능이 좋다니 걱정되는군요.”

“저 검은 좋기만 한 게 아니야. 괜히 템페스트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단점이 있습니까?”

시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템페스트는 시몬도 몇 번 사용해 본 적 있었다. 카인 황제가 베푼 몇 안 되는 호의 중 하나였다.

“사용자가 강하지 않으면 정신을 타락시킨다. 그 속도가 굉장히 빨라. 폭풍처럼 말이지. 로버츠는 저 검을 쥘 자격이 없다.”

“그럼 로버츠 공자는 이대로 미쳐 버리겠군요.”

“그것도 계산된 행동일 거다.”

뜻밖의 추측에 라니에리의 눈이 반짝였다.

“로버츠와 황실의 유대 관계는 그리 끈끈하지 않다는 거 알지?”

“예.”

“기분은 좀 불쾌하지만 로버츠가 승계전에서 이겼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렇다면 조만간 가문을 이어받겠지? 그사이 황실에서는 로버츠가 완전히 미쳐 버리기 전에 자기가 세운 사람을 후계로 정할 거야.”

“그렇게 로버츠 공자가 비명횡사하면, 그 이후에 남부를 완전히 장악하려는 계획입니까?”

“바로 그거다.”

“치밀하군요.”

“그러니까 자기 형제들 칼로 베어 버리고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거야. 보통내기가 아니다. 황태자는.”

그사이 경기장이 모두 정리되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던 로버츠는 시몬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이고는 의자에 앉았다.

“조금 어려워진 느낌이군요. 오러 브레이커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오히려 쉽지.”

“방법이 있으십니까?”

“템페스트는 명검이다. 오러를 흡수하는 능력이 아니더라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물건임엔 분명해.”

“어떻게 하면 될지 알 것 같습니다.”

시몬은 의외라는 듯 라니에리를 바라보았다. 그가 턱을 괴며 답을 말했다.

“로버츠 공자의 아티팩트는 오러를 흡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흡수할 오러가 없다면 그냥 잘 만든 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공자님께서는 진보된 검식과 체술을 익히고 계시니, 오러를 사용하지 않고 상대하신다면 로버츠 공자를 쓰러트릴 수 있을 겁니다.”

“제법인데? 남부의 현자라는 별명은 괜히 있는 게 아니군.”

시몬은 감탄했다. 자신이 생각한 정답은 아니었지만 무예에 무지한 사람치고는 아주 멋진 추론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군요.”

현명한 라니에리는 자신이 내린 추론에 문제가 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애써 오러 브레이커를 사용할 이유가 없을 텐데 말이죠. 오러를 흡수하는 능력은 쉽게 간파당할 수 있으니까요. 오러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오러를 아예 안 쓸 수는 없다. 템페스트는 그 자체로 명검이라, 평범한 무기로 상대하려면 어느 정도의 오러는 필요해.”

“그럼 소량이라도 계속 오러는 빼앗길 수밖에 없겠군요. 으음, 어떻게 하실 요량이십니까?”

“아주 기가 막힌 방법이 하나 있지. 그 방법이라면 로버츠는 자멸하고 말 거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시몬은 자신의 검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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