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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95화 (95/120)

95화: 후계자들의 토너먼트 (4)

쩌저저적!

해머에 맺히기 시작한 서리가 주변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마치 닿으면 얼어 버릴 것 같은 냉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시몬은 전생에서 그 아티팩트를 본 적이 있었다.

‘프로스트해머인가.’

일명 냉기의 망치. 오러를 흘려보내면 잠재되어 있던 프로스트 마법이 발동하며 상대에게 냉기 충격을 주는 아티팩트다.

온갖 것이 얼어 있는 북방에서는 효과가 별로 없지만 따뜻한 남부에서는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무기.

‘원마운트 가문에서 돈 좀 발랐군.’

마법의 시대가 저물었기 때문에 아티팩트는 상당히 비싸게 거래된다. 저 정도 무기라면, 적어도 몇백억 실링은 들었을 거다.

어쩌면 영지 일부를 내줘야 하는 거래가 되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시몬의 표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상대가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고 해도 그것이 유효타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내 동생을 얕보지 말라고.’

이윽고 린델론이 해머를 휘둘렀다. 방패를 앞세워 돌진하던 케나드는 해머에 정면으로 얻어맞았다.

쿠우웅!

둔한 쇠의 마찰음.

이어 프로스트해머에서 흘러나온 냉기가 스멀스멀 흘러가더니 케나드의 방패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쩌저적!

린델론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후후후. 이대로 버티기만 해서는 좋을 거 없을 텐데요? 케나드 경. 물러서는 게 나을 겁니다. 시간을 끌면 방패만이 아니라 팔뚝까지 얼어 버릴 테니.”

가벼운 도발이 던져졌다.

그 도발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팔뚝까지 얼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은, 방패와 팔뚝까지 부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망치야말로 얼어 버린 것을 부숴 버리기에 아주 적합한 무기였으니까.

그러나 케나드의 또렷한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웃고 있었다.

“아티팩트는 참 편리한 물건이군요. 이렇게 강한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니.”

“그것도 그 사람의 능력인 셈이지요. 모든 무기엔 저마다의 주인이 있다는 말도 있으니까.”

“몸이 편하면 강해질 수 없는 법입니다.”

“궤변이군요.”

두 사람의 대치는 계속되었다. 케나드의 오러와 린델론의 냉기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 일렁거리고 있었다.

“저도 아티팩트는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선택하지 않았지요.”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합니까?”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냉정하게 판단하기 어려워지니까.”

빠직!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케나드의 방패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수세에 몰려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전혀 달랐다.

좋지 않은 영향을 받는 것은 케나드의 방패가 아니라 린델론의 망치 쪽이었다.

“뭐, 뭐지?”

린델론은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해머가 미친 듯이 떨고 있었기 때문에.

드드드드드!

방패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오러가 한 점에 집중되어 해머를 갉아 먹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해머의 머리 부분이 박살 날지도 모른다.

“이런!”

린델론은 황급히 해머를 떼어 냈다. 그리고 체술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해머가 떨림을 멈추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어딘가가 깨졌을 터.

‘괴물 같은 놈이군!’

오러를 방패 전체로 뿌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 점으로 뭉치고, 거기에 반탄력까지 부여한다는 것은 아주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고작 나보다 한 살 아래인데 그 정도의 오러 컨트롤이 가능한 건가!’

린델론은 믿을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는 쪽에 가까웠다.

케나드가 4서클 오러를 전개했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긴 했었다. 자신이 알기로 케나드는 3서클 이하의 오러를 보유했었으니까.

그런데 오러의 양뿐만 아니라 컨트롤이라는 질적인 측면까지 괄목할 만한 위력을 보이고 있었다.

‘아티팩트가 없었더라면 한 방에 나가떨어졌겠군.’

프로스트해머의 영향이었을까.

린델론은 목덜미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동시에 이마에서 차가운 땀이 흘렀다.

두 사람이 다시 대치했다. 수세에 몰렸던 케나드는 대범하게 거리를 좁혀 왔다.

“전에 제 형님께서 하셨던 말을 전해 드리지요. 진정한 아티팩트는 자기 자신의 실력이다.”

케나드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린델론은 흠칫 놀랐다.

동시에 좌측에서 엄청난 살기가 몰아쳤다. 순간 도약한 케나드가 린델론의 방패 쪽을 찌르고 들어온 것이다.

카캉!

찰나의 차이로 공격을 막아 냈다.

케나드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실드 차지를 시도했다.

쾅!

“크헉!”

갑작스러운 공격에 이미 균형을 잃은 상황이었다. 거기에 강력한 차지가 들어가니 린델론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케나드는 싸움을 오래 끌고 싶지 않았다.

구오오오!

강맹한 오러를 검으로 집중시켜 그대로 휘둘렀다. 린델론은 황망히 해머를 휘둘러 검을 막으려 했다.

서걱!

뭔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린델론은 오른손이 편해짐을 느꼈다.

쩌어억!

이어 두꺼운 쇳덩이가 잘리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오!”

“이런 일이!”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프로스트해머의 머리 부분이 잘려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었고, 오러를 머금은 케나드의 검이 린델론의 방패와 갑옷을 찢어 버렸으니까.

승부는 단번에 갈렸다.

“허억…….”

헛숨을 내뱉은 린델론은 가벼워진 자신의 오른팔을 들어 보았다.

처음엔 팔이 잘려 나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케나드의 검은 정직하게 해머의 연결 부분을 갈랐고, 해머의 머리 부분이 날아가면서 무게가 확 줄어든 것이었다.

이어 가슴께를 살폈다.

중갑이 흉측하게 갈려 나가 있었다. 그런데도 흐르는 피는 한 방울도 없었다.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쇠를 찢어 낼 정도로 강한 오러를 일으켰는데 연약한 살에 상처 하나 나지 않다니.

‘대 오크 전쟁에서의 무용담이 허명이 아니었군.’

린델론은 우둔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정도의 격차를 인정하지 못할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압도적인 차이였기에, 쉽게 승복할 수 있었다.

“……제가 졌습니다.”

케나드는 목을 겨누던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패한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정중히 예를 취했다.

“많이 배웠습니다. 린델론 경. 귀한 아티팩트를 망가뜨린 것 같아 죄송하군요.”

“아닙니다. 잘 배웠습니다. 영지로 돌아가면 아버지께 꾸중을 좀 듣긴 하겠지만 말이죠.”

두 사람은 귀빈석을 향해 다시금 예를 올렸다.

시몬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역시 내 동생이야! 모든 게 완벽해. 저 정도는 되어야 검술의 천재라고 할 수 있겠지.”

“정말 대단했습니다. 무예를 잘 모르는 제가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의 격차였습니다.”

라니에리는 감탄했다. 비밀 수련의 결과가 이리도 확실할 줄이야.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들어 귀빈석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앉아 있던 드뇌브 후작과 케인 황태자는 다른 귀족에 비해 표정이 무거웠다.

케인 황태자야 그렇다 치는데, 드뇌브 후작의 표정이 복잡한 이유는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런데 각하께서는 그다지 기뻐하시는 것 같지 않군요.”

그제야 시몬도 귀빈석을 주목했다.

“생각이 많으실걸? 오러 서클도 하나 더 늘었고, 마지막 공격에 새로운 검식을 사용했으니까. 케나드가 어떻게 저걸 익혔는지 혼란스러우시겠지.”

그 추측은 정확했다.

실제로 드뇌브 후작은 연이어 충격을 먹었다. 케나드가 소드 익스퍼트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걸 넘어서 새로운 검식을 사용했으니까.

그 검식은 현 아크튜러스 검식보다 더욱 패도적이며 빠른 공격이었다.

만약, 그것이 현 아크튜러스 검식보다 뒤떨어지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혼란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딴 망할 검식 당장 집어치우라고 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많은 기사들이 보고 있었고, 새로운 검식이 펼쳐졌다. 이에 대한 많은 의문이 쏟아질 것이다.

“공자님께서 전수해 주신 거지요?”

“당연히.”

“미리 말씀드리지 그러셨습니까?”

“난 이미 예전부터 몇 번이나 말씀드렸어. 과거로 회귀했다고. 하지만 인정하지 않는 쪽은 아버지 쪽이었지. 너도 마찬가지고.”

오랜만에 묵직한 팩트가 날아왔다.

라니에리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으음, 그걸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쉽게 인정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고 있는데도 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우매한 거겠지. 너의 그 잘난 합리론을 동원해 보라고.”

라니에리는 시몬의 말에 반박할 논리를 찾지 못했다.

그것은 하나의 진실을 알려 주었다.

시몬의 말이 맞다는 것.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과거로 회귀했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조만간 신관을 부르겠습니다.”

“신관은 왜?”

“공자님께서 금단의 마법에 손을 댄 것인지 한번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제 의문이 어떻게든 해소될 것 같군요.”

“신관을 부르든 성녀를 부르든 교황을 부르든 마음대로 해.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거니까.”

“알겠습니다.”

라니에리는 이 건에 대해 진지하게 드뇌브 후작과 논의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뭐든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신관이 살펴보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진단을 내렸을 때도, 회귀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보기 좋구나. 저길 봐라.”

시몬이 가리키는 곳엔 케나드와 모니카 공녀가 서 있었다. 모니카 공녀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 주고 있었다.

가슴이 훈훈해지는,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루아 양도 저 자리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아직은 무리지. 파혼 문제는 모두 해결됐지만, 그렇다고 바로 들이대는 것도 보기 좋지 않으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의 관계가 무르익고 있으니 조급하게만 행동하지 않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겁니다.”

이어 A조 4경기가 열렸다.

특별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메디치 가문의 장남 판다이크가 승리했고, 8강에서 케나드와 만나게 되었다.

같은 A조에 속한 카펙은 이미 승리해서 8강에 진출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4강에서 케나드와 만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진행자가 나와 큰 소리로 외쳤다.

“이것으로 A조 경기가 모두 끝났소. 이어 B조 경기가 시작되니 참가자들은 준비해 주시오!”

장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마다 모여 A조 경기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당연히 화제가 된 것은 케나드의 무력이었다.

“공작 각하께서 무척 기쁘시겠습니다. 아주 훌륭한 사위를 두셔서 말이죠.”

“케나드 공자가 승리한다면, 카펠라 공작가와의 연합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겠지요.”

“정말 기대됩니다!”

밀튼 공작은 여러 귀족들이 보내오는 찬사에 그저 잔잔히 웃을 뿐,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휴식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곧 나팔이 울리고 B조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첫 경기는 시몬의 차례였다. 상대는 팔콘 자작가의 장남 휴스턴.

“잘 싸우고 오십시오. 공자님.”

“10초 안에 끝내고 오마.”

“방심은 금물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방심도 상대 봐 가면서 하는 거야.”

시몬은 당당히 경기장으로 올랐다. 무기를 내려놓고 드뇌브 후작과 황태자를 향해 예를 올렸다.

순간, 카인 태자와 눈이 마주쳤다.

‘네가 지금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 한번 똑똑히 지켜보아라. 카인 태자.’

곧 축하주가 전달되었다. 시몬은 단번에 잔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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