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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70화 (70/120)

70화: 새로운 대족장 (2)

강철만큼 단단한 근육질의 오크.

피부가 까맣게 탄 그 오크의 이름은 오르투스였다. 잿빛나무부족의 족장이기도 했다.

잿빛나무부족의 오크들은 모두 피부가 까무잡잡하다. 선천적으로 까맣기도 하지만,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들어 그 가루를 몸에 바르기도 한다.

그 가루가 나쁜 기운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다준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을 이끄는 대전사 오르투스.

한때 뮬라타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대단한 무력을 갖춘 오크였으나, 이인자 자리에 머물러야 했다.

며칠 전까지는.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지.』

뮬라타는 두 번, 정확히는 세 번이나 인간들에게 패하고 말았다. 오크족에게 있어 네 번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 법.

사실 세 번의 기회도 많은 편이었다.

대전사들은 뮬라타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고, 또다시 목숨을 구걸 받고 말았다.

생환한 뮬라타를 환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대족장 자리는 오르투스가 이어받게 되었다.

『용맹하기로 소문난 블러드본마저 패배했다. 멀쩡히 두 다리로 돌아온 겁쟁이와는 달리 명예롭게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지.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대한 모닥불 앞에 모여 앉은 족장들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오크 전사에게 있어 죽음은 당연한 것.

이들이 고민하는 것은 이 전쟁의 향방이었다. 족장이 죽을 수는 있지만 부족은 승리를 쟁취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땅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기엔 시몬이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강했으니까.

『곧 겨울이 올 거야. 그 전에 비옥한 땅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많은 동족이 죽고 말 거다……. 우리가 왜 힘을 합쳐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떠올려 봐야겠지.』

그럼에도 족장들은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르투스의 미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크르르……. 설마, 다들 겁을 집어먹은 건 아니겠지? 그 뼈만 앙상한 인간 놈에게?』

오르투스가 대답을 재촉하자 족장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하찮은 인간 놈을 찢어발길 대표를 뽑아야 하겠지!』

『블러드본의 복수를 해야 한다!』

『피의 복수를!』

『복수가 아니면 죽음을!』

오르투스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겉으로는 복수를 외치는 족장들이 하나같이 겁을 먹은 것을.

한때 이들을 대표하던 대족장 뮬라타의 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영웅으로 칭송될 정도로.

그런데 그런 뮬라타를 두 번이나 완벽하게 제압한 인간을 상대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게다가 젊은 오크 전사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이라 평가받는 블러드본도 유효타 한번 먹이지 못하고 절명하고 말았다.

두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나의 생각과 같군. 그렇다면 누가 저 인간의 목을 가져올 텐가?』

『으으음…….』

『…….』

『크르르…….』

열 명이나 되는 족장이 한자리에 모였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오르투스는, 오크라는 이름이 더럽혀짐을 느꼈다.

『겁쟁이들! 죽음이 두려운 건가! 그 생각으로 어떻게 선조들을 뵐 수 있단 말인가!』

『크르르…….』

『끄으…….』

오르투스는 또다시 깨달았다.

막연한 두려움 너머로 이들을 압박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분열.’

애초에 오크족은 개별 부족 단위로 생존해 왔다. 같은 종족이라고 해서 서로 돕거나 사이좋게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부족끼리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고, 서로의 식량을 약탈하거나 노예로 부리는 경우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그 혼란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바로 뮬라타였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족장들을 복속시키고, 오합지졸처럼 흩어져 있던 오크족을 하나로 모이게 했다.

‘하지만 뮬라타는 이제 쓸모없는 몸이 되었지.’

그 구심점을 이루고 있던 대족장이 패하고 실각하게 되자 자연스레 연합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족장들이 선뜻 나서지 못한 것이다.

괜히 나서다 죽게 된다면 부족의 미래도 어두워지는 것이니까.

『이기적인 놈들! 오크의 피를 더럽히는 겁쟁이들! 너희들이 족장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말이 심하군.』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오크 하나가 툭 내뱉듯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대족장 뮬라타였다.

그는 실각한 상황이긴 해도 이 대화에 참여할 자격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나는 부끄럼 없이 싸웠다. 그런데 나를 겁쟁이라고 비난하던 놈들은 아예 나가서 싸울 생각도 하지 않는군. 그러고도 부족을 이끄는 족장이라 할 수 있는가?』

『크르르…….』

『우습군. 우습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내가 몇 번이라도 나가서 싸우겠다. 패하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것을 놈에게 똑똑히 보여 주고 오지.』

아무도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애초에 열두 족장 중 가장 강한 것은 뮬라타였으니까.

침묵이 이어지던 바로 그때.

걸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꼭 그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군.』

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오크가 입을 열었다.

서리도끼부족의 족장 잔발라.

그는 무력이라고 할 것도 없을 정도로 다른 오크에 비해 약해 보였다.

그럼에도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그 이유는, 그가 오크 샤먼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였기 때문이다. 첫 전투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잔발라가 많은 수의 샤먼을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싸움을 다른 방식으로 걸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 방식으로?』

『일대일 싸움은 무의미하다. 뮬라타가 패했는데 누가 나서서 싸운단 말인가? 오히려 첫 전투 때처럼 강하게 놈들을 몰아붙여서 땅을 빼앗는 게 정석이겠지.』

『비겁하군.』

『비겁? 크하하하!』

잔발라가 큰 소리로 웃었다. 당연히 나머지 족장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싫은 소리는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잔발라가 샤먼들을 몽땅 데리고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붉은 기운이 있었기에 전쟁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었다.

버프가 빠지면 치명적이었다.

『나가서 싸우는 것도 머뭇거리는 놈들이 비겁을 논하다니 웃기는군. 그럴 거면 차라리 뮬라타를 내보내라. 너희들보다는 멋지게 싸울 테니까.』

『크르르…….』

『결정하시오. 오르투스.』

『으음.』

오르투스가 모닥불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어느 쪽의 말도 다 일리가 있었다.

뮬라타도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오르투스와는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놈이 했던 말…… 그게 무슨 의미였을까?’

시몬은 뮬라타에게 충고했다.

위대한 오크는 싸우다 죽는 오크가 아니라 부족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존재라고.

평생 불합리한 싸움만 해 왔던 뮬라타에게 있어 선뜻 이해되지 않는 한마디였다.

『결정했다.』

새로운 대족장이 운을 떼었다.

이제는 어떤 말이 나온다 해도 오르투스의 말을 따라야 한다.

『모두 한 번씩 싸움을 한다.』

『한 번씩?』

『그게 무슨 말인가?』

족장들은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도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오르투스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크크크…… 모두 무기를 들고 나가서 싸우자는 말이지. 한 번씩, 한 번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싸우는 것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안다. 어느새 오르투스의 입가엔 잔혹한 미소가 걸려 있다.

『우리 열한 명이 모두 한꺼번에 나가서 그 약아빠진 놈에게 싸움을 건다. 차례대로 일대일 결투를 벌이는 거지. 놈이 지칠 때가 되면, 도망치거나 우리 중 누군가의 손에 죽겠지. 그때 총공격을 펼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좋소!』

『피의 복수를!』

『블러드본의 복수를!』

족장들이 가슴을 치며 사기를 북돋웠다. 하지만 뮬라타의 표정은 영 개운치 않았다.

* * *

시몬은 오랜만에 맛있는 저녁을 먹고 푹 쉬었다.

당장에라도 제국의 수도로 짓쳐 들어갈 기세를 보이던 오크들은, 블러드본의 목이 떨어진 그날 밤은 그 어떤 소란도 일으키지 않았다.

“아주 상쾌한 아침이군.”

“일어나셨습니까?”

라니에리는 한쪽에서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아군의 말을 이리저리 옮겨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런다고 뭐 좋은 전략이 나오나?”

“적어도 늦잠을 자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지금 나 돌려 까는 거야?”

“설마요.”

턱을 괸 라니에리는 말을 내려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그 사이 시몬은 세수를 하고 옆에 놓인 건량을 씹었다.

육포였는데, 로빈의 아버지 켈로그와 그의 동료들이 특별히 만들어 보낸 것이었다.

짭짤하면서도 쫄깃쫄깃한 게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어제 별일 없었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오크족 진지 쪽은 아주 조용했습니다.”

“오늘부터는 좀 시끄러워질 거다.”

시몬은 애벌레가 탈피하듯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곤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라니에리는 체통을 지키라고 한마디 하려다 말았다.

어떤 말로 대꾸할지 너무나 뻔했으니까.

“족장 하나가 고인이 되었는데 가만히 있는 것도 웃긴 일이잖아. 떼로 덤비든 나눠 덤비든 어떤 액션이 분명히 있겠지.”

“전면전은 좀 위험한데요.”

“전면전보다는 일대일 결투를 걸어올 거야.”

“근거가 있으십니까?”

“뮬라타를 계속 살려 보낸 게 아주 큰 치욕이 되었을 거다. 놈이 살아 있는 이상 한 번이라도 일대일 결투에서 이기려고 할걸? 안 그러면 모양 빠지잖아.”

놀랍게도 시몬은 오크 족장들의 회의를 엿보기라도 한 듯 정확하게 예측해 냈다.

전생에서 겪어 보지 않은 일인데도 말이다.

“정말 공자님의 사고방식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굳이 이해할 것까진 없고. 난 인생 2회 차니까.”

“형님.”

케나드가 들어왔다. 표정을 보니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오크 진지 쪽에서 움직임이 있습니다.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자식들. 아침 먹는 사람 방해하고 있네.”

시몬은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막사 밖으로 나갔다.

망루에 올라 보니, 확실히 오크들이 일제히 움직이고 있었다. 진지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곧이어 열한 마리의 오크가 늑대를 타고 달려 나왔다.

순간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내 예상이 맞았군.”

오크 무리에는 뮬라타도 섞여 있었다.

잔발라도 함께였다.

사아악!

쏴아!

그는 족장들에게 붉은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고작 열한 마리의 오크인데도 불구하고 놈들의 기세는 하나의 군단을 보는 것 같았다.

“위험합니다. 형님! 아무리 형님이라도 열한 마리의 족장을 상대하기는 벅찹니다!”

“동생아. 걱정할 대상이 잘못됐다. 위험하다는 말은 내가 아니라 저놈들한테 해야 하는 거야. 족장님들! 위험하니 어서 돌아가셔야 합니다! 이렇게.”

그 한마디를 남긴 시몬은 다시금 망루를 훌쩍 뛰어 내려갔다.

단신으로 오크 족장들과 마주하게 된 시몬.

위축될 만도 한데, 그는 마치 먼 곳에서 온 친구를 맞이하는 것처럼 팔을 벌려 족장들을 맞았다.

『어서들 와라. 진즉 이렇게 다 같이 나오지 그랬어? 하루에 한 놈씩 상대하는 것도 꽤 감질나는 일이었거든.』

『크크큭…… 어리석은 인간이여. 너는 오늘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

스릉!

시몬이 검을 꺼냈다. 그러더니 왼손을 뻗어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럼 어디 한번 해 보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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