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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96화 (96/120)

96화: 데저트스톰 (1)

덥고 건조한 사막 위로 긴 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짐마차와 곳곳에 섬뜩한 해골 문양이 그려진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들은 최근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파우스트 상단이었다.

상행은 굉장히 길었는데, 짐마차만 10대가 넘었고 그것을 호위하고 있는 용병들도 30여 명은 되어 보였다.

눈매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불청객을 찾아내기 위해 사방으로 시선을 쏘아내고 있었다.

“정말 날씨 한번 거지 같군. 낮에는 그렇게 푹푹 쪘는데 밤에는 왜 이리 추워?”

“그게 사막의 매력 아닙니까?”

“매력은 지랄!”

이번 상행을 책임지게 된 블라이스는 이 지긋지긋한 사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킬스톤 지역을 벗어나고 싶었다.

사흘 동안 꼬박 행군을 이어 갔는데도 똑같은 풍경만 보였다.

그들은 아직 알데바란의 킬스톤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흘은 꼬박 더 가야 합니다. 킬스톤은 언제 와도 섬찟하네요. 별일 없어야 할 텐데요.”

부관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은 아니다.

이곳 킬스톤은 오크와 몬스터가 점거하다시피 한 위험한 곳이다.

오크 연합에서 떨어져 나온 오크들이 부족을 이루며 거점을 마련했고, 길목마다 몬스터가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킬스톤은 풍토병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오크는 물론 몬스터에겐 영향이 없었다.

“별일 있겠나? 열사병에만 걸리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상부에서 조심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밀수품 수량도 줄인다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밀수품?”

“아, 아닙니다. 특산품입니다.”

“말조심해라. 어디서 누가 듣고 있을지 모르니까. 최근에 분위기 안 좋은 거 모르나?”

최근 파우스트 상단 분위기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의문의 단체에 의해 기습을 받았고,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다.

상단 수뇌부에서는 로데론 섬에서 밀수품 유통을 당분간 멈춰야 한다고 조심스레 제언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온몸을 가득 덮은 모래를 털어내며 블라이스가 답했다.

“조심하라는 말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수량이 줄진 않을 거다. 우리가 단순히 특산품만 나르는 줄 아느냐?”

“가문의 미래를 나르고 있지요.”

“잘 알고 있군. 그러니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무사히 물건만 옮기면 돼.”

단순히 이득 때문은 아니었다.

말단에 속하는 이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파우스트 상단에 출자한 가문 중 알퐁스 백작가의 입김이 가장 세다는 사실을.

또한 이 유통로를 황실이 은밀히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보다 지금쯤이면 승계전이 열렸을 텐데, 으음. 로버츠 공자께서 꼭 이기셨으면 좋겠군.”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아크튜러스 상단까지 접수하게 되는 겁니까?”

부관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블라이스는 굳이 그 질문을 부정하지 않았다.

로버츠는 힐스트롱 가문을 대표해서 승계전에 참가했다.

그가 이기게 되면 아크튜러스의 정당한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그가 가문을 잇게 된다면 모든 이권이 힐스트롱 가문으로 넘어오게 된다. 정확히는 힐스트롱 가문이 아크튜러스를 흡수하는 것이다.

당연히 아크튜러스 상단도 조각조각 분해되어 여러 단체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블라이스는 잠시 달콤한 상상을 했다.

만약 일이 잘 풀리면 공로를 인정받아 지부 하나를 맡게 될 것이고, 수많은 상인들을 발아래 두고 부릴 수 있을 것이다.

“딴생각 말고 가서 물건이나 확인해라. 괜히 들쥐가 나무를 갉아 먹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개미가 붙었는지도 잘 살피고.”

“알겠습니다. 행수님.”

부관은 선두에서 떨어져 나와 뒤에 따르는 마차에 올라 내부를 살폈다.

짐마차에 실린 것은 두텁고 둥그런 나무였다.

이들이 실어 나르는 것은 로데론 섬의 특산물인 원목이었다. 내구성이 강해 무기 제작을 비롯해 건축용으로도 널리 쓰인다.

부관은 나무와 그 사이를 꼼꼼히 살폈다.

사실, 들쥐와 개미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나무를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둥그런 나무를 잘라 보면 안에 빈 공간이 나온다.

놀랍게도 그 속엔 잘 정제된 약이 보관되어 있었다.

로데론 목재 자체도 굉장히 비싼 값에 거래되는 특산품인데, 파우스트 상단에서는 그 속에 마약을 숨겨 유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대담한 계획이었다.

“약을 좀 쳐 놓는 게 좋겠군. 이봐! 여기에 방충약 좀 가져와라!”

“예!”

몇몇 일꾼들이 약품을 들고 짐마차로 붙었다. 덕분에 행렬이 잠시 멈춰야 했다.

늘 있는 일이었기에 블라이스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주변을 살펴본 용병들이 블라이스에게 다가왔다.

“행수. 여기에서 조금 쉬었다 가는 게 좋겠소. 기온이 많이 떨어지고 있소. 몸을 좀 녹여야지.”

“어차피 약을 쳐야 하니 그렇게 합시다. 그런데 안전하겠소?”

“사막에 안전한 곳은 없소.”

그렇게 말을 끊은 용병대장이 부하들 이끌고 돌아갔다. 그는 부하들을 사방에 배치해 혹시 모를 습격을 대비했다.

‘건방진 놈.’

블라이스는 용병단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대놓고 뭐라고 하지 못한 것이, 그는 다름 아닌 오러 유저였기 때문이다.

‘행색을 보면 용병 같지 않단 말이지. 어딘가의 기사일지도 모르니 괜히 이빨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나중에 내 밑으로 들어오게 될 테니까.’

음흉한 미소를 지은 블라이스는 말에서 내렸다.

휴식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상단의 일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곳곳에 모닥불을 지폈다.

따스한 기운이 퍼져 나가자 얼어붙었던 몸이 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용병들은 몸을 녹이지 못했다.

“불을 피웠으니 우리 위치가 노출되었을 거다.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그리고 핀크, 반스터.”

“예.”

“너희들은 저쪽 모래 언덕 쪽으로 올라가라. 거기서 시야를 확보해.”

“알겠습니다!”

핀크와 반스터는 한쪽을 벽처럼 가리고 있는 모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행렬이 멈춘 곳은 나름 나쁘지 않은 지형이었다.

사방이 트여 있는 곳은 엄폐하기가 좋지 않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모래 언덕 아래쪽이라 한쪽 면을 가린 채 야영할 수 있었다.

모래 언덕을 재빨리 오른 핀크와 반스터가 언덕 너머를 살필 바로 그때.

퍽!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 남자의 신형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비명도 내지 못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도끼가 머리통을 박살 냈기 때문이다.

“뭐지? 핀크! 반스터!”

들려오는 대답이 없자 용병대장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지금까지 생사를 오가며 절절히 느꼈던 위기감이 비상을 알렸다.

“모두 무기를 꺼내라! 방어 진형으로!”

“방어 준비!”

“얼른 이쪽으로 모이라고!”

용병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자 쉬고 있던 상인들이 깜짝 놀랐다.

블라이스와 부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닥불에 굽고 있던 육포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모래 언덕을 향해 있었다.

“용병 두 명이 쓰러져 있습니다!”

“적인가?”

그 말은 마치 주문처럼 작용했다. 산맥처럼 우뚝 선 모래 언덕에 그림자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적이다!”

“몬스터인가?”

그림자가 달빛을 등지고 서 있었기 때문에 식별이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내달리기 시작하자, 용병들의 눈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오크, 오크입니다! 늑대를 타고 달려옵니다!”

“젠장! 어서 놈들을 막아!”

“창을 들어라! 어서! 이 뒤로 나아가게 해서는 안 돼!”

몇몇 용병들이 대오를 짠 상태로 창을 비껴들었다. 입을 천으로 가린 오크들이 늑대에 올라 아주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콰직!

선두에 선 오크가 도끼를 휘둘러 창대를 날려 버렸다. 다른 오크들도 도끼를 던져 창대를 부러뜨렸다.

이윽고 가속도가 붙은 거대한 늑대가 용병들을 덮쳤다.

“크아악!”

“으억!”

“살려 줘!”

용병들의 대오가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애초에 몬스터 사냥 경험이 풍부한 자들이었다. 이종족의 패도적인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방어진이 무너지자 용병대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보통 놈들이 아닌데?’

스릉!

용병대장이 양손검을 꺼냈다. 그는 본대를 지휘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모조리 쓸어버린다!”

지이이잉!

어둑한 사막 위로 푸른 오러가 터져 나왔다.

“대장님을 믿고 싸워라! 우린 이길 수 있다!”

“오오오오!”

“도망치다 죽느니 싸우다 죽어야지!”

촤아악!

용병대장의 양손검이 시원하게 오크를 베어 내었다. 용병들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오크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행수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뭘 어떻게 하나!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겠다. 어서 준비해!”

“예!”

블라이스는 용병단이 시간을 끌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고용된 자들이었으니까.

상인들도 기본적인 검술 정도는 익히고 있다.

만약 무기를 들고 용병들을 돕는다면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일 수 있을 터.

‘그럴 시간 없다! 어떻게든 물건을 알퐁스 백작가로 넘겨야 해!’

블라이스는 냉정히 생각했고, 오크를 베어 버리는 용병대장의 무운을 빌며 빠르게 말에 올랐다.

“출발해!”

“어딜 가려고?”

스산한 목소리에 블라이스가 깜짝 놀랐다. 허둥지둥하는 사이, 어둠을 밟고 다가온 자들이 한 무리나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가느다란 레이피어를 꺼내 든 남자가 부하들에게 명했다.

“놈들이 도망가려고 하는군. 그물을 던져라.”

슈슈슈슉!

특수 제작된 그물이 마차를 덮쳤다. 아주 무겁고 두꺼운 그물이었다. 말은 물론 상인들까지 한꺼번에 사로잡았다.

“저놈이 행수다. 놈을 남기고 모조리 죽여라.”

뒤에 서 있던 그림자들이 퍼져 나갔다. 한 덩어리인 줄 알았는데 스무 개가 넘는 인영으로 갈라졌다.

슈슉!

촤악!

푹!

“끄아악!”

“살려줘! 여기서 죽고 싶지 않……! 커헉!”

사방에서 살려 달라는 비명이 울렸으나 그 간절한 절규에 응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씨발!”

행수 블라이스는 힘겹게 그물을 칼로 잘라 내고 사막 위를 뛰기 시작했다.

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오크들을 상대하는 용병들이 빨리 해치우고 이쪽을 도와주기를.

하지만 그 희망은 하늘에 닿지 않았다.

“끄억.”

단말마를 외친 용병대장을 마지막으로, 모든 용병들이 오크들의 도끼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사방이 흩뿌려진 피로 가득했다.

오크들은 마치 인간 사냥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시체를 끌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끝인가…….”

복면 남자는 주저앉은 블라이스에게 걸어갔다. 블라이스는 무릎을 꿇으며 목숨을 빌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굳이 빌지 않아도 살려 줄 생각이다.”

“……예?”

블라이스는 물음표를 떠올렸다. 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살려 준다고 먼저 말하는 걸까?

“너희는 우리를 아주 우습게 보더군. 몇 번 지나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상납금조차 내지 않았지.”

“대체 누구시기에……!”

“데저트스톰. 이 근방에서는 우리를 그렇게 부른다.”

처음 듣는 단체였다. 만약 진짜 이곳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면 상납금을 충분히 지불할 용의도 있었다.

억울했다.

이대로 죽기에는.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꼭 통행세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풀어 주십시오!”

“물건은 모두 우리가 가져가겠다. 다음엔 꼭 제대로 상납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꺼져라.”

복면 남자는 블라이스에게 말 한 필을 기꺼이 내어 주었다. 말에 오른 블라이스는 또다시 잡힐까 부리나케 도망쳤다.

남자는 복면을 벗어 모래 먼지를 털었다.

달빛에 남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놀랍게도 그는 얼마 전 아크튜러스 가문으로 전향한 일로스테 남작이었다.

“전리품을 모조리 챙겨라. 그리고 바로 주인님께 전서구 띄워. 임무 완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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