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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82화 (82/120)

82화: 포기할 수 있는 용기 (3)

『나는 이만 돌아가겠소. 형제들을 잘 부탁하오.』

뮬라타는 남부 개척지로 돌아가기 위해 로브를 뒤집어썼다.

『다음엔 좀 더 큰 로브를 준비해야겠군.』

『걱정하지 마시오.』

『개척지까지는 먼 길이 될 터인데, 조심히 가게나.』

고개를 끄덕인 뮬라타가 저택을 나섰다. 후작은 그를 위해 아주 좋은 군마를 내어 주었다.

남은 세 명의 오크 전사들은 저택에 남기로 되었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연회가 끝나면 내일부터는 지옥 같은 훈련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 기사들이 묵을 만한 곳을 알려 줄 걸세. 따라가게나.』

한 무리의 기사들이 들어와 오크 전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드뇌브 후작이 시몬을 주목했다.

“아까부터 너희 둘은 왜 거기에 따로 서 있는 것이냐?”

다른 무리는 문 쪽에서 회담을 경청하고 있었는데, 시몬과 아트라스만 한쪽 구석에 있는 게 이상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거래를 했습니다.”

“무슨 거래?”

“저와 각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오크어를 할 줄 모릅니다. 각하께서 참관의 기회를 주시긴 했지만 알아듣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지요.”

“그래서?”

“통역해 주는 대가로 승계전을 포기하라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만 하겠다고 나서더군요.”

“승계전을 포기했다고?”

나지막이 신음을 흘린 드뇌브 후작이 아트라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눈빛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검술에 큰 재능이 없다는 것도 동시에 알아챘다.

지극히 현실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트라스라는 이름이라면 센타우리 자작가에서 왔겠군. 견학이 도움이 되었느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각하. 천금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너희 가문에 별로 도움이 되는 말은 없었을 텐데? 무엇을 얻었나?”

“식견과 배포를 얻었습니다.”

“과연.”

드뇌브 후작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로는 시몬이 왜 승계전을 포기하라고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낙향 준비를 하려는 모양이구나.”

“밭을 갈려면 아무래도 일꾼이 좀 많이 필요하니까 말입니다.”

“도망가지 않게 잘 감시하거라.”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긴 드뇌브 후작이 응접실을 나섰다.

그 말을 들은 아트라스는 짜릿한 기분을 맛봤다. 그가 말한 낙향과 밭을 간다는 표현이, 뭔가 다른 뜻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역시 내 안목이 맞았어. 공자님은 더 큰 꿈을 꾸고 계신 거야. 가문을 잇는 것 따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라니에리의 뒤를 이을 만한 대단한 착각을 해 버린 아트라스.

바로 그때, 입구에 서 있던 무리에서 작은 동요가 일어났다.

‘아트라스 저 녀석, 각하의 눈에 든 모양인데?’

‘젠장! 나도 승계전을 포기할 걸 그랬나?’

‘어차피 이기기 힘든데 말이지. 뭐라도 하나 건져 가는 게 나을 뻔했네!’

유일하게 중심을 지키고 있는 것은 로버츠와 카펙뿐이었다. 그 두 사람에게 있어 가장 주의해야 할 사람은 시몬뿐이었으니까.

잔챙이 몇 명이 승계전을 포기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시몬은 복잡하게 움직이는 후계들의 눈빛을 보며 만족감을 느꼈다. 기회가 된다면 비슷한 거래를 한번 더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건질 만한 놈이 있나 좀 더 살펴봐야겠군.’

시몬이 망상에 빠져 있던 아트라스의 어깨를 툭 쳤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자님.”

“가자. 재미있는 친구를 소개해 주지.”

드뇌브 후작만이 아니라 시몬에게도 특혜를 받는 아트라스. 후계들은 질투심을 억누르며 그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몬이 아트라스를 데리고 간 것은 자신의 거처였다.

그 안엔 라니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에서 시간 죽이고 있었나? 나름 후계자의 책사라면 와서 한마디 정도는 했어야지.”

“저는 오크어를 하지 못합니다.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핑계는 좋네.”

“그런데 이분은 누구십니까?”

시몬은 아트라스를 소개했다.

“제일 먼저 승계전을 포기한 방계의 후계자라고 할까.”

“승계전을 포기하다뇨?”

“일이 좀 있었지.”

시몬은 두 번 말하기 입이 아파 아트라스에게 설명하라 손짓했다. 아트라스는 매우 공손한 어조로 라니에리에게 상황을 알렸다.

그도 라니에리가 시몬의 오른팔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센타우리와 베텔게우스 두 가문 모두 아크튜러스의 가신 집안이다.

다만 센타우리는 방계에서 독립한 집안으로 자작위를 가지고 있지만, 베텔게우스는 남작위를 보유하고 있다.

지위상으로 아트라스가 한층 위였지만, 그는 깍듯이 존대했다.

“과연, 그랬군요.”

“덕분에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라니에리 경과 한 번쯤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습니다.”

“이거 어쩌나? 라니에리는 남자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자를 좋아하지.”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하하하하! 너도 아는구나?”

“사교계에선 꽤 유명한 이야기지요.”

아트라스가 너스레를 떨자 시몬이 기분 좋다며 웃었다. 얄미울 정도로 죽이 잘 맞았다. 라니에리는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다.

“아트라스. 방을 하나 내줄 테니 당분간 이곳에 머물며 내 일 좀 도와라.”

“명을 따릅니다.”

“최근에 상단에서 투자 사업을 하나 하고 있다. 빵집 관련 일인데, 라니에리를 도와 잡일 좀 해. 주판은 좀 두드릴 줄 아나?”

“이런 말씀 드리기 송구합니다만, 어릴 적엔 천재 소리 좀 들었습니다.”

“그 자신감 마음에 드는군.”

시몬은 제니를 불렀다.

“아트라스 경에게 머물 만한 좋은 방을 하나 내어 주도록. 가능하면 전담 하녀도 한 명 붙여 주고.”

“알겠습니다. 공자님.”

“저, 공자님. 저는 이미 거처가 있습니다만.”

“그거 말고 더 좋은 방으로 업그레이드해 준다고.”

“영광입니다.”

아트라스는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그때 뭔가 떠올린 시몬은 제니에게 물었다.

“참, 너희 가게 장사는 잘되냐?”

“엄청요!”

“그래?”

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는 시몬을 향해 꾸벅, 인사하며 제니가 물러갔다.

방에 단둘이 남자 라니에리가 물었다.

“아트라스 경을 공자님 밑으로 거두시려는 겁니까?”

“왜, 안 돼?”

“그런 건 아닙니다만…….”

“배짱 있는 친구잖아. 순발력도 대단하고. 그 자리에서 승계전을 포기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건 그렇지요.”

“우리 둘이 농사를 지으려면 좀 힘들지 않겠어? 힘 좀 쓰는 놈들이 한둘은 더 있어야지. 우리 보름이는 손에 흙을 묻힐 타입은 아니니까.”

라니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시몬의 큰 뜻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한두 명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손에 흙을 묻힐 많은 인력이 필요한 일이다.

“참, 진 경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번에도 해약을 제때 보냈습니다.”

“아아, 그거. 이제 보낼 필요 없다.”

라니에리는 살짝 놀랐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토사구팽을 한다고 해도, 진은 큰 공을 세웠다. 아직 써먹을 구석이 많았다.

게다가 알퐁스 백작가와 결판을 내지 못한 상황. 진은 알데바란에서 계속 정보를 수집하는 게 좋았다.

그런데 시몬이 해약을 끊으라고 한다.

죽여도 좋다는 의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공자님. 필요가 없다는 건 죽여도 좋다는 말씀이십니까?”

“죽이긴 누굴 죽여? 아직 본전도 못 찾았는데.”

“그렇다면 해약을 보내야 하지 않습니까?”

“아, 잘 모르는구나? 전에 내가 레서 드레이크 잡은 거 기억하지?”

“네.”

“그때 진 경에게 드레이크의 피를 먹게 했다. 참고로 드레이크의 피는 아주 강력한 해독 작용을 하지.”

한마디로 베텔게우스 가문의 비전이라고 할 만한 독약도 드레이크의 피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였다.

순간, 라니에리의 눈빛이 반짝였다.

“독을 좀 더 보완해야겠군요.”

“지금 타이밍에 그런 생각을 하는 너도 참 잔인하다.”

“공자님만 하겠습니까?”

라니에리는 뻔뻔했다. 시몬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보다 해약을 받지 못한 진 경이 어떻게 나올지 한번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눈물 콧물 흘리면서 제발 살려 달라며 애원할 것 같은데.”

“으음.”

진은 아름다우면서도 도도한 매력이 있는 여자였다. 함부로 점령할 수 없는 고결한 장벽 같은 느낌.

당연히 쉽게 상상되지 않는 장면이다.

“정말 공자님이 악당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겐 벌써 악당일지도 모르지.”

“미리 애도를 표해야겠군요.”

시몬은 기지개를 쭉 켜며 침대에 누웠다. 언제 느껴도 이 포근함에 취할 것 같았다.

“승계전, 이제 일주일쯤 남았나?”

“아직 정확한 날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때쯤 황태자님과 황녀께서 오실 터이니 그때라고 봐도 되겠지요.”

“케나드랑 데이트 좀 해야겠네.”

아직 케나드에게 전수하지 못한 검식이 많이 쌓여 있었다. 단기간에 속성으로 가르치고 승계전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게 할 계획이었다.

“그보다 면담은 어떠셨습니까? 듣자 하니 로버츠 공자와 카펙 공자가 따로 공자님과 말씀을 나눴다고 하던데요.”

“뭘 어때. 시간만 낭비했지.”

“공자님께서도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놈들은 분명 흉계를 꾸밀 것입니다. 백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고 소문이 쫙 퍼졌으니까요.”

“알고 있어. 그래서 이미 손을 써 두기도 했고.”

시몬은 퀘백 남작에게 해약을 만들어 오라고 지시한 일을 말해 주었다. 하지만 라니에리는 여전히 걱정스럽다는 표정이다.

“과연 로이드 가문의 비전으로 막을 수 있는 독을 쓸까요? 로이드 가문이 도울 거라는 건 놈들도 예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연히 그 이상의 독을 가져오겠지.”

“그럼 왜 퀘백 경에게 해약을 만들어 오라고 지시하신 겁니까?”

“실력을 좀 보고 싶어서.”

전생에서는 퀘백과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그래서 실력을 잘 모른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를 것이다.

“음식을 주의해야겠습니다. 승계전까지 금식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소용없어. 먹는 것 말고도 중독시킬 수 있는 독약은 얼마든지 있다.”

시몬은 미래의 지식이 있었다.

온갖 암투에서 사용된 독약에 관한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먹는 걸 조심한다고 방심했다가 죽어 나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대책이 있으신 표정이군요.”

시몬은 한숨을 내쉬며 라니에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책사라는 놈이 세워야 하는 대책을 내가 세워야 하는 이 불행한 신세를 언제쯤 탈출할 수 있을까?”

“전에 드비안느가 이럴 때 쓸 수 있는 유행어 하나 알려 드리지 않았습니까?”

“스불재?”

“네.”

시몬은 딱히 반문하지 못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

지금 상황에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애초에 라니에리에게는 무적의 논리가 있었다. 순리대로 가문을 이었더라면 이런 일 없지 않았냐고.

“이번만큼은 내가 대비할 테니 걱정 놔라. 절대 중독될 일 없을 테니까.”

“그래도 걱정하겠습니다.”

“암, 그래야 충신이지.”

바로 그때, 문을 두드린 집사가 뜻밖의 소식을 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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