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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74화 (74/120)

74화: 귀환 (1)

아크튜러스-알데바란 연합군의 승전 소식이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곳곳에서 파티가 열렸고, 용맹한 전사들을 위한 축제가 벌어졌다.

단연 화제가 된 것은 아크튜러스의 장남, 시몬의 무용담이었다.

열두 명의 오크 족장을 상대로 일대일 결투를 벌여 뮬라타를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죽였다는 이야기는 정말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냥 퍼져 나간 게 아니라 각색까지 더해졌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오크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진 사람들은 더욱 시몬의 이름을 마음에 깊이 새길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유명한 바드는 시몬의 무용담에 감미로운 선율을 더하기도 했다.

그렇게 전장은 빠르게 정리되는 듯 보였다.

…….

…….

한편, 뮬라타가 다시 실권을 잡은 오크 연합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침착하게 움직였다.

공성 무기 같은 대형 장비는 모두 해체되어 도구로 바뀌었으며, 긴 여정을 위해 배급을 줄이고 식량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오크가 아크튜러스 가문이 주도한 협정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1만에 달하던 오크 대군은, 이제는 그 수가 확 줄어 약 2천여 명 정도만 남았을 뿐이다.

첫 전투에서 손실이 컸고, 족장들이 죽어 나갈 때마다 진영에서 이탈한 전사들이 속출했다.

결정적으로 인간에 대한 반감이 컸다.

아크튜러스 가문과 손을 잡는다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오크들이 많았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들은 후일을 기약하며 다시 남부로 떠났다.

하지만 뮬라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따르는 오크들을 최대한 규합시켰다.

“그러니까,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입이 2천 개는 더 늘어난 건가.”

가죽으로 된 전서를 살펴보던 케나드가 탄식했다.

이대로 2천이 넘는 오크를 이끌고 접경을 넘어 아크튜러스 영지로 가야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군량이 소모될 듯했다.

그냥 식량만 축나는 거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다.

케나드는, 이 짐승과도 같은 이종족이 가는 도중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됐다.

무엇보다도 케나드는 아직도 이 협정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4천 개입니다.”

라니에리가 정중히 조언했다.

“어째서요?”

“장성한 오크는 보통 인간의 두 배 이상을 먹습니다. 배식이 엄격하게 된다는 가정을 한다면, 다소 보수적이긴 합니다만 두 배로 보는 게 맞습니다.”

“그렇군요…….”

“공자님.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주군께서 크게 화를 내시진 않을 겁니다.”

라니에리가 다독였으나 케나드는 한숨을 그치지 못했다.

“아버지께 꾸중을 듣는 게 걱정되는 게 아닙니다. 뭔가 내가…… 형님의 앞길을 방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어서 마음이 편치가 않군요.”

“그러십니까.”

“그 협정서에 들어가야 하는 이름은 제 이름이 아니라 형님의 이름이어야 했습니다.”

사실 협정서에 사인을 누가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대륙의 많은 사람이 시몬의 무용담에 감화되어 가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나 케나드는 협정서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감으로써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마치 하얀 옷에 음식물이 튀어 자국을 남긴 것 같은 느낌.

실제로 오크와 협정을 맺었다는 소문에는 케나드의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되었다.

“경도 그렇게 느꼈겠지요?”

은근히 던져지는 물음에 오히려 라니에리는 빙긋 웃었다.

“모두 큰 공자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가문을 도련님께 양보하려는 것은 진심이십니다.”

“하아,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얼마 전에 이야기 나누시지 않았습니까?”

“그땐 솔직히 반쯤은 농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억지로 이해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큰 공자님께서는 뭔가 다른 걸 보고 계신 것 같으니까요.”

“다른 것이라면…….”

“저도 궁금합니다. 저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큰 무언가를 보고 계신 것은 확실합니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답답한 기분이 들었는지, 케나드는 가죽으로 된 편지를 한쪽에 던져 놓곤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리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어째서 경은 형님을 말리지 않았습니까?”

“후계 문제 말씀이십니까?”

“맞아요.”

“주군께서도 말리지 못한 것을 어찌 미천한 제가 말리겠습니까?”

케나드는, 라니에리의 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참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경께서는 형님의 제일 친한 친구입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선임한 조언자이기도 하지요. 형님은, 그 누구보다도 경을 신임하고 계십니다.”

“좋은 말씀이군요. 조언자라면 모시는 분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 아직 큰 공자님의 그림자조차 따라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라니에리 경…….”

“의심하실 필요도, 걱정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 다 시몬 공자님께 맡기십시오.”

문득 라니에리는 궁금증이 들었다.

“혹시 전에 후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 공자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승계전에 관한 것 말입니다.”

“별말씀은 없었습니다. 저도 그게 좀 걱정이 되었는데, 눈속임은 없을 거라고 했어요. 그냥 아버지께 배운 것으로 절 상대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 배운 것으로, 말입니까?”

“예.”

“……뭔지 알 것 같군요.”

영민한 눈을 반짝인 라니에리가 케나드를 향해 정중히 예를 취했다.

“저는 잠시 큰 공자님께 가 보겠습니다. 뒷일을 부탁드리지요.”

“잠깐만, 오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식량이 많이 부족한 상태일 겁니다. 우선 우리 군량을 보내고, 부족분은 알데바란 측에서 받도록 하지요.”

“그들이 선뜻 군량을 내줄까요?”

“안 줘도 다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케나드가 깍듯이 인사했다.

가신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케나드는 라니에리를 하대해도 된다.

하지만 케나드는 그러지 않았다. 라니에리를 베텔게우스 가문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존경하는 형님의 친우로 생각했기 때문에.

라니에리는 케나드가 놓아둔 가죽 편지를 집어 막사로 향했다.

그때 푸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비둘기가 가까이 날아왔다.

눈에 익은 전서구였다.

라니에리가 팔을 뻗자 전서구가 그 위에 앉았다.

발목에 달린 통에 쪽지가 들어 있었다.

막사 쪽으로 걸어가며 쪽지를 펼쳐 본 라니에리의 눈매가 좁아졌다.

“수고했다.”

라니에리는 손바닥에 모이를 조금 덜어 낸 다음, 비둘기가 잠시나마 쉬도록 했다. 모이를 다 먹은 비둘기는 다시 하늘 저편으로 날아갔다.

막사로 도착한 라니에리가 시몬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들어가겠습니다.”

힘들어하는 케나드와는 달리 시몬은 만사태평이다. 간이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공자님. 공자님?”

아무리 불러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라니에리는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툭 쳤다.

졸던 시몬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아, 깜짝이야. 흐아암…… 아이 씨. 잘 자고 있었는데 왜 깨워?”

“공자님의 소중한 휴식을 방해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일하실 땐 일하셔야지요.”

“지금 나보고 일이라고 한 거냐?”

허탈히 웃은 시몬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크 족장급 전사 열한 마리를 모두 좋은 곳으로 보내 줬는데 그 정도면 열심히 일한 거 아닌가?”

“전쟁은 끝난 뒤가 더 힘들다는 걸 모르시는 건 아닐 테지요.”

“음…… 뭐, 그건 그렇지. 뭔 일 터졌어?”

그 질문에 라니에리는 잠시 고민했다.

케나드의 고뇌를 전할까?

아니.

시몬이 케나드에게 바라는 강함이라는 것이 단순히 수련과 실전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단념했다.

그보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것은 전서구가 가져온 쪽지 쪽이었다.

“다행히 오크족에 공용어를 할 줄 아는 놈이 있었습니다. 좀 조잡하긴 하지만 그래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라니에리가 가죽 편지를 건넸다. 대강 훑은 시몬은 다시 라니에리에게 돌려주었다.

“알아서 하면 되지, 왜 일일이 보고하고 있냐? 인솔 계획 정도는 네 선에서 세울 수 있잖아.”

“그건 케나드 공자님께서 잘해 주실 겁니다. 저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말이죠.”

“폼 잡고 말하니까 무섭네.”

“본가에 방계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식에 의하면 다들 칼을 바싹 간 것 같습니다.”

“그럴 만해.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니까.”

전쟁이 끝났으니 곧 아크튜러스 본가에서 후계전이 열린다.

직계와 방계가 모여 서로 힘을 겨루고, 가장 강한 사람이 차기 아크튜러스의 가주가 되는 자리.

그 후보자들이 본가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시몬이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라니에리가 전하고 싶은 진짜 소식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황실에서 전갈이 왔다고 합니다. 이번 후계전에 태자 전하와 메르세데스 황녀께서 직접 참관을 하신다고 하는군요.”

“뭐? 참관?”

시몬이 오만상을 찡그렸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공자님을 치하할 겸, 황실을 대표하여 참관하겠다는 뜻을 전해 왔습니다. 이 정도라면 명분은 충분하지요. 예전처럼 문전박대하시지 못할 겁니다.”

“아니, 문전박대까진 아니었어. 방 안으로 들어오긴 했으니까.”

“그게 그거 아닙니까?”

시몬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우리 황태자 나으리께서 머리 좀 쓰셨구나. 이거 한 방 먹었네.”

“좋은 수였습니다. 한 저택에 모여 있으면 후보자들과 교류하는 게 자연스럽게 보일 겁니다. 아마 그걸 노리는 것이겠지요.”

“어떨 거 같아?”

“방계 중 유력한 자들에게 모두 같은 제안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악랄한 시몬 아크튜러스를 쓰러트리는 자에게 나와 혼인할 천금 같은 기회를 주겠다. 어떠냐?”

“오…… 황녀가 나타난 줄 알았어. 진짜로.”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니에리와 오랜만에 마음이 맞았다.

“네 말이 맞다. 아, 내가 악랄하다는 거 빼고. 황녀라면 분명 그러고도 남겠지. 하지만 걱정할 거 없다. 여러 번 말하는 것 같지만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

“빨리 철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머무르실 생각입니까?”

“내일쯤 타이온 각하께서 이곳에 오신다는군. 먼 길 오시는데 얼굴은 뵙고 가야지?”

단순히 인사치레로 만나려는 것은 아니었다.

시몬도 오크들에게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큰 피해 없이 전쟁을 끝낸 대가로 그에게 군량을 뜯어낼 생각이었다.

“그럼 모레 아침 전군 복귀하는 것으로 준비하겠습니다.”

“마음대로.”

“참, 수도에서 환영식을 준비하고 있다던데 그건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시몬은 오히려 황태자와 황녀가 참관하게 될 후계전을 이야기할 때보다도 더욱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다름 아닌 루아와 관계된 일이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말을 타고 개선문을 통과했겠지만…… 좀 위험하려나?”

“분장하고 만나셨으니 루아 아가씨께서 알아보진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지요.”

“투구를 쓰는 건?”

“결투 때 갑옷도 안 입으셨던 분이 투구를 쓰고 개선문을 지나간다는 건 개연성에 맞지 않습니다.”

“오케이. 인정. 그럼 나는 따로 움직일 테니 너희들은 천천히 따라와라.”

“알겠습니다.”

꾸벅 인사한 라니에리가 막사를 나가려 했다. 바로 그때 시몬이 불렀다.

“라니에리.”

“예?”

“계획이 바뀌었다.”

시몬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돌아선 라니에리는 이제 피곤하다는 기색을 필터링 없이 선보였다.

“지금 바로 본가로 복귀해야겠어. 내일 타이온 각하께 말 좀 잘 전해라.”

“……알겠습니다.”

“웬일로 잔소리를 안 하네?”

“저도 좀 피곤해서 말이죠.”

“그래. 피곤할 땐 푹 쉬어야지. 필요하면 내 침대 쓰고. 응? 에이, 뭘 우리 사이에 그래? 사양하지 않아도 돼!”

시몬은 서둘러 막사를 나섰다.

잠시 후, 검은 준마가 푸른 오러를 머금고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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