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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65화 (65/120)

65화: 격돌 (3)

“형님!”

케나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시몬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놈이 홀로 나온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야.”

“저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네가 이번 전투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건 안다. 큰 성취를 얻었겠지. 난 눈빛만 봐도 알거든.”

시몬은 이미 이곳으로 오는 도중 케나드의 활약상을 전해 들었다. 홀로 백 마리가 넘는 오크와 샤먼들을 잡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귀신에 홀린 듯 검을 휘두르는 압도적인 장면을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목격했다.

이미 그 무용담이 널리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일대일 결투는 난전 속에서 싸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놈이 무슨 준비를 하고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저도 더 준비할 수 있습니다!”

“케나드. 진정해라.”

“형님…….”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동생에게 결투를 떠넘기는 건 보기 좋은 일은 아니야. 아크튜러스의 사령관은 나 시몬이니까. 이해해 줬으면 한다.”

시몬은 뮬라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드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대족장.

이번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생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렸다.

‘그때는 정말 위험했었지.’

전생에서는 알데바란과 연합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오크와 싸우게 된 것은 좀 이후의 일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매우 추웠던 기억이 난다.

당시 시몬은 알데바란의 남부 지역을 초토화시키고 아크튜러스 영지까지 세력을 확장하려던 오크를 상대했다.

그때도 뮬라타와 싸운 적이 있었다.

‘자연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무척 용맹한 오크였어.’

아직도 눈에 선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이 남아 있는 영웅이었다.

결국 전쟁은 아크튜러스 가문의 승리로 끝난다.

뮬라타는 전쟁 중 큰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다 본진에서 숨을 거두었고, 뒤이어 새로운 대족장이 나오긴 했으나 뮬라타만큼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 주진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오크족 군대가 모두 소탕되면서 오크족은 이전보다 못한 유랑 생활을 하게 된다.

‘전생과 다른 부분이 생겼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군.’

다수의 오크 샤먼이 전투에 동원되었다.

게다가 케나드가 없었더라면, 정확히는 시몬이 진보된 아크튜러스 검식을 전수해 주지 않았더라면 연합군은 큰 피해를 입고 패퇴했을 것이다.

물론 아직 전수하지 않은 검식을 알려 주고 케나드를 내보내면 어떻게든 결투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겠지만, 시몬은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승계전을 앞둔 지금은 케나드가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게 중요하지.’

승계전이야말로 전생에서는 없었던 이벤트 중 하나다.

방계의 어떤 놈들이 흉계를 꾸미고 후계위를 노릴지 알 수 없는 상황.

“형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저는 형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이해해 줘서 고맙구나.”

시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쪽엔 제1기사단장 파월이 있었다.

“파월 경.”

“예. 공자님.”

“지금부터 경계를 강화하고 오크 진영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보고하도록. 분명 대족장이 나와 소란을 피우며 결투를 신청할 거다.”

“알겠습니다!”

“다들 각자 위치로 돌아가라.”

“옛!”

기사들이 물러갔다.

막사엔 라니에리와 케나드, 그리고 로빈만 남았다. 이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시몬이 케나드에게 앉으라 말했다.

“기분이 어때? 듣기론 미친 듯이 오크를 베어 냈다던데.”

“아, 그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마치…… 검과 제가 하나가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태어나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전 경험이 중요하다는 거야.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익히지 못하는 것들이 많거든.”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훈련하고는 달랐어요. 몬스터나 도적 떼를 소탕하는 것과도 완전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각성이라고 부르지.”

“각성이요?”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앉아 말을 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너는 검의 천재라고. 부족한 것은 실전 경험뿐이었지. 조만간 심검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겠구나.”

“형님. 심검이라면…….”

“그래. 우리 가문에서는 아버지만이 그 경지에 올랐다고 알려진 바로 그 경지지.”

케나드는 눈치가 아예 없진 않았다. 지금 시몬이 왜 웃고 있는지 퍼뜩 눈치챘다.

“서, 설마 형님도 심검의 경지에 올라 있는 겁니까?”

“음, 일단은.”

“언제 전수받으신 겁니까?”

“아버지에게 전수받지 않았다. 혼자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굳이 환생했기 때문에 심검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시몬은 진보된 아크튜러스 검식을 마스터하고 있었다.

혼자 수련해서 깨달았다는 것은 아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부족한 것은 오러 서클의 개수뿐.

“아버지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모르고 계신다. 말씀드린다고 해도 믿지 않으실 거고. 그래서 당분간은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너도 입조심하도록.”

“검의 천재는 제가 아니라 형님이십니다!”

“아니, 그건 좀 다른 이야기야.”

시몬도 재능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 이 경지에 올랐던 것은 순전히 전생의 경험 때문이다. 전생에서 평생 검을 갈고닦았기 때문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전생의 모습과 지금의 케나드의 모습을 비교한다면 재능이 있는 쪽은 오히려 케나드였다.

은퇴를 선택한 이상 무의미한 비교이긴 하지만.

“검의 경지는 오러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익힌 검식의 경지가 어디까지인지도 중요하지. 그런 점에 있어서 너의 이번 깨달음은 매우 큰 계기가 될 거다. 심검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니.”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아니, 뭐. 감사할 것까진 없고,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 벌어질 거야. 상황 좀 살펴보면서 잘 대응하자고.”

“예!”

케나드가 군례를 취한 뒤 밖으로 나갔다. 시몬은 로빈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 명했다.

막사 안에 라니에리와 단둘이 남았다.

“좀 찝찝하지 않냐?”

“목욕할 때가 지나긴 했지요. 좀 급하게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뭔가 내가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지금 전개되는 상황이 꿈에서 보셨던 것과 다르다는 말씀이지요?”

“꿈 아니라니까?”

“어찌 되었든 우려할 만한 상황이긴 합니다. 1할이 넘는 병력에 피해가 생겼다면 앞으로의 전황이 걱정되긴 하네요.”

시몬은 곰곰이 생각에 잠기기만 했다. 라니에리는 곁에서 침묵을 유지한 채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라니에리는 지금 시몬이 전쟁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방계 쪽에서는 별다른 소식 없었지?”

“예. 있었더라면 바로 보고드렸을 겁니다. 각지에서 본가로 출발했다곤 하는데, 아직 본가에 도착한 자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잘 살펴봐. 분명 송곳처럼 튀어나온 놈이 있을 것 같거든.”

“알겠습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대족장과 결투를 하신다고 하셔서 좀 걱정입니다만.”

“걱정할 거 없어. 케나드가 상처를 입힐 정도라면 내가 금방 끝낼 수 있으니까. 그냥 마실 나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바로 그때, 막사가 확 열리더니 파월 경이 뛰어 들어왔다.

“공자님! 놈이 나타났습니다!”

“벌써?”

“예! 뮬라타로 보이는 오크가 우리 진영으로 와서 무기를 들며 뭐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좀 쉬려고 했는데 틀렸나.”

한숨을 내쉰 시몬은 옆에 놔둔 검을 들고 막사를 나섰다.

망루에 오르니 거대한 늑대를 탄 뮬라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오크의 대군이 깔려 있었다.

인간의 군대처럼 오와 열을 맞추고 진형을 갖춘 것은 아니었지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한 기분이 들게 하기엔 충분했다.

“Ni konkuru!”

“Ni konkuru!”

“Ni konkuru!”

같은 말을 반복하는 뮬라타.

“뭐라고 하는 겁니까?”

라니에리가 물었다. 시몬이 친절히 답해 주었다.

“승부를 겨루자는 말이다. 케나드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나가면 화를 내지 않을까요?”

“꼬우면 지도 형 데려오라고 하면 돼.”

그 말과 함께 시몬이 망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사뿐히 바닥에 착지한 시몬이 앞으로 걸어갔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휘날렸고, 사방에 긴장이 깔리기 시작했다.

『너는 누구냐?』

당장에라도 뛰어들려는 늑대를 진정시키며 뮬라타가 말했다.

시몬은 씨익 웃으며 그의 앞에 섰다.

『나는 아크튜러스의 사령관, 시몬이다.』

유창한 오크어가 나오자 뮬라타가 흠칫 놀랐다.

어떻게 인간이 오크어를?

물론 오크어를 쓰는 인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젊은 사람이 오크어를 쓰는 것은 처음 보았다.

『내가 찾던 놈이 아니군. 꺼져라! 가서 너의 대장을 불러와라.』

『싫은데?』

『목숨이 아깝지도 않나?』

『지금은 내가 대장이거든. 듣자 하니 내 동생한테 까불었다며? 겁도 없는 꼬맹이가 주제도 모르고 나대긴.』

스릉!

시몬이 검을 뽑았다. 오러를 천천히 흘리며 위압감을 드러내었다.

그제야 뮬라타는 눈앞의 사내가 보통이 아님을 직감했다.

『나는 그와 싸울 것이다. 꺼져라!』

『내가 대신 싸운다니까 그러네. 왜, 이길 자신 없어? 나 죽이고 내 동생하고 싸우면 되잖아?』

『말이 통하지 않는군. 비열한 인간. 너부터 죽이겠다!』

『말 잘 통하네, 뭐.』

드드드드!

늑대가 뜀박질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고, 그 상태에서 뮬라타가 거대한 마울을 휘둘렀다.

부우우웅!

시몬은 방패를 들고나오지 않았다. 손에 쥔 것은 ‘환영의 검’ 한 자루뿐.

‘번거롭게 방패로 막을 필요 없지. 그냥 피하면 되니까.’

아크튜러스의 장병들 앞에서 본래의 실력을 드러내기가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시몬은 체술을 발휘해 사뿐히 공격을 피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반격까지 가했다.

푸욱!

시몬이 노린 것은 뮬라타가 아니라 늑대였다. 뻗은 검이 늑대의 엉덩이를 찔렀다.

“꺄우우우!”

괴성을 지르는 늑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뮬라타는 늑대를 돌려보내고 땅을 밟았다.

시몬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차분했다.

『보통이 아니군…….』

『네가 비벼 볼 만한 사람은 아니긴 하지. 영광으로 알라고.』

『넌 오늘 죽을 것이다!』

자연의 힘이 마울에 모여들더니, 뮬라타가 분노의 일갈과 함께 시몬에게 달려들었다.

놀랍게도, 이번엔 시몬이 피하지 않았다.

팅!

뮬라타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시몬의 검이 마울을 자연스럽게 비껴 냈다. 조금의 빈틈도, 아니, 완벽한 계산에 의한 움직임이었다.

거기에 엄청난 속도로 반격을 해 왔다.

『큭!』

뮬라타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위기감에 몰렸다.

스칵!

제대로 대처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격을 허용했고, 가슴이 화끈거리며 녹색 피가 튀었다.

『에이, 아깝네.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갔으면 끝인데.』

가슴 쪽 피부만 살짝 베어졌다. 뮬라타는 흐르는 피를 슥 닦으며 시몬을 노려보았다.

그는 너무나 여유로웠다.

오히려.

『어때? 막상 붙어 보니 쉽지 않지? 벽 좀 느껴지나?』

하급 기사들과 대련할 때나 했던 도발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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